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ㅣ 꿈꾸는돌 47
하유지 지음 / 돌베개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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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 하유지 장편소설/ 돌베개




연달아 두 번을 읽었다.

한봄이가 사랑스러워서.

한봄이를 떠나보내기 싫어서.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 게 아쉬웠다.

다시 읽으니 인물들의 감정선이 더 깊어져

또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봄이는 점점 단단해져가는 데

지켜보는 나만 애잔하다.


하유지 작가의 신작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비로소 봄이 와

겨우내 움츠렸던 존재들이 기지개를 켜듯

따뜻함과 다정함이 돋아나는 이야기다.

주인공 '오한봄'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까지

꽉 찬 사계절의 여정이 펼쳐지며,

상실과 상처, 두려움과 불안, 관계와 성장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너와 나의 회복력을 믿고 싶어."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3모둠의 용의자들], [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에 이어

하유지 작가와 네 번째 인연이다.

작가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는 이어지면서

사람과 세상에 관한 성찰이 더해져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힘이 실어지는 이야기다.

어느새 이해하고 공감하여

한봄과 만춘 할머니, 윤혜 엄마, 동하, 규림의 관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한봄의 홀로서기를 응원하게 된다.




열일곱의 여름.

그 자체만으로 수만 가지 일렁임이 그려지는 시간에

한봄이는 두 사람을 만났다.

엄마와 추동하.




가족이라고는 오롯이 할머니밖에 없었던 한봄.

핏덩이 봄이를 맡기고 떠났던 엄마가

할머니의 심장 수술 때문에 돌아왔다.

미우면서도 궁금하다.

왜 자신을 떠났나?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엄마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엄마와는 다른 자신만의 답을, 길을 찾으려 한다.

커다란 비극 앞에서 등 돌리고 도망친 엄마와는 달리

'혼자 있을 때 행복해서

함께 있으면 더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한봄이 넌, 선물이야. 이 세상이 받은 선물."

"선물? 주기는 누가 준 선물인데?"

"너 자신이."

그렇게 봄이는 온몸에 온기를 채워주는 동하를 만나

풋풋한 사랑을 나눈다.



가족은 할머니 1분,

친구는 규림이 1명이었던

오한봄에게 엄마와 동하가 나타나

세상을 더 크게 넓혀 주었다.

사랑하는 만큼 불안한 마음도 커지기 마련이다.

한봄이는 이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홀로서기를 연습한다.

의존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게

혼자서도 행복하게 자신을 담금질한다.

​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봄이처럼 혼자 보내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해도

혼자 스스로 행복을 채워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가 있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과 슬픔을 대하는

한봄과 할머니 그리고 엄마.

서로 다른 것 같지만

결국 다 '사랑'이 이유였다.

길고양이 동글이와 네모를 구조한 다정한 마음이

절박한 상황에 처했던 그들 또한 구조했다.

'서운해'에서 '서윤혜'로 바뀐 것 같이

서로에게 있어 관계가 또렷해지고

멀었던, 주저했던 거리에

차곡차곡 마음이 쌓여가는 게 보였다.



"보면 볼수록 넌 참 이 세상에 이로운 존재 같아.

태어나길 잘했다, 오한봄."


홀로 남는 것을 두려워했던 한봄이가

스스로 혼자가 되는 시간과 공간을 통해 여물어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할 수 있게

성장해나가는 시간은 아름다웠다.

뭉클하고 먹먹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이어나가면서

오가는, 쌓여가는 마음들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건

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이 있어서 아닐까.


<어떤 계절은 영원하지>는

다정하고 따뜻한 자신의 계절을 지켜나가고자

다부져지는 오한봄을 통해 힘찬 응원을 보내고 있다.


'두려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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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
마민지 지음 / 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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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 마민지 지음/ 출퍈사 클




매년 기다리고 즐겨보던 EIDF

국내 최초 대상 수상에 빛나는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

그가 두 번째 에세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 따끈한 신작의 일부를 먼저 받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신청하였다.





이름하여 [가족관계 특이사항 있음] 먹먹단이다.

