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가격
가쿠타 미쓰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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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 결제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초기 행복은 대부분 만족감 100퍼센트일 것이다. 내가 원해서 산 물건이자 음식이니까. 작가 가쿠타 미쓰요도 필요해서 혹은 마지못해 구입했지만 그 안에서 느꼈던 만족도와 행복을 생생한 현장의 언어로 표현해냈다. 내가 마치 일상에서 물건을 사고 미쳐 날뛰듯 흥분했던 시간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 볼 수도 있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행복의 가격'에 대해 미리 짐작하고 뿌듯하게 상상할 수 있는 독서라는 값어치를 이 작품에서 누릴 수 있다. 검색, 클릭 후 결재, 그리고 책을 받아든 순간에 함께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과의 소통이 '행복의 가격'이란 작품에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이 뿌듯해진다.


어휘가 풍부하고 세계여행에 안성맞춤인 전자사전의 행복한 가격은 24,000엔 사용 빈도를 따지만 저렴할 수도 있고 비쌀 수 있다. 작가는 어휘가 풍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다짐으로 기꺼이 24,000엔을 사용하려다가 다개국어가 깔린 전자사전이 정말 필요할까 생각하며 망설인다. 결국 쪼잔해지지 않기 위해 과감히 전자사전이란 신세계를 경험하고자 24,000엔을 지불한다.

그 원인 중 하나일까? 매장에 술을 마시고 와서 큰소리치며 전자사전을 구입하고자 하는 아저씨, 신학기를 맞아 전자사전 선물을 장만하러 온 가족들의 북적임 등이 작가에게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한 것이다. 소설의 쓸모로 구입한 것이든, 한가로울 때 단어 찾기 혹은 고사 성어 검색을 위한 도구이든, 세계여행을 위한 영어 공부이든 전자사전이란 추억을 스마트폰이 잠식한 요즘,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잔잔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학생 시절 이집트로 럭셔리한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작가는 5성급 호텔과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피라미드 투어 등을 했지만 전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고 한다. 지갑 한 번 안 꺼내고 패키지에 의해 모든 것이 해결되니 그들의 물가, 문화 유형, 삶의 방식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원을 받아 취재를 갔다 온 경우에도 있었다니 몸소 체험하는 것과 모든 것을 대리해 주는 여행은 의미가 상실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다행히 이것을 깨달은 작가는 뉴질랜드 취재 중 짧은 기간 며칠은 자신의 지갑을 꺼내 현지의 물가, 문화, 식생활을 확인한다. 뉴질랜드의 농촌 풍경과 오클랜드 지역의 특색이 확연히 다르고 물가 또한 천지 차이란 걸 느껴가면서 이것이 여행임을 깨닫게 된다. 작은 가게에 들러 직접 셀프 커피도 타보고 인심 좋게 생긴 사장 아저씨의 멋진 아침 인사가 여행의 묘미에 정점을 찍어준다. 여행이란 그 문화에서 현지인과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해보는 것도 포함된다는 故 신영복 선생님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당분간은 어렵지만 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여행과 취재에서 느낀 감정을 언젠가 꼭, 다시 만끽하는 날이 왔으면 한다.


약속 시간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작가는 몹시 바쁜 지금의 시기에 약속을 잡으면 가급적 약속 시간 5분 전, 10분 전에 도착한다. 부지런해서도 배려라기보다 길을 잃거나 헤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기다림도 그다지 오래, 느긋하게 보내는 성격도 아닌듯싶다. 이유는 걱정 때문이다. 약간 늦을 때는 차가 막히나 10분 이상 늦을 때는 사고인가?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약속 시간 한 시간의 공백을 통해 공포가 아닌 여유를 찾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한가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책 한 권 사들고 카페에 앉아 두유 아메리카노 한 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창밖 풍경을 감상하며, 한산했던 과거 나의 시간을 뒤돌아보니 1시간 뒤늦게 도착한 약 속자에 대한 근심, 걱정, 화남, 공포 등이 자신의 공백, 여유로움으로 느껴졌다는 에피소드이다. 정말 우린 시분초를 다투며 살아간다. 자투리도 사용한다. 반면 멍 떼림의 시간도 소중히 여길 때가 있다. 각자 다르겠지만 자기만의 여유, 공백을 즐기는 삶을 택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아등바등 살지 말라고 한다. 그것도 많은 삶의 해답 중 하나이다. 작가의 말처럼 여유 있게 5분, 10분 늦느니 1시간 지각하는 약속, 그게 기다리는 이의 공백을 활용하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어 속어 더 후련하다. 거기엔 기다림의 커피값 320엔이 더 소비될 뿐이다.


