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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쓰는 밤 - 나를 지키는 글쓰기 수업
고수리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작가 개인의 이야기, 어머니와 자매들의 이야기,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 모두 '마음 쓰는 밤'에 담겨 있다. 작가 또한 엄마가 우연히 보여준 과거의 사진 한 장에 엄마와 그녀의 자매, 즉 작가의 이모들의 정서를 글로 담아내며 추억한다. 또한 작가로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었던 때와 육아와 가정주부로 살아오며 자신의 본업을 잠시 잊고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정리한다. 어쩌면 이 모든 과정이 고수리 작가의 글쓰기, 이로 인해 인연인 된 독자, 그녀에 의해 글을 배웠던 학인들 과의 인연을 이어 준 연결고리가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는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 단, 30분이라도 육아의 그늘, 혹은 일이라는 짐에서 벗어 나와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소중하다. 작가는 '이바라키 노리코'의 시를 인용해 이 짧은 독서, 글쓰기의 30분이라 시간을 행방불명의 시간이라 명명한다. 아빠 독자인 나로서도 이 자투리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겼던 때가 있어 짙은 공감이 갔다. 작가만큼 위대한 엄마의 역할이 아닌 조금 덜한 아빠의 몫이었지만 그 시간이 소중하고, 절실했었음을 느끼기에 어쩌면 당연한 듯 작가의 마음과 동일시해보는 것 같긴 하다. 그만큼 바쁜 현대인들에겐 오롯이 나를 사랑하는 행방불명의 시간이 모자란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 즉 작가 지망생이었던 고수리가 10년 뒤 작가가 되어 있을 편지글 형식의 글에 가슴 뭉클함이 더해진다. 하지만 32살 고수리 작가는 이 글을 세상에 내보이지 않은 채 그 아픔이 조금은 가신 현재 서른일곱, 네 권의 작품을 집필한 이즈음에야 자신이 직접 썼던 '나에게 쓰는 편지' 글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문득 스물둘의 나가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심, 욕망. 갈팡질팡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던 순간에 나는 나의 미래에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을까? 오히려 작가의 글로 인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깊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것들이 다 맘으로 연결돼 각자의 응어리를 채우는 통로가 되는 듯싶다. 또한 그것이 글이 주는 힘이란 것을 깨닫게 한다.
'이 편지에 꼭 맞는 수신인은 읽어줄 독자 하나, 당신뿐이므로, 당신이 읽어주길 바란다.'
이 글마저 지금의 내가 10년 뒤의 내 마음에 글을 써 보라는 조언이자 울림처럼 느껴진다.
'마음을 쓸수록 닮은 마음들이 나에게 온다.'
많은 독자들을 한 명, 한 명씩 글을 통해 불러주는 듯한 작가의 마음. 그 마음은 독자와 저자와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선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바로 기적 같은 일이며, 마치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한 사람인 내게 찾아온 기적 같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겨가면 갈수록 더더욱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글에 매료된다. 가끔은 그 마음에 대한 진실을 깨닫기 위해 글을 소리 내어 읽게 되고 그 마음 가는 곳이 진정 어떤 길이 어디일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하듯, 글을 읽는 것은 글쓴이의 마음을 이해해가는 과정, 마음으로 글쓴이를 포용하는 결과물이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리뷰라고 말할 수 있는 이 글에서 작가의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없어 아쉽다. 그만큼 내 성향, 독서 취향의 물결에 노 젓듯 독서를 했으니 말이다. 딱, 하나 더 덧붙이자면 고수리 작가의 첫 청탁 이야기이다. 기존 인간극장을 비롯해 농어촌 어르신들과 맛있는 한 끼를 영상으로 만들어낸 방송작가였기에 우연처럼 유명 잡지사의 음식 에세이가 첫 번째 청탁의 시작이 된 것이다. 가지, 고등어구이, 추어탕, 잔치국수 등 예상외의 글감 제시가 놀랍기도 했다. 왠지 파스타, 스테이크가 어울릴 듯한 작가의 느낌이 구수함이라니, 최근작 고등어와 어머니에 관련된 음식 에세이집도 그래서 나온 것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먹고사는 힘, 일하면서도 즐거운 식사 한 끼를 떠올리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의 '먹고사는 이야기가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문장에 절로 공감과 함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글, 어쩌면 밤에 쓰던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주고, 어둠 속에 희망을 주는 빛과 같은 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음 쓰는 밤은 그렇게 작가의 길, 돌봄의 짐을 이겨내고, 날 것 그대로 모습으로 우리 독자들과 함께해 주는 작가 고수리. 이것이 저자의 진심이고 본심이라는 마음, 독자 한 사람으로 마음 가득 큰 울림과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게끔 하는 작품 《마음 쓰는 밤》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