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는 죽지 않는다
최승호 지음 / 도요새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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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돼지

새끼 여덟 마리를 낳아 젖을 물리던 어미돼지가 하루는 돌
연 미친 듯이 새끼들을 다 물어 죽여버렸다. 이 이해할 수 없
는 돼지우리 안의 대사건에 주인은 처음엔 슬퍼하다가 나중
에는 화가 났다. 돼지 여덟 마리면 돈이 얼만데. 그 돈을 다
거름으로 만들어버렸으니 화가 날 수밖에. 그렇다고 해서 또
어미돼지를 잡을 것까지는 없는 일이었는데, 주인은 손수 돼지
목을 땄다. 화가 크게 난 사람은 거의 미치광이와 다름없다.
그 광기를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야 발견되었지만 어미돼지
의 어금니엔 굵은 대못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말 못하는 짐
승이었으니 고통과 안타까움이 더 심했을 것이다. 그뒤로 동
네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망가진 못이나 바늘 같은 쇠
붙이를 넣지 않기로 반상회에서 약속했다고 하는데, 주인은
불쌍한 돼지머리를 안고 슬피울다가, 이번엔 목을 딸 수도
없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제가 책에서 이 詩를 처음 만났을 때 마지막 부분을 읽고 온몸에 소름 같은 게 돋는 듯 했습니다. 드러난 그대로 이 詩에서 생태 문제를 읽어 낼 수도 있겠고요. 제게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건 '어리석음'이라는 낱말 때문입니다. '어리석음'이란 말이 '상처'라는 말로 다가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말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에게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이 우주에서 인연 맺고 관계하는 것들에 나도 모르게 저질러왔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선집을 만나면 '사람'이라 불리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부끄러워지고 낮아져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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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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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싹, 결국에 네가 이루고야 말았던 그 희망은 어땠니?

생명이 위험한 상황까지 기꺼이 감내한 것이었지만 놓아버리지 않고 이루었으니, 쓰고 시면서도 달콤한 맛이 아니었을까? 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향기로운 꽃을 피워내는 잎사귀라는 네 이름 ‘잎싹’에서 정말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단다. 그런데 내 희망은 싹을 내기는커녕 제대로 물을 줘 볼 생각을 마지막 해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는 것 같구나. 그렇다고 내 희망이 없었냐고,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거든. 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초라한 꿈이 되어 버렸을까…….

사실 네가 아니, 너 같은 닭이 양계장을, 마당을 나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로 이렇게 어른을 위한 동화로까지 쓰여졌는지 시시하기도 하고 따분할 것 같기도 했단다. 나도 동화를 좋아하는 어른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동화가 이런저런 세상 일 다 겪어 본 어른들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지.

너는 알을 얻기 위해 기르는 수많은 난용종 암탉들 중 한 마리에 불과했지만, 감히 그 어떤 암탉도 생각지 못한,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겠다는 소망을 품고 양계장의 철망우리를 벗어나겠다는 ‘반란’을 꿈꾸면서부터 이 세상에 하나 뿐인 ‘잎싹’이 되었지.

난 이 세상에 하나 뿐인 ‘나’라는 걸 무엇으로 증명해 보일까? 겨우 모습이 다르다는 것으로?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비슷한 것으로 고민하고, 아웅다웅거리고……, 그럴 뿐인데. 정말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은 이것이 책을 읽는 순간에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강하게 느껴졌단다.

바람과 햇빛을 한껏 받아들이고, 떨어진 뒤에는 썩어서 거름이 되는 잎사귀, 너는 그 잎사귀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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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내게로 왔다 1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시가 내게로 왔다 1
김용택 지음 / 마음산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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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음반이든 엮음집이라든지 컴필레이션과 같은 것들을 썩 달겨하지 않지만 믿을만한 시인이 사랑, 감동, 희구, 전율한 시들이라는데...시인의 임실 고향집 앞 느티나무 그늘에서 들었던 그의 시에 대한 사랑이 이 시집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다. 순간순간 느낌에 따라 안겨오는 시가 다르다. 지니고 다니면서 어디든 펴서 몇장 뒤적이다 보면 푹 젖어드는 시를 만나게 된다.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이용악,'전라도 가시내'중에서).

한국학자인 김열규 선생이 학창시절에 듣고 젊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는, 그 감동과 설레임이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자신을 가다듬은 마음의 거울이 되었다는 시이다. 김용택 시인도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철커덩 철커덩 압록강 다리를 건너는 기찻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시가 점점 덜 읽힌다고는 하나 시 한 편을 두고 시간,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음은 물론, 내 안팎을 들여다 보는 거울도 된다.

'한가하게 시나 읽고 있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시인의 치열한 영혼과 마주하는데는 마음 단단히 용기를 내야 하고, 순수한 열정과 삶에 대한 지독하리만큼의 애정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그러한 님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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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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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뜬 마음에 맑은 계곡물을 두 손 가득 퍼담았지만 금새 사라져버려 '내 물 어디갔냐'고 떼쓰고 싶은 심정이랄까... 어른이 되어 동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냥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발은 현실에 단단히 묶여 있고, 목만 빼꼼히 내밀어 동심을 한 번 뒤집어 써 보는 정도. 더군다나 이 책에는 어린 영혼의 외로움과 그 언저리를 맴도는 그림자가 가슴 아프게 다가와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시들도 있다.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 어머님께 드린다 /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 내일밤엔 /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여름밤')

눈이 내린다 / 배가 고프다 / 할머니 집은 아직 멀었다 / 동생한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었다 / 동생이 빵은 먹고 / 붕어는 어항에 키우자고 해서 / 그러자고 했다 (-'붕어빵')

별이 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와 동생을 사랑하는 가난한 형제의 모습이 애련하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을 거두어 갈 사랑스러운 시들이 더 많은 시집이다.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 도둑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 나는 도둑질을 가르친 적이 없다 ('도둑고양이')

매일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과도)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나야 할 마음을 이 시들 속에서 찾아봄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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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이야기 - 전 세계를 울린 감동 실화소설
신도 가네토 지음, 박순분 옮김, 이관수 그림 / 책이있는마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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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나은 개 이야기'라니, '한 마리 개의 거짓 없는 일생'이라니 같은 문구들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다. 생명 가지고 있는 것이야 개나 사람이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개에 쏟는 관심의 언저리에도 머물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삶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14살 지원이가 참 감동받은 책이라며 내게 권해준 것이어서 읽어는 보았으나 마음 속 울림은 없었다.

아이들은 으레 개를 좋아하고 키우고 싶어하는데, 그 사랑이란게 주면 꼭 받는 것이라는 절대적인 생각을 가지기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개에게는 사랑을 주면 주인을 위해 충성하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른들이 더 새겨 두었으면 한다. 아키다견 하치가 보여준 모습은 아름답긴 하지만 사람과 같이 대고 잴 것은 아닌 것 같다.

정호승님이 쓴 동시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어머니는 밥을 잡수실 때마다 / 개 먹을 밥을 위해 / 조금씩 밥을 남기십니다 / 나도 오늘 아침부터 한 숟가락씩 / 밥을 덜어놓고 먹습니다 / 배가 더 부릅니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관심이 내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으로 키워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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