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물로 자란다
정강현 지음 / 푸른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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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숙의원이 계셨다. 장애인의 권익을 대변
하기 위해 국회로 입성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아쉽게 마지막
미술 전시회를 마차그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나, 아니 우리가 모르던 고인의
짧은 일화에 짠하다. 그게 우리를 눈물로
자라게하는 작가의 메인 이벤트이다.

동시대의 동년배라는 기자분이 쓰신 에세이
한장, 한장을 넘길때마다 격하게 느껴지는
동질감. 눈물이 많은 기자의 이야기에 꾸밈
없이 공감하나 눈물이 메마른 내게 최근에
펑펑 운 때가 손에 꼽을 듯 하다. 아마 가장 근간의 기억이래봤자, 바보 노무현 그분을 다큐멘터리로
만났을 때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울음이 우리 가족, 우리 부모를
위한 슬픔, 그리고 눈물이 되었어야지 않았나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아내 또한 타인을 아끼는 마음에 절반만
가족을 생각해주면 바랄게 없다는 쓴 약 같은 말을 했기에 미안함 가득에, 이 작품이 가슴에 불을 지른다.

소통이란 단어를 1년간 빅데이터화 시키면
가장 많이 쓴 단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두 다 소통을 부르짖지만 어느새
불통이 자리잡아 불안, 불화, 불신으로 번져
산불처럼 번져 나간다. 저자도 남북관계를
화두로 글을 쓰며 다섯살이 된 자신의
아들을 염려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도 아들을
키우고 있고 70여만의 또래 아이들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어른들의 말장난으로
남북문제가 불통에서 불신으로 전염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끌어올라 진심으로
다가오는 소통이 되길 바란다. 우리만의 미래
가 아닌 자라나는 아이들, 청소년들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진심으로 느끼고 같이
아파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다. 슬픔의 장소,
비극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제3자의
입장에서 그 상황은 안타까움과 절실함이
묻어나며, 그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와
동일한 감정의 정서를 가질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그 사건, 사고의 장본인이 아닌 이상 그 아픔과
고통은 잊혀지기 마련이다. 이것이 아픈 것이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통감수성의 부족이
우리가 지닌 단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월호 사건을 계속 인용하는 것 같지만
어떠한 몰지각한 사람은 ˝그 일을 언제까지
가슴에 담아 둘거냐, 좀 잊자!˝하는 내 관점
에서는 파렴치한 비겁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언행도 있었기도 했다.
고통의 감수성, 공감대 형성 등 그 희노애락
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함께 할 우리의 끈끈한
정이란 정서에도 기대어 보고픈 심정이다.
왜 독일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기억하려 하며 고통을
지속적으로 나누려 하겠는가?

저자는 ‘의사와 율사‘, 즉 고위직 전문직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도 눈물 고인을 담아
감정의 토로를 글로 표현한다. 독자의 입장
에서도 숙연해지는 내용이랄까?
자라나는 아이의 재능도 재주도, 바램도 모른
채 일산 사법 연수원을 지날때마다
˝너는 돌 잔치때 법봉을 잡았으니 저길 가면
좋겠다.˝ 고 무심결에 우스갯 소리마냥 한
적이 있다. 네살 먹은 어린 아이에게 그 무슨
꿈의 감옥에 갇혀 살라고 외치듯 아버지의
바램을 담아 이야기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각자의 개성 과 재능에 맞는 70만개의 별,
그들에게 미래가 있기에 그 꿈을 펼칠 놀이터
만 만들어 놓자.

할배, 할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의미이다.
저자의 할아버지도 아흔 가까이 사시다가
노환으로 인해 30여명의 가족을 남긴채
하늘 나라로 가신 것 같다. 나에게도 십대 시절 90이 넘으신 할아버지를 하늘 나라로 보낸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사랑하고 좋아했던
친할머니를 보냈을 땐-그 당시는-눈물 한방울
나지 않더니 아버지의 몫까지 눈물로 대신한
것인지 뜻모를 북 받치는 울음이 영구차에 실린
육체만이 남은 할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추억은 이야기의 꼬리를 물듯 할아버지
와의 짧지만 굵은 일화를 남긴 나였기에 그 아쉬움과 슬픔이 눈물로 대변되었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지금, 생과 사의 목전에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표현은 못해도 그
마음은 가슴 깊히 와닿는다. 너무도 표현이 절제 된 나이기에 맘의 깊이를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없는 감정들, 얼마나 힘겨우실까, 그리고 얼마나
한스러우시면 눈물이 없으시던 분이 눈물까지
흘리실까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 뿐이다.

왜? 무엇하나 어찌 할 수도 이를 지켜보는 집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감싸주기 힘든 나의 나약함에 스스로 자괴감 가득, 쓰러지고 마는 감정에 날
무너트리고만다. 삶과 죽음 백짓장 한장
차이같지만 그 깊이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영원과도 같은 거리감이 느껴진다.

저자와 할배, 그의 가족들과의 추억 깊은 곳,
감춰 둔 눈물이 메마르지 않을 만큼의 소중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할매와 핼배의
마지막 시간, 멈추지 않는 영원이 되어 모두
하나가 되길 바랄지도 모를 순간일 것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아침에서 정강현 작가는 휴대폰에 코를 묻고 있는 샐러리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물질 문명의 발달로 우리의 정보력은 극대화되고 모든 디지털 혁명이 휴대폰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무수한 어플의 개발과 아이디어들이 기술적 발전은 가능하나 인간의 자아는 오히려 손상시키는 악습의 온상이 되어가는 것이 씁쓸하다. 좀비처럼 거북목이 되어가는 사람들, 괜히 서로 어깨라도 부딪칠라 싶으면 더 험악한 휴대폰 좀비로 변하는 사람들, 그 처방전이
그리울 뿐이다.

개인의 에피소드와 취재를 통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글과 눈물로 승화시킨 이야기들,
그의 글이 단순히 개인이 아닌 사회라는
세상의 이야기를 함께 풀어나가고 있어,
더욱 뭉클하고 그 뭉클함을 공감대느 느끼며
책의 한 문장, 문장을 읽고 사유하며, 나의
입장에서도 풀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개인, 가족, 사회 모두가 협력하며 눈물을
기쁨의 환희로 만드는 순간, 그 눈물의 의미가
진정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눈물의 태생적
결과이자, ‘우리는 눈물로 자란다‘를 완성한
작가 정강현의 삶의 바램과도 일맥상통한
결과를 일궈내리라 본다.

우리가 모두 느끼고 소유해야 할 진정한
눈물의 가치를 깨닫고 음미하며 내 가족과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침 책을 읽던 이 순간 다채로운 어려움과
슬픔이라는 눈물이 파도치듯 찾아왔지만
이 위기 또한 벗어나고 이겨내리라 하는 바램
을 담아 책과의 만남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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