'읽고 눈물이 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신청해 주라는 마케터의 도발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신청폼을 작성하고자 링크를 누르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눈물이 마르지 않을 시간이라는걸…

MBTI 극 T 지만 이야기 앞에서는 장르 불문하고

울컥하는지라 가족, 상실, 애도…

이 민감한 주제 앞에서 무너지는 건 당연했다.

​

가제본으로 편집 중인 원고로 제작된 출력물을 받았다.

책에 줄을 긋거나 글씨를 쓰는 일은 부담스러운데

출력물이라 줄을 긋거나 기록하기에 편했다.

먹먹단 패키지에 포함된 펜과 티슈가 쓰임새가 컸다.

그리고 출판사 클 담당 편집자와 마케터가 남긴 편지는

이 책에 비슷한 감정을 품은 이들의 기록이었다.

​






전염병 코로나19로 급작스레 어머니를 여의고

유품을 정리하면서 애도하는 내용일 줄 알았던

에세이는 제목처럼 '특이사항'을 발견하며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솔직히 마 감독의 어머님께서

코로나19에 걸리셔서 임종하시기까지의 기록을

따라가는 여정만으로도 먹먹해지는 필력이었다.

읽는 내내 코로나 팬데믹의 공포가 되살아나

답답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 마민지 감독 가족의

고통과 상실에 목이 멨다.

​

코로나 팬데믹 당시 친정엄마의 신장암 수술,

그 이후 전이되어 작년에 폐암 수술까지

가슴이 타들어가던 시간들이 오버랩되며

감정의 너울이 일렁였다.

마민지 감독이 격리·통제로 아픈 어머니와

분리된 사이 느꼈던 무력감, 자책감, 후회, 두려움…

온갖 부정적 심리가 닻처럼 아래로 한없이 끌어당겼다.

속수무책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건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과

선택에 대한 부담,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이었다.

​


"삶과 죽음의 거리감이 사라지며 뒤섞이기 시작했다."



입원할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사망이

퇴원 사유가 되었다. 어머니를 '경제적인' 가장,

자신을 '정신적인' 가장이라 말하는 마민지 감독의

애도는 상실을 품은 채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




"

마음은 온통 상실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엄마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었을까?

그렇다면 엄마는 나를 두고 떠날 준비가 되었을까?

"



마민지 감독이 엄마의 장례를 준비하고

식을 치르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사회통념을 깨뜨리며 장례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일화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변화를 원하면 스스로 행동하라.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상실을 받아들여가는

애도의 시간은 참으로 특별했다.

가족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틀 안에서 바라본 그 모습이 실체이자

정답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기에 유품을 통해

미처 몰랐던 엄마의 면면들을 마주하는 일은

소중한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일만큼

놀랍고 소중하며 즐거운 시간이 되어주었다.

언제 가족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이기 전에 부부, 형제자매,

자신으로 존재했던, 이제는 사라진 한 생명을 말이다.

​

그리고 '특이사항'은 큰 변곡점이 되어주었다.

상실이 애도로 이어지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비밀'이 밝혀졌다.

여기서 멈춰버린 이야기는 정식 출간본의 옷을 입고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불시에 찾아온 엄마의 죽음으로 시작된 여정이

가족을 되돌아보고, 마주 보고, 알아가고, 포용하는

시간으로 이어지는 마민지 감독의 이야기는

한 가족의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제각각 자신의 가족을 들여다보고

그 안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가는 기회를 주는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혹시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그럼에도 가족은 가족으로,

서로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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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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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소설집/ 아작



PET, PE, PP, PS

재활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종류다.

이를 이용한 독특한 제목 『펫페페페』는 짐리원 작가 신작 표제이다.

공상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그대로 뽑아낸 듯한

파아란 색감의 표지 속 씩씩하게 걸어가는 소녀와 오리 펫페와 페페가

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책이다.

​

총 10편의 단편으로 채워진 『펫페페페』

다 같은 작가의 글인가 싶다가도 세상을 바라보는 결이 비슷하여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참신하다. 아니 이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짐리원 작가의 뇌가 궁금해지는 이야기들이다. 

