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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 반일 종족주의 거짓을 파헤친다
호사카 유지 지음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품절
시작부터 새빨간 거짓말의 향연으로 독자들의 억장을 무너트린다. 세월호 1기 특조위 황전원 위원의 조사 방해 시인마저 세월호 모든 진상 조사는 마무리되었다고 이해 불가한 해설을 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일부 저자들. 특조위 당사자마저 조작 및 미해결 문제에 대한 시인을 하는 지금, 어떠한 시대 인식으로 비논리적인 언행을 일삼고 계신지 그 자체도 몹시 궁금하고 작은 혐오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제 시작인 것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속 깊이 박힐 분노의 강노가 어디까지 거세질지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이래서 역사는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하고 객관적 진실은 무지의 주관적 판단을 녹여낼 수 있는 용광로와 같아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총 3부로 간결하게 구성돼 있지만 분노에 대한 강도는 거세다. 제1부 강제징용 문제에서 드러난 '노예근성' 당니 탄광에서 일어났던 상황과 노무관리 실태,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정황 등을 정리해 준다.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이었는지 반일 종족주의의 비논리적 행태를 알기 쉽고 조리 있게 반박해 준다.
2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최전선 성 노예 제도. 요즘 정의연 사태도 그러하지만 한일 관계에 있어 첨예한 대립과 울분이 가시지 않는 과거의 아픈 역사이다. 위안부 사건에 대한 은폐와 왜곡이 얼마나 범법적인 행위인지, 거짓되고 와전, 과장된 정보가 많은 이들의 심장을 찢어지고 타들어가게 하는지 분명히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3부 일제 강점의 거짓된 분석과 자기 합리화. 제대로 된 사료 조사와 역사적 증거에 맞게 문제를 파악하고 역사 인식에 대해 대응하는지, 일제 강점의 문제 제기를 올바른 법적 판단 증거물 확인으로 억지스러운 조작에 유연히 대처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본질이 무엇인지? 겉핥기의 폐해가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투명하고 객관적인 역사 인식의 시작을 배우고, 미래 대한민국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키워가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검증은 풍부할수록 좋다. 역사도 다양한 시각과 연구 과제의 분석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을 추천한다. 그 답을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것이 어렵더라도 시작을 함께 일으켜 나갔으면 한다. 그만큼 성실하고 객관적 논(평) 해(설)를 통해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 작품을 완성했다.
일제 시대 탄광 강제 징용부터 문제의 발단은 시작된다. 반일 종족주의를 먼저 읽어보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짓기 힘드나 낙성대 경제 연구소 이우연 연구원은 일본 우파의 주장처럼 '자발적인 탄광 업무 지원이었다.', '일본인들과의 차별은 없었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반면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미이케 탄광의 과거 역사적 사실과 자료 증거 등을 통해 탄광 노동력은 주로 죄수 노동자, 2차 세계대전 하의 중국인과 조선인 강제 노동, 전후 외국인 포로를 노동력으로 동원한 근거 자료를 소개한다. 이처럼 이우연은 역사적 사실에 침묵하는 내용으로만 독자들을 설득시키려 한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강제 징용자의 경험담과 증언이 도처에 깔려 있고 이것이 자발적이라기보다 강제적인 목적에 의해 자행된 만행임에도 말이다.
'생활은 대단히 자유로웠습니다. 밤새워 화투를 쳐 잠을 설친다거나, 근무가 끝나면 시내로 나가 과음하고 다음날 출근을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선 여인이 있는 소위 '특별 위안소'라는 곳에서 월급을 모두 탕진할 정도로 그들은 자유로웠습니다.'
반일 종족주의 이우연 글의 일부이다. 조선인 광부들의 생활이 자유로웠다고 주장한다. 또한 군함도에서 18세 조선인 위안부가 인생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용을 가볍게 적어 넘기는 것에 화를 금할 수 없다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말한다. 휴가는 있었을지언정, 어찌 이렇게 자유로웠을까? 잦은 폭행과 폭언이 있었다는 기록과 상반되는 것들이라 어이 없을 뿐이다. 그럼 그간 방송된 기록들과 증언이 날조된 것인지 이우연에게 되묻고 싶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이야기처럼 이우연이 말하려는 속내가 더욱 궁금하다.
'미군의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먼저 조선 여성들이 부상병을 위해 간호사와 비슷한 일을 하거나 병사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한다고만 듣고 모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이러한 증거 자료를 제시해도 이영훈 낙성대 경제 연구소 이사장은 위안부는 기존 기생이나, 관련 직종에 종사하던 이들이었으며 대부분 무지하고 교육을 받지 옷했다는 심문 보고서만의 내용을 발췌한다. 취업 사기로 인해 결국 강제 위안부가 된 조선 여인들은 매춘을 강요 당한다. 여기에 이영훈은 조선시대 '공창제'를 논하며 그 시대의 연장이라는 반인륜적, 반역사적 내용을 책에 담는다.
심문 보고서를 짜깁기해
'그녀들의 생활은 비교적 사치스러웠다. 식료와 물자를 구입할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녀들의 생활은 좋았다.'
