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정의롭게 사는 법
정민지 지음 / 북라이프 / 2019년 3월
평점 :
북 라이프/정민지/문학/에세이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참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부끄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갑니다.
11년 기자, PD 생활을 통해 달고 쓴맛을 모두 경험해 본 작가 정민지. 첫 번째 작품이지만 담백하고, 간결하며 가독성 높은 문체가 폐부에 꽂힌다. 직장 생활에서의 애환과 함께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과 사직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마음에 와닿는 내용들 가득 담긴 에세이집이다.
간혹 너무 솔직하고 사실적이어서 울컥해지는 글. 슬픔이 아리는 글들도 있어 마음이 짠해진다. 기자 출신 작가답게 상황에 따른 스케치 능력도 뛰어나고, 읽기도 편하며 스펀지처럼 스며드는 글이 매력적이다.
울컥의 시작은 사고로 잃은 사촌 동생의 이야기였다. 기자이지만 유족일 수밖에 없고, 그것을 앵글에 담으려는 기자들의 모습을 말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촌 동생이 잠들어 있는 장례식장에 등장한 동료이자 언론계 종사자들의 숨소리. 기자는 기자가 알아본다는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혈육이 겪은 상황이었을 테니 처절한 심정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다 보면 기자라는 직업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들.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사건과 사고,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자신을 다져가는 마중물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울컥하는 이야기만으로 채워졌다면 책은 슬퍼지고 독자는 책 위에 눈물을 쏟아낼 정도의 감당할 수 없는 정서로 책을 마무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결혼 후 생활을 비롯해 많은 소재들이 담긴 두 번째 에피소드 ‘오늘도 참고 말았습니다.‘에서는 슬픔 대신 공포가 스며든다. 택시를 타며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던 작가 지인의 이야기와 기자 정신을 발휘해 택시 기사의 몰카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아찔했던 순간, 대부분의 택시 기사분들이 난폭하고 무매너의 사람들이 아니겠으나 작가가 느꼈을 당시의 상황은 공포 자체였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작가는 명절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며 점수를 따고자 노력했던 새댁이기도 했다. 아마 진도홍주 한 잔에 넋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그 가능성은 보였으나 모든 것을 몸속에서 게워낸 후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된다. 다음날 남편과 함께 했던 영화 감상을 하는 시간까지도 얼마나 취기가 심했으면 영화의 제목(공조)도 모른 채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영화를 보았는지...... 시댁에 잘 보이기 위한 며느리, 살림꾼이자 기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1인 다역의 삶은 참 어려운 것임을 느끼게 되는 내용이었다. 이렇든 소재의 다양성과 더불어 일상적이지만 작가의 개성이 묻어 나오는 일상의 잔잔한 이야기들. 작지만 소중하고 소소한 하루하루의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들은 스스럼없이 다가가 작가와 소통하며 비슷한 삶의 공감대를 나누는 것이다.
기자 시절 공짜밥은 절도 비껴가지 않았다. 소방 안전 대책을 위해 찾았던 사찰. 당시 다행히도 특종의 스트레스가 없던 촬영이라 갖가지 아이디어와 구도를 구성해가며 보도 촬영을 잘 마무리했다. 그런데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에 사찰 스님이 건네는 식사비. 수십 번 거절하고 숨바꼭질 끝에 봉투는 받지 않았지만 모든 일엔 대가성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은 안 그러겠지만 이러한 상황이 언론계에 허다했을 터니 그 심정 또한 알만한 내용이라 글쓴이의 마음이 더욱 실감 나는 에피소드였다. 스트레스 없던 촬영, 결국엔 세상에 쉬운 촬영이 없음을 작가는 토로하며 글을 맺는다.
‘누구보다 평범하고 지극히 단순한 하루지만 그 성실한 새벽에는 단단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폐지 줍는 어르신을 바라본 작가의 생각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일할 수 있는 자신감.
