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귤
김혜나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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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나 작가의 신작 소설집 ‘청귤’.  6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그간 문예지 혹은 웹진에 발표된 이야기들을 하나로 묵은 작품이다김혜나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는 ‘청귤이라는 시큼하면서 달콤한 제목에 끌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지금 딱 알맞은 계절의 작품 제목이자 출간된 소설집이라고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로레나

첫 작품 ‘로레나’, 필리핀에서 우연히 만난 주인공 나의 막내 삼촌 용희의 여자 친구애인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결혼을 해 남매를 두고 있는 용희 삼촌이지만잠시 필리핀에 거주하다가 두 남매와 로레나라는 볼품없고 가진 것 없으며소심한 필리핀 여성과 함께 귀국하게 된다사촌 조카의 돌잔치에서 처음 주인공과 용희 삼촌이 만난 자리로레나라는 이름의 발음을 정확히 발음하기 힘든 주인공에게 용희 삼촌은 ‘’ 발음을 강하게 하면 영어의 L 발음이 더 쉽다고 힌트까지 주며 그의 이름을 불러보라고 한다. 그곳 돌잔치 장소에서 연신 술을 퍼마시는 용희그는 인생의 패배자이자 낙오자 같지만 왠지 모를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남성이기도 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 남매필리핀 여성 로레나그들은 주인공인 나에게 의지하여 시간의 흐름을 함께 이야기 속에서 공유하는 인물들로 그려지는 듯하다.
 
이어서 사촌 조카의 돌잔치에서 헤어지는 마지막 인사로 로레나는 주인공인 나에게 ‘’ 소리 나는 듯한 볼 뽀뽀를 한다영화에서나 친한 친구들끼리 볼 뽀뽀를 하거나친근함의 표현으로 하는 것을 본 것이 전부인 주인공그 의미를 계속 간직하다가 다시 설날 용희 삼촌의 가족들과 해후한다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서 극적인 사건을 더 발화한다고 할까네일아트에 능숙한아니 이것이 필리핀 사람들에게 생업이자 삶이라 이야기하는 용희 삼촌의 말처럼 로레나는 주인공인 나를 시작으로 많은 가족들에게 3시간 이상의 네일 아트를 선물해 주고 있다그러나 이런 로레나의 모습에 걱정을 하던 주인공그리고 용희 삼촌에게 이를 만류시키라고까지 하나설날 휴식을 즐기던 용희 삼촌은 형제들과의 화투판을 난장판 만드는데 이어 네일 아트를 친척들에게 해주고 있는 로레나의 도구 상자까지 바깥으로 던져 당시의 분위기를 불 보듯 뻔하게 만들고 만다주인공인 나이게 욕설까지 퍼붓고 밖으로 향한 용희 삼촌그러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용희 삼촌을 따랐기에 그런 행동은 큰 행위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놀이터에서 용희 삼촌을 발견한 주인공은 삼촌과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눈다그리고 용희 삼촌은 소주 한 잔 더 하겠다며 유유히 편의점으로 향한다그리고 로레나는 방 한편에 웅크린 채 엎드려 있다주인공이 나도 그녀 곁에 조용히 같은 자세로 그 상황을 공유할 뿐이다.
 
문장이 어렵지 않고 가독성이 좋아 읽기가 참 편한 글이다용희 삼촌이 어떻게 로레나를 만나 여기까지에 이르렀다는 전후 사정이 없어도 우리 독자는 앞서간 상상력으로 대략 어떤 상황으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으며 로레나와 용희 삼촌이 그러한 관계를 맺게 되었는지도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주인공 나는 어린 시절 삼촌과의 아련했던 추억으로 그들의 행동과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며 관조적인 자세로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어찌 보면 측은함, 동정, 아니면 과거의 편했던 삼촌이란 존재에서 지금은 사회성이 부족하고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그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로 인식하고 극의 중심에 서서 설명하고자 하는 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보는 소설 읽기였다그리고 소설 마무리 마지막 주인공의 낯선 질문, “괜찮겠지?” 그리고 수긍하듯 "괜찮다"라고 이야기하는 삼촌그것이 로레나일 수도불확실한 용희 삼촌 자신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
 
 
이야기의 이야기
 
자신이 태어난 이야기가족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나어떻게 해도 이야기를 능숙하고 재밌게 하기 힘든 것이 자신이라고 설명한다그리고 이야기 방식에 따라 같은 내용을 이야기함에도 흥미롭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알려준다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고그것을 부자연스럽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이야기의 공존 속에서 자연스럽게 읽어나갈 수 있는 인생 전기와 같은 흐름의 독백이었다.
 
