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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윌 슈발브 지음, 전행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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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윌 슈발브는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편집인이다. 그래서 어쩐지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 역시 상당히 유사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췌장암으로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아들 둘이서 '마지막 북클럽'을 만들어 고전, 소설, 판타지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소통한 추억을 일상적으로 들려준다. 게다가 그들은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어머니와 아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대단한 입지를 구축한 특별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가 이토록 멋있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출판 전문가인 저자 윌 슈발브와 난민구호와 여성인권을 위해 전세계를 다닌 그의 어머니 메리 앤, 그들은 살가운 모자사이이자 생의 마지막, 책을 통해 담담하고 진실한 소통을 한다.

최근 유명인들의 독서에세이에 대한 책이 많아져 처음에는 다소 시들한 면도 있었다. 게다가 창피한 일이겠지만 리스트의 99%라고 할만큼 낯선 책이 주였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앞으로의 독서리스트에 많이 추가하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북클럽>은 전적으로 책 이야기만을 다루진 않는다. 일상의 일반적인 것들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세상에 하나뿐인 둘만의 북클럽'은 특별하다. 죽음을 앞두고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헛되지 않게 또 마냥 슬퍼하지 않고 차분히 고요히 주위 사람들과 보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생의 마지막 크나큰 축복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만약 실제로 죽음을 코 앞에 둔다면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엔딩노트> 같은 외국영화들을 보며 그들의 차분한 마지막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줄곧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3년 전 간경화를 진단받으신 후 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매년 가을이면 한차례씩 심각하게 편찮으셨다. 그 무렵인가부터 책 읽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셨다. 내가 추천해드리기도 하고 이따금은 책장에서 골라 읽으시다가 언젠가부턴 나의 책취향이 당신께 맞지 않는다며 직접 공수에 나섰다. 그리고 책 속의 저자와 어머니처럼 나와 책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처럼 주기적이거나 차분하게 일상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책의 결말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생의 마지막까지 책을 통해 주위 사람들 경험들 그리고 진실한 마음을 소통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그들의 대화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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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3-02-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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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지음 / 난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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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을 오해했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 김진송 깎고 쓰다> 나처럼 글을 쓰고 싶은 사람, 혹은 이야기를 짓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 쓰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인 줄 알았다. 책이 굉장한 상상력과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아주 아주 특별한 소재들을 가득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테면 글짓기의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란 나의 첫인상은 처참히 깨지고 말았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움직이는 모든 것은 시간에 빚지고 있다. 이야기의 구조란 시간의 흐름에 맞물려 있는 기계장치와 같은 것이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돌아가는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며 어떤 기능도 수행할 수 없고 구조 자체도 성립하지 않는다. (들어가며)

...

이야기의 시간을 이미지의 시간으로 바꾸는 일, 그게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

이야기를 만드는 건 사람이다. 기계가 아니다.

 

나무작업을 해오는 목수 김진송의 작품과 이야기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이야기와 시간과 기계에 관한 그림과 글이다.

김진송 작가는 글과 미술 모두를 마스터한 전문가이다. 초반부에선 아주 짧고 간결한 이야기들이 이어져 언뜻 단순하다고 여겨졌지만, 읽을수록 생각할수록 점점 더 심오하고 깊숙하게 느껴졌다.

 

현실의 원리를 벗어나는 상상의 공간에서 온갖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의 근원으로부터의 이야기, 옛날 신의 이야기, 현대 뉴스에나 나올 법한 기괴하면서도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 당신의 꿈이 나의 현실? 미래 이야기, 정말 어떤 이야기들은 꿈에서 착안했을 법한 상상 그 자체의 것들이다. 내가 좋았던 부분은 <달에 갈 시간> <개와 의자 이야기>였다. 의자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역사, 자연의 법칙, 사회의 계급,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인생이라는 인간의 승리 이야기.

 

 

삶의 일련의 동작들, 먼저 세밀한 설계를 통해 나무를 깎아 그럴듯한 이미지로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 무생물의 무감각하고 무딘 나무가 살아서 매력적인 생물이 되기까지.

단순히 변하지 않는 목각 조각품이 아니라 분명 그건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였다. 섬세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나무토막이 살아 숨쉬듯 이미지가 되어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까지 작가는 얼만큼의 시간을 들였을까.

