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간병인
오윤희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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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도우미이자 나이 든 판사의 집사 노릇을 하던 명순은, 사실 간병인 면접을 본 은수를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나이 든 판사는 은수가 '누군가'와 닮았다는 이우로 그녀의 간병인 채용을 허락한다. 은수는 이미 그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인지 의심을 하지만 그저 치매 노인의 증상 정도로만 여기며, 간병인의 일을 시작하게 된다.

불편한 동거, 은수와 노인 사이에 담긴 사연은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그들 사이에 감도는 냉랭함이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에 물음표, 궁금증을 가득하게 할 뿐이다. 진정한 간병인 역할을 위해 은수는 노인의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무언가 복수 혹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를 찾게 된 것인지? 의문 부호는 책을 읽으며 증폭되어가지만 이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답 또한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숙제일 수도 있다.



"정말로, 간병을 하러 왔나?"

간혹 은수를 연수로 부르는 전직 판사 노인. 그는 그녀와의 관계를 희미하게 기억하는 것일까?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그에 더해 치매까지 겹친 상황은 아닐지 은수는 생각한다. 미묘하면서 불편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지만 주인공 간병인 은수는 노인의 행동과 말 등을 살피며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목적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날 문득 노인의 지인이 찾아온다. 말쑥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중년 남자는 은수의 출현에 담담하게 대응하지만 어느새 우울증에 빠진 노인과의 대화에서는 흥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큰 목소리를 내고 만다. 두 남자 간에 어떠한 은밀한 거래가 있는 것인지, 은수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만 그녀의 반응을 느낀 두 남자는 조용히 모종의 계획을 마무리하고 남자의 방문을 명순에겐 없던 것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녀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거래, 혹은 동료 선후배 법조인의 우연한 만남인지 또 다른 알 수 없는 의문 부호가 나타나 이야기의 흐름을 더 복잡스럽게 한다. 연주로 자신을 숨긴 은수, 그리고 그녀를 이곳으로 보낸 정우, 노인의 오래된 가사도우미 명순, 낯선 남자의 등장까지 알 수 없는 연결고리 자체가 소설의 제목 《수상한 간병인》처럼 수상스럽게 흘러만 간다. 그리고 잊고 있던 2층 빈방의 정체에 의문을 품고 있던 은수는 천천히 그 방의 비밀을 탐험하듯 그 안에서 아이돌 가수의 포스터, 노인이 종종 자신의 이름을 '연수'라 불렀던 의문을 확인하게 된다. 연수와 은수, 다른 듯 닮았다고 여기는 노인의 말속에서 연수의 실체가 등장하는데 과연 그 방의 주인이었던 연수는 어떤 이유로 이 방을 남겨둔 채 홀연히 사라진 것일까? 그녀가 남긴 일기장의 내용과 노인과의 알 수 없는 관계만이 단서일 뿐이다.



은수와 함께 희망 보육원을 출소한 정우 또한 자립 정착이라는 명목의 바깥세상으로의 탈출은 두려움 반, 희망 반이 엇갈린 상황이었다. 보육원 시절 방황도 해보고 반항도 해보았지만 그것은 그저 답답한 규칙 안에서의 몸부림이었을 수도 있다. 그를 아낀다던 보육원 선배 재혁을 만나 인생의 조언을 들으며 휴대폰 선물과 새로 일하게 될 택배 아르바이트의 중고 오토바이 구입까지 도움을 받는다. 자립 후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던 정우의 일상은,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경고하는 일이 벌어진다 친절한 선배로만 믿었던 재혁의 사기로 인해 보육원 출소 후 받았던 자립 정착금마저 뜯기게 되고 일자리마저 쉽게 구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른다. 이때 마침 일이 더 꼬이려는 건지 구사일생의 기회가 찾아온 것인지 모를 만남이 이뤄진다. 보육원 시절 한창 반항이 극에 이르던 시절 만났던 불량기 넘치던 친구 준현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 시작이 정우에겐 마치 빨간 신호등의 시작을 알리는 녹색에 가려진 희미한 주홍색 빛깔이었음을 예상이나 했을까? 그리고 보육원 친구 사이였던 은수와 정우의 관계도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인생이란 얽히고 섥킬 수밖에 없는 면면이 겹겹이 쌓인 세상이다. 정우의 능력이 범죄의 도구 혹은 위장술로 사용되기도 하고, 이 위장술을 이용해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해결하고자 하는 은수의 은밀한 계획들이 이야기 속에 중첩돼 있는 듯이 흘러간다.



서연주, 그녀 또한 희망 보육원의 실존 인물이었다. 한 번의 파양과 보육원 재입소가 그녀의 아픔을 배가 시켰다. 죽어라 공부했다. 그리고 장학생이 되었으며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청춘을 불살랐다. 이 상황에서 한 여자 노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충격이었다. 친모의 엄마이자 자신의 외할머니였던 것이다. 그 어떠한 자초지종도 20년간 따로 살아온 연주의 마음을 붙잡을 수 없었다. 노인에 이어 보육원 동기 은수의 등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복수'를 위해 연주의 신분증을 도용해도 되냐는 질문에 그저 그러라고 했다. 자신의 고집스러운 성격으로 후회했던 순간이 떠올라서인지 그녀 또한 은수의 '복수'에 반은 동참하게 된 것이다. 정우와 연주, 은수는 그렇게 판사 출신의 한 노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이유의 '복수' 한복판에 서게 된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름 모종의 계획을 세우던 판사 출신의 노인도 고관절 수술이란 불상사를 겪으며 은수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전직 판사 특유의 직감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어느 날 해외에서 온 편지가 그의 계획을 더욱 굳건히 하는 확신으로 변하게 된다. 그의 집을 조용히 찾아온 낯선 중년 남성과의 만남도 이 편지와 연관성이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만난 중년 남성이자 변호사인 대학 후배에게 은수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의 과거력까지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신을 간병한 은수에게 또 다른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려고 한다. 《수상한 간병인》에서 여러 인물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고, 각각의 성장 배경 혹은 과거와 현재 동안 잠재 돼 있던 사건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에 대한 대략적 추리도 서서히 가능해진다.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연관은 어찌 보면 결과에 다다를수록 드러내게 될 복선을 교묘히 감추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 또한 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과연 노인은 이미 정체가 파악된 전혀 수상하지 않은 어린 간병인 연주, 아니 은수에게 어떠한 제안으로 절체절명의 상황을 극복하고 종결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독자들의 상상, 작품의 긴장감을 위한 수단으로 남겨 둔다. 《수상한 간병인》은 한 인물, 인물 모두 수수께끼 같은 과거를 지닌 수상함을 가득 지니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려진다. 이것이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독자들의 감정을 불 지피우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출판사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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