여기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한 이유필리핀 여자인 로레나와의 첫 만남단편 ‘로레나에서의 이야기와 이어지는 것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또다시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역경에 대한 넋두리와 같은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야기를 하기 힘들고 못하지만 자신이 타자와 이야기함으로써 변해가는 모습에 끝까지 이야기를 멈추고 싶지 않다는 아이러니함하지만 하기 싫던 것도 하고잘 하던 것들도 못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이를 독백하듯이 풀어내는 화자의 나그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그 이야기가 혹시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청귤
 
미영과 지영의 만남은 또래의 만남
 
"사람들은 여름에도 귤이 난다면서 신기해하고 그것을 먹어보려고 하지. 그런데 이걸 막상 나무에서 따서 손으로 가져와 보면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아. 이건 그냥 쓰고, 시고, 딱딱하기만 해. 진짜로 먹을 수는 없어."
 
감귤은 먹으면 그만이지만 청귤은 오래 두고 다양한 용도로도 사용 가능하다. 그래서 미영은 청귤이 좋다고 한다. 여기 소설 속 두 영은 다르지만 같은 대학시절의 친구로 시작된다. 하지만 청귤은 들 영근만 큰 풋풋함과 부자연스러움과 막연함이란 의미가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미영의 끝없는 분노와 욕설이 낯설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 생 날것이라는 느낌을 알기에 그 안에서 자신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부정한 것들에 끝없이 항의하고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한 모습이 미영, 그녀의 참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모습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소설가 지영. 청귤의 투박함, 부족함을 지닌 듯 한두 사람. 그 강도가 더하게 보이는 미영, 그러한 부족함을 소리 없이 받아들이고 스며들게 하는 지영의 우정이 청귤의 시큼함을 상큼함으로 변화시키는 듯하다.
 
폭력적이거나 혐오가 아닌 원초적 감정 그대로의 소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낯설지만 신선하고 개성이 넘치기에 흥미롭고 농밀한 이야기도 서서히 독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을지 평해본다. 그리고 소설 속 멘트, 청귤이든 감귤이든 다 비슷하고 흡사하며 인간도 그런 종류의 일부일 뿐임을 공감한다.
 
《오샤 와》
 
캐나다인 앤드루를 남편으로 둔 한국인 여성인 화자. 화자인 나와 남편 앤드루가 캐나다라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공간이자, 남편의 고향이기도 한 오샤 와 그리고 교차 편집되듯 구성된 토론토를 오가며 펼쳐지는 버디 무비와도 같은 느낌을 받은 소설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작은 아픔에서 큰 아픔까지 존재는 알 수 없지만 마음속 응어리가 있기 마련이다.
 
주인공의 남편인 앤드루 또한 자신의 동생인 노아를 '자살'이라는 이름의 죽음으로 잃고 만다. 그래서 특히나 '자살'이라는 단어에 혐오감을 느끼며 담배 대사 '위드'라는 신경 안정 수단(?)으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 같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시점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남편인 앤드루의 친구들과 만나고 소통함으로써 그들을 알아가는 구성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 주드, , 남편 앤드루의 큰 형인 세스, 헬렌 등 각자의 추억과 현재를 공유하며 전개되는 이야기에 이를 자연스레 관찰하듯 지켜보며 이야기 속에 담기는 주인공 나의 모습이 정적이며 잔잔한 분위기로 풍겨지는 작품이었다.
 
