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밀레이 [나는 여자로 태어나 괴롭나니 일부] 남녀가 느끼는 사랑의 마음과 본연의 감정은 동일할 수 있음을 정의하는 시구이다. 저자 또한 남자든 여자든 사랑을 위해 저돌적인 모습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고의 시인으로 살아왔지만, 개성이 강한 삶을 살아간 빈센트 밀레이의 존재는 시대를 앞서 간 예술인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자유분방함 속에 시를 창작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기쁨과 낭만을 즐겼던 시인의 생이 시에도 묻어나는 것 같다.
한 편의 짧은 시였지만 시와 저자의 해설을 통해 그녀의 존재 가치, 문학적인 유산도 경험해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항상 즐거울 수만 없는 인생이므로 저자가 말하듯 시인 빈센트 밀레이의 생애도 희로애락이 공존했던 삶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게 인간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숙명이자 존재성이다.
린다 파스탄의 [슬픔의 다섯 단계]란 제목의 시는 처절하다. 슬픔이란 시간이 가면 당연히 잊힐 테지만 다시 도돌이처럼 돌아온다는 말에
인간의 존재란 무한 반복의 한 평생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누군가를 잃게 되면 느껴지는 시름과 고독감, 우울감이 인간의 마음에 엄습해오기 마련이다. 이를 이겨내는 과정은 나와 타인의 노력이 더해진다. 어떤 단계에 올라와 미련과 슬픔을 승화시켰다고 자기 합리화시키지만 저자의 말처럼 '사지를 잘린 채 계단을 올라온 슬픔은 단계가 있는 도돌이 계단'처럼 잊을 듯하면 다시 시작되고 반복되는 것 같다. 이것을 억지로 잠재울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현명할 수도 있다.
초연결시대 존 던의 산문 중 일부는 현실을 반영한다. 인간 개개인이 하나의 섬일 수 있고 이것이 인류란 종을 만든다. 이런 종의 의미가 헨재의 네트워크화된 세계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무 일을 안 하는 것 같지만 SNS의 글 하나, 카드 결제 하나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되고 보이지 않는 망으로 연결된다. 어떻게 보면 촘촘하면서도 무섭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도 인터넷으로 존재하는 인류. 개개인의 섬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거대한 종이 하나로 뭉쳐진 대륙처럼 우리도 변화하고 있다. 사는 것은 비슷할 수 있으나 각자의 존엄, 존재적 측면에선 조금 가볍고 느슨해진 인류의 현주소가 발전하는 무게에 비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존재성과 연결성은 축복일지 저주일지 각자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삶은 진심을 다 할 때 빛을 발한다. 에이미 로웰의 [꽃잎]이라는 작품을 통해 전해오는 삶을 의미한다. 물과 시간의 비유는 이 책을 쓴 저자의 말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물을 바라보며 대신 느낄 수 있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붙잡으려야 붙잡을 수 없다. 다만 에이미 로웰이 시에서 표현한 '우리만 남아도 we alone stays 향기는 남는다 fragrance still stays'처럼 감정의 향기가 삶에 묻어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물과 같은 시간의 강가에 가득히 기억되어 향기가 끊이지 않도록.
[눈 내리는 밤 숲에 멈춰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는 삶의 멈춤이 필요함을 의미하는 시구들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