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중학생 34명 지음, 한국글쓰기연구회 엮음, 장현실 그림 / 보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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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에 실린 최휘진 친구의‘아침에 학교 가는 길’을 읽노라니 나의 출근길도 한 번 써 보고 싶어졌지요. 버스 타지 않고 걸어서 가는 먼 길을 기꺼이 행복해하며 걷는 휘진이의 모습이 참으로 예쁩니다. 논길로 가면서 보는 백로, 물총새, 물고기, 수선화도 만나고, 소똥 냄새, 물 썩는 냄새도 만난다지요. 억울한 일이 있으면 중얼중얼 욕도 하고요. 그 모습 떠올려 보니까 또 웃음이 나네요. 나뭇잎 스치는 소리도 놓치지 않는 마음이 열린 아이 휘진이를 이렇게 글에서 처음 만났지만 직접 만나도 낯설지 않게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이들이 쓴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어가면서 내 눈이 보지 못한, 내 생각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열다섯 친구들의 삶을 온 몸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대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슬며시 고개 듭니다. 교무실에 불러다 놓고 '고민 있으면 말해봐~' 하는 선생님들이 제가 학교 다닐 때에도 있었는데, 아직도 '선생님이 나의 든든한 빽이 되어 준다'는 믿음을 아이들에게 줄 수 없는가 하고요.

눈덩이 같은 빚에 전세금도 못 받고 쫓겨나가게 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좀더 강해진 것 같다'는 명섭이, 돈 벌어 고생하시는 엄마와 동생을 먹여 살리고 공부 시키기 위해 학교 다닌다는 소영이, 아픈 나를 대신해 정성껏 필기 해 준 친구에게 고마워하고, 그 친구가 팔을 데어 필기 못할 때 정성껏 필기를 해 준 민규,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들이 자기가 먹고 난 컵을 학생들에게 씻어 놓으라고 말하는 것이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정호. 때론 코 끝이 찡해지면서, 때론 킥킥대기도 하면서, 때론 속이 뜨끔도 하면서 이 책을 정말 온전히 끌어 안고 읽어 보았습니다.

아이들의 삶의 인정하고, 이해해야 된다고 하면서 그것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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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한세상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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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생 아저씨, 태옥 언니, 부칠씨, 정옥,경희, 정희 언니, 그리고 이네들과 한 판 우꾼하게‘멋진 한세상’풀어낸 우리 공 선생님~ 이렇게 한 번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공 선생님 뽑아 놓으신 제목들이 유행가 제목 뺨치는 것 같아요. '그것은 인생', '정처 없는 이 발길', '나비', '홀로 어멈', '고적', '이 한 장의 흑백사진'……. 싸구려 유행가에 선생님 훌륭한 작품을 빗대어 맘 상하신 건 아니지요? 말해 놓고 보니, 싸구려라니! 그 속에 인생의 짠물과 쓴물, 로맨스와 사랑의 상처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걸요. 선생님 작품도 그래서 좋답니다.

선생님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멋진 한세상'에서 읽은 부분이 생각나네요. 스무 살 처녀가 '선데이서울'에서 본 가정부 일자리 구하러 서울행 완행열차를 탄 여름밤. 일곱 시간 입석, 통로에 신문지 깔고 앉을 공간조차 없이‘공간이란, 내가 섰는 딱 그 자리, 그만큼 뿐이다. 한마디로 옴도뛰도 못하겠다.’했던 부분이요. 그것이 열차 안에서만의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누구나가 자기 선 자리만큼만 욕심 내지 않고 공평하게 가지고 살면 더없이 좋을 텐데요.

