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론 히잡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죠. 사람 각자의 개성이 있고 남자 아이고 핑크를 좋아할 수 있으며 여성 아이가 밀리터리룩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개성과 자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이해의 폭 확대이고, 소통이며 스펀지같이 받아들이는 마음이란 생각을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동생의 첫 이름이 등장하는데요, 파이자는 말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히잡을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엄마가 말했어요. -중략- 언젠가는 그들도 알게 될 거래요.'
테이블보라며 놀려도, 스카프 아니냐고 물어도 언니의 히잡은 그것들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파이는 말합니다. 그저 파란색의 히잡이지요.
그런 말들을 그저 그 말을 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므로 그들의 몫이라고 적혀 있는 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나 자신만 확실하고 단호하다면 된다는 뜻이자 의미이기도 하지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개개인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그들의 짧은 생각이자, 그릇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다름을 이해하는 것,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필요한 고민 없이 오늘도 그렇게 자매는 서로를 이해하고 미소로 마무리합니다.
히잡은 그저 평범한 문화이고 일상은 반복될 뿐입니다.
《히잡을 처음 쓰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