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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 웃프고 찡한 극사실주의 결혼생활
햄햄 지음 / 씨네21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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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와 판다의 사랑 이야기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

귀여운 표지와 앙증맞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만화 에세이로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나, 꾸밈없는 사람이오. 대놓고 홍보하는 제목처럼 책 곳곳에서 저자의 털털함과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널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나였다/햄햄 지음/씨네21북스



1라운드 - 어느 서늘한 연애담

2라운드 - 기묘한 동거 시절

3라운드 -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동거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그들만의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서 공감을 자아낸다. 이제 결혼 2년 차인 신혼이지만 긴 시간 연애와 동거로 더 이상 볶을 깨가 없어서 잔잔한 시작이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젓는

다. 결혼 16년 차에 접어든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달달한 그들이기에 보는 내내 향긋하고 달콤한 내음에 행복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공감 가는 에피소드



자립적인 두 남녀가 연애 시작부터 결혼까지 일상을 필터링하지 않고 보여주는 형식이라 MZ 세대의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랑이 시작되는 이유가 운명처럼 극적이지 않아서 더 공감이 갔다. 한번 눈이 닿은 곳은 자연스레 시선이 가게 된다. 시바도 같은 회사에서 판다의 등이 눈에 들어왔고 어느새 모든 시야에 꽉 차 버렸다.

서늘한 연애담 에피소드 중 반지하 판다의 첫 자취방 이야기들이 많다. 안타까운 청년들의 현실을 그리면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시간 속에서 솟아나 뻗어나가는 사랑의 줄기가 그들을 더 강하게 묶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지하 방에 핀 곰팡이를 신사임당의 초충도 속 포도송이처럼 멋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바의 독특함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녀를 한결같이 잔잔하게 바라봐 주고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판다의 듬직함이 멋지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 단계로.

 

 


 

연애와는 또 다른, 현실적인 면을 알게 하고 서로에 대해 더 깊숙이 들어가는 문을 여는 동거 생활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맞다'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까지 한 시바와 판다 커플.

중증 개털 알레르기 보유자면서도 반려견 '하루'와 죽고 못 사는 관계인 판다처럼 이미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가 된 시바와 판다 그리고 하루의 일상이 사랑스러운 그림체와 색감으로 포근하게 그려져서 실제 투닥투닥거리는 싸움 장면이 그려져도, 시바의 불타오르는 분노가 느껴져도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 너 좋다는 여자가 생긴다면 -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빠질 수 있구나.

판다가 인기 많을까 봐 살 빼고 머리숱 많아지는 게 싫다는 말에 한바탕 웃고,

한날한시에 같이 죽게 해달라는 소원에 눈이 번쩍 뜨이고,

바람피우는 꿈에 화가 나서 자고 있는 판다의 뺨을 찰싹 때리고 배신감에 우는 시바의 모습에

저렇게 좋을 수가 있구나.


 

천천히 우리들의 속도대로, 그렇게 가자.

단지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일 뿐. 쫌 들어주면서 살지 뭐. 들어주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하지 않을 뿐이다. 물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랑해 주면 좋겠지만, 나 또한 그렇게 해줄 수 없음을 알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그렇지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계속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남편의 지난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여자, 남자, 연인의 관계가 아닌 엄마, 아빠, 주부, 가장으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옅어지고 사라져가던 사랑의 기억들이 퐁! 퐁! 퐁! 튀어나왔다. 괜스레 소파에서 누워자고 있는 남편에게 담요를 덮어주게 된다. 그리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말을 건넨다. 혼자 헤매지 않고 두 손 꼭 잡고 앞으로 걸어가는 시바와 판다의 내일을 응원해 본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를.

 

연말연시에 따뜻한 집안에서 꼬물꼬물 거리면서 보면 좋을 책 ♡

바라만 봐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던 시간을 불러와 웃고 울고 살아가는 내음 가득한 우리의 이야기와 시바&판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요.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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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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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윌리엄 트레버 지음/김하현 옮김/한겨레출판
 


작가들의 작가, 우리 시대의 체호프

윌리엄 트레버가 선사하는

불가해한 삶에 대한 다정한 연민과 아름다운 위로

 

