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땅을 디디고 손은 흙을 어루만지며 - 도시텃밭 그림일지
유현미 지음 / 오후의소묘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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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자마자 밭을 바라보며 이 책을 읽어야 겠다고 다짐했고 잡초를 뽑은 손을 털어내고 앉아, 손톱에 박힌 흙을 걷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막연히 훗날 농사를 지으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농작이 가능한 밭과 논이 있으니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그 땅을 놀리지는 말자며 구체적인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지만 그 말을 실행해 옮기기까진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동이 트면 아침밥 한술 뜨기도 전에 들에 다녀오시는 시부모님을 오랫동안 봐온 터라 주저가 되었는데 이젠 더 늦출수가 없겠다고 생각했고 작게라도 밭농사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건 누구에게 해당된 말일까- 하여간 우리는 읊기는 커녕 엇비슷하게 흉내도 못내는 엉성한 상태로 2년차에 접어들었다.

자치구에서 1년간 임대하는 주말농장에 당첨되어 부푼 꿈을 안고 밭에 도착한 첫 날. 우리는 힘차게 밭을 갈고 거름을 뿌렸다. 그리곤 일주일 후에 밭에 나타나 신나게 모종을 심었다. (여기서 부터 이후에 벌어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면 당신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뿌린 비료는 깻묵이라고 부르는 깨에 기름을 짜고 남은 부산물인데 흙과 만나면 발효가 되면서 땅의 온도를 높인다. 매일 충분히 물을 주어 숙성이 다 된 뒤에 모종을 심어야 뿌리를 잘 내릴 수가 있는데 펄펄 끓고 바짝 마른 땅에 작물을 심어버렸으니 뿌리가 다 타버린 것이다. 한번만이라도 땅을 뒤집어 흙을 손으로 만져만 보았대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농사를 짓는 다는 건 적당함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욕심을 내고 꼼수를 부려봤자 땅은 정직하게 마음을 낸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임을 이제 아주 조금 알 수 있다.

땅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고작 3평짜리 밭을 일구는 일이 별거냐 얕봤던 경솔함이 고개를 숙이는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처럼 땅은 품을 들인만큼 내어준다. 해를 거듭하며 겸허와 겸손, 그리고 섭리를 배운다. 더 조아려 배우라고 이 책이 내게로 날아든 것 같다. 자연은 자비롭지만 한편으론 가차 없다. 농부는 절기를 거스를 수 없고, 파종과 수확 시기를 마음 가는대로 당기거나 미룰 수 없다. 개미들의 움직임이 바빠지면 비가 온다는 신호로 알고 농사꾼도 바삐 움직인다. 세세한 노하우까지 담긴 이 농사 일지를 이렇게 꽁으로 훔쳐봐도 되나 싶다. 선배농부의 농작일기는 초보농부인 내가 때마다 어떤 것을 느끼며 밭을 일굴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며칠 전 못다 영근 오디알을 보며 6월을 기다렸는데 작가의 6월에도 뽕나무 이야기가 있어서 반가웠던 것처럼 말이다 #오후의소묘 #호수네책 #책이야기 #밭은땅을디디고손은흙을어루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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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탕 정글교실 고래뱃속 창작동화 9
임다솔 지음, 김세영 그림 / 고래뱃속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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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된 꼬마에 교실이야기 속에는 1학년과 사뭇 다른 갈등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선택적으로 더 잘 들리는 구절은 ‘단둘이 놀고 싶어!‘ 인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단짝의 개념이 생기고 작은 그룹을 형성해 놀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래서 그럴 땐 어떻게 해결하냐고 물었더니 회의를 통해 순번을 정해 노는 것으로 규칙을 정하지만 간혹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다고 한다. 아이는 작고도 큰 사회 속에서 발달 과업을 차근히 밟아가고 직면된 과제를 돌파하려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자랑이 지나친 친구가 얄미워서 비등할만한 자랑거리를 찾는걸 보니, 가까운 미래에 더 복잡하게 얽힐 교실생활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것 아니겠는가. 길을 잃고 튀어나오는 거짓, 변명을 변명으로 덮어버리는 상황들, 오해가 중첩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진실, 타겟이 되고 싶지 않아서 숨고 외면해야 하는 비겁함, 비겁함 뒤에 숨고 싶지 않은 진심. 모든것이 괄괄 소리를 내며 갈리고 섞인 이야기 속에 아이들이 직시하고 지켜야할 중심이 무엇인지 들려주는 #우당탕탕정글교실 에 이야기는 뜨거운 불을 향해 날아가고 있거나, 미지근한 온도로 중립을 지켜가고 있는 교실생활자 모두에게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래뱃속 #호수네책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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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난 여기 있단다
안 에르보 지음, 이경혜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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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나 사후 세계를 믿진 않지만 영면한 영혼이 내 곁에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한 적은 있었다. 꿈에 한번만 나타나달라고 매일 밤을 기도했지만, 바램대로 되진 않았다. 대신 방문을 열고 나가면 서있을것만 같았다. 돌아가시고 한동안 그 알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실제로 문을 열고 나가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꼭 그 자리에서 당신이 나를 살펴주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후로 9년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에게 할머니가 가장 보고 싶은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다. 여전히 거의 매일 엄마를 생각하고 기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70이 넘은 노인이 된 엄마도 아직 삶의 지혜가 필요한 순간에 물어볼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느낀다고 말이다. 