시골 폐교에서 아이 셋 홀로 키우는 정옥 언니,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거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는 남편 대신 두 아이를 키우는 경희 언니, 과외를 생계로 어머니,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나'. 저야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 우리 사회에서 애를 키운다는거, 더군다나 안정된 직장 없이, 남편 없이 애를 키운다는 게 얼마만큼의 무게로 어깨를 짓누르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경제적 부담을 온몸으로 받아낼 결심을 굳게 먹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언니들 사시는 모습이 쨘한 것으로만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대에 여성으로, 어미로 살아가는 것의 고달픔 속에서 뭔가 단단함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시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을 물리고 자연속에서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정희 언니의 모습에서도 새로운 길을 보았습니다. 자, 우리도 '한 몫' 챙기는데만 빠지지 말고 '한 세상'을 챙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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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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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읽으면서 하고 많은 기사들 가운데 한 칼럼으로 눈길이 쏠렸다.‘홍세화씨 열기의 뒤안길’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글이었는데, 홍세화씨에게 20년만에 일시 귀국해 조국을 돌아 본 소감을 물었을 때 그가 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마음이 살쪘더구먼, 필요 이상으로…”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나도 피둥피둥 마음살이 쪄올라 기름이 끼어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내가 대학 새내기였을 때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으면서 기억에 뿌리를 깊히 내린 것이 바로‘똘레랑스’였다. 그 때도 한 쪽 발은 프랑스라는 나라에 걸치고, 또 한 쪽 발은 우리나라에 걸쳐 놓고 책을 읽으면서 그 놈의‘똘레랑스’라는 것을 왜 부러워만 하나, 우리라고 못할 게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모든 가치관에 대한 평가를 보류당하고 입시에만 매달리다가 대학이란 곳에 들어온 때이긴 했지만 나에겐 내가 만들어 가고 바꾸어 나갈 자유와 문화에 대한 기대가 가슴 가득 했었다.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병이 되어 있다. 그리고 문화비평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파리에서 전해 온 이 책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읽었다.‘두번째 젊은이’로서 기쁘게 말이다. 이 책에 대한 비판을 원한다는‘첫번째 젊은이’의 당부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서도 결국 끝에 남는 것은 책에 대한 것보다 이 사회에 대한 처절한 비판이었다. 물론 결코 나 혼자로서는 꿈꿀 수 없는 전망에 대한 바램과 함께 한 비판이었다.

이 책에서 똘레랑스 말고 눈여겨 본 부분은 사회정의에 관해 써 놓은 부분이었다. 솔직히 이 말은 내게 낯선 것이기도 했다. 어떤 사건에도 질서(안보)라는 잣대로 들이대는 것에 강한 거부감은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한국에서‘사회정의’나‘연대’라는 말은 듣기 어려운 대신에,‘고통분담’이라는 말은 대 유행”하면서‘아이엠이프 이후 어려운 시기였는데도 1년 동안 고위관료와 국회의원의 재산이 늘어났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납득할 수 없다. 그러한 이해 불가능의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또 드러나고 있지만 그때 그때에 맞는 맨홀 뚜껑 속으로 묻혀 버리는 것 같다.

우리도 사회구성원들의 안간다운 생활, 인권과 권리를 인정해 주고 이를 삶의 곳곳에 반영하고 실천해 나가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도 질서와 안보 논리를 찍어낼 기득권층으로의 편입을 꿈꾸며 공부하고 있을 고시촌의 수많은 젊은이들. 물론 그런 이들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겠지.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위한 사회의 정의는 어떻게 실천해 나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이들이 하나하나 모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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뺏벌 -상
안일순 지음 / 공간미디어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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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촌 여성들의 문제는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제 3세계 여성, 즉 아시아 여성들의 삶의 모습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단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듣고 한 것에만 분노를 느낄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면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본질적인 것 중 하나가 우리 안에 있는 여러 종류의‘식민지 문화’이다. 세계 2차 대전,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 후에 아시아는 세계의 사창가가 되었다.

“총독부에서 간판만 바꾼 것이다. 미군이여, 해방? 이 넋 떨어진 것들아, 우린 여직꺼정 식민지 백성이여. 우리나라가 온전치 못하면 여자들도 성하지 못하지. (중략) 양갈보 정년퇴직하는 날이 해방인겨. (중략) 만주, 장춘, 하얼빈, 상해, 안가본 곳이 없고 성조기 따라 문산, 송탄, 부산, 의정부, 안가본 곳이 없어” 백순실의 말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문단, 미군 주둔 등 현대사의 갈등이 한 개인에게 정신대와 양공주라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겨 놓은 것이다.