『밀회』

290 페이지에 12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소설책

한편이 2,30 페이지 정도인데도 그 안에서 삶의 단면인 '사랑의 잔재'를 섬세하고 다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자매 앞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부인(고인 곁에 앉다), 죽어 있는 일곱 마리의 갈까마귀의 시체를 발견한 소년의 직감은 중년 후반이 된 소녀 벨라가 범인이라 말하고 그녀에 대해 순수한 관심을 넘어 은밀한 욕망을 꿈꾸게 된다.(전통)

변화하는 시대에 성당의 위엄은 사라지고 성직자의 영향력도 점점 약해져 가는데 마을의 부족한 소녀 저스티나의 고해성사를 듣고 신부는 결심을 하고 그녀의 집을 찾는다.(저스티나의 신부)

브라이언스턴스퀘어 소개 단체를 통해 만남을 가진 두 남녀의 동상이몽(저녁 외출)이 우아하게 그려진다.

유산을 남긴 여성과의 추억, 과거의 기만을 기억할 수 있는 장식품만을 받고자 하는 미련을 보이는 그라일리스(그라일리스의 유산), 서로를 알지 못하면서 곁에 머물고 자신을 위해 부부로 살아간 엄마 아빠를 떠나보내고 고독을 느끼는 나(고독), 신의 세상에서 불리한 환경 때문에 자신의 목표를 빼앗긴 조각상 제작자의 아내인 누알라는 신성한 조각상을 바라보면서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평온함에 잠겨 조각상의 체념을 느꼈다.(신성한 조각상)

로즈의 대학 진학을 축하하는 파티에 개인 교사 부버리씨가 초대받았다. 로즈는 주 1회 그의 집에서 수업을 들었고 그때마다 그의 부인은 외도를 했다. 이를 알았던 로즈는 부버리 씨에게 말하지 못한 미안함과 그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고통 때문에 그리고 그녀 앞에 펼쳐진 창창한 시간, 언뜻 보게 될 다른 비밀과 배신들 때문에 울었다.(로즈 울다)

두 연인이 미래를 꿈꾸고 사랑을 맹세했던 일들이 틀어지면서 깨닫게 되는 사랑의 허망한 약속(큰돈),

웨이터로 일하면서 겪은 일로 사람을 죽인 전 남편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을 흘린다.(거리에서)

무용 선생이 들려준 음악이 브리지드 삶 곳곳에 스며들어 그녀가 떠난 후에도 영혼으로 남으리라.(무용 선생의 음악) 불륜으로 시작한 사랑을 끝내 이어가지 못하고 이별을 하게 되는 두 남녀. 하지만 그 이별의 순간마저도 부정하는 사랑의 불변함은 영원하다. (밀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거나 회상과 현재가 구분 없이 전개되는 글은 쉽게 허투루 읽히는 걸 거부한다. 덤덤하게 진행되지만 그 안에 녹아있는 감정선은 애써 무시하거나 꾹꾹 눌러왔던,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픈 불편한 내면을 흔든다. 격정적인 사랑이라도, 순수한 소년의 풋풋하면서도 내밀한 이성에 대한 관심이라도, 타인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나누는 외도일지라도 그의 손을 통해 탄생한 비밀은 우리네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똑같은 불편함이, 그녀가 참여하는 활동에서는 거짓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성가신 인식이 남아 있었다.

헤어질 때 두 사람에게는 약간의 놀라움이 남았다. 마땅히 일어났어야 할 상황과 비교하면 그들이 서로를 이용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존엄이었다. ...... 함께 나눈 즐거움만큼이나 은밀했다. _ 저녁 외출

 

 

사랑한다고 굳게 믿고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꿔 결혼을 약속했던 존과 피나의 이야기가 마음에 닿았다. 두 사람이 사랑한 것은, 너무나 사랑한 것은 미국이었다. 그 미국이라는 곳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게 된 순간 피나는 비극적인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존 마이클을 사랑하지 않는다. 끝나버린 사랑의 허약함을 아쉬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 피나의 담담한 각성은 그렇게 단단했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을 읽다 보니 '사랑'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형태들에 대해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리고 왠지 슬퍼졌다. 그리고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위로받았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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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낚시질을 시작합니다 : 팩트 피싱
염유창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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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다.