한 편을 읽고 '아, 귀엽고 다정한 이야기네.' 감동하며 

또 한 편을 읽으면 '이럴 수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한 거지?'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

10편 모두 신선한 상상력으로

작가와 나, 우리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맞나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그가 풀어내는 서사가 마음에 스며들어

차가우면서도 부드럽고 낯설면서도 따뜻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소설의 배경을 생각하면 그래도 되나 싶지만,

짐리원 작가가 멸망해가는 지구의 미래에서 찾아낸

다정한 조각들이, 아름다운 흔적들이 마냥 사랑스럽고 소중했다.

​

심각한 기후 위기, 급변하는 첨단 기술…

이런저런 이유로 세계는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펫페페페』 소설집에서 그리는 세계는 이렇다.

끝나가는 세계에서 색다른 사건·설정과 인물들의 분투가 벌어진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단단히 살아가려는 이들의 움직임이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보통의 믿음이 부서진 순간 인물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선택들은 다정했다.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황에서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우선으로 용기를 냈다.

옳냐 그르냐가 아니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내고자

애쓰는 그들이 아름다웠다.

​

짐리원 작가가 그리는 미래는 밝지 않다. 그리고 기묘하다.

기후우울증, 증강손, 빌려 간 동물들을 돌려주려는 외계인,

미래에서 온 여행객, 투명동네이무기,

기사자 등록을 하고 생활하는 죽은 사람,

영혼이라 불리는 계절성 공기 결정,

생명의 본래적 목표가 된 수면,

악성날개 다발성증후군 등등.

이 기이한 말들은 『펫페페페』를 읽어본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특권을 획득한 자로서 감히 말하는데

어떠한 세계라도 아름답게 바라보기를 원한다면

『펫페페페』를 읽어야 한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몇 편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느껴져 전율을 느끼며 읽었다.

그 마음이 절실해서 또 진짜여서 소리 내어 읽을 정도였다.

[기억과 사회],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

[올림픽공원 산책지침], [모든 코끼리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고 나서],

[무기여 안녕].

다른 이야기들도 좋지만 특히나 인상적으로 다가온 순으로 적어본다.




대부분 두 존재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라

관계와 신념과 가치 그리고 기억 등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점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짐리원 작가는 온기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아니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기다리는 소설 속 인물처럼

나는 그의 다음 행보를 기다린다.

짐. 리.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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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맛
손미주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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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맛/ 손미주 지음/ 작가의 집



손미주 작가의 신작은 다들 '추억의 음식'을 소환하게 만드는 [기억의 맛]이다. 할머니와의 추억이 가득한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할머니의 마음과 손길을 꺼내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음식의 유래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역사를 알고 나니 새삼 일상에서 접하는 친숙한 음식들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

우리는 먹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먹는' 행위는 단순히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씹어삼키는 일을 넘어선다. 우리 몸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기본적인 목적을 열심히 수행하고 나서도 떠나지 않고 우리의 기억으로 새겨진다. 음식 속 재료 본연의 맛, 형태와 조리 후 조화로운 맛은 음식 하나가 아닌 그 시간과 공간 그리고 함께한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지금 이 순간 먹는 된장국이 어린 시절 밥상을 펴고 옹기종기 모여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먹던 된장국을 생각나게 하듯이 말이다.






손미주 작가가 펼쳐 보인 음식 이야기보따리는 그의 인생의 기쁨, 행복, 보람뿐 아니라 우울, 좌절, 수치심, 억울함, 공포 등등 여러 감정을 품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말없이 김 서린, 뜨끈하고 뭉글한 부엌에서 음식으로 그 모든 것을 보듬어 주셨다. 이제는 손미주 작가 본인이 할머니의 손맛과 손길처럼 딸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자신에게 새겨진 할머니의 사랑처럼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정성과 마음이 닿기를 바라며 말이다.

​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상. 밥, 수제비, 돈까스, 떡볶이, 고기… 그 무엇이든 그 한 끼에 담긴 정성이 오롯이 전해지고 이어지면서 우리 인간 또한 먼 과거에서 지금 현재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다.

​

손미주 작가가 기억하는 맛은 우리네 식탁에 오르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그렇지만 특별하다. 그가 기억하는 추억과 새로 써 내려가는 시간이 더해져 그가 기록하는 유일한 음식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직접 미꾸라지를 잡아 끓여주시던 추어탕, 어머니가 들깨를 갈아 진하게 끓여주시던 시래기 된장국, 외할머니께서 뚝딱 손질해서 척척 무쳐주셨던 오징어무초무침, 할머니께서 반죽을 쭉 늘려 잘라주면 꼬았던 매작과… 추억 속 그림과 음식들이 하나둘 소환되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먹고 싶어서 침이 고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채워준 내 몸 깊숙한 곳 어딘가의 온기가 책장을 넘기는 내내 함께 했다.

