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 -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
김범진 지음, 김용철 사진 / 갤리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모든 존재는 활짝 피고 싶다. 활짝 피어나고 싶다. 이 우주에 탄생한 모든 존재의 바람, 그것은 활짝 피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다. 우주의 작은 먼지, , 나비, 아기… . 나무의 새싹은 활짝 피워 꽃이 되고 또 빛이 된다. 그렇듯 모든 존재는 피어나고자 한다. (p. 355 에필로그)

 

섬세함을 향한 여정이었던 지난 몇 년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그 전 30여 년간 있었던 변화의 총량보다 그 후 몇 년간 일어난 변화가 더 크고 심층적이었기 때문이다. 민감함, 예민함을 섬세함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더 건강해졌고, 창의적이 되었고, 생산적이 되었다. 무엇보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다. (p. 12 프롤로그)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은 2008년 <섬세>의 개정판이다. 개정판이 나왔다는 책은 왠지 시간을 들여 읽어보고 싶다는 믿음부터 간다. 이 책 <우리가 섬세해졌을 때 알게 되는 것들>은 시종일관 섬세하다.

아픔을 겪은 사람에게는 위로를, 지친 사람에게는 용기를, 깨닫고 싶은 사람에게는 영감을, 그리고 세상의 다수를 차지할 그냥 머릿 속이 복잡한 사람에게는 고요한 생각의 시간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섬세(纖細)는 섬()과 세()로 이루어졌다. ()은 가늘다, 부드럽다, 가는 베, 고운 비단의 뜻을 가진 글자다. ... 세() 역시 가늘다, 자세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섬세(纖細)는 작고 가늚, 고운 비단처럼 날줄과 씨줄로 연결되어 있음, 비단처럼 부드러움, 결이 있음을 의미한다. (p. 13 프롤로그)

 

 

책을 펼쳐들기 전부터 '섬세'라는 그 단어 한 마디에 매료된 나는 이토록 섬세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흡족함에 몇 번이나 휘리릭 뒤적이며 엿보았는지 모르겠다.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철학 에세이'라는 부제를 되내며 다시 한 번 '철학 에세이'란 말에 은근한 감동을 받았다. '저자의 다채로운 이력 덕분에 이 책은 인문서와 자기계발, 경제경영서가 한데 만나는 지점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는 한겨레의 언론평을 읽고 열 번 쯤 공감했다. 인문서와 자기계발, 경제경영서에 덧붙여 명상서랄 수 까지 있겠다. 책을 읽는 내내 나 자신이 명상하는 고고한 수행자 그 언저리쯤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저자가 377페이지에 이르는 내내 말하고 싶은 단 한 문장 '우리는 섬세해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홀려 마치 저자의 고요한 내면의식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책을 넘기며 푸른 숲 속 나무와 하늘의 구름, 벌목공의 땀을 생각한다고 한다. 밥 한 숟가락에 담긴 대지의 포근함과 농부의 정성을 느낀다. 불교에서 깨달은 자는 연()하여 일어나는 현상, 즉 연기(緣起)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p. 120)

 

수행의 핵심은 자아를 투명하게 해 진실을 보는 데 있고, 세계평화의 핵심은 국경을 넘어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다. 인류의 길과 한 인간이 걷는 길이 다르지 않다. 중중무진(重重無盡), 한 송이 꽃에 핀 우주. (p. 373 각주 61)

 

 

태허(太虛)

()

()

의식(Consciousness)

정신(Spirit)

브라만(Brahman)

존재(Being)

전체자(the All, the One) (p. 133-134)

 

 

성장 지상주의를 내세우며 무한경쟁으로 치닫던 지난 몇 십 년의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 인간 마저도 한없이 거칠어지고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점차 무심해져 갔다. 인간은 더 나은 존재를 향해 빛나는 계단을 오르고 있을까? 아니면 신의 세계에서 쫓겨나 깊고 어두운 벼랑으로 추락하고 있는 걸까? 혹은 무한한 평행선을 그리며 춤추고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p. 290) 질문에 그 누구도 100% 확신하는 정답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의 침체로 포화기에 놓인 현재 우리 인간 스스로는 깨어있는 소수의 몇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착한 마음, 섬세, 근원적인 것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를테면 착한 소비, 동물 보호, 환경 보호 같은 나 한 사람이 아닌 전인류에게 도움되는 것들이다. 