 

나무조각은 단순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모두 깨뜨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조각품을 보고 감탄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기도 하다. 작품 하나 하나 모두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한 예술작품이지만, 그럴듯하게 절로 떠오르는 이야기로 인해 살아있는 놀라운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오롯이 조각품만 보았을 때는 '이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가? 아.. 어떤 동물이구나. 섬세하다'하고 말았을 것들에 넘쳐나는 상상력을 보태놓으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이처럼 굉장한 작품들을 그러모은 <이야기를 만드는 기계>는 그림책으로서는 무척 훌륭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이야기책에 이미 길들여진 나에게는 상당히 익숙지 않은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궁금하다.

이야기가 먼저인가, 작품이 먼저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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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서재]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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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커트 보네커트처럼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추라. 이야기를 들려주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거기에 더 보탠다. 더 자주 책을 읽어라. 더 자주 웃어라. 더 자주 사랑하라. 삶의 정수를 맛보고 의미로 충만한 삶을 살아라.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난 뒤 전보다 웃는 일이 자꾸 더 많아져서 행복의 부피도 그만큼 늘었으면 좋겠다. (서문)

 

"책 읽기란 자신을 넘어서서 다른 세계로 가는 행위이다.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나아간다"

 

'삶을 쉬어가게 하는 책읽기'란 부제를 달고 있는 <마흔의 서재>. 책을 읽는 시간 내내 마음이 참으로 고요했다. 책을 덮으며 비로소 인간의 지식을 뛰어넘는 생각의 발전은 양질의 독서에서 나오는 구나 다시금 깨쳤다. 그렇다. 깨친 것이다. 어쩌면 모두가 이미 알지만 서툰 핑계로 실천하지 못한 사실을 저자는 일깨운다.

 

'시인, 에세이스트, 문장노동자'라는 직업을 가진 작가는 왠지 더 특별해 보였다.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고 읽을 수 없는 것들마저 읽으려고 드는 사람이자, 드물게도 읽고 쓰는 일에 모든 것을 건 사람. 어쩌면 모든 것을 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라는 인간은 굉장히 확신하는 어떤 것에도 나의 모든 것을 걸겠노라 말할 용기가 없다.

 

 

'나는 날마다 한 권의 책 읽기를 실천하려고 애쓴다. 사람들은 자주 묻는다.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나요? 책과 친해지고,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책에 몰입한다. 몸과 마음을 이오나하고 책에 흠뻑 빠져든다. 몰입을 통해서 책과 하나가 되면 마치 무릉도원에 든 듯 행복해진다. 둘째, 책 읽는 즐거움 그 자체에 빠져든다. 책 읽기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그걸 지속하기 어렵다. 셋째,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들을 꼼꼼하게 고르고 그것들을 사들인다. 책들을 고르는 과정에서 이미 책 읽기는 시작된다. 넷째, 읽은 책들을 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읽은 것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억하는 것이 불가결한 것도 아니다. 기억은 상상력을 한정하지만, 망각은 무한상상력을 텃밭을 일구는 쟁기이다. 망각은 풍요화로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다. 다섯째,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좋아하는 저자의 책을 찾아 읽으면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

 

보르헤스는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상상했지만, 나는 우주를 한 권의 책으로 상상한다. 우주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읽어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읽어갈 거대한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책이라는 낙타를 타고 우주라는 이름의 사막을 타박타박 횡단하는 중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인간의 불가피한 욕망이야말로 문명의 진화를 추동해온 힘이다. (p. 132)'

 

출판시장에 이미 유수한 작가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독서 일기류의 책은 많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수세기 전부터 오늘 바로 지금까지도 셀 수 없이 수많은 책이 있기에 그 책무덤에서 읽어야 하는 양서는 어느 것인지 어느 책이 독자의 생각에 변화의 움직임을 가져다 줄지 따위를 일러 준다. 그런 책에는 웬만한 독자들 또한 한 번쯤 제목을 들어봤음직한 유명 도서가 많다.

하지만 <마흔의 서재>는 더 명확하다. 양서만 해도 3만 권이라는 저자가 꼽는 책 중의 책을 꼭꼭 하지만 질서정연하게 잘 눌러 담고 있다.

