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커피는 바꾸었지만 인생은 여전하네요
제성훈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9월
평점 :
6편의 중단편 소설을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다. 메인 테마인 <커피는 바꾸었지만 인생은 여전하네요>를 시작으로 등단작인 <샤를 드골, 집으로 가는 길>까지 작가의 감각적이고 사유적인 작품들이 담겨 있는 소설집이다. 첫 작품 <행복을 꿈꾸지만 비극이 어울립니다>는 주인공 남자가 만나오던 그녀에 대한 부재와 그가 만나고 스쳐 지나가던 주변 인물, 친구와 단둘이 떠난 영국 여행의 기억과 현실이 함께 공존하는 작품이다. 늘 남자의 연락을 기다리던 연인은 갑작스레 소식이 두절된다. 게다가 남자 둘이 떠났던 영국 여행의 무미건조함은 지속되며 함께 간 친구의 여행 마지막 날 에든버러 숙소에서 흘리게 된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야기한다. 잔잔하고 차분한 이야기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해하며 읽어가길 권한다. 주인공과 그녀의 알듯 모를듯한 관계 설정, 남자인 주인공인 동갑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 작가처럼 보이던 50대 중반의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풍겨져 나오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독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읽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듯싶다. 소설의 제목처럼 우린 늘 행복과 기쁨을 추구하지만 때론 비극에 가까울 때가 있다. 이것을 이겨내며 극복 가능할 수도 있지만 비극이 오히려 내일을 위한 희극의 발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번에는 너무 뻔한 연애> 다소 성적인 에로티시즘이 가미된 섹스에 관한 만남과 일상이 주가 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품이랄 수 있다. 성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상품화하는 작품들도 종종 있다. 이 작품은 그 중간 선상에서 섹스에 대한 21세 기적 정의, 사랑과 섹스를 사이에 두고 판단 기준을 정의하는 남녀의 미묘한 심리도 함께 보여준다. 작가는 일에도 열정적이고 섹스에도 최선을 다하지만 결혼과는 거리가 먼 준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해간다. 준오가 오랜 시간 만나온 이성 친구이자 섹스 파트너인 그녀는 단순한 성적 쾌락을 뛰어넘어 그와의 미래를 꿈꾼다. 이야기 요소마다 장치로 등장하는 내용은 책을 접할 독자들을 위해 생략한다. 중간에 선을 본 여자 미영과 결혼 직전까지 갔던 준오. 소설의 결말이 해피 엔딩일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건 이들 커플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독자의 판단으로 맡겨둔다. 요즘 세대에 걸맞은 거침없는 연애에 대한 솔직 담백한 표현, 진솔한 사랑과 섹스에 관한 담론이 담긴 소설을 꼭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커피는 바꾸었지만, 인생은 여전하네요>란 작품은 왠지 공허한 결말이다. 끊임없이 글을 쓰고 싶지만 현실의 퍼즐 조각에 자신을 맞춰갈 수밖에 없는 피곤함이 마지막 버스 종착지에서 또 다른 날 만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준다. 그 연결 고리가 마치 CF 한 장면처럼 "이제 내려요" 란 말을 반복적으로 귓가에 울리게 한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책이라고는 내보지 못한 글쟁이자 직장인에겐 소설 쓰기가 마지막 탈출구였다. 무언가 자신을 변신시키려고 SNS 글을 올리며 계속되는 집중을 이어가지만 인생은 예전과 변함없이 평행선을 걷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인 우리도 소설 속 주인공도 공허한 것들에 휘말려 쓰러져 버릴지 걱정이 앞선다. 그때!!
"안 내리세요?" "이제 내려요" 울림의 한 마디가 또 다른 내게 속삭이듯 변화를 요하는 시간일지 모를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독자인 나, 어디로 갈지 모를 우리에게 각성제 역할을 한다.
그 외 작가의 등단 작품을 각색한 <샤를 드골, 집으로 가는 길> , <오늘처럼 아무 일도 없는 날엔>, <바람이 불면 비가 내리기도 한다>가 소설집에 담겨 있다. 유학 중에 벌어진 사건으로 공부를 포기한 가이드. 공모전 수상을 꿈꾸는 나른한 오후의 미술 전공자. 미술을 위해 자신의 젊음을 바쳤으나 제도권 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가정 방문 미술 교사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왠지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의 소설을 다른 느낌의 소재로 버무려 완결된 한 가지의 주제를 내포하는 듯한 작품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루지 못한 꿈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아주 미세할 만큼의 미련 조각이 남아 그 꿈을 위해 보이지 않게 시도하는 때가 있다. 그러한 느낌의 인물을 찾아 읽어나가다 보니 독자인 나도 그들의 일부, 비슷한 생각과 꿈을 꾸기도 한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되지 않는 일이 있고 인간의 의지에 변화할 수 있는 결과도 있다.
소설집의 제목처럼 -커피는 바꾸었지만 인생은 여전하네요-다양한 이야기 속에 독자인 내가 나가야 할 길, 다루어야 할 계획에 대한 목표를 그려 보는 건 어떨까? 결국 소설의 마지막 작품 <바람이 불면 비가 내리기도 한다>가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 중 하나이다.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지원 받아 개인적 의견을 정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