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것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는 나라는 주체를 잃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스로를 세상 무게에 매몰되게 하다 보면 순간, 순간의 소중함도 망각해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독단과 아집도 문제이지만, 나를 진실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울 한 번 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삶에 대한 소중함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그간 나의 가치나 삶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했던 때는 없었는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자기 암시로 그저 세상살이 포장하듯이 살아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작품이다.
저자는 '수상한 그녀'라는 작품을 보고 펑펑 울었던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남의 눈치 보랴, 따가운 시선에 겁이 나 할 말 못 하던 시절에, 혹은 던져 놓은 솔직함에 질타를 받았을 때의 고리짝 시절 두려움을 내던지고 작더라도 진실 된 마음의 감정을 영화 감상에 녹여 스스로를 치유한 것이다. 함께 있던 남편에게 소소한 불편함은 느껴졌지만 감정은 추스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변화로부터 나를 외적으로 발산하다 보면 작은 위로의 시작이 된다고 김인숙 작가는 말한다.
마음과 몸의 아픔과 상처를 많이 겪은 것-어린 나이에 큰 병까지 극복한 작가- 같은 김인숙 저자. 하지만 한 번 이상 슬픔과 아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가족일 수도 있고 연인일 수 있다. 직장 상사의 질타와 잔소리도 작은 슬픔이 될 수 있다.
김인숙 작가는 이런 상처에 당당히 대처하라고 조언한다. 5년, 10년 뒤까지 이어지는 상처에 따른 좌절감은 없다. 그냥 받아들이다 보면 위로의 씨앗이 되고, 새로운 도전에 힘이 되는 미약한 과거의 흔적이 될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실패와 두려움, 좌절과 상처 앞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저자인 김인숙 작가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프면 그냥 아파하자. 그 사실을 인정하라고 조언하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가며 '이 또한 지나가리.' 란 문장이 떠오른다.
작가 김인숙이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책의 제목처럼 치유하는 글쓰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창작가의 꿈을 키우며 국문과 진학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부모님의 반대와 환경적 요인으로 당시의 목표는 좌절되었지만 나이 마흔에 당당히 글을 짓는 작가, 글쟁이가 되었다. 아픔과 좌절, 실패로 점철된 과거의 나약함이 나를 치유하는 희망 가득한 미래의 묘약이 된 것이다.
김인숙 작가는 '쓰기의 행위는 다시 생각으로 이어진다.'라고 설명한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고민의 폭이 확장 돼보다 많은 글 쓸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쓰다 보면 많아지는 아이디어는 지난 감정을 다독여주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의 좌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게 마음은 나를 치유하며 글을 완성해 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 김인숙 작가도 매일 쓰고 새로운 것을 창작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스스로의 내면을 강화해 가는 쓰기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글이란 타인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지만 결국 내 마음의 위로, 안정을 위한 치료제가 될 수 있음을 우린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