착한 소비에는 다른 존재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밑바탕에 있다.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을 착취하지 않고 그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다른 인간에 대한 배려다. 동물들이 오직 고기를 생산하는 대상으로 전락해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지금이 순간의 나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위해서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환경에 대한 배려로 이어진다. (p. 88-89)

 

이처럼 단기간에는 폭발적인 힘을 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존재를 망치는 마음의 에너지가 있다. ‘성급한 마음혹은 탐욕’ ‘집착’ ‘분노이런 것들이다. …

반면 단기간에 큰 힘을 내지는 못하지만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들이 있다. 마음에서는 여유, 배려, 사랑, 관용의 마음이고 물질에서는 파도, 태양, 바람과 같은 청정 에너지다. (p. 158)

 

책은 이처럼 보편적이고 어느 정도 추상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와중에 우리처럼 하나라도 더 깨치고자 하는 독자들을 충족시켜 줄 구체적이고 훌륭한 예시도 해준다. 유명 한국 작가들을 비롯해 당대 내로라하는 세계 유수의 인물들의 섬세하면서도 어쩌면 민감하달 수 있는 이야기를 잘 버무려 놓았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작가 김훈은 꽃은 피었다로 썼다가 고치고, 또 고치기를 거듭했다고 한다. ‘라는 작은 차이를 놓고 고민한 것이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대표작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에 대해 만약 가 빠져 흙 속에 바람 속에라고 했다면 80점짜리 글이 되어버릴 뻔했다고 말한다. 좋음과 위대함은 작은 차이에 불과하다. 물은 100°C에서 끓는다. 99°C와는 오직 1°C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p. 113)

 

괴테, 톨스토이, 헤밍웨이, 도스토예프스키, 링컨, 처칠, 니체, 베토벤… .

이들은 모두 미국 정신질환자협회에서 심각한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큰 업적을 남긴 이들을 기려 만든 액자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 예술가들은 민감하다. 너무나 민감하기에 마음이 작은 것에도 흔들리고 그로 인해 고통받고 상처 입기 쉽다. (p. 200-201)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 P&G의 앨런 래플리 회장, 이 세 회장 모두 명상을 수행하고 있다. 그들의 전략을 보면 선 수행자의 방 풍경이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적인 디자인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단순함과 비움 그리고 연결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아이팟을 개발할 때 그가 디자이너에게 주문한 것은 단순함이었다. 시각적 단순함은 물론, 최종 목표까지 세 번의 버튼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적 단순함이었다. 단순함과 비움, 그리고 연결은 하나의 곶감대에 꽂혀 있는 곶감이다. (p. 61-62)

 

 

매 주제마다 도입부가 특히 좋다고 생각했고 끝으로 치달을수록 맺음이 특히 좋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서도 강조했듯 저자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탁월한 것 같다. '섬세'로부터 시작해 '작은 것, 연결됨, 경계초월, 통섭, 영성의 추구, 이타적 행동, 나눔, 배려, integrity, 성실, 언행일치, 배꼽, 미적 거리'라는 모든 주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라는 말이 참 좋다. 숨결, 살결, 물결, 바람결, 나뭇결… . 결을 느낀다는 것은 맑고 청명한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음이다. (p. 25)

길을 찾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바라보면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섬세해진다면 알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햇빛, 바람, 파도, 새 소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음을… .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을 느껴보라고. (p. 351)

 

 

자신이 지구에 머무는 동안 이 거친 세상이 섬세하게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며 지금은 그와 관련된 글들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삶의 궤적들, 정치, 철학과 수행, 경영의 점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세상과 공명하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앞날개)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며 그가 의도한대로 거친 세상이 섬세하게 되는 데 조금씩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같은 생각을 하는 많은 독자들이 함께 한다면 조금은 더 빨리 섬세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길고 어둔 밤이 지나고 이윽고 동쪽 산 위로 붉은 기운이 번지기 시작한다. 곧 맑고 밝은 햇살이온 천지를 환하게 비출 것이다. 한 인간 그리고 인류가 어쩌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끝에 아침 해가 기다리고 있다. ‘밝은 아침 햇살(朝撤)’, 인류의 성숙한 마음이 사회를 환하게 비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인류가 철이 들 시간, 인류의 조철이 다가오고 있다. (p. 309)

 

흔들리지 않고 떨어지는 빗방울은 없다.

하늘에서 땅을 향해 자를 대듯 떨어지는 눈은 없다.

흔들림 없는, 오차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세상이 완전하지 않음을 알아가는 것이다. 현자란 불완전하고 더러운 세상, 그래도 그 속에 희망을 보는 사람이다. 성인(聖人)이란 그 희망을 자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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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insula 2016-02-1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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