물질적 풍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문도 정보와 콘텐츠, 뉴스 등 다양한 형식과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선택해서 취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제공하는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길 원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발달된 네트워크 온라인 세상은 물리적, 지리적, 경계적 한계에서 벗어나 온 세상을 아우르는 공간이 되었고 전통 미디어들은 그들의 자리와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뉴미디어들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고 독자 또한 예전의 수동적인 입장에만 머물지 않고 댓글, 공감 등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 더 나아가 '1인 미디어'라는 커뮤니케이션 플랫폼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기사 또한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플랫폼에 한 꼭지로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검색으로도 원하는 뉴스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게 된 요즘에는 신문사, 미디어들의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언론들의 보도 행태들이 - 편파 보도, 속보와 특종 경쟁에 유실된 팩트 체크, 오보를 내도 사과 한마디 없는 뻔뻔한 태도, 남의 기사를 고스란히 베끼거나 짜깁기한 우라까이,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성 보도 남발, 이익에 눈이 멀어 내팽개친 언론윤리,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확증편향 등 - 언론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그리고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의 본질을 왜곡하는, 자극적인 기사 제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런 우려와 불신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진실된 언론인의 자세를 깨우치는 기자의 모습이 그려지는 「지금부터 낚시질을 시작합니다 : 팩트 피싱」

 

지금부터 낚시질을 시작합니다 : 팩트 피싱/염유창 지음/스윙테일



이 책은 온라인 뉴스 편집 기자로 일했던 저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생동감 있는 묘사, 진실 보도와 조회수라는 난제 앞에서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가는 어느 기자의 성장기를 그려낸 작품으로 낚시 제목 추종자인 기자가 후배의 자살 사건을 파헤치면서 충격적인 진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추리 스릴러다.

 

 

日 매출 1000만 원 '대박' 맛집 비결 알고 보니

인기 아이돌 "옷을 훌렁…" 충격 데뷔

톱배우, 여아이돌 폭행 전말 CCTV 확보?

클럽 살인범 잡고 보니 한민 그룹 후계자

400만 원 벌어도 결혼 못 하는 까닭

"총리는 나가 뒈져라" 야당 총수가…

음주단속 걸린 3선 의원, '후' 불었더니 결국

여교사를 뒤에서 덥석?

 

 

스쿱뉴스 편집 기자인 나윤재가 뽑은 제목들이다. 뉴스의 서바이벌 시대에 조회수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기자답게 자극적이고 악의적인 제목들을 뽑기로 유명하다. 어느 날 아끼던 후배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 출근을 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긴 윤재는 후배의 자취방을 찾아갔고 그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침입한 흔적이 없고 유서까지 발견되어 자살로 처리되었다. 도저히 후배의 자살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그는 타살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일정을 바꾸고 남들에게 절대 알리지 않으려고 했던 후배의 행동을 되짚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원인을 파헤쳐 나간다. 후배가 제보받았던 정치인의 불륜 루머를 추적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이 마무리되고, 다른 이들처럼 경준이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다짐하듯 되뇌던 중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된다.

평소 속독으로 많은 양의 기사를 순식간에 읽던 후배처럼 유서를 대각선으로 살펴보자, 숨겨진 다잉 메시지가 나왔다. "살인범은 한민"

이제부터 장경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나윤재의 추적이 시작된다.


 

 



현실적인 기자들의 일상과 기사 내용이 생생한 현장감을 전하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루머, 경제인의 치부를 덮어주는 비리 경찰, 경제인과 조직폭력배의 공조 또한 요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 씁쓸하면서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나윤재 기자가 달라진 만큼 조회수에서 벗어난 만큼 그 공을 독자에게 돌리고 있다. 사실에 기반을 둔 기사를 쓰고 본문의 맥락에 의거해 제목을 편집한다. 이렇게 기자가 낚아 올려 준 투명한 진실을 이제 우리 독자는 제대로 읽고 비판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430 쪽이 되는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잘 짜인 구조와 흥미로운 사건 구성으로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술술 읽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가볍지 않아 재미와 주제의식을 모두 갖춘 「지금부터 낚시질을 시작합니다 : 팩트 피싱」 낚아 올려지길 기다리고 있다. 힘찬 반향을 기대해 본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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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스노볼 1~2 (양장) - 전2권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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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박소영/창비출판사/소설Y클럽/대본집03

 

 

이번 대본집은 2권으로 웅장한 서사가 펼쳐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평균기온이 영하 40°C인 지구에서 유일하게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 스노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오늘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최저기온이 영하 5°C라는 소식에 아이들 발열 내복과 핫팩 그리고 목도리까지 챙기는 등 아이들 등굣길에 부산을 떨었던 나의 모습이 코미디처럼 느껴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날씨이다.

