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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1801년. 방금 주인 양반 댁에 다녀왔다. 이제 그는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유일한 이웃이다. 경치 좋은 시골인 것이다! 영국 땅을 전부 뒤져본들, 이다지도 완벽하게 세속잡사에서 동떨어진 곳이 어디 있으랴. 더할 나위 없는 염세가의 천국이로구나. 적막강산을 반씩 나누어 가질 히스클리 씨와 나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한 쌍이로구나. 대단한 친구다! 내가 말을 세우자 의심이 가득한 그의 검은 눈은 눈썹 뒤편으로 움푹 들어가고, 내가 이름을 댔는데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그의 손은 조끼 안쪽으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니, 그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나는 그에 대해 적잖이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경치좋은 시골, 동떨어진, 염세가, 적막강산,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손... 히스클리프... <폭풍의 언덕>은 첫 장, 첫 문장부터 내 마음에 쏘옥 들었다. 도시 한복판에 살고있는 나이건만, 유독 동떨어진 시골의 은둔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매혹하곤 한다.
사시사철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 꼭대기에 지어진 튼튼한 저택인 wuthering heights에는 당당한 자세와 잘생긴 외모(13쪽)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정을 꾸미고 내보이는 짓, 곧 상호 간 호의의 표명을 혐오하는 데서(13쪽) 오는 무뚝뚝함이 뚝뚝 묻어나는 한 남자가 살고있다. 그의 이름은 히스클리프로,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폭풍의 언덕'과 '티티새 지나는 농원' 일대의 주인이다.
소설은 이 한적한 시골 마을의 '티티새 지나는 농원'을 세내려는 런던의 부유한 신사 록우드가 히스클리프를 만나는 것으로 부터 시작된다.
런던의 부유한 신사라고는 하나 기본적으로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록우드가 본 히스클리프는 무뚝뚝하고 냉담하지만, 감정을 잘 절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나름의 신사였다. 록우드는 처음부터 히스클리프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한다.
히스클리프의 이웃이 된 록우드는 폭설이 쏟아지던 날 두번째로 폭풍의 언덕을 방문한다. 그러나 히스클리프를 비롯한 폭풍의 언덕 사람들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들의 새로운 이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묘령의 히스클리프 부인, 늙은 하인 조지프, 예사롭지 않은 촌뜨기 헤어턴과 그들이 기르는 개들로 부터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한 록우드는 하녀의 권유로 폭풍의 언덕에서 폭설이 몰아치는 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유령 아닌 유령 캐서린.
공포와 혼돈의 밤을 보내고 '티티새 지나는 농원'으로 돌아와 몸살을 앓는 록우드는 하녀장 딘 부인에게 '폭풍의 언덕'에 얽힌 그간의 내력을 듣는다.
딘 부인이 그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힌들러, 에드거, 이사벨라, 그리고 꼬마 캐시와 린턴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다소 비뚤어진 인물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의 보살핌을 받아 온 이들은 처음부터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랬고, 그 반대로 보살핌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사람들은 보상심리로 부터 자유롭지 못해 그랬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자기'만 있고, 상대에 대한 생각은 없는 그들은, 오히려 상대로부터 끝없는 배려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만한 사람들은 없는 슬픔까지 만들어내거든.(91쪽)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만든 슬픔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오만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전부 쏟는 헌신적인 사랑 속에서도 이기심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여타의 인간들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을 짝사랑하는 이사벨라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폭언은 비단 그녀의 짝사랑에 대한 것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만 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성에 대한 놀랄만한 통찰이다. 나를 로맨스의 남자 주인공이라고 상상하고, 내가 기사도를 발휘해 무한히 헌신해주기를 기대했던 거야... 저 여자는 지금까지 계속 나라는 존재에 대해 소설 같은 상상을 펼치면서, 애초에 자기가 품었던 잘못된 인상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이 여자는 내가 자기한테 다정한 척 해주기를 바라고 있을걸. 진실이 밝혀지면 허영에 상처가 나겠지.(237쪽)
사랑이란 무엇일까. 1년을 넘기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사랑의 불신자(100쪽)록우드는 시골 사람들은 좀 더 진지하며, 도시 사람들보다 좀더 자기 자신으로 살고 표면적인 변화나 피상적인 것에 좌우되는 면이 덜 할 것(100쪽)이므로 그들은 사랑에 더 진지하며, 사랑 앞에 더 진실되게 행동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그 진지와 진실이 문제로, 모든 것을 건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집착이며, 변질된 자기애일 뿐이다. 뿐만아니라 때때로 그것은 '악'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가난한 시골 목사의 딸로 태어나 결핵으로 30세에 삶을 마감할 때까지 황량한 자연환경과 목사 아버지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고독한 사색을 하던 에밀리 브론테는 히스클리프라는 희대의 악인을 창조해 냈다. 그러나 나는 살짝 궁금하다. 딘 부인이 그린 히스클리프의 모습은 정말 히스클리프 그대로의 모습이였을까. 등장인물 모두를 짜증날만큼 이기적인 모습으로 그린 딘 부인이야 말로 사실은 극단적으로 비뚤어진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을까.
캐서린의 오빠인 힌들러와 동갑이면서도 쉰을 바라볼 때까지 결혼은 물론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이 오로지 주인집에 대한 봉사만을 해온 것으로 비춰지는 딘 부인이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이쪽과 저쪽을 오가며 말을 옮기고, 그로 인한 현상을 조장하며, 등장인물들의 폭풍같은 삶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그녀 아니였을까. 소설 말미에 '티티새 지나는 농원'의 하녀장 딘 부인은 딘 마님으로 탈바꿈 한다.
과연 딘 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여흥거리로 들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 그것은 슬프고도 괴기스러운 사랑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서로를 할퀴고, 상처내다가 죽음에 이르도록 몰아세우는 사랑이라니.
그러나 <폭풍의 언덕>은 이후 19세기 최고의 러브스토리라는 평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