<뺏벌>이란 지명에서도 이들의 삶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뺏벌은 의정부에서 퇴계로 쪽으로 10여㎞떨어진 스탠리 미군 부대 옆의 동네다. 행정구역은 고산동이지만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인의 초상을 얘기하면서 기지촌은 빠질 수 없을 정도로‘한국의 아메리카’라는 명칭처럼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하겠다. 이태원, 동두천, 의정부, 송탄, 평택, 군산 등 현재 27개 기지촌의 보건당국에 등록된 미군 상대 윤락 여성은 8천명 정도라고 한다.

안타깝고 시린 가슴으로 소설을 읽어가면서도 텅빈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지촌의 행정관리들이 윤락여성들을 강당에 모아 놓고 “당신들은 한국을 지켜주러 온 미군을 위안하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칭송하는 해프닝이 그것이다. 또 미군을 성병에서 보호하기 위해 우리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기지촌 여성들 성병 예방을 하는 것 또한 그러한 것이다.

“진짜 미친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美親 사회였다는 것,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등 떠밀고 몰아낸 것은 美親 정권이었다는 것을.” 작가의 말이다. 기지촌 여성을 비롯한 현재 우리 사회의 매매춘 여성의 인구수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정부는 이들에게 인간적인 차원에서는 물론 제도적인 차원에서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소설의 첫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차미옥의 죽음은 93년 윤금이씨 사건을 생각나게 한다. 작가 또한 병조각이 온몸에 박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고통스럽게 신음했었다고 한다. 그처럼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고있는 모든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준 사건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한미행정협정이었다. 1966년 7월 한국의 월남 파병과 한·일협정체결로 반미 의식이 고조되자 이를 무마하기 의해 맺은 불평등 조약이다. 특히 미군범죄 형사 재판권 제 22조는 사실상 한국 정부의 재판권 포기를 나타낸 것이다. 재판권 3항 역시 미군 당국의 요청이 있으면 한국 정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판권 포기 해야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이 나라는‘주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략)“기지촌을 배태시킨 구조적인 문제에 앞서 미국 병사 케네스 마클에게 돌을 던지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눈을 떠야 한다. 그리고 그 각성은 기지촌 여자와 아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왜 그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의 위치는 어떤 것인지, 어떻게 접근하면 되는지를 우선 우리 자신부터 신중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 뒤에 내가 다시 세상을 바라볼 때는 할퀴어진 역사 속에서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 분노를 주인 되고 올바른 의식으로, 사랑으로 받아들여 진정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뚜렷이 자리매김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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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합본)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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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철학이란 것을 어렵게만 생각하고 삶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에 당치도 않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무관심한 것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대부분의 철학사는 남성이 결정해 왔으며 여성은 소외되는 존재로 인류 역사에서 늘 억압당해 왔다.

그런 점에서 ‘(…)어른들은 세계를 당연하게 여기지. 확실히 어른들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일상 생활이라는 깊은 잠을 자고 있는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는 소녀 철학자 소피의 모습에 놀라우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꼭 들어맞는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학문의 전당이며 자유의 성역이라고 하는 대학에서조차 끊임없는 사유와 의심은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정말 이것이 위기가 아닐런지.

소피는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에서부터 20세기의 실존주의 철학, 유물론, 생태 철학에 이르기까지의 기나긴 철학적 탐구를 하면서도 결코 현실 생활과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삶이란 임신과 출산으로 시작되는데 지금까지는 그들의 철학 세계 속에는 아기 귀저기나 빽빽거리는 울음 소리가 없었어요. 또 어쩌면 사랑과 우정이 적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대답에 이르러서는 어린 아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소피가 기특하고 대단해 보이기 조차 했다.

무엇보다도 소피는, 내가 섣불리 결론내리고 싫증냈던 바로 그 삶을 찾기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용기를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내 삶을 단단히 움켜지면서 나를 둘러싼 사회와 세계에 꾸준히 의심 가지고 항상 열린 마음과 더운 기운이 흐르는 가슴을 가지도록. 소피와의 만남이 늦었지만 소피는 예전부터 나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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