 

 

나는 아직 마흔의 시간을 살지 않았지만 아득히 머나먼 시간 같이 느껴지는 그 때가 현실이 될 때 후회없는 책 읽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꿈 '서재'. 내 집을 갖고 나의 공간이 생기면 가장 꾸미고 싶은 공간 1위. 물론 지금도 그냥 책장은 있지만 '서재'라고 부를만한 공간이 그립다. 서재, 수많은 장서로부터 나오는 세기를 넘나드는 스승으로부터 저자의 글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 또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수많은 양서를 언제쯤이면 웬만하게 읽고 쌓을 수 있을까.

 

수졸재(守拙齋) 지킬수 졸할졸 재계할재.

고즈넉한 시골의 한가롭고도 청빈한 작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살림은 단순하게, 생각은 고매하게! 적게 소유하는 삶을 즐겨라. 적은 것이 많은 것이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 진짜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p. 59)'

 

'마흔'과 '서재'로 이루어진 한 채의 소슬한 집이라는 책 <마흔의 서재>.

마음이 조금 평안해 졌고 책읽기에 대한 욕망이 한층 강화되었다. 행복의 부피가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어쩐지 조금 더 지혜로워진 느낌이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마흔이 되었을 때 책장에서 다시금 꼭 빼들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그 때가 올 때까지 나는 양서를 부지런히 읽겠다.

 

'살아 있음을 기뻐하라

설레는 것을 갈망하라

삶을 받아들이고 껴안고 화해하라

책이 쌓여 남은 인생의 길이 된다

즐거운 여정을 위해

매일 아침 서재 앞에 서라'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첫 번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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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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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멜버른, 이명세의 타일랜드,이병률의 산타 클로스 빌리지, 백영옥의 홍콩, 김훈의 미크로네시아, 박칼린의 뉴 칼레도니아, 박찬일의 큐슈, 장기하의 런던과 리버풀, 신경숙의 맨해튼, 이적의 퀘백까지.

 

특별한 예술가들의 여행 기록 혹은 여행 에세이라 두 말 할 것도 없이 특별하다!

게다가 10번의 여행에 동행한 이병률 작가의 예술적인 사진까지 더해지다니, 세상에 두 번 나오기 힘든 희귀한 책이 아닐까!

 

소설이나 방송, 음악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그들의 여행 중의 일상, 무척 사랑하는 와인에 흠뻑 취한 작가 은희경, 낮에는 온갖 맥주를 마시고 밤에는 음악을 찾아 다니는 뮤지션 장기하, 바다와 자연에 더 없는 호기심을 보이는 소설가 김훈,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를 즐겁게 유영하는 음악감독 박칼린. 그들의 아름다운 여행기가 쳇바퀴 돌 듯 지루하게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10개의 여행 에세이 중에서 제일 가보고 싶게 아름다웠던 곳은 이병률 시인의 핀란드 산타 클로스 빌리지. 그리고 가장 공감했던 에세이는 신경숙 작가의 맨해튼이다. 1년 여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드나들며 문지기와 눈도장 찍고 주변 상점과 익숙해질 알맞은 양의 시간. 그 곳을 떠나와 다시 그 시간을 그리워하던 일, 그리고 꿈만 같이 그 곳 그 시간을 다시 방문하는 것.

 

그녀의 글을 읽노라니 문득 나의 그 곳이 떠올랐다. 내가 1년 여 지내던 그곳 봄이 멀리에서 늦게야 도착하던 Fargo를 다시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맨해튼 같은 관광지라면야 언제고 한 번은 다시 갈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가 있겠지만 워낙 시골에 구경거리도 당시 사람들도 거의 남지 않은 그 곳은 내 평생 다시 가지 못할 꿈의 시간이 되어버렸다. 슬프다.

 

 

 

 

<세계인의 정류장, ‘이방인을 부탁해’>

신경숙에게 여행은 친숙한 나와 낯선 세계가 합해져서 넓어지는 일.

나는 여전히 낯선 곳에 가면 그곳이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장소를 옮겨다니며 글을 쓰는 일, 카페 같은 곳에서 글을 쓰는 건 내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내가 문을 닫고 들어 앉으면 완벽히 혼자가 되지만 문만 열고 나서면 세계의 중심과 통하는 도시 뉴욕에 내 책상을 하나 놓아두고 싶어졌다.

