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삶
정소현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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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소현이 창작의 침묵을 깨고, 오랜만의 현실 외출을 했다. 그 작품이 바로 소설집 '품위 있는 삶'이다. 언제나 품위 넘치고 자신감 있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주인공. 돈을 쓸 시간도 부족했던 병원 원장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품위 있는 여생을 위해 최고급(?) 보험에 가입한다. 보험이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며, 정확히 알 수 없는 마무리를 어떠한 방법으로 선사할지 모른 채 그녀는 30년 동안 보험에 의해, 아니 보험이란 족쇄에 조종되듯 살아가는 삶에 영위된다. 모든 것이 시스템화되어가듯 변화하는 보험 특약과 적재적소에 그녀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덕에 겉으론 평화롭지만, 인간은 더욱더 기억을 망각하는 동물이 되어가고, 무엇이 주가 되는지 모를 자신의 자아 정체성마저 위협받는 존재 불명의 개체로 전락해가는 건 아닌지 두려움도 더하다. CC-TV를 비롯해 각종 영상 기록물로 개인의 사생활 또한 지극히 무가치화된 요즘, 품위 있는 삶을 보장한다는 허울 하의 주인공 나윤승의 30년 기록들도 차곡히 보험사 정보 시스템에 저장되어 간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 인간은 그저 도태해가고 기억의 망각 곡선 속도 또한 빨라진다. 갈수록 아이러니한 세상살이에 지쳐갈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에게 가장 흔한 심적 안정의 담보물인 보험이란 상품을 통해 그려진 인생의 단편이 씁쓸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독자 스스로가 느끼는 '품위 있는 삶'이 무엇인지,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화무십일홍-중략-어차피 관뚜껑 닫고 안로 들어가면 다 똑같아.'

짧지만 확실한 인생에 대한 정의. 작가의 글을 통해 인생의 의미, 과거 혹은 어제의 일들을 기억하며 떠올리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어제의 일들 주인공 상현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조부모 틈에서  자라난다. 또한 사실적 기억인지, 의미를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과거의 아픔인지에 대한 상처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하꼬방 같은 주차장 작은 안내 부스에서 그림을 그리며 현실에 맞닿은 삶을 살아가는데 만족한다. 그러나 그녀를 매번 찾아오는 지난 기억의 친구들. 어제의 일들은 아픔 속에 그저 묻혀 둔 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지, 죽으며 다 똑같은 더미로 변해가는 우리들이지만 지금이 아닌 과거의 것들에 너무 집착하고 추리하며, 지나친 상상력과 거짓된 증거들로 인생을 왜곡시킬 수 있는 극단적 결과도 보여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상현 이 모두를 받아들 일뿐이다. 어머니라 부르는 간병인 아주머니의 삶을 대하는 태도처럼...... 모두가 아픔 안에 존재한다. 주인공 상현도, 친구 율희도, 대성한 자녀를 둔 간병인 어머니마저도. 그럼에도 인생이 각자의 노선에 따라 굴곡은 있긴 마련이다. 하지만 어제의 일들은 우리가 관 뚜껑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게 된 이후는 다 똑같기 마련이란 대사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더욱 '어제의 일들'에 지나친 상처 혹은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길 바라게 된다. 그렇다고 정말 필요하고 영원히 기억될 모두의 기억을 사멸하는 것은 반대한다. 세월호의 기억 같은......

삶과 죽음, 기억과 망상 등 이성을 지닌 인간이 존재하는 증명성에 접근하는 방법. 그 해답과 실마리를 비롯해 어떻게 생의 의미를 구현하고 매조지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정소현 소설가의 작품들이다. 어려움 없이 잘 읽히지만 생각하는 시간을 던져 주는 작품. 올바름과 그릇됨의 결과에 대해 갈팡질팡하며 뜻 모를 함정에 빠질 수 있을 우리 인간들에게 과거와 미래 사이 틈바구니에 현재를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소설집 정소현 작가의

'품위 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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