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술
쑬딴 지음 / 쑬딴스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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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사랑하는 작가, 더불어 술을 즐기며 인생을 논하는 작가의 솔직한 매력에 빠져볼 시간이다. 솔직하고 가감 없는 술과 반려견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람 사는 냄새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작가의 글에는 생생함, 사실감이 묻어난다. 마치 앞에서 작가와 함께 대화하듯 책을 읽는 기분이라 글의 내용들이 맛깔스럽게 다가온다. 이 책은 3년간 가족처럼 살아온 레트리버 탄이와 작가가 살아가며 마신 술의 양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과거를 상기시키듯 절절하면서도 유쾌하게 담겨 있다. 맥주캔 하나 뜯어 마시며 안주 대하듯 편안하게 웃으며 읽어도 참 즐거울 작품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이 책에선 술 좋아하는 작가의 세계 맥주 기행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이집트의 싸까라 맥주를 마시며 아랍 글쓰기 선생이던 '바쌈' 이별의 아픔을 달래주던 이야기와 나일강에서 시작된 연인과의 짜리한 키스의 시작이 출발이다. 전 세계를 누비던 제과 회사의 전직 세일즈맨답게 지역에 따른 에피소드도 흥미롭고 풍부하게 전달된다. 무엇보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펼쳐진 독일인-사실은 터키인-호프집 사장과의 폭탄주 대결은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생생하다. 술의 위력을 뛰어넘어 한 사람의 열정과 집념이 코앞에서 느껴지는 장면처럼 뇌리에 각인될 듯싶었다. 나도 모르게 술에 젖은 듯 입맛을 다지게끔 하는 마력이랄까? 술에 약한 이들도 작가의 글에 녹아 술 한 잔 당기게 하는 요술을 부린다.


'킹피셔'라는 인도 맥주를 들어 본 적 있는가? 상온에서 마셔야 최적의 맛을 맛볼 수 있다는 인도 자칭, 세계 3대 맥주가 그것이다. 마침 인도이고 바이어와 킹피셔를 시원하게 마시던 저자는 타지마할 생각이 났는지 그곳에 가길 간곡히 요청한듯했다. 결국 해외 바이어는 저자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뉴델리에서 4시간 떨어진 타지마할로 향한다. 수많은 인파와 긴 줄이 목을 턱 막히게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VIP PASS처럼 한적한 통로로 안내하는 바이어의 안내와 그가 직접 준 타지마할 크리스털 모형은 그날 '킹피셔'가 선물한 기적이었다.라고 작가는 소회한다. 바이어가 웃돈을 주고 구입한 VIP PASS와 선물로 받은 타지마할 크리스털 모형은 저자 본인의 실수로 떨어트려 산산조각 났지만 타지마할의 방문은 '킹피셔 맥주'가 전한 기적이자 잊지 못할 영원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술과 얽킨 에피소드 또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우리 한국인의 정서가 아닌가도 생각이 들었다.


술이란 가끔 인생을 논하기도 하고 즐거움, 행복을 만끽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퇴사 후 아내와 버킷 리스트로 꿈꾸던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9박 10일의 선상 생활, 고급 진 음식들, 마데이라 포트와인 등 바다 위에서 즐기는 시간은 마치 꿈과도 같았을 것이다. 게다가 술을 좋아하는 작가는 배 위에서 무한으로 즐길 수 있다는 온갖 종류의 술에 대한 생각만으로 여행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크루즈 여행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늦은 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준비했던 컵라면이었다.라는 글을 지면에 채우게 된다. 우연찮게도 식당 앞에서 만난 유일한 한국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들의 손에 라면과 여분의 김치, 팩 소주까지 준비돼 있었다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저녁에 먹었던 코스 요리의 스테이크, 관자 요리 등은 순간 삭제되고 대한민국 특유의 별식 컵라면과 김치, 팩 소주가 크루즈의 낭만을 대신했던 것 같다. 애국심 이상의 짜릿한 기분,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크루즈 여행의 낭만과 멋이 담겨 있었던 장면이 아니었을지 마치 작가와 여행을 함께 가본 것처럼 상상해 본다.


술에 진심인 작가는 막걸리 학교도 섭렵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직접 술을 빚게 된 것이다. 막걸리란 전통주를 통해 단순히 술을 만들과 마시는 것을 떠나 인생을 배운다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한 재료인 물, 누룩, 쌀, 그 정점을 찍는 것이 정성이라 하니 막걸리의 맛이 각자 다른 것처럼 각각의 인생 형태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는 막걸리 학교는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이 맞는듯해 보인다. 막걸리 맛을 좌우하는 80%가 하나 더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바로 누구와 함께 술을 나누고, 누구와 함께 인생을 논하는가가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술이 쓸 뿐 아니라 달고 시고, 맵고, 짜고 할 수 있는 것이 분위기 탓이 아닐지 모르겠다. 조금 과장될 수 있으나 직장 상사와 마시는 술, 절친들과 마시는 술맛의 차이는 확연하다. 갑작스레 친한 친구들과 하얀 빛깔의 가장 정통 막걸리 S를 한 잔 걸칠 날을 기대해 본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침이 꼴까닥 넘어가도록 술을 권하는 책. 인생을 술로 논하는 책 《개와 술》이 이토록 친근한 건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문화를 솔직 담백하게 기록해낸 작가의 힘이 아닌가 싶다.

책의 마무리엔 부록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에서 주로 등장하는 작가의 와이프인 김 여사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책 전반에 주인공급으로 등장하는 김 여사는 함께 술을 마셨다기보다 여행 중, 식사 중 추억처럼 작가가 머문 장소 곳곳에 나타난다. 뜨거운 부부애 이전부터 썸을 타던 회사 동료의 한 사람으로 말이다. 특히 책의 말미 김 여사가 직접 쓴 작가 술딴과의 술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 책의 재미에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둘은 부부가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과도 같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마무리된다. 타자의 이야기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독자인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술을 좋아하건 어려워하건 중요치 않다. 각자의 인생이 소중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즐기며 대리만족해 내 삶의 기쁨을 이어가는 또 다른 무언가, 취미 하나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술이든 반려견이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출판사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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