​

또 놀라운 것은 음식의 유래에 전쟁과 기근의 역사가 배경이 된 경우가 다수라는 점이다. 카레, 햄버거, 주먹밥, 수제비, 당면 등 다양한 음식들이 전쟁을 매개로 정착된 역사는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하였다. 하지만 콜라, 맥주, 아이스크림, 된장 등 새로운 사실과 지리·문화적 차이를 풀어낸 <메뉴판 비하인드> 꼭지는 호기심을 유발한다.

​





우리를 배부르게, 즐겁게, 행복하게, 따뜻하게 채워주는 음식은 단순히 음식 자체로 끝나지 않고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준다. 손미주 작가는 그 사실을 맛있게 되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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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화이트맨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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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화이트맨/ 모신 하미드 저/ 문학수첩




모신 하미드 작가의 신작 [라스트 화이트맨]은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꼭꼭 씹어야 소화시킬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언가 크게 터질 듯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침잠하여 혼란스럽고 놀라운 상황을 마주하게 한다.

​

갑자기 백인에서 유색인이 되어버린 남자, 앤더스가 여기 있다. 분명 자신의 몸이건만 자신이 아닌 듯한 아니 부정하고픈 생경한 남자를 마주하고 인생이 흔들린다. 백인으로 살아온 내내 유색인에게 예의 바르게 대했다 생각했던 그는 적잖이 당황한다. 자신이 보인 적당한 친절에 담긴 진짜 의미 혹은 의도와 함께 유색인을 향한 백인의 불편한 시선이 이제는 자신을 향하고 있기에 깜깜하고 좁은 집 안으로 들어가 나올 수 없었다.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이 비밀은 다른 백인들이 변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를 무너뜨렸다.

​

이야기는 갈색 피부로 변해버린 앤더스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연인 우나 그리고 우나의 어머니의 시선과 그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아주 도발적이고 참신한 설정으로 던진다. '피부색이 변하는' 원인 모를 변이는 폭력과 광기를 부르고 세상은 무질서해졌다. 인물들 또한 극도의 불안과 긴장 속에서 일상을 보내며 몸을 사리는 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감정이입이 되면서 그들의 심리 변화와 관계를 더 면밀히 집중하게 되었다.

​

앤더스가 기존의 자신은 사라지고 새로이 자신을 인지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생각과 감정이 인상적이었다. 자아개념은 '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에 한정되지 않고 '나에게 중요한 타인이 생각하는 나' 그리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나'까지 모든 지각을 통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 앤더스는 피부색 변이로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모신 하마드 작가는 온 세상이 뒤바뀐 이야기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갈 희망을 노래한다. 어제까지의 삶이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서먹했던 부자가, 소원해졌던 연인이, 버거운 관계였던 모녀가 이 변이를 계기로 그들을 감싸고 있던, 짓누르고 있던 상실을 딛고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가슴이 저릿해졌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가족을 이루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평범하지만 진지한 사랑과 단단한 유대로 이어진 앤더스와 우나의 이야기는 어떤 명언보다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강인하고 두려웠던 아버지가 변한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지켜주고자 애쓰며 병에 소멸되어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앤더스. 아버지의 부재를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형제를 그리워하며 어머니의 어머니가 되어 살아내야만 했던 우나. 그 둘은 피부색이 변하면서 오히려 삶, 자신, 가족, 사랑을 사유하며 닫힌 문이 아닌 다른 문을 열 수 있었다.




백인성을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던 우나의 어머니에게 손녀인 앤더스와 우나의 딸이 "그만"이라고 나지막이 한마디를 건네며 그리는 시간의 흐름과 세대의 이해가. 저자가 전하고픈 주제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

표면적, 부수적, 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본질에 다가가고픈, 삶에 열정적인 이들에게 권한다. [라스트 화이트맨]과 함께 고민해 보기를.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평온함을 느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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