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남편에게 사실을 고백했던 때 아마 작가는 저러한 심정이 아니었을까? 신영복 교수의 담론에 나온 문장 하나가 가슴을 져며들게 한다. 함께 피해가는 것보다 그 위기 상황을 함께 극복해가면서 더 단련이 가능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왠지 결혼 생활에 서툰 나 또한 새겨들어야 할 명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항상 순탄한 길만 있기보다 그보다 더 힘겨운 시간과 상황이 많은 것이 인생이란 이야기도 들어본 듯 하다. 좀 더 내 생각의 지경을 넓혀 작가 전안나가 울컥하며 함께 맞는 비의 일부분이 되어준 남편을 언급한 것처럼 내 가정, 그리고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함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생각해 보니 나는 인복이 많았다. 남들 다 있는 엄마 복은 없었지만, 다른 인복이 참 많았다.'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를 묶은 작품에서 작가는 저러한 생각을 했다. 고흐도 늘 소외받으며 가난하게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단, 그의 동생 테오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버티며 그림에 영혼을 붙이고 후대에 이르러 인정 받은 화가가 되었다. 작가 또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위와 같은 동질감을 느낀듯 하다. 어려운 과거의 기억을 머금고 있지만 책을 통해, 수많은 인복을 통해 작가는 지금의 독서 전문 작가로 성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의지, 용기가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 가능하다. 책이 시작이었다지만 그로 인해 만난 사람들,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섭렵한 독자들로 인해 영혼의 친구들이 그녀 앞에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호가 작가의 남편, 아이들이란 생각이 들고, 많은 직장 선후배들, 그녀를 울타리처럼 둘러 싸고 있는 많은 독자들이 서로를 밀고 끌어가며 사랑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혀 태어나서 죄송할 것이 아닌 감사할 일이 더욱 더 쌓여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삶은 값진 것이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값진 것이라는 느낌" 반 고흐
작가는 집 외의 돌파구로 학교를 선택했다. 중학교 시절 왕복 네 시간의 거리임에도 학교를 오가며 라디오에서 녹음 한 테잎으로 음악을 듣고, 평범한 일상을 만끽하려 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형편없었던 영어 점수와 친했던 친구들의 외면 등이 마음의 상처로 변한 것이다. 가뜩이나 양어머니의 꾸중과 질타, 폭력으로 인한 자존감 하락이 학교에서마저 이어지다보니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 자살 대신 얻게 된 '접촉성 피부염' 은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킨다고 한다. 누구나 작은 상처, 생체기를 겪게 마련이다. 그런 작은 조각이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별 것 아닌 작은 것에 둘러 쌓인 무언가의 그늘이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인 예, 죽음과는 다른 일이지만 옷을 입은 채 물이 옷에 묻거나 몸에 의도치 않게 물이 닿으면 크게 화를 내는 내 모습도 어린시절 물에 빠져 공포를 겪었던 당시의 기억이 회상되어 그럴지도 모를밀이다. 작가는 하지만 그때의 기억을 이제 최대한 자연스럽게 끄집어낸다. 그 중심엔 가족이란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이렇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남편과 아이들에게 현재의 감정을 공감받고 살고 있나보다. 그리고 이렇게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내 말을 들어주누 당신이 있어서 감사하다.
누군가 등이 되어주고, 그늘막이 되어주는 사람, 사랑이 있다는 건 참 흐뭇한 일이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은 더 큰 선물이다. 이렇게 작가 전안나는 서서히 조금씩 세상 앞에서 당당해지고, 어둠을 비추는 작은 등불의 존재로도 거듭나고 있다.
작가는 사회복지사이다. 아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분은 이 직업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자신의 상처를 타인에 대한 치유를 통해 거듭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기때문이다. 직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는 복지사들, 본인도 그러했고 그 열정이 지나치다보면 소진이 몰려오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전안나 작가는 사회복지학을 통해 좀 더 사람의 심리에 대해 연구하고 다양한 형태의 인생과 마주서게 된다. 그로 인해 점점 더 성장해갔으며 자신의 상처까지도 세상에 드러내게 된 것이다. 그것이 결혼을 통해 만난 남편이며, 사랑으로 잉태한 두 자녀이다. 그 덕분에 마음의 분노라는 독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을 드러내기 힘든 사회, 그저 자신을 좀 더 당당히 드러내며, 세상에 우뚝 서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 고백해야 할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마치 그 씨앗, 필요한 불꽃의 발화가 이제야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하는 기분을 이 작품 《태어나서 죄송합니다》에서 느끼게된다.
'그냥 살아남으면 돼. 그게 다야'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중에서
어떤 일이나 자신을 불태우다보면 몸과 마음이 소진될 수 있다. 일 밖에 모르던 작가 또한 그런 경험을 충분히 해왔다. 양부모님 밑에서의 억압과 폭력이 그 시작이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는 이들의 늪을 빠져나올 수 있지 않았겠나. 라는 독자들의 상상은 가능하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학비를 비롯해 생활비, 양부모를 위한 용돈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소진시킬 수 밖에 없었던 작가. 직장에서만은 조금 쉬어갈 수 있었음직한데 그녀는 그러하지 못한 것 같다. 책임감의 문제였을까? 어린시절 어려웠던 환경을 극복하려는 굳은 의지때문이었을까? 한때 직장 업무와 독박 육아등으로 인해 우울증까지 겹쳐 또 다른 삶의 포기를 경험하고, 결국 책이란 매개체를 통해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또한 '열정'으로 여겼던 자신의 프로페셔널했던 삶이 실은 '결핍'으로 점철되었다는 점에서 소진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누구나 휴식은 필요하다. 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뒤도 돌아보고 주변도 살피는 것이다. 전안나 작가 또한 그것을 깨달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야기한다.
'나에겐 휴식이 간절히 필요하다.
쉬어야 할 때이다.'
지금 이 순간이 여러분의 때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