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속된다 -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루트 클뤼거 지음, 최성만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문학동네/루트클뤼거/문학/회상록

‘어느 유대인 소녀의 홀로코스트 기억‘

안네의 일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리고 이 작품을 알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어린 유대인 소녀의 아픈 잔상이 뇌리에 꽂힌 것만으로도 우울함이 밀려들 지경인데, 이 과거의 아픈 흔적을 글로 담아낼 수 있는 용기 그 자체에 공감할 수 있는 독서 시간이었다.

‘내게 아버지는 놀라운 광채를 발하는 폭군,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에 끝내 신뢰할 수 없는 폭군이었다.‘

아버지라는 존재, 좀 더 어려운 역사적 시기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큰 버팀목이 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존재하는 아버지라기보다 타인에게 비춰지는 대중화 된 모습으로 형상화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닮은 소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이별이 더욱 애잔해 주인공인 그녀에게 아버지란 이름은 희비극적 이미지로 투영되는 건 아닌지.
그 아버지란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며 책 읽기를 진행했다. 결국은 아버지와의 작별, 그 죽으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던 그 당시 슬픔이란 여운이 저자이자 주인공인 이 작품의 내용에 서려 있다.현실적으로 어둡고 상막했기에 조금은 무거운 책 읽기.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아는 ‘홀로코스트‘의 악몽일 것이다.

어머니와의 수용소에서 삶, 그 역경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작가의 섬세하고 묵직한 필치로 쓰여진 작품같다. 거기서 만나게 된 사람들. 어머니의 의붓딸이자 양언니로 찾아오는 디타와의 관계는 수용소에서의 삶에 또 다른 영향력을 미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늘 불안을 떠 안고 사는 유대인들. 그리고 주인공 클뤼거와 그녀의 가족들의 운명. ‘홀로코스트‘란 악명 높은 존재가 기억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위해 박물관화 되어가는 것에 저자를 비롯해 이 책의 옮긴이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당연히 유대인이 겪은 죽음의 공포와 희생을 추억하는 의미에서 기념관 혹은 박물관의 탄생은 긍정할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이 그저 시각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단편적인 의미만을 서술하기 위해 강조하는 것에 저자를 비롯해 독자인 나 또한 반대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으로 느끼고 아파하며 그들의 잃어버린 세월 혹은 희생의 값어치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법을 터득해보자. 저자 또한 자전거 사고를 겪으며 인식의 전환을 얻어, 자신이 십대 시절 잊고 싶었던 아픈 기억을 회상하듯 열정을 다해 이러한 회상록을 완성했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진심이 어린 시선에 조금이라도 동참하고 빠져들며 경건함을 유지하는 것이 이 책을 존중하고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의도와 상징성을 이해하는 묘미가 될 것임을 확신해본다.
삶에 부여 된 지속성과 더불어 숭고한 희생의 의미는 고결함이란 결과적 가치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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