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노래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배봉기 지음 / F(에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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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명 앞에 맞설 수 있을 때, 영웅의 풍모는 더 높아진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달프고 아찔하며, 생과 사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함도 무게감으로 밀려온다. 죽음과 삶 사이에 롤러코스터 같은 놀음, 그 중심에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리더의 자리는 고뇌와 결단의 어려움이 늘 맞닿는다. 주인공 ‘노래하는 이(분)‘는 계속되는 낯선 배들의 침입과 신문명 앞에서 갈등하는 종족을 지킴에 있어서도 심사숙고하게 된다. 문명의 진보는 새로운 것을 주는 것뿐 아니라 과거를 파괴하는 암적인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외치는 이 시기에 우리의 옛 것, 전통 속에서 새로움의 가치를 얻을 만한 진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회색 늑대란 종족 또한 이 섬에 거주하며 자신들이 추종하는 늑대처럼 주변을 약탈한다. 그렇지만 뿌린 만큼 거두듯 회색늑대 종족은 그들의 종족이 세력화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연합 종족을 비롯해 공주를 납치해 죽게 했던 붉은 곰족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는 종족은 귀가 짧은 단이족, 대신 귀가 큰 회색 늑대족은 그 이후 장이족으로 불리게 된다. 100명 이하로 남게 된 장이족은 단이족의 도움으로 근근이 연명하게 되지만 결국, 그들의 근성을 버리지 못한 채, 짐승들을 잡아 무차별적으로 죽이거나 구운 고기나 뼈를 버리고, 숲을 태우기까지 한다. 죽은 짐승 혹은 뼈까지도 죽음에 대한 예를 표하는 단이족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하는 장이족. 끝내는 종족의 제사 의식 날 단이족의 소녀를 제물로 삼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이렇게 문명사회의 발달에 따른 폐해 혹은 그로 인한 혜택을 얻은 이들 또한 언제 어느새 그들의 본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자 그릇된 악행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배은망덕이란 표현은 그저 삼류 드라마, 영화에서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거슬러 올라 속고 속임의 연속에 대한 씁쓸함을 소설 속 이야기에서 접할 수 있다. 그리고 모하이 석상의 진실. 그들이 좋아하고 사랑했던 작은 모하이 석상. 그들이 만들기를 즐기고 전통을 누렸던 일들이 어느 순간 지배 계급에 의해 그 방식과 방향성이 달라진다면 그들의 문화는 이미 사멸화 되어가는 박제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진실에 대한 수수께끼가 사실이든, 허구이든지 간에 소설 속 이야기를 읽으며 판단을 내리고 정의하는 것은 독자의 몫일 것이다. 그렇게 단이족과 그들에게 은혜를 입은 회색 늑대족 장이족은 물과 기름과 같은 하나가 되어간다.

단이족과 장이족의 사이에서 태어난 청년 ‘괴상한 소리‘와 ‘발과 입이 없는 자‘의 운명적 만남.
그들에게 일상은 먹고 싸우며, 또다시 종족 번식을 위한 전쟁의 연속인 삶이었다. 평화란 꿈과 같은 허상일 뿐이었다. 특히 청년 ‘괴상한 소리‘에겐 기성화 된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 약육강식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발과 입이 없는 자‘는 ‘괴상한 소리‘청년과 이야기를 통해 말문이 트이고, 청년이 자신을 대신해 지금의 슬픔으로부터 이야기를 청년의 큰 목소리로 바꾸어야 한다는 조언을 남기고 떠나간다.

‘분노와 증오는 무너뜨리는 힘일 뿐 결코 세우지 못한다.‘

복수 혹은 힘이 아닌 온당한 정의의 실현. 그것이 평화일 수도 있다. 힘은 또 다른 힘을 양산할 뿐이다. ‘괴상한 소리‘에서 ‘생각하는 ‘생각에 잠긴 자‘가 된다. 그리고 힘이 아닌 무엇으로 하나가 될지 고민하며 낮은 소리의 노래 안에 이야기를 담아 간다. 그리고 그를 따르던 혼혈족들에게 그의 노래는 별것 아닌 노래라는 실망감에서 놀라움과 당황, 결국은 분노와 증오를 넘어선 슬픔과 그리움이 되어간다. 그리고 또다시 장이족에게 권력은 넘어가고 노래만을 부르던 ‘생각에 잠긴 자‘는 ‘큰 노래‘라 불리게 된다. 그리고 그는 통합이란 큰 틀을 노래라는 매개체로 완성하며 권력의 중심에 서지만 홀연히 사라지는 연기처럼 영웅적인 마무리를 택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월이 다시 흘러 현재의 시점, ‘노래하는 분‘이 이끄는 부족은 결국 18~19세기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서구 열강 혹은 제국주의 국가 지배계층의 모략과 약탈로 반복되는 아픔과 슬픔의 굴레에 빠져들게 된다. 역사는 평화와 전쟁 속에서 연속되는 쳇바퀴와 같이 반복이 되는 것이 진리인 것일까? 행복이 길게 가기 힘들 듯 인간과 자연이 누리는 안온함은 스스로에 의해 파괴되고 다시 재생산되는, 그저 악순환의 고리처럼 반복되고 있음에 씁쓸할 뿐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안도감과 동시에 지금의 자유를 올바르게 이끌어 나아가야 할 인간으로서의 목적성과 책임을 느끼게끔 하는 작품이다.

다행스럽게 혼혈족(단이족/장이족)그들의 언어까지는 아니었지만 살아온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던 기회를 준 서양 열강의 착한 꼬마
기록자 헨리. 노예가 되어버린 ‘노래하는 이‘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언어를 익히며 어린아이와의 우정을 통해 자신의 족적을 남길 수 있으리란 희망의 확신이 아니었을까? 역사란 계속 돌고 돌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이용하는 영웅 혹은 악인들에 의해 찬란하게 빛나거나, 변색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게 한 장엄한 서사시 한 편을 감상한 기분도 든다. 가보지 않았지만 가보고 싶게 만드는 이스터섬. 그 아픔의 장소에도 새로운 희망과 평화의 빛줄기가 또다시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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