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을 마친 20대 초반의 쇼타는 수차례 취업의 문턱에서 쓰디쓴 잔을 마시고 우연히 일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층 빌딩 창문 닦기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쇼타의 일은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되며 여자 동료인 미사키와 곤돌라에 탑승한다. 이때 미사키의 돌발행동에 당황스러웠던 쇼타였지만 맞은편 고층 맨션 창 안으로 보이던 무표정한 표정의 노부인에 더욱 시선이 쏠리게 된다. 혹시 그녀가 지금 자신과 동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낯선 박스들이 가득한 노부인의 집이 궁금해지기만 한다.

청소를 마친 후 쇼타는 자신이 청소를 했던 고층 맨션 3706호에 사는 노부인의 집으로 초대받는다. 이어서 그녀에게 다소 황당한 거래 제안을 받고 잠시 머뭇거리나 물질 앞에 약해지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그녀의 제안에 순응하며 쇼타는 일부 제공받은 금액으로 고프로 카메라를 구입한다. 가슴에 고프로류 장착하며 허공에 매달린 서커스어처럼 창 안에 비추인 세상을 카메라 안에 담는다. 이것은 아주 부정하고 불법적인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이판사판이던 쇼타의 삶에선 이것이 돌파구이자 시의원 출마를 생각하는 교사 출신의 어머니에게 멀어지는 방법일 수도 있다. 생면부지에서 이젠 함께 하는 공범자가 그 둘이다. 노부인의 이유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와 그의 동료만이 지켜 봐온 세상 안과 밖의 간극 어린 시선을 도(둑)촬(영)이란 이름으로 그녀에게 제공한다. 쇼타는 목적에 맞게 400장이 넘는 많은 사진을 인화해 다시 노부인을 찾는다. 증거물을 제시받은 노부인은 만족스러워하는 반면 그간 감추고 왔던 질문을 독자이자 뿐만 아니라 70에서 80에 가까워 보이는 그녀에게 던진다.

‘죽은 게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는지‘ ​

쇼타는 직속 선배였던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문득 떠오른다. 노부인은 누구나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좋아했던, 그녀를 좋아했던 이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상황을 잇는다. 갑작스러운 지인의 죽음을 맞이한 쇼타의 진심을 받아줄 것 같은 생각에 그녀에게 자신이 감춘 아픔 속 질문을 던진 것일까? 무언가 깊은 답을 알고 있을 듯한 노부인의 모습에 자신을 내맡겼을 수도 있었을 장면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이야기는 점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 심연으로 파고들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쇼타와 노부인의 알쏭달쏭 한 이야기는 이어지고 그 순간만큼은 죽은 쇼타 선배와 그의 대화는 멈춰진다. 서서히 독자들은 책에서 느꼈던 의문에 대한 질문거리의 해답도 찾아갈 수 있다. 노부인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독자들이 궁금해했던 부분이 해소되는 것처럼 쇼타가 지켜본 선배의 죽음이 그에겐 어떤 의미였으며, 심적인 충격도 극복 가능할지 페이지를 넘겨갈수록 이야기의 결말에 집중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밖을 보고 싶어 할까˝

인간 개개인의 무수히 많은 밤들, 맨션에 갇힌 듯 쇼타에게 세상 밖의 정서를 의뢰하는 노부인의 마음도 포함된 것일까? 어쩌면 쇼타도, 죽은 그의 선배도 이 의문의 답을 찾고 싶어 한 건 아닐까? 노부인은 이러한 갈증을 풀기 위해 나타난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 미래의 바람을 도촬 한 창밖 사람의 창 안쪽 진실을 밝히고 싶어 하는 욕망을 상자에 담으려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그들의 만남은 더뎌지고 쇼타는 지금의 일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에 고민을 하던 찰나, 자신이 믿고 스스럼없이 도촬을 해도 아무 걱정이 없다고 여겼던 나카무라 앞에서 회심의 일격을 당한다. 어쩌면 예정된 결과의 수순이었으며 노부인과 쇼타가 그간 수집해 온 사진들, 창 안의 풍경을 빛으로 밝혀가는 마지막 정점으로 가는 작가의 의도가 섞여있는 건 아닌가도 싶다.


도촬마저 중단하게 된 쇼타는 오랜만에 노부인의 집으로 찾아가 상자에 빼곡히 붙여진 자신의 사진들,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과 풍경이 담긴 창 안쪽 장면에 빛을 더한다. 상상하는 크기에 따라 어마어마한 장식품이 될 수도 있으며 다양한 사진의 컷과 빛이 조화를 이뤄짐으로써 종결을 암시하는 과정일지도 모를 장면이 연출된다.
신과 구의 조화가 어려운 시대의 어긋남 속에서 만난 50년의 시간차.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아간다고 한 이야기는 이미 옛말인 것인지......
노부인과 청년의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 스스로가 꿈꾸고 생각하는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각자의 바람, 희망이 빛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개인적인 견해를 담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