 

선택받은 자만이 따뜻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 스노볼!

평범한 열여섯 살 전초밤은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던 그 세계에 원했던 디렉터가 아닌 스노볼 최상위 액터! 고해리로 들어가게 된다. 전초밤이 아닌 고해리 대역으로 들어가는 세계이므로,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가족들에게조차 거짓 정보를 전한 채 시작한다. 그날 만났던 조미류와 쿠퍼 라팔리의 운명이 스노볼 세계를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나도, 전초밤도 결코 몰랐다. 과연 알았다면 전초밤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소설 중간에도 이런 장면이 나왔지만 스노볼에 대한 환상, 갈망이 불안, 질문...... 모든 것을 희석시키고 의미를 잃게 만들었기에 전초밤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세계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천혜의 지열이 솟아나는 기적의 땅, 스노볼!

스노볼은 이백 년 전에 갑작스레 시작된 혹한기에 세워졌다.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정부가 무너지고 결국은 국가라는 개념이 희미해진 시기에 '이본'이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자가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에 거울 돔을 세워 외부인으로부터 지역 주민을 지켜내었다. 스노볼 시스템은 전쟁 문명 이후 폭력을 지양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세상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이본은 지열이 존재하는 지역을 찾아 유리 돔을 세워 스노볼을 이주하였다. 그리고 이본 미디어 그룹을 창립하여 액터 오디션을 개최했고, 드라마를 방영하기 시작하였다.

스노볼은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사람들의 일상을 찍고, 그 찍은 영상을 디렉터가 편집하여 드라마로 방영한다. 재건 가문인 이본 미디어 그룹은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액터와 디렉터를 보조하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전력을 생산하거나 사생활을 공유하라는 시민의 기본적 의무가 일절 주어지지 않는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드라마를 시청하기 위해 발전소에서 전력을 생산한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이 스노볼에 입성하기 위해 액터 오디션을 보거나 필름 스쿨에 지원하여 디렉터를 꿈꾼다. 전초밤 역시 디렉터를 꿈꾸는 평범한 열여섯 살 소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스노볼 디렉터 차설이 전초밤을 찾아와 스노볼 최상위 액터 고해리 대역을 제안한다. 고해리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하면서.

 

전초밤은 신입 액터를 위해 이본이 주최한 파티에서 고해리 대역을 대외적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날 의도치 않게 이본이 숨기고 있는 커다란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의미는 알지 못한 채로. 그리고 고해리 역할에 익숙해질수록 바깥세상에서는 동경 그 자체였던 그녀의 삶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차설 디렉터는 고해리를 이본 미디어 그룹의 이본회와 결혼시켜 무한 권력 이본 그룹 또한 자신의 디렉팅 안에 끌어들이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밟고 있었다. 첫 만남부터 초밤을 테스트하고 조종했던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초밤을 철저히 이용하고 버렸다. 이 원대한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벌인 추악하고 끔찍한 기획이 스노볼 1의 큰 줄기이다.

스노볼 2에서는 전초밤이 발견했던 이본의 숨겨진 비밀에 대한 진실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축복의 땅으로 알려진 스노볼, 공정함을 강조하는 이본 그룹!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진실이 없었다. 추악한 인간의 욕심으로 가득 찬 유리 돔 스노볼 세상을 바꾸기 위해 소녀들이 뭉쳤다. 자신과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과 평온, 행복을 위해 그리고 진실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너 자신을 속여. _ 이본회

 

「스노볼」이 담고 있는 세계는 경이롭다. 「트루먼쇼」, 「설국열차」, 「가타카」, 「아일랜드」등 개봉 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들이 생각났다. 삶을 관찰한다, 인간을 분류하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낸다, 보험으로 복제인간을 만든다 등 흥미롭고 반향이 큰 설정들을 통해 「스노볼」은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트루먼쇼처럼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삶을 평범한 일상으로 볼 수 있을까? 더욱이 트루먼은 본인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행동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인지하고 카메라 앞에 선 스노볼 액터는 자신의 의지대로 순수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스노볼을 지탱하는 건 공정한 시스템입니다.

