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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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선고를 받고 70번째 생일을 맞이 한 빅 엔젤에게 더욱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진다.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소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빅 엔젤의 생일을 일주일 남겨 두고 이런 슬픈 상황을 겪게 된다는 설정이다. 주인공인 그에게 슬픔과 아쉬움, 안타까움-마지막일지도 모를-이 동시에 밀려온다. 자신에게도 끝일지 모를 생일을 위한 계획을 나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장례식이다. 가족들과 만나고 지인들을 만나며 먼저 간 첫째 아들 브라울리오를 떠올리기도 하며 멕시칸이란 사람들의 거침없음과 대담함 등이 가족들 간의 대사로 묘사된다. 시원할 수도 있지만 때론 거북하면서 야릇한 대화들이 빅 엔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오간다. 빅 엔젤 또한 어머니의 장례식을 무사히 치른 후 생의 마지막 생일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과거의 파란만장했던 영광의 터널은 암이란 질병으로 무너져 가지만 인간이므로 마무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획할 수밖에 없는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빅 엔젤의 십 대 시절 아버지 안토니오와의 일화와 부인인 페롤라를 처음 만났던 때를 상기시켜준다. 페롤라를 만나기 위해 갖은 욕과 어려움도 물리치고 미래의 부인이 될 그녀와의 사랑을 이어가는 주인공의 당당함에 멕시코인의 저력을 느꼈다. 게다가 아버지 안토니오가 손님인 첸테 벤트와 바람을 피운 여자의 남편이 칼을 들고 자신에게 덤빌 때 당당하게 맞섰던 모습에 아버지의 영웅적 면모를 발견했다고 하는 빅 엔젤. 한량 같은 아버지의 일면 속에서 간혹 그런 카리스마가 넘치는 풍모를 빅 엔젤은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나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찾아보면 인간에겐 자신의 고유성, 혹은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음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젊은 빅 엔젤은 잠시간 멀어졌던 페를라와 다시 재회하고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간 알지 못했던 빅 엔젤의 아들 인디오와 브라울리오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막내 여동생 미나에 이르기까지, 결국 어머니에게서 쫓겨난 빅 엔젤의 아버지 안토니오도 그들의 가족이자 셋방살이 신세로 함께 하게 된다. 거침없이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하지만 멕시코를 떠나 미국에 정착하려는 이주민들의 애환도 느낄 수 있다. 거친 땅을 다듬고 개간하듯 미국에서의 팍팍한 삶을 살아가며 조금은 문란하고 비도덕적이어도 가족 간의 사랑과 정을 일궈간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던 빅 엔젤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은 우울함과 걱정만으로 그의 파티를 준비하지 않는 것 같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좀 더 어깨와 가슴을 펴고 웃음 섞인 농담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것이 멕시코인들의 본성이 아닐까?
첫사랑이자 재회 후 결혼한 페를라가 데려온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딸 미나까지 얻게 되는 빅 엔젤의 마무리가 그리 팍팍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삼대가 얽힌 가족의 역사, 즉 멕시코 이주민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하며 경험한 혼란스러움이 작품 전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랑으로 뭉쳐진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발설하며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우리의 가족이란 이미지와 다르지만 솔직함이 진실인 듯 묻어나는 북중미 특유의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기회의 독서였다. 죽음으로 하나가 되는 이야기, 우리도 누군가 세상을 등지는 안타까운 사연으로 몇 십 년간 못 봤던 지인들을 만나고 그간의 해묵은 감정이란 고리를 풀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한 점이 세상에 사는 인종이나 언어는 다르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비슷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작품이다. 작품의 영어로 된 원제와 의역된 국내 소설 제목이 어찌 보면 하나의 맥락이자 끈으로 연결된 가족을 표현하는 함의가 들어 있음도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네가 아기였을 적에, 내가 널 씻겨주었는데.˝
-중략- ˝나는 네 아버지였어. 그런데 지금은 네 아기가 되었구나.˝​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의 문턱에선 본능적으로 처음이란 상태로 돌아가는 동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노인이 되면 아기로 돌아간다. 빅엔젤이 딸에게 하는 말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라는 문화적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 내용이다. 서툴고 민망할 때도 많은 가족 같지만 혈연이란 끈으로 이어진 아버지와 형제의-빅 엔젤의 입장에서-마지막 생일을 맞이하는 아쉬움과 기쁨이 책을 읽어 나갈수록 돈독해져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었다. 가족,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의 묵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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