자존감이 묻어나는 어르신의 일상을 취재를 통해 작가도 느끼게 된다. 비를 맞으며 폐지를 수거하는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매일의 일상이지만 그것이 생활이고, 낙이며 일로서의 반복된 삶을 사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르신들은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자 가치이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시는 것이며 힘겹지만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자기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유학 시절 알고 지냈던 ‘빅 이슈‘ 판매 노숙자와의 사연과 동시에 자신이 취재했던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자존감 넘쳐 보였던 삶이 겹쳐지듯 보였던 것이 아닐까? 자존감, 자신의 일. 보다 높은 곳만을 바라보려는 요즘 2~30대 젊은이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에세이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작가도 일상을 살아가는 직업인 혹은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남편은 잦은 야근으로 회사에서 제공한 간식을 늘 버리기 아까워 거주지 아파트 A, B 경비 아저씨께 드렸다고 한다. 늘 살갑게 감사 인사하는 A. 반면 무뚝뚝하게 받고 인사만 하는 B. 그래서 그런지 작가 또한 B보다는 A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좋게 각인되었다니, 그만큼 인상과 말투나 친절함이 중요한 것을 대변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반전은 늘 있다. 3년간 그렇게 간식을 드린 A 아저씨는 작가의 남편이 몇 호에 거주하는지 모르는 반면, 무뚝뚝한 표정에 아파트 입출 구를 오가는 사람들을 빤히 지켜만 보던 B 아저씨는 오히려 입주민이 놓친 택배도 챙겨주고, 필요한 업무를 충실히 하셨다는 것이다. 그저 친절한 것에서 끝난 A. 무표정하지만 입주민의 필요함을 채워 준 B의 모습에 작가는 각자의 직업, 맡은 일에 우선순위가 무엇이 돼야 하는지를 느꼈다고 소회한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전 아파트에 살던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아기가 자고 있음에도 늦은 밤 놓친 택배를 갖다 준 경비 아저씨. 위의 경우와 비슷하나 지나친 행동에 의한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온 상황이었다. 아마 과도한 지나침이 부족함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온 사례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적절하다~ 그 무게 혹은 질량을
구분하기가 힘든 게 인생이 아닐지 고민해본다.
‘어게인‘의 추억이랄까? 다시 찾은 밥집이 술집으로 바뀌어 있고, 기대하고 친구까지 끌고 갔던 단골집이 신식 펍으로 변해 있을 때...... 난감하다. 작가 또한 대학 시절부터 즐겨 찾던 돈가스집이 있었다. 민음사 전집을 읽는 아들과 40대로 보이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돈가스집. 아마 그 당시는 정통 경양식 스타일의 돈가스가 인기 있던 시절이라 돈가스의 느낌도 그러하다. 기쁠 떼나 슬플 때 자주 찾던 그곳이 어느 순간 세월이 흘러 없어져 버렸다면 정말 참혹 그 자체일 것이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이 아니라 개인사로 인한 폐업이라면 얼마나 더 안타까울까? 그렇게 작가는 세월이 흘러 같은 이름의 비슷한 전화번호로 달고 영업하는 ‘어게인‘을 찾았지만 급번전! 돈가스 단골집이 단란 주점으로 변한 현실. 그것도 아쉽지만 추억을 곱씹을 장소 하나가 사라진 게 더욱 아프다. 그 골목 그 집, 세월이 지나도 그때 우리를 맞아준 사장님,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의 미소가 더욱 그립다. 작가와 같은 마음, 동일한 흐느낌, 지나 온 아련함이 동시다발적으로 스쳐가는 이야기다.
전체적으로 찰진 이야기들과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고민과 해소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작가의 일상과 적절히 배치된 작품이었다.
오래된 친구이건 사이를 두고 있던 친구이건
그 인연이 끊어질 때 느끼게 될 남 모를 자괴감. 그러나 인연이란 스쳐감의 연속이라고 글에 쓰인 것처럼 하나의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또
다시 마음을 잡아 시작하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 그것이 작가인 전직 기자 정민지님이
생각하는 삶의 가치 중 하나가 아닐까? 같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르지만 같음을 느낄 수 있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
조금이나마 작가가 살아온 일에 감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동한 책 읽기였다. 또한 에피소드들 대부분이 사실적이고, 솔직 가감한 작가의 성격이 드러나 있는듯하여 독서 내내 스토리에 빠져들 수 있는 요소를 갖춘 작품이었다. 첫 작품이지만 추억 한 박스, 기자의 포스 한가득 담겨있는 휴먼 스토리. 누구나 읽어보아도 흥미로울 작품이지만 특히 언론 고시를 준비하는 취업 준비생, 일에 지쳐 변화를 모색하는 30~40대 직장인들에게도 일독해보기를 권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324/pimg_724684163215561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