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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들뜬 마음에 맑은 계곡물을 두 손 가득 퍼담았지만 금새 사라져버려 '내 물 어디갔냐'고 떼쓰고 싶은 심정이랄까... 어른이 되어 동시를 읽는다는 것은 마냥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발은 현실에 단단히 묶여 있고, 목만 빼꼼히 내밀어 동심을 한 번 뒤집어 써 보는 정도. 더군다나 이 책에는 어린 영혼의 외로움과 그 언저리를 맴도는 그림자가 가슴 아프게 다가와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시들도 있다.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 어머님께 드린다 /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 잡수신다 / 내일밤엔 /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여름밤')
눈이 내린다 / 배가 고프다 / 할머니 집은 아직 멀었다 / 동생한테 붕어빵 한 봉지를 사주었다 / 동생이 빵은 먹고 / 붕어는 어항에 키우자고 해서 / 그러자고 했다 (-'붕어빵')
별이 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와 동생을 사랑하는 가난한 형제의 모습이 애련하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을 거두어 갈 사랑스러운 시들이 더 많은 시집이다.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 / 도둑고양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 나는 도둑질을 가르친 적이 없다 ('도둑고양이')
매일 (우리가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과도)이별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 만나야 할 마음을 이 시들 속에서 찾아봄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