뉴욕은 어느새 나에게 그런 곳이 되어 있었다. (p. 319)

 

달리는 작가 중의 대표 건강한 은희경 작가가 찾은 호주 와이너리와 한밤 중 별들도 숨 죽이며 고요히 지켜보는 펭귄 가족의 귀가. <애인 만나러 호주에 갔지요, 그의 이름은 와인이고요. 흠뻑 취했답니다. 저 풍경 때문에>

 

‘와인의 맛이 그렇듯 맛의 최후 조건은 역시 시간과의 접점에 있을까. (p. 44)’

‘나는 여행에서 그런 순간들을 가장 좋아한다. 내가 그렸던 이방의 세계가 멋지게 펼쳐지는 것보다,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저녁 바람이 불현듯 옷 속을 파고드는 것. (p. 43)’‘여행의 시간 속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잊고 있었던 옛 사람들과 돌아가서 만나게 될 그리운 사람들, 그리고 나라는 사람까지. (p. 51)’

 

<오, 12월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병률에게 여행은 바람, ‘지금’이라는 애인을 두고 슬쩍 바람피우기.

내가 어딘가로 떠나가서 성냥을 한 통씩 들고 오는 이유도 그것과 닮았다. 성냥은 속수무책일 때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p. 93)

 

추운 나라에서 추운 시간을 살아보고픈 소망이 있었다. 그곳이 북극이었으면 했다. 오직 추위만을 느끼면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서서히 얼리는 것.내 지느러미는 그 방향을 원하고 있었다. (p. 111)

 

 

 

 

<홍콩에서 열아홉 살의 꿈을 맛보다>

홍콩은 한때 내게 어둠의 도시였다. 크리스토퍼 도일의 흔들리는 카메라처럼 불안하게 가라앉는 도시였고, 그런 정서는 내가 가진 균열들과 정확히 맞아떨어져 언제나 나를 흔들었다.

아마도 나는 막연히 늘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했던 것 같다. 이민자들이 우글대는 ‘청킹맨션’의 어두운 복도를 걷고, 한밤의 더위에 웃통을 벗어제낀 시끄러운 목소리의 아저씨들이 후다닥 말아주는 국수를 먹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것이 겉멋이든 치기든 한때 내 감정의 일부를 꾸리고 있던 실체이므로 나는 이 도시와 어느 정도 감정적인 형제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 129-130)

 

워낙 유명한 관광지 맨해튼, 멜버른,홍콩, 타일랜드, 큐슈, 리버풀 또한 예술인들의 눈으로 보아 색달랐지만, 더 흥미로운 곳은 역시 생소한 여행지였다.

소설가 김훈은 원체 자연의 원래보다 더 아름답게 묘사하는 유려한 문체로 소문이 나 있지만, 그의 미크로네시아는 천해의 자연환경과 맞닿아 부럽기만 했다.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가, 미크로네시아서 깨닫다>

김훈에게 여행은 세계의 내용과 표정을 관찰하는 노동.

모든 것들이 느리고 진행되고 있다. 거기서는 새도 느리게 난다. (p. 161)

파브르는 <식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나에게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면서도 이 세상 꽃들의 색깔과 향기의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파브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죽었다. (p. 168)


박칼린에게 여행은 물이고, 시원한 생수고, 수도꼭지.

난 어느 날 멋진 뉴칼레도니아 남자를 만났고 그의 멋진 등을 보며 상상의 세계를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왔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가 그 아름다운 곳으로부터 멀리 있다는 게. (p. 222)

 

 

 

 

<나 돌아가면 얼마나 이곳을 그리워할까>

장기하에게 여행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타게 된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풍경이 문득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

난생처음 본 그 그림은 나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추억은 언제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가지고 있다. 좋은 기억도 추억이 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슬픔을 머금기 마련이고, 안 좋은 기억도 추억이 되면 세월의 길이만큼 아름다움을 덧입기 마련인 것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가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부드럽게 솟아올랐다. (p. 277)

 

여행 넷째 날에 쓴 일기를 펴보니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런던에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자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동시에, 아, 돌아가면 이 도시를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생각한다.” 과연, 참 그립다. (p. 287)

 

책의 제목 <안녕 다정한 사람>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일까. 여행지의 현지인, 두고 온 그리운 사람, 혹은 이방의 나일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나는 늘 새로우니까. 그래서 그러므로 사람들은 언제나 떠나는 것을 꿈꾼다. 물론 돌아온다는 분명한 전제 하에. 우리는 항상 다른 어딘가를 꿈꾸고 늘 떠나고 싶어하는 간질간질한 가슴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

 