표면적인 공정함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가 재난 온도계가 아닌가 싶다. 액터가 의무를 내팽개치고 제멋대로 굴 때마다 재난 온도계의 온도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쌓여서 100점이 되면 거대 불꽃이 재난 온도계를 통째로 불태워 버리고 재난 추첨이 시작된다. 재밌는 것은 스노볼은 선택된 자들만의 왕국이지만, 스노볼이 겪는 재난은 평등하게 바깥세상 사람들까지 다 제안할 수 있다. 엽서까지 제작해서 제공하는 공정함을 보여주고, 채택된 재난 엽서의 작성자에게 선물이 제공된다. 재난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이에게는 재미이자 오락이다. 자신에게는 순수한 바람이나 참신한 아이디어일 뿐이지만 누군가는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재난이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한다. 이토록 교묘한 방법으로 이본은 인간의 목숨과 인생을 가지고 논다.

 

신처럼 군림했던 이본 그룹,

그 신을 굴복시키고 싶었던 차설,

그 신을 없애고 또 다른 신이 되고 싶었던 신이채.

모두 자신의 목표, 욕망 실현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원대한 꿈 그래서 누구나 그 뜻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자신의 길에 방해되는 이를 가차 없이 제거하는 괴물로 변해버렸다. 목표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상실한 그들은 신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하였다. 이렇게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100여 년의 시간을 이본 미디어 그룹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었던 스노볼 세계. 밝혀지면 안 되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누구라도 설사 핏줄이더라도 과감하게 처리하는 냉정함이 있기에 그들이 그 긴 시간 동안 스노볼을 지배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모든 이들이 다 순순히 침묵하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추방당하고 각종 약물로 사람들의 의심과 고통을 잠재우고, 최면으로는 거짓 공포를 자극해도, 카메라의 사각지대를 찾아, 이본의 마수가 미치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그들의 반항을 멈추지 않는다. 이본이 짜놓은 연극 판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는 자각과 인식, 다짐은 스노볼에 작은 균열을 가져오고 있었다.

'전초밤'의 용기가 그 균열에 힘을 가해 이본 미디어 그룹의 거짓된 실체를 낱낱이 밝혀낸다. 스노볼 1에서도 스노볼 2에서도 카메라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퍼포먼스는 통쾌하다. 이본이 디렉팅 하던 그 공간을 도리어 그들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활용한 점이 의미 깊다.

 


 

이본이 자신들의 특권을 위해 방송의 노예, 약물의 노예, 최면의 노예로 만들었던 사람들을 깨우는 일이 시작되었다. 인류의 구원자를 자처했던 이본 미디어 그룹의 '이본영' 회장은 그녀가 오락거리로 만들고 비웃었던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나약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 책 내용 중 - 

 


영웅은 타인을 위해 세상을 구하겠지만, 평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거야.

나를 향한 금기와 한계를 깨기 위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안전과 평온을 위해, 원래의 나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기꺼이 감내하고 이어 가는 것. 그게 세상을 바꾸는 일의 본질이야. (차설)

 

당신은 대체 뭘 위해서 세상을 바꾸려는 건데? (전초밤)

 

너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내가 짜놓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고도, 너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이본영)

 

내일이 오면 이본은 네게 두 가지를 포기시킬 거고, 모레가 오면 세 가지를 포기시킬 거야. 그렇게 네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 테고, 결국 네가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것마저 모조리 빼앗기겠지. (차설)


 

스노볼에서 지낸 '초여름 밤의 온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자신'으로 행복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오늘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소설Y 클럽 2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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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괴 도둑과 비밀 정원 괴짜 박사 프록토르 4
요 네스뵈 지음, 페르 뒤브비그 그림, 장미란 옮김 / 사계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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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 네 번째 책 「금괴 도둑과 비밀 정원」이 출간되었다.

 

금괴 도둑과 비밀 정원/요 네스뵈 지음/페르 뒤브비그 그림/사계절



그리고 다섯 번째 책 「크리스마스를 구하라! 」도 같이 출간되어서 어린이 독자들은 모험 이야기로 연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딸에게 들려주려고 시작한 이야기가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작가 요 네스뵈가 이런 기발하고 기괴하고 엉뚱하고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 괴짜 박사 프록토르 시리즈만은 딸에게 가장 먼저 보여줄 것 같다. 다 읽은 딸의 반응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이 된다. 네 번째 이야기 「금괴 도둑과 비밀 정원」 또한 딸 편집자님의 손을 거쳐 우리에게 무사히 전달되었을 것이다.