심문 보고서의 원본을 보지 못한 입장이지만, 정확한 근거와 자료가 종합된 것인지 의문투성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의 분석처럼 미군 심문 보고서의 여러 문장들을 가져와 일본인 관계자-포주 혹은 일부 위안부-들의 말을 마치 미군이 정확히 조사한 후 정리한 문장처럼 짜깁기했다니, 애초에 이러한 사전 정황을 모르는 이는 내용을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심문 보고서라는 원본이 아니라 이영훈의 내용 짜깁기와 정리로 역사를 절대 왜곡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저 책을 읽는 독자들은 울분을 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영훈은 "위안부들 역시 전쟁 특수를 이용하여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면서......'
어찌 감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일본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를 감시했던 '나야'라는 직책이 있었던 것처럼 조선인 위안부들에겐 '일본인 포주'들의 끊임없는 감시가 있었다. 강제적인 매춘 행위와 빚이라는 압박이 그녀들을 하룻밤 제대로 잘 수 없는 공포감에 휩싸이게 했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러한 정황 속에 조선인 위안부들이 자유롭고, 넉넉한 생활을 했으며, 이를 누렸다고 당연한 듯 이야기하는 이영훈의 억지스런 말에 넋을 잃고 만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사리분별마저 흐려진 것일까? 호사카 유지 교수의 인용처럼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이 친일 종족주의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판이다.
왜 그들은 일본 우파 논리에 급급해 거짓된 내용을 자기들 딴엔 사실이라는 허울로 포장하는 것일까? 당시 왜 가부장적 권위자인 아버지에 의해 딸을 기생집으로 팔았다거나, 강제 연행이 아닌 자발적인 '위안부'였다는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를 내세우는 것일까? 이런 거짓된 내용이 당연스럽다는 것으로 결론 내 [반일 종족주의]란 책을 읽는 독자들을 혼란케 한 것도 커다란 문제이며, 역사 왜곡의 오점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수없이 비난하고 분통을 터뜨려도 모자랄 일이다.
여기서 실제 증언으로 나타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셨던 문옥주의 증언이다. 조선인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본군 헌병에게 연행되는 그녀는 며칠 뒤 북부 만주의 동안성이었다. 여기서 매일 20~30명의 일본인 병사들을 상대해야 했다.라는 증언이다. 반면 이영훈은 당시 문옥주는 오빠의 승낙하게 주선업자에 끌려갔다는 거짓된 정보를 주장한다. 이에 따른 합당한 증거 제시 없이 진실을 매도하고 있다고 호사카 유지 교수는 역설한다. 늘 이런 식의 일본 우파 논리와 허황된 증거와 허상뿐인 말로 위안부 피해 사례마저 지나치게 왜곡해 가고 있다. 객관적 실체 없이 학자라는 신분을 망각한 채 자신들이 진정한 애국인 것처럼 치장하는 그들, 그런 허황된 정황들로 실체를 덮어 버리려는 것들이 친일이 아닐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현재 가장 첨예한 대립이자 문제인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나열이 그들의 또 다른 과오란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꺼내 본다. 이영훈은 [세종실록지리지] 1454년 간행되었으나 책에는 1451년이라고 썼으며, 일본이 독도를 분법 편입한 시기도 1년이 빠른 1904년이라고 잘못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호사카 유지는 이를 독도에 관한 '무지'라고 언급한다. 기본적인 연도로부터 실수가 이어지는 판에 더 세부적인 내용의 설명은 얼마나 더 신뢰가 가지 않을지 읽어 보지 않아도 파악이 될 듯하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 작품 이전에 두 권의 독도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그만큼 많은 사료와 증거를 통해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 조선을 비롯해 삼국시대부터의 독도라는 우산도의 의미와 지리적 위치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억지와 같은 비논리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자료 조사-세종실록지리지, 숙종실록, 동국문헌비고, 태정과 지령문 등-와 역사적 사실이 독자들의 명확한 판단력을 가능케 하는 책의 내용이다. 언론에서도 보는 것처럼 일본 우파의 억지 주장과 동일한 반일 종족주의의 저자들의 행태, 다시금 반성의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지 개인적 견해를 더해본다.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롯한 거짓 정보와 짜깁기식 정리는 그 해당 당사자들에겐 어떠한 아픔보다 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공분(公憤)을 살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한일 문제에 풀리지 않은 굵은 쇠밧줄은 현재 진행형의 상태이다.
당시 상황이었지만 고종의 윤허 및 황제의 옥쇄가 없었던 일제 강점기의 시작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자행되어온 각종 억압과 만행, 일제강점 후반기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사죄 없이 정부 간의 합의 혹은 입막음을 위한 금전적 해결로 그간 찢어질 대로 찢어진 몸과 마음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항변했던 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진실과 허황된 거짓 사이에 무엇이 필요한 시대인지 이를 분별할 줄 아는 눈이 절실한 때이다. 이 책을 읽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동공이 확대되는 격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진실은 머지않아 거짓과 사실 사이에서 밝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