언젠가 나도 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오늘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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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그르니에 서한집 1932~1960
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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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겐 정말이지 꼭 한 가지 야심이 있을 뿐입니다. 인간이 되고 싶다는 것이지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하게 말입니다. (p. 26 카뮈)

 

열정을 다하여 산다고 하셨던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저를 추동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자신의 생각이나 자신의 삶을 통제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목표, 하나의 극단적인 경우일 뿐입니다. 니체는 거기서 광기를 만납니다. (p. 98 카뮈)

 

편지 혹은 전보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는 것. 때로는 엇갈리기도 하고 긴 시간 답장을 기다린다는 것.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하물며 요즘은 몇 시에 어디서 만나기로 하고서도 오는 동안 어디쯤인지 몇 시에 도착하는지 또 혼잡한 곳에서는 어디 있는지 쉴 새 없이 연락한다. 가끔은 그런 것이 신물 날 때도 있다. 어릴 적만 해도 친한 친구와 주고 받았던 편지나 쪽지가 수십 통 어쩌면 수백 통일 수도 있다. 손글씨가 그립다. 그리고 불과 몇 십 년 전의 몇 일 혹은 몇 주 간 답장을 기다리는 일상이 그리워 질 때도 있는 것이다.

각설하고 모든 것을 거리낌없이 말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음이, 그들 스승과 제자 혹은 문우 간의 우정 깊은 편지로의 대화가 그저 부럽다.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235통에 이른다. 카뮈가 112, 그르니에가 123통의 편지를 써 보냈다. (p. 13 책 머리에)

 

귀중한 친구이신 그르니에 선생님, 이제 와서 새삼스레 제가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은 자신을 키워주고 이끌어주신 분들에게는 감사의 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저 계속 그 모습 그대로 계셔달라고 부탁할 뿐이지요. 부디 저에 대한 선생님의 우정을 간직해주십시오. 그것은 제 삶과 제 노력을 위하여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로서는 불안스러운 저를, 그리고 친구로서는 낙관적인 저를 믿어주십시오. (p. 285 카뮈)

 

내가 이 책을 궁금해 한 건 물론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란 작품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옮긴이(번역가) 김화영 교수의 덕분이다. (아쉽게도 장 그르니에의 책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ㅜㅜ) 우리나라에서 카뮈의 번역도서를 접해본 독자라면 알 것이다. 카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우리나라에서 알베르 카뮈란 작가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1위를 선뜻 내어줄 김화영 교수.

뭇 독자들은 그의 글을 읽노라면 프랑스 남부지역 특유의 프로방스의 빛과 풍경이 느껴진다고 한다. ‘태양과 지중해의 작가카뮈 역시 어느 장소에 머물든 그리워하던 곳. 따뜻한 햇살과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지 없이 화창하여 우울증을 앓던 이도 며칠이면 호전될 것만 같은 행복한 날씨. 문학동네 카페에서 <너무 짧았던 여름의 빛> <목신을 찾아서>를 연재하며 카뮈가 머물던 장소를 비롯한 프랑스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도 한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펴 들고 처음 마주하는 글 또한 옮긴이 서문 ‘<카뮈-그르니에 서한집> 머리에 부쳐. 책을 출간하며 또다시 프로방스를 방문하여 서한집에 나오는 마을을 찾기도 하고 카뮈의 딸 카트린 카뮈를 만난 시간이 쓰여있다.

 

 

당신이 내게 보여주는 우정에서 큰 행복을 느껴요. 당신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맛보았던 감탄의 느낌이 날로 커져가는 것에 더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 자신에 대한 깊은 존경의 마음이 합해집니다. 전에는 당신이 유아독존의 바리새인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했지요!

그렇지만 당신은 빠른 속도로 젊은이 특유의 오만에서 벗어났고, 그리하여 진정한 위대함에 도달했어요. 당신은 이미 위대한 재능을 타고났었고 또 엄청난 장애물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그러한 재능과 그 장애물들에 상응하는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그런 재능을 타고나서 그런 장애물들을 만난 경우는 더욱 드문 일입니다. (p. 270 그르니에)

 

선생님께서는 솔직히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아주 불안한 심정으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 저의 삶에 순수한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p. 46 카뮈)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을 읽으며 먼저 든 생각은 두서 없다는 것이다. 둘만 아는 이야기를 엿본다는 것, 게다가 흥미진진 로맨스나 고백도 아닌 그저 스승과 제자 혹은 문우(文友) 간의 사소한 편지를 엿본다는 것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비단 당사자가 그르니에-카뮈라고 할지라도.