 

 


노르웨이 중앙은행이

하나뿐인 금괴를 도둑맞는다.

 

이 사건으로 무적 삼총사가 또다시 뭉치게 되었다. 이번에는 무려 노르웨이 국왕이 직접 그들에게 임무를 내린다.

금괴를 되찾아오라!

달카멜레온으로부터 세계를 구한 불레, 리세, 프록토르 박사는 이번에도 노르웨이의 운명이 달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짐을 싼다. 누가 금괴를 훔쳤느냐?에 대한 답만 들은 채 무작정 그들을 찾아 영국으로 떠나는데, 아뿔싸!!! 삼총사가 떠나고 국왕과 비밀정보원들이 나누는 대화가 살벌하다. 피의 손마디 게임, 파르마산 치즈 ◎.◎

 


 

 


요 네스뵈는 이번에도 독특한 악당 캐릭터들을 등장시켜서 적당한 긴장감과 불쾌감을 만들어낸다. 그가 늘여놓은 여러 장치들과 복선들이 소설 곳곳에서 적절히 쓰이는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기대감이 있다. 다소 황당하고 어이없는 설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다 계획이 있었다. 허투루 쓰이지 않는 작은 소품들, 상황들이 재미를 배가시킨다. 시가, 부동액, 다트라니.

 

이번 시리즈에서는 불레와 리세의 성장이 눈에 띈다.

달카멜레온의 야욕에서 세계를 구했지만 기억이 지워진 사람들은 오히려 불레를 비웃고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워 불레는 마을을 떠나 페테르의 상점에서 일을 도우며 생활할 정도로 상처받았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온 비밀정보원들을 따라나서며 다시 금괴 도둑을 잡는 모험을 떠난다. 몸집은 작지만 마음 넓고 대범하고 호기심 넘치는, 엉뚱한 불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불레가 위험에 처하자 리세는 꼭 자신 때문인 것 같아 불레를 질투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불레처럼 엉뚱하고 재밌게 살고 온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그 모든 건 불레의 몫이다. 매번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불레가 부러웠다. 항상 올바르고 분별 있게 행동하고 불레를 보살펴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드디어 금괴를 되찾는 일에 직접 뛰어들게 된 리세는 멋지게 성공한다. 서로를 믿고 위하면서 위험하고 큰 임무를 잘 수행해 나가는 불레와 리세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큰 느낌이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당당하고자 노력하고, 자신의 강점을 잘 이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를 격려하고 위하며, 자신의 마음을 진실되게 말하는 불레와 리세는 성장하고 있다. 

 


 

괴짜 박사 프록토르의 또 다른 매력은 독특한 삽화이다.

다소 과장되고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삽화는 기상천외한 모험 이야기로 가득한 책에 숨을 불어넣는다. 악당, 외계인, 세계정복 등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위험천만한 모험 이야기인 만큼 그림도 그 맛을 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삽화를 보면 글을 읽다 놓치거나 미처 떠올리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다. 특이한 캐릭터만큼 독특한 삽화가 글의 맛을 한 단계 더 높여주는, 기분 좋은 조합이다.

 

조국 노르웨이의 운명이 달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영국 런던까지 단숨에 날아간 불레와 리세, 프록토르 박사 삼총사. 임무 완수를 축하하는 파티까지 열렸으니 확실히 임무를 마무리한 게 맞는데...... 가뿐한 느낌이 들지 않는 건 나뿐은 아닌 듯하다. 허를 찌르는 요 네스뵈 작가의 스킬은 그의 작품을 기다리게 하고 궁금하게 한다.

 


「금괴 도둑과 비밀 정원」(책 제목의 비밀은 책 속에서 찾아보세요 :D)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삼총사와 한마음이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이 책은 상상력의 힘이 얼마나 무한한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살고 있는 불레와 리세가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으니 즐겁게 어울렸으면 좋겠다.

 

이미 삼총사를 알고 있는 이들 중 삼총사가 어떻게 금괴를 되찾을 수 있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를 알고 싶으신 분이라면 주저 없이 펼쳐보시길 추천한다. 그리고 삼총사를 모르는 이들 중 책을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여기는 분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말도 안 돼." 하며 읽지만, 다 읽은 후 "다음 책은 언제 나와요?" 물어보게 된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연말을 기대하며.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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