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파르데스 공부법
이대희 지음 / 빅북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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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빅북/이대희/교육/자녀교육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탈무드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의 대두!!!

 

저자는 유대인 교육법으로 잘 알려진 하브루타 교육을 소개하고, 놀라운 통찰력을 주고 있는 유대인 고유의 공부법인 '파르데스'를 제대로 알리기 위한 결단으로 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국내 교육이 주도했던 주입식 암기 교육과는 상반되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뇌를 활용한 자발적 교육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 교육의 영적인 부분은 제외하고 국내 환경에 맞는 교육으로의 표방을 목표로 이 책을 완성 시킨 것이다. 유대인의 교육을 참고하되 모든 것을 따라하지 않고 국내 실정에 맞는 교육 방법의 계발, 그것이 이 책을 흥미롭게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단편적 지식의 습득이 아닌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그것이 저자가 누차 강조하는 파르데스 교육법의 핵심임을 인식하고 이 책을 읽어 나가길 바란다. 그렇다면 자녀와 부모 모두 창의적인 생각을 공유하는 변화 된 학습법의 주인공이 되어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져본다.

   

저자는 책의 시작에 국내 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통계치등을 제시하고 다른 OECD국가들간의 학업 시간등을 비교분석하며 명확한 근거와 증거를 제시해주고 있다. 시간 투자 대비 효율성면에서 국내의 교육은 선진국들과 비교한다면 최상급으로 동일하지만, 그저 대학이나 취업의 도구적 수단으로 밖에 이용될 뿐 학업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은 목표 달성후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를 파악하면 해답을 찾기가 더 쉬운것처럼 저자는 국내의 상황을 바탕으로 유대인의 파르데스 교육법을 접목시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유대 교육 중 인성과 가치를 중시한다.

공부에 매몰되어 청춘을 보내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실로 본다면 점수와 학위로 대변되는 비교우위의 서열화가 서글픔으로 밀려온다. 국정농단 사태를 비롯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권만을 보아도 인성과 도덕은 없고 고성과 폭력만이 난무했던 결과도 우리 교육 뿌리의 밑바탕이 잘못되어 그런 것은 아닌지 대비해본다. 주입식 교육의 마감되어야한다.

 

이미 지식이 넘쳐나는 사회댭게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거나 책을 통해서도 부족분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저자는 창의력 계발에 투자해야함을 강조한다. 그것이 바로 유대인 파르데스 교육의 중심인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알려주는 교육법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이 13세가 되기 전까지 토라(구약성경)를 읽고 암송하게 한다고 한다. 내용의 난위도보다는 우선 내용을 습득한 후 어느 정도 자란 후 부모 혹은 교사들과 심도있게 배우고 토론하며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오히려 연령이 높아질 수록 토라의 어려웠던 내용이 쉽게 받아들여지며 공부에 대한 강도가 약해지니, 그만큼 어린 시절의 내실있는 암기, 암송교육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아주 쉬운 것부터 시작해 중고교 시절 고난도의 주입식 교육이 되다보니 유대인 파르데스 교육법과는 반대로 공부에 집중하다가도 스스로 무너지거나 대학에 합격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또 다른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아예 어린 시절 난이도가 높은 교육이지만, 그것을 토대로 익히고 암송하며, 그 의미의 풀이를 가정과 학교에서 해결해나가는 질의 응답식 교육법이 세계를 움직이는 0.2%의 유대인들의 힘으로 자리매김함을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아는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 경제학의 거두 피터 드러커, 4차 산업 혁명의 클라우드 슈밥, Ms사의 전 대표 빌 게이츠 등까지 그들 또한 유대인의 파르데스 교육의 혜택을 받고 자란 인물들이며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교육법이 뿌리 깊은 토대가 되어 작지만 힘 있는 세계 중심에 우뚝 선 민족이 된 것이다.

 

저자는 더불어 공부의 중심이 학교가 아닌 가정에 있다고 피력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여러번 외치는 하부르타식 공부법이다. 혼자가 아닌 둘씩 짝을 이뤄 질문하고 토론하는 공부. 가정에서 시작해 학교로 확대해나가며 그 틀을 견고히 해나가는 것이다. 부모를 통해 배우고 습득하며 보다 난이도 높은 교육은 학교를 통해 진행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면 혼자만의 발전이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창의적 교육의 발편이 마련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 중심이 5,000년간 이어 온 유대인의 교육이며 종교적인 관점으로 비칠 수 있겠으나 그 본질이 바로 토라, 즉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덧붙여 언급해준다. 여기에 토라를 정리하고 구전으로 이어져 온 탈무드가 더해지는 것이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란 것을 저자는 다시금 강조한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교육서를 통해 토론하고 질문하며 문제 해결력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정점을 찍는 것이 파르데스 교육법임을 잊지말자. 토라와 탈무드를 자신의 자녀들이 올바르게 받아들이게끔 노력하는 유대인의 가정.

단계별 과정을 통해 그들의 아이들은 단순함에서 고차원적인 영적 세계로의 영역까지 교육의 범위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물론 파르데스 교육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란 문화와 전통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의적 관점의 자기계발 틀 안에서 타인과의 소통을 비롯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해가는 과정을 흐름대로 이어가다보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려는 파르데스 교육법이며 우리의 자녀들이 수동적인 대처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원천이 되리라 여겨진다. 저자 또한 그러한 교육을 국내 교육에 접목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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