그러나 카뮈-그르니에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흥미롭지 않은 사소한 것들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나 보다. 글쓰기에 관한 근원적 고민 외에도 읽는 책, 건강에 관한 이야기(카뮈의 폐결핵), 가족사, , 불안정한 공간, 공산당 입당 권유, 식량요청, 유럽, 남미 여행, 철학교사, 강연, 직업적 연극 배우, 회곡 작업, 신문기자 등 일상을 주고 받으며 1932~1960년 무려 28년 간 주고 받은 편지들이다. 전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80여 년 전 카뮈-그르니에의 편지, 엽서 때로는 전보를 읽는 다는 것은 어쩐지 그들과 가까워지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작품이 궁금해 지기도 한다.

 

 

 

게다가 저는 요즈음 아주 이상한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무감각이라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리고 이 병이 오래가는 것이라면 그건 지옥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얌전한 회의주의자이므로 치유와 은혜와 맑은 이슬을 기다리면서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 알렉상드르 뒤마를 읽고 있습니다. (p. 332 카뮈)

 

제가 생각하는 바를 선생님께 제대로 말씀드리기가 어렵군요. 그러나 적어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이 광란 속에서 제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을 붙잡고 있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우선,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너무나 많은 가치들이 죽어가고 있는 지금, 최소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가치들만이라도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p. 61-62 카뮈)

 

카뮈 17세에 처음 만난 그들은 처음에는 스승과 제자로,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편지는 마음이 잘 통하는 벗으로서 때로는 서로의 조언자로서 마음을 나눈다. 서로에게 카뮈의 저서 <안과 겉>, <반항하는 인간>, 그리고 그르니에의 <모래톱>을 헌정했다.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굉장히 사랑했다. 카뮈는 심지어 그르니에의 <섬>을 서른번도 넘게 읽었다!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훌륭한 작품을 생산한 데는 당시 척박한 환경이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40년대 전쟁(2차 세계대전), 식량조차 부족한 그 광란의 틈바구니에서 거의 항상 재미없는 따분한 일상 속 폐결핵까지 앓은 카뮈는 많은 시간 회복을 위해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글에 관한 신념과 결단력으로 이미 출간한 작품을 몇 년 간 고치며 작품의 완성에 공을 들였다.

 

 

 

우리는 항상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나와는 무관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생각도, 당신의 고독도. 유람스럽게도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이기적이었고 몰이해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 갈라지는 것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한계에 또다른 한계들을 덧보태기 때문이고, 자기 속에 웅크린 채 편협해져서 남이 뚫고 들어올 자리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영에 찬 자기만족으로 보여서도 안 되겠지만, 우리는 자연스레 자신을 내맡겨놓을 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p. 144 그르니에)

 

이처럼 고전이 훌륭한 것은 당시 환경에서 기여된 것이 아닐까. 현대는 할 것,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TV며 컴퓨터며 스마트폰까지. 당최 인간이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저 멍하니 받아들일 뿐이다. 혹자는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제발 생각할 시간을 좀 가지라며 생각 없이 빠르기만 한 현대인을 비판했다. 생각. 나 자신에 대해, 나의 시간들에 대해, 미래에 대해, 혹은 어느 하나에 대한 곰곰한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오늘 단 한 시간만이라도 오롯이 생각하였는가?

 

제겐 빵만큼이나 고독이 필요했습니다. 아니, 차라리 고독은 제 개인적인 작업의 길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방책이었습니다. 그 외의 다른 방책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더 이상 제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미신일지 모르지만 그 이야기는 안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p. 352 카뮈)

 

나는 작년에 노자의 책들을 읽었어요. 도가道家의 세계는 대단한 것입니다. <선택>의 후편-‘무위無爲’-을 쓸 때는 거기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동방사상은 유럽의 깊고 비극적인 허무주의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당신은 그걸 밀도 있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의 말을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피츠제럴드가 그랬듯이 고독 속에서 낭비하는 한순간이랄까요! (p. 126 그르니에)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할 뿐 그 어느 것 하나 보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그 시절에 대하여 변함없는 향수를 가지네 될 것이면서도-스승은 흐뭇해한다.”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의 서문 (p. 445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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