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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 소슬지
원도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죽지 마, 소슬지/ 원도 지음/ 한끼
처음에는 황당무계한 소설이라 생각했다. 원룸 화장실에서 익사한 동갑내기가 귀신이 되어 자신을 찾아왔다? 똥 냄새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그 냄새를 따라왔다는, 다른 건 못 맡는데 똥 냄새 그것도 하주의 똥 냄새만 맡을 수 있단다. 그리고 하는 말이 진짜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귀신 슬지를 경찰관 하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죽지 마, 소슬지>의 작가 원도는 소설 속 인물 변하주처럼 경찰관으로, 과학수사원으로 일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 있다는 기적을 누리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이 소설을 썼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기에, 사는 동안은 잘 살자. 외롭지 않게 타인에게 조금의 다정함과 친절을 건네며 버텨보자며 귀신 승천을 돕는 경찰관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선보였다.
죽음. 살아 있는 것은 다 죽는다. 명확한 사실 앞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숱한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이라면 그 무게가 어떨까. 형사로 일하다 과학 수사대로 옮긴 변하주 경사는 하루에도 몇 건씩 변사를 처리하는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자기를 살리고 죽은 선배를 가슴에 품고 죽음에 이른 타인의 역사 마지막 페이지를 엄숙하게 정리하는 '오늘'을 보낸다. 살아생전 알지 못한 이의 마지막을 처리하는 일이라니,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가늠할 수 없는 세계다.
평생 과민대장증후군에 시달려온 인생살이가 증명하듯 퍽퍽한 하루를 사는 하주는 귀신 소슬지와 이상한 동거를 시작했다. 하주와 슬지는 어떻게 보면 닮음꼴이다. 외로운 사람, 타의든 자의든 자신의 속마음을 가족한테까지 털어놓지 못하고 주변과 온기를 나누지 못한 채 혼자만의 공간에 침잠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주는 슬지가 그렇게 마음이 쓰였나 보다. 자기 같아서. 자기도 그렇게 초라하게 죽을까 봐 무서워서. 슬지가 승천할 수 있도록 도왔나 보다. 마음이 쓰라렸다. 상처가 낫기도 전에 딱지를 뜯어내고 뜯어내는 하주가, 슬지가 안쓰러웠다.
"다치면 어떡해?"
"다치면 어때. 살아 있잖아. 살다 보면 회복하겠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지도 몰라."
"그럼, 네가 구해주면 되지. 경찰관이잖아."
시신을 회수할 유족도, 친구도 없는 슬지. 그 좁디좁은 삶의 궤적을 훑는 일이 오히려 더 힘겹다. 그를 기억해 주는, 울어주는 이들이 적어서. 하지만 하주는 끈질기게 슬지의 인생을 되짚어간다. 인생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슬지를 묻는다. 서로 살아있었을 때 만났으면 친구가 됐을까? 생각하는 장면에서 감정이 벅차올랐다. 참 산다는 게 뭘까 싶으면서도 사람의 온기가 소중하다는 생각에 가족들,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려보았다.
슬지를 만난 이후 무너져 내리는 하주를 가족과 친구, 이웃들이 일으켜 세워줬다. 말을 하지 않아 서로의 속을 몰랐던 동생 진주의 거칠어진 손, 무당 아름의 부적, 이웃 상미의 참치김밥이 텅 빈 하주의 속을 채워주었다.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방이 진짜 '집'이 되는 마법은 바로 온기였다. 원도 작가는 특유의 감성으로 살아가는 이치를 풀어냈다. 이상하지만 다정하고 슬프지만 따뜻한 하주와 슬지의 동거였다.
이제 하주도 활짝 웃으며 오늘을 살아가리라. 슬지도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하주 덕분에 위로받았으니 다행이다. 죽음으로 시작된 이야기지만, 원도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그려낸다. 하주가 통과하는 슬지의 손에서도 온기를 느끼듯 우리는 온기를 갈구하고 필요로 한다. 하주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변의 온기가 하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처럼 사랑하고 배려하고 위로하며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슬지와 하주의 서사가 메말라 읽으면서 목이 멨는데 엉뚱한 결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도 작가가 전하는 따뜻하고 건강한 메시지가 잘 닿았다.
"더 잘 살아. 누구보다도."
"천사가 왔다 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