2019년에 멈춰있는 달력도, 생기를 잃고 늘어진 화초에도, 가지런히 놓인 구두에도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은 스며있다. 그리고 그분의 영혼은 현재와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전처럼 눈을 맞추고, 부빌수는 없지만 존재하며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그림책이 속속 보인다. 저마다 다른 시점과 형식으로 실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안에 결의 공통된 마음이 숨어있다. 영원한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은 이들이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아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그것이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책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고선 한시도 묵주를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조용히 화살기도를 드렸다. #안에르보 작가의 초연하고 안온한 표현법은 언제나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언제나난여기있단다 #한울림어린이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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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팬클럽 신나는 새싹 175
안난초 지음 / 씨드북(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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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짜리 밭에 1.5평은 콩에게 내어주었다. 반은 완두콩, 반은 땅콩. 나는 비릿한 맛과 떫은 맛이 돌아 못먹는 생땅콩도 와작와작 잘도 먹는 우리집 꼬마를 위해 올해는 텃밭에서 콩의 지분을 늘렸다. 어머니는 밭의 한 가운데 콩에게 내어준 초보 농사꾼들이 우습기만 하신가보다. 그도 그럴것이 시부모님의 밭에선 한 귀퉁이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작물이 콩이다. 콩은 울타리 근처에 씨만 뿌려두어도 알아서 자란다. 씨앗이 커서 한 자리에 두세개씩 심을 염려도 없어서 솎아줄 필요도 없는, 다시 말해 거저 먹는 작물이다. 완두콩, 동부콩 모두 넝굴로 자라기 때문에 밭 정중앙에 자리를 하면 다른 작물을 수확할 때 몹시 불편한데 우리의 관심은 온통 중앙자리를 내어준 콩에게 쏠려있다.

그뿐인가 병아리콩, 콩으로 만든 두부, 유부, 두유까지 잘 먹는 꼬마 덕분에 우리는 식물성 단백질을 꽉꽉 채워서 섭취 할 수 있다. 전생에 다람쥐가 아니었을까 싶게 콩에 껍질까지 싹싹 잘 먹는 콩순이에게 안성맞춤 책이 도착했다. 제목도 찬란하게 #콩팬클럽!!!! 꼬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콩보다 좋아하지 않는 편이 빠르겠다며 웃었다. 할머니 집에서 콤콤한 냄새를 풍기던 메주가 콩이고, 콩이 된장과 간장이 된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 아는 어린이 덕분에 이 귀여운 콩도감을 재미지게 참 재미지게 읽었다. #씨드북 #호수네그림책 #그림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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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손 금손 체인지 달마중 26
백혜진 지음, 김민준 그림 / 별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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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진행방향은 오른쪽이라 왼손잡이는 자신이 쓴 글을 가리면서 써내려가야 한다. 내가 쓴 글이 지워지기도 하고 글자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다보니 노트를 직각으로 돌려서 쓰기도 하고 손목이 90도로 꺾이기도 한다. 왼손을 쓰는 아이가 갖는 장점도 분명히 있다지만 오른손 사용자의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학창시절 동안 아이가 안고 가야할 불편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라서 이제라도 오른손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램도 가졌었다. 그만큼 우리는 손끝에서 시작되는 행위를 두고 수많은 판단을 한다. 그래서 아마 똥손, 금손이라는 말도 탄생하게 되었을거다.

그렇다면 똥손과 금손은 타고나는 것일까? 내 산부인과 주치의 선생님에 따르면 아이의 대학은 착상되는 순간부터 결정되었으니 태교로 수학의 정석을 푸는 엄마들이 없길 바란다고 하셨지만 고래가 춤추듯 칭찬과 인정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자양분이기도 하고 내가 가진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아이의 행동을 문제시 하기 이전에 기다리고 궁금해하라는 이론을 머리는 알고 있지만 책에 등장하는 엄마처럼 크고 작은 협박이나 편파적인 태도가 앞선다. 그럴 때면 나는 아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씁~ 어른이 말씀 하시는데 톡톡 끼어들면 안돼”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이 문장을 어렵지 않게 들었다. 위계의 치명적 오류가 작동한 문장이지만, 그것을 예의범절이라 배웠다. 미디어와 여러 강연에서 대중의 공감을 크게 이끌어내는 명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따박따박 말대답을 할때면 부모님은 그런 부분까지도 높이 평가하고 “너는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는 식의 말로 독려하셨다고 말이다. 나는 우리 아이의 단점이 장점으로 승화될 수 있게 잘 붇돋고 있는지, 은연중에 폄하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보며, 아이들의 손이 타인에 의해 똥손과 금손으로 가르기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본다 #별숲 #똥손금손체인지 #호수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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