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음반이든 엮음집이라든지 컴필레이션과 같은 것들을 썩 달겨하지 않지만 믿을만한 시인이 사랑, 감동, 희구, 전율한 시들이라는데...시인의 임실 고향집 앞 느티나무 그늘에서 들었던 그의 시에 대한 사랑이 이 시집 속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다. 순간순간 느낌에 따라 안겨오는 시가 다르다. 지니고 다니면서 어디든 펴서 몇장 뒤적이다 보면 푹 젖어드는 시를 만나게 된다.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이용악,'전라도 가시내'중에서). 한국학자인 김열규 선생이 학창시절에 듣고 젊은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는, 그 감동과 설레임이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자신을 가다듬은 마음의 거울이 되었다는 시이다. 김용택 시인도 이 시를 읽고 있으면, 철커덩 철커덩 압록강 다리를 건너는 기찻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시가 점점 덜 읽힌다고는 하나 시 한 편을 두고 시간, 공간 이동을 할 수 있음은 물론, 내 안팎을 들여다 보는 거울도 된다. '한가하게 시나 읽고 있다'는 말은 잘못되었다. 시인의 치열한 영혼과 마주하는데는 마음 단단히 용기를 내야 하고, 순수한 열정과 삶에 대한 지독하리만큼의 애정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가 그러한 님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