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녹색도시
은기에 지음 / B&P Art&Culture / 2019년 4월
평점 :
'녹색으로 변해버린 도시, 그건 폐허이다.'
이야기의 초반부터 음침하면서도 섬뜩한 내용의 문장들이 소설의 분위기를 대략 짐작 가능하게 한다. 누군가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도시. 식물이 되어버린 인간의 끝마무리가 서슬 퍼런 도끼 앞에서 썩은 나무줄기처럼 소리 없어 사그라든다. 녹색식물에 잡아먹힐 것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굴복하지 않을 것인지, 왜 인간이 식물화되어갔는지 그 종착점을 향한 삶과 죽음의 끔찍한 사투가 펼쳐진다. 안타깝고 가슴 시린 긴장의 끈을 쉬이 놓지 않을 정도의 흥미도가 적절히 버무려진 내용의 작품이다.
도끼 대신 죽은 이의 진검을 물려받아 흡혈귀를 처단하는 퇴마사와도 같은 모습으로 식물로 변해가는 인간을 처단하는 정태우.
어떻게 식물이 인간을 잠식 시키는 좀비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음이 궁금해진다. 이렇게 식물화 되어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생존 본능이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연상시킨다. 결국 이 모든 게 인간의 탐욕과 살인, 정벌 욕구에서 빚어진 결과물이 아닐지......
인간이 식물화 되어가는 이유가 무엇일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 이야기의 흐름. 주인공 태우에게 등장하는 보스라는 인물과 짭새, 그리고 여인들. 태우는 자신의 '진검'을 보스의 무리에게 맡기며 그들과 같은 길을 걷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그들의 신뢰를 얻은 뒤 추가 행동을 위해 심기일전한다. 하지만 엄마에 이어 식물화 되어가는 동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태우는 이러한 트라우마 속에 변화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이후 짭새의 무리와 멀어진 태우. 그리고 낯선 여인 미정과 만나 위기를 겪게 되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짭새의 심복이었으며, 다시 만난 짭새와 함께 식물화되어가는 인간을 사냥해 농장을 만들 식량 비축 기지 건설에 열을 올린다. 아직 식물이 되지 않은 짭새와 태우, 식물화 되어 가고 있지만 이를 단축시키려 뿌리를 깎는 아픔을 이겨내는 반인 박식 물 미정과 뿌리라는 이름의 남자아이. 이들은 식물화된 인간들을 수집하며 농장을 확대해가지만, 결국 더 큰 세력, 힘의 논리에 의해 농장을 내버려 둔 채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이 와중에 결국 주인공 태우도 식물화된 개체에 의해 다리를 빨리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로 인해 짭새 일행과 이별을 하게 된다. '식물화된 인간의 사냥꾼'에서 함께 '식물화되어 인간의 적'으로 돌변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인가? 태우의 인생이 그런 것처럼 사람의 미래는 알 수 없는 순간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태우는 인간에게 혹은 그가 처단할 수밖에 없었던 반인반식물들에게 추격 당하는 격세지감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인간, 식물의 노예가 되어가는 인간의 모습과 함께 인간에서 식물화되어가는 주인공 정태우의 여정이 한 편의 버디무비를 보는 것 같았다. 뚜렷한 결론보다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이야기의 말미에서 느껴진다. 우리 인간이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동안 자연과 동식물 환경은 파괴되고 공상 과학, 판타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식물의 존재가 우리 인간을 집어삼키는 상상력 가득한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자연을 떠나 노선과 체제, 인종이 다르다는 것으로 반목하고 핏빛 전쟁으로까지 확대되는 인간 세계. 어떻게 보면 녹색 핏빛이 낭자한 세상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아이러니는 무엇인지......
결말이 정해진 구조가 아쉽지만 마지막 식물인간과 식물들, 인간이 어우러져 벌어지는 전투신은 영상으로 연출을 해보아도 기대해 볼 만한 장면이 되기에 충분한 상상을 해본다. 소설을 너무 판타지스럽고 공상 과학적으로 보는 것도 선입견이지만 소설이란 독자의 상상력을 무한 자극하는 우주 같은 존재라는 생각도 들게 하는 작품, 녹색도시였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618/pimg_724684163222110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