3만 엔어치의 항공권 취소 수수료는 정말 아까울까? 나름의 보상이 따른 것일까? 작가의 경우처럼 찬란할 것만 같은 여행을 꿈꾸며 비행기 티켓 확보, 여행지의 동선, 물가와 시세, 음식, 잠자리 등을 세세히 준비해본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러나! 만약은 존재한다. 집안일이 갑자기 생기거나 직업적 문제, 주변 경조사가 겹칠 경우엔 눈물을 머금고 그 슬픈 상황을 극복해야만 한다. 지금 바로 코로나19 시대 이전에 해외 항공권 구매를 해놓은 경우라면 정말 안타깝고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필수적 조치에 응당 따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발생하는 것이 상호 계약하게 체결한 위약금 조항이다. 개인적인 경우든 공적인 경우든 수수료는 발생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공들여 준비한 계획과 설렘은 수수료와 함께 단숨에 날아가 버려 여행의 꿈을 초전박살 낸다. 끝까지 부정적이라면 당연한 것이지만 3만 엔의 수수료 비용을 그간 여행 준비의 설렘, 들뜬 분위기와 맞바꾼 가쿠타 미쓰요 작가. 취소하지 않았다면 며칠 뒤 내가 그곳에 있었을 텐데...라는 상상도 재미지다. 가끔 가쿠타 미쓰요 작가처럼 금전적 지불이 된 상황이 취소되는 경우가 발생해도 그 결과물이 행해졌을 기간 동안의 즐거움, 들뜸의 보상이라 여기며 수수료에 대한 미련을 버려 버리면 어떨까? 기다림이란 시간 동안 행복으로 느껴지는 긍정 마인드, 이것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엔도르핀이 될 수 있다.

'송이버섯을 싫어한다.'

와, 한 번에 무슨 이유인지 와닿는다. 성인이 되면 입맛이 바뀌어서 못 먹던 것들도 자연스럽게 식도를 타고 위장을 지나 모든 대사 기관을 거쳐 세상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가히 그런 시간이 답이란 말에도 불구하고 혀끝의 감촉을 느끼기 전에 입 밖으로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음식들에 애도의 뜻을 표한딛. 작가도 몇 가지 먹지 못하는 리스트를 업로드해가며 도전정신을 뽐냈다. 그런 결과로 30가지 음식을 커버하게 되고 산 정상의 고지에 올라 자신감 가득한 깃발을 목적지에 꽂았다. 그럼에도 최후의 적은 그 비싸다는 전복(회), 소라, 송이버섯을 꼽았다. 송이버섯은 둘째 치고 왜 이 좋은 걸 못 드시지라는 생각이 앞선다. 꾸준히 연습해 이것마저 정복하는 것이 작가의 마지막 바람이었지만 쉽지 않았나 보다. 결국 비싼 1만엔, 2만 엔대의 송이버섯 대신 싼 게 비지떡 4, .800엔의 송이버섯을 구입, 송이버섯밥을 완성하지만 장렬히 그들은 작가의 입안에서 밖으로 전사하고 만다. 연습 부족인 걸까? 결국 그녀는 송이버섯, 전복(회), 소라의 정복은 미제로 남겨둘 뿐이다. 이 세 가지를 다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가쿠타 미쓰요 또한 책의 내용처럼 독자인 나를 부러워할 것이다.


돈의 쓰임새에 대해 각자의 방식이 있다. 작가는 책의 엔딩에 어린 시절 돈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자랐으며 그에 따라 돈에 대한 경제관념도 무지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는 집에 돈이 없음을 스물 먹은 딸에게 이야기한다. 당시를 회상하며 가쿠다 미쓰요는 반성한다. 돈이 없으면 은행에 가면 되잖아? 20대 성인이 할 말이 아니었다며 스스로도 회상하듯이 돈의 올바른 사용법, 가치에 무지했던 자신을 뒤돌아 본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쓰임새의 가치에 그 답이 있다. 1만 엔을 써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과 1,000엔을 써서 자신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얻는 행복이 더 클 수 있다. 어떤 상황과 관점에 따라 느껴지는 행복감과 감정은 다름을 인식하고 작가가 만족스럽게 돈을 쓰고 느낀 소감. 반대의 경험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끼며 돈을 활용한 나만의 행복 가격을 가늠해보는 독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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