차 문 뒤 언덕을 오르며
 
낯선 곳이기에 더 호기심이 생기고 왜 메이가 차 문 뒤 언덕의 일출을 보기 위해 집착했는지 그 상황을 알게 되기까지는 책의 내용을 집중하여 곱씹듯 읽어야 함을 느낀다. 저자가 풀어가는 이 소설의 구조는 기존 오이 샤워 같은 장소적 이동의 교차식 구성은 아니나 메이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넘나들 듯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극복하려는 의지, 그리고 좌절이 동시에 보인다.
 
주인공 메이가 왜 인도에 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목적에서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며 소설을 접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엔딩을 접하는 독자들의 마음도 궁금하여 메이의 구슬픈 독백과 같은 자기 암시적 대사, 마무리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해보아도 좋을 인도처럼 신비감 가득한 소설이다. 물론 독자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낯선 요가 용어, 혹은 미지의 나라 인도에서 사용되는 신의 언어 등, 물음표가 붙여지지만 저자의 친절한 해설을 살펴 가며 이야기를 읽어나간다면 메이의 표현하고자 하는 진실이 독자의 마음속에 안착하지 않을지 생각한다.
 
그랑 쥬떼 》
 
발이 참 큰 여자아이 예정이 있었다. 그녀의 친구 '리나'는 촉망받는 발레리나 지망생이었으나 그녀는 오히려 발이 큰 예정이를 부러워했다.
그렇게 예정이는 큰 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고 결국엔 작은 학원의 보조 강시 및 사무 담다 격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또 다른 감춰진 비밀이 많은 아이이다. 그 이야기들이 그랑 쥐 떼 사이사이에 이 단편집의 실마리를 던져주듯 숨겨져 있는 것이 이야기의 묘미 같다. 마치 감춰진 비밀을 들춰내는 듯한 청량감, 그리고 안타까움 등의 만감이 교차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큰 발, 그리고 포인트가 서는 발등-고등을 지닌 예정.
그렇지만 그녀에게 일상은 그저 흐름의 반복처럼 무미건조하다.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도 잔잔하게 무용학원을 일상을 스케치하듯하지만 주인공 예정의 마음 깊은 곳엔 끊임없이 떠오르는 상처의 스크래치 같은 것이 있어 보이는 작품이다. 어린 유치원생들의 옷을 갈아입히며 아팠던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는 그녀. 크게 보면 엄청나고 섬뜩한 일이기에 그녀에겐 작은 것 하나, 하나도 엄청난 트라우마로 느껴진다. 그러나 일상은 또 무미건조회 반복되고, 또 잘못된 것이 당연한 듯 반복되는 사람 살기 힘든 세상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을 갖게 된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그것은 성인이 된 예정에게 현실에 존재하는 악몽, 환영과도 같은 존재로 반복된다. 오히려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이 그녀를 괴롭히던 초등시절 남자 친구들과의 악연마저도 멀어지게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멀어지는 빌미가 되기도 한다. 유일한 친구였던 리나, 결국 그녀와의 이별도 이미 예견되었던 것인지 의도치 않은 우정의 이별이 오히려 이번엔 주인공 예정의 주도하에 마무리된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주인공 예정의 감정과 주변 상황들, 그리고 인물들과의 관계 설정. 조금은 복잡하지만 이 모든 구조가 하나로 연결되고
예정, 그녀는 다시 날아오르던 과거의 추억을 자신의 큰 발, 고를 바라보며 워밍업, 천천히 다시 날갯짓을 하듯 날아오르려 한다.
 
이 소설집의 6편의 이야기는 다른 것 같지만 어찌 보면 하나로 연결된 연작의 느낌, 비슷한 아픔과 상처를 겪거나 바라보는 여성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야기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 그리고 로레나, 다시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이 그랑 쥐 떼의 예정이라는 인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 외 에피소드별 여성 주인공들의 캐릭터. 개성이 활활 타오르는 인물들이라기보다 덤덤하지만 주변과의 관계와 이야기의 흐름 안에 살며 노 자신을 맡기며 스며들듯 흡수되는 인물의 성격을 지닌 캐릭터들로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조금은 무겁기도, 정열적이기도 했던 스토리들의 깊이 감 속에서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었던 소설 읽기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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