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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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세상을 뜬 한 노인이 있다. 그는 광고회사에서 아트 디렉터로 일했으며, 세 번 결혼했고 세 번 이혼했다. 따라서 세 명의 전 아내가 있고,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그에게는 그 누구보다 정감어린 형이 있었고, 긴 직장생활 동안 오랜 우정을 나눠온 동료들이 있었으며,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육체적 사랑을 가능하게 했던 비밀의 연인도 있었다. 또한 그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이었으며, 직장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았고, 한 때는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남편이기도 했으며, 딸에게는 죽을 때까지도 둘도없이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러니까 그는 몹시 평범한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편 그는 원치 않는 결혼생활을 별다른 죄책감없이 끝내기도 했으며, 아내 몰래 여러번의 외도를 했고, 그 사실이 들통나자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할 정도로 도덕적인 면에서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더욱 그를 평범하게 했다. 평범한 사람, 즉 에브리맨인 그가 어느날 죽음을 맞은 것이다.
죽음은 어느 순간 파도가 치듯 갑자기 그를 덮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의 전조가 있었고, 그는 한 순간이라도 죽음을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치료적 행위를 계속했다. 그러나 죽음을 뒤로 미루기 위한 치료는 불현듯 그를 죽음으로 이끌고 이 책은 그의 장례식으로 시작되며,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회고를 통해 마무리 된다.
 
출근길에 지나게 되는 요양병원이 있다. 병원이라기 보다는 그냥 요양원라고 보는 것이 맞을 만한 곳으로, 큰 길가에 있다는 단점을 충분히 보완할만큼 안락해 보이는 곳이다.
그곳을 지날 때면 습관처럼 통유리로 된 1층 로비를 바라보곤 하는데, 어느날엔가는 은은한 노란 빛이 감도는 로비에 줄을 맞춰둔 휠체어에 앉은 노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였다. 그러나 휠체어에 기대 앉은 노인들의 모습은 경건해 보이기 보다는 의무감에 억지로 앉은 듯한 비뚜름하게 늘어진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을날을 기다리고 있는 멀건 학들처럼 보여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한 그들은 신의 가호나 은총을 바라기 보다는 어서 빨리 이 지루한 예배를 끝내고 침대로 돌아가고 싶은 표정이 역역해 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피곤한 생을 빨리 끝내고 싶은 기대에서 우러나온 무의식의 표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은 '늙어서 요양소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저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의미 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렸든 젊었든 나이가 들었든 모든 인간은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산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은가. 이 말인 즉 죽지 못해 산다는 것과도 같다고 하겠다.
 
그러나 피사체가 부재한 텅빈 눈과 축 늘어진 모습으로 설교를 듣는 그 늙은이들도 한때는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며,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동료들이 있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며, 사소한 도덕쯤은 너끈히 무시할 만큼의 배짱을 부리며 살던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때까지의 삶에서 날마다의 일상을 열심히 꿰맞춘 덕에 그나마 안락한 요양소에서 생이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는그들은 내 부모이기도 하고, 이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래의 '나'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바로 '에브리맨' 아니겠는가.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23쪽
필립 로스가 보통사람, 평범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에브리맨'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에 관한 것이다. 평범했던 비범했던 인간은 결국 죽는다는 의미에서 모든 죽음은 다 평범하다.

 

로스는 <에브리맨>을 73세에 썼고, 지금 2014년 현재 81세로, 그의 근황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뭐라 말 할 수 없지만, 여러 권의 작품을 읽고 생각컨데 로스는 몹시 건장한 노인일 것 같다. 몸은 노후했으나 정신력만은 여전히 30대인, 병들고 노후했어도 여전히 자신에게만은 죽음이 비켜갈 것이라고 믿는 그런 꼬장꼬장함을 감추지 않는 노인일 것으로 상상되지만 로스는 <에브리맨>을 통해 그 자신이 어느날 갑자기 죽는다해도 그 죽음 역시 수천 수만의 다른 죽음들만큼이나 평범할 것이라는 예언하고 있다. 
 
책을 읽기전 살펴본 독자평들 중에는 통찰도 깊이도 없다거나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의 평들이 많았지만, 내가 보기에 필립 로스는 최고다. 책마다 재탕 삼탕 우려먹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가 유대인을 주요인물로 삼기 때문이며, 배경 역시 미국의 유대인 밀집지역인 뉴워크를 즐겨 사용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한 지역, 한 사회, 한 마을, 한 학교, 한 집안 일지라도 다양한 인물이 존재하고, 그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 역시 무궁무진하다. 로스는 그 다양성을 고루 이용하고 존중하는 작가이다. 나는 바로 그점이 몹시 마음에 든다.
지금껏 읽은 필립 로스의 작품들이 다 좋았지만, 그 중 한 권만 꼽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에브리맨>을 고르겠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짧지만, 울림은 몹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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