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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ㅣ 밀란 쿤데라 전집 6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평점 :
삶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만일 삶에 무게가 있다면 무게있는 삶이 좋은 것일까, 가벼운 삶이 좋은 삶일까?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는 가벼운 것은 긍적적이고, 무거운 것은 부정적이라고 했으며, 파르메니데스와 달리 고전주의 작곡가 베토벤은 무거움을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라고, 이 소설은 시작된다.
체코의 프라하에 러시아가 침공하기 전까지 토마시는 의사였다. 그는 세상의 관점에서는 잘나가는 바람둥이 외과 의사였고, 토마시의 표현대로라면 여자를 통해 인간이라는 공통의 의미 속에서 100만분의 1의 상이점을 찾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였다. 그런 그에게 한 시골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테레자로, 시골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면서 책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꾸었다. 토마시는 그녀를 여섯번의 우연을 거쳐 자신에게로 떠내려온 바구니 속의 아기로 여겼다. 테레자가 토마시에게 닿기까지의 과정은 우연이였지만, 우연은 곧 필연이 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의 의미로 토마시에게 새겨지며, 테레자에게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둔다는 것은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며, 무게를 느끼기 시작하자 테레자는 토마시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더더욱 큰 의미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거라고 믿는다.(64쪽)
사랑의 역사는 '꼭 그래야만 했다'이라기 보다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에 근거한다. 때문에 모든 필연은 사랑에 혹은 자신의 운명에 경도된 이들의 의미두기의 과장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필연이거나 우연이거나 하는 것은 과도한 의미두기의 하나일 뿐이며, 단지 우리에게는 순차적인 순간, 즉 평행상의 사간차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간의 시간차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기도, 스쳐가기도, 혹은 사랑이라는 의미를 새기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토마시가 테레자가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던 순간, 베토벤의 음악이 흘러나왔다고 해서 테레자가 그를 필연으로 마음에 새길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만남에 보다 많은 순간이 얽혀있다면, 어쩌면 그것을 '운명'이라고 이름지워도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토마시가 테레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가 여자들에게서 100만분의 1의 상이점을 찾는 작업을 멈춘 것은 아니였다. 토마시에게 사랑과 섹스는 전혀 다른 것이니까.
물론 사랑과 섹스는 같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섹스를 하려면 최소한 상대를 경멸하지는 않아야 하며,지독한 친밀감도 쾌락이 '주'가 되는 섹스에는 좋지 않다. 토마시는 경멸과 지나친 친밀을 배제한 채로 얼마든지 많은 여자들과 섹스할 수 있었다. 토마시의 그녀들 중, 화가 사비나가 있다. 그녀는 육체를 통해 자기를 보려고 노력했으며, 전체 속에서 얼마든지 자신을 구분해 낼 줄 아는 사람이였다. 때문에 토마시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삶에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사람이였다. 토마시나 사비나가 질러대는 광란의 쾌락을 나로서는 절대 이해 못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그토록 쾌락을 쫓는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였다고.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 않는 소설은, 시간의 뒤섞임 속에서 네 명의 주인공인 토마시와 테레자, 사비나와 프란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뒤죽박죽 진행된다. 그러나 이러한 진행은 이야기의 인과관계를 살피는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다만 사비나와 프란츠의 길고 지루한 외도 끝에 느닺없이 날아든 토마시와 테레자의 죽음은 다소 많이 당황스러웠다. 그들이 죽을 당시 토마시는 그 자신의 삶에 의미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했던 학자이자 의사인 직업을 버리고 트럭 운전사가 되어있었다. 그만큼 그들의 죽음도 다소 희극적이였다. 나는 그들의 죽음뒤에 모종의 음모가 있으리라고 예감했지만, 밀란 쿤데라는 나의 기대를 보기좋게 무너뜨렸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애견 카레닌의 죽음을 거쳐 아름답게 표현되었다.
흔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랑 이야기로 표현되지만, 나에게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배신에 관한 이야기, '꼭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로 부터 명예로운 탈출에 관한 이야기다. 사비나는 아버지와 아버지로 표현되는 조국을 배신하고, 프란츠는 삶의 연속과 스스로의 도덕관을 배신한다. 테레자는 자신의 근본인 어머니를 배신하고, 자신의 육체를 배신한다. 토마스는 '그래야만 한다'는 내면의 명령,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배신한다. 그들 모두가 배신을 통해 찾고자 한 것은 자아 였다. 자신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러므로 삶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변화무쌍한 유기물인 것이다.
또한 모든 우연은 모든 필연을 배신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한 사건이 우연이였는지, 혹은 필연이였는지를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고, 다만 주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만큼 아름다게 보여주며, 속내에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인 죽음을 가리는 '키치'에 관한 이야기이며, 실제와는 전혀 다른, 보여지기 위한 해석의 '앙가주망'에 관한 이야기다.
밀란 쿤데라는 배신과, 키치, 앙가주망으로 체코라는 공산 사회와 개인의 삶, 그리고 철학을 잘도 버무려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