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인생응원가 - 스승의 글과 말씀으로 명상한 이야기
정찬주 지음, 정윤경 그림 / 다연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나눔이 없다면 시간 적으로 외떨어져 있는 독립이라도 기쁨이 없다. 생은 그저 순간순간일 뿐이다.

행복하다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마음을 어떻게 두고 인생을 곱게 쓰느냐에 따라 생의 기쁨과 안위는 변하기 마련이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질투도 하고 내가 더 잘 되기를 바라다보니 오히려 굽이 치는 파도 속에서 고꾸라지는 건 결국 나의 모습이다. 그 지친 마음의 손을 잡아 주는 것은 끊임없이 나 아닌 타자를 배려했던 자비로움이었던 것 같다.

마음을 가볍게 살아가기 위해선 모든 걸 내려놓는 법정 스님의 삶, 무탈함에 욕심을 가라앉히고 살아가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사람인지라 어디로 마음이 번져 나갈지 몰라 힘들기도 하다. 이러한 때 위로의 책은 더 크게 뻗어 나갈 수 있는 가지의 자양분이 된다.

'걸으면서 궁리를 하면 막힘없이 술술 풀려 깊이와 무게를 더할 수 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한곳에 머물다 보면 인간도 나태와 자만, 고달픔에 인생의 쓴맛을 경험하게 되고 좌절하고 만다. 이러한 어려움과 고립감이 넘쳐날 때 법정 스님은 일단 걸으라 하셨다. 산책이 사색이 되고 사유와 번민 속에 감춰둔 걱정에 대한 무게가 가벼워지거나 속 시원히 깨질 수 있다. 산책과 걷기는 많은 아이디어를 창조해내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경이로움운 전해준다. 생각해보면 스님이 말한 행복이란 물질보다 앞선 우리의 정결한 마음에서부터 생겨남이 아닌지 정의 내려본다.

왜 항상 내가 아닌 남을 따라가려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신다. 나라는 자아가 객체로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타인의 성공, 행복에 매몰되어 진정한 나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한다. 남을 따라 해서 내가 되는 꼭두각시보다 넓게 누리지 못해도 작은 틀 안에서 소소한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내 행복을 찾는 길이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서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익히 들어 익숙하다. 물질적인 무소유도 있지만 마음에서부터 비우고 버리는 것들에 익숙해야 삶의 지혜가 터득된다는 뜻이 아닐까? 가난해봐야 행복의 깊이를 느낀다고 한 것처럼 풍족한 것에서 벗어나 마음속 깊이부터 비워가는 습관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다 보면 보다 새롭고 알찬 기운이 우리의 마음을 다시 용솟음치게 할 테니까. 그것이 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움의 시작이다.

상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 하면 적마저 사랑해야 한다. 어떤 대상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순수한 마음으로 그를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본 모습 그대로 자연스럽게 타자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지 그 사람의 단점마저 강점으로 달리 보일 것이며, 단점을 강점으로 변화시켜주는 사랑의 힘이 그에게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우리 싫어함으로 상대와 멀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하고 보듬는 데 있어 최고의 힘이 사랑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한다. 물질이나 잡념을 버리는 것이지 사랑은 많이 나누는 것이 좋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간에 항상 배우고 익히면서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누구나 삶에 녹이 슨다.'

법정 스님의 말씀에 뒤통수를 맞지 않는 때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사실 우린 게을러진다.

나 스스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나이에 뭘 해, 벌써 사십 줄인데,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욕심만 부풀어 오른 게 사실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격을 두지 않고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배우며 살아가는 시대가 지금이다. 끊임없을수록 그에 따른 응당의 대가는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진심을 잃지 말자.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중략-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기 세트 서너 벌, 책 오십 권에도 많음을 먼저 떠올리시는 법정 스님. 많은 이들이 스님의 무소유에 반응하고 그의 뜻을 따르려고 하지만 본심의 욕심이 가시지 않는 한 어려움의 파고는 높아진다. 그냥 차라리 조금씩, 아주 천천히 불필요한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무소유를 따라가는 길이 아닐까? 지인 중 1일 1 버리기를 하시는 분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있는 것마저 지키고 더 얻으려는 이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많이 소유한다고 그 만큼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내려놓음에 미련을 두지 말았으면 한다.

정말 필요한 가치가 있으면 몰라도, 없어도 불편하지 않을 것에 대한 내려놓음이 다시금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무엇 때문에 내가 절에 나가는가, 무엇을 위해 교회에 가는가'

죄를 구원받기 위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정확히 마음에 품고 교회에 나가는 진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지 반성한다. 죄를 사하기 위한 주님의 은혜로 세상에 본이 되는 성도가 되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나로서도 막상 누가 갑작스레 묻게 된다면 뭐라고 이야기할지 몇 초간 고민하다가 "죄 사함 받기 위해 나갑니다."라는 애매모호하고 포괄적인 답변을 할 것 같다. 법정 스님의 말을 따라서라도 보다 명확하고 뚜렷한 믿음의 생활이 필요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평안함이 최고이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삶, 그럼으로써 믿음의 영역과 터전을 넓혀 나가고 싶다. 이래도 거창해 보인다.

'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 것이 *바르게 보는 것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일의 그르침은 늘 자신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론짓는 경향 때문이다.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만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는 자세는 어떨까? 법정 스님은 인간은 의지하며 서로 돕고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기준을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로 주목해 가는 것은 아닐는지. 조금만 더 내가 양보하면 더 큰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개인주의가 팽배한 요즘 시대에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법정 스님의 말씀에 깊이 있는 공감을 하게 된다. 좀 더 나 아닌, 너를 생각하며 살아가자.

'사람은 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집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집니다. 읽는 책을 통해서 사람이 달라집니다.'

법정 스님께서 책을 바라보는 생각의 정리는 나의 평생 화두가 될 것이다. 책을 적지 않게 읽으나 아직 나는 책에 읽히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져야하는데 아직까지 욕심과 질투, 번민 등의 고리 안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다. 진정 책을 마음으로 읽고 내면화 시키는 것이 그처럼 중요하고 책 읽기의 담보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영혼의 등불이 켜지는 날 아무리 강하고 악한 사람도 주님처럼, 선인처럼 대하는 날이 오겠지? 그런 생각을 지니고 좀 더 깊이 있는 독서에 나를 맡기고 싶다.

책의 마무리는 동서남북의 화합처럼 종교를 뛰어넘는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의 사례를 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길상사 설교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루어진 명동 성당 건립 100주년에서의 일이다. 서로 반목과 갈등 대신 위로하고 화합하며 다르지만 하나임을 인식하게 해주는 글이라 더더욱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현재도 갈등하고 대립하는 정치권,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사이의 엇갈리는 고리를 연결해 주는 힘이 필요한 시대이다.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은 계시지 않지만 그들의 말과 글이 끊임없이 회자되고 활용되며 덜 가지고 누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가능하길 희망한다. 이 작품 또한 법정 스님 열반 10주기에 맞춰 그분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의 독서가 되길 많은 독자들에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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