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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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우연한 기회에 선물로 받은 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에서 추천을 받았던 책이라 내심 궁금했는데 누군가의 호의 덕에 생각보다 빨리 읽게 됐다. 그분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모든 이야길 접하는 순간에 부적절한 경우란 없고 오히려 모든 순간이 시의적절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최근에 본 영화 <쇼생크 탈출>과 요즘 시국이 겹쳐 보여서 대단히 남다르게 읽혔다. 러시아 버전 <쇼생크 탈출>이라 봐도 좋을 만큼 - 묘하게 <피아니스트의 전설>도 연상되지만 그 작품과는 결이 살짝 다르다. - 인간의 자유 의지에 보답하는 듯한 쾌감 어린 결말,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상황에 꽤 본받을 만한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히.

 이 이야기는 1922년, 로스토프 백작이 '구시대의 유물'을 용서치 않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무기한 연금형에 처해지면서 시작된다. 상당한 두께의 작품으로 개인적인 얘길 하자면 만약 이 백작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가독성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20세기 이전의 러시아 문화라든가, 신사에게 요구되는 전반적인 교양 등에 내성이 없다 보니 700쪽이 넘는 그 긴 분량 내내 흥미를 유지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최근에 접한 <더블 스타>와 <양들의 침묵>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혹은 개인적인 취향과 맞지 않아도 주인공이 매력적이라면 소화 못할 작품은 없다는 걸 <모스크바의 신사>를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범죄자의 유형은 천차만별이지만 정치범의 경우 상대적으로 독방에 갇혀도 다른 범죄자보다 제정신을 잘 유지한다고들 한다. 육신의 자유가 제한돼도 정신적 수련이 뒷받침되면 나름대로의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인 걸까? 그러고 보면 위에서 언급한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앤디가 독방에 2주나 갇히고도 머릿속에 음악 선율이 있어 그 안에서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졌다고 한다. 물론 반쯤은 허세겠지만, 내 경험으로 봤을 때도 군대에서도 취미 생활이 많은 유형의 사람일수록 '시간이 안 간다'는 소릴 입에 담는 법이 없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역할 때까지 지루함의 나날을 보냈다.

 군생활은 21개월로 끝나고 - 요샌 더 짧아졌다지만 - <쇼생크 탈출>의 앤디는 19년을 쇼생크에서 갇혀 있었다. 뭐, 그 감옥엔 3~40년을 갇힌 죄수들도 있는데 <모스크바의 신사>의 로스토프도 그들에 비견할 만했다. 연금형에 처한 백작은 이제 이전과 같은 법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됐으나 내면의 풍부한 지성과 지금까지 쌓아온 사회적 명성까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진 않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메트로폴 호텔은 실제로 모스크바에 있는 호텔로 그 유명한 크렘린 궁전과 볼쇼이 극장이 지근거리에 있는 그야말로 러시아 심장부에 자릴 잡은 호텔이다. 처음에 백작은 연금형에 따라 기존에 머물던 스위트룸에서도 쫓겨나지만 그의 품격에 반한 호텔 직원이나 그의 명성을 알아본 투숙객과의 인연 덕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최고급 호텔에서 알 사람은 다 아는 저명한 인사로서 활약하게 된다.


 작중 시대상은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의 소련인데 이 시기는 '차일드 44' 3부작에서의 묘사에 따르면 사회주의 혁명의 칼바람이 불던 - 혁명의 성공을 증명한답시고 자국민이고 뭐고 다 감시하고 여차하면 죄다 쓸어버렸던 - 바로 그 시기에 해당한다. 전개에 따라 이 호텔에도 시대의 그늘이 드리우는데, 그래도 소련이 귀빈을 대접하기 위한 이미지 관리용 호텔이라 그런지 '구시대의 유물'인 로스토프가 자신의 매력을 발휘하기엔 딱 알맞은 공간이었다. 중간에 충격적인 일들도 있었고 실의에 빠진 백작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했으나 몇몇 사람들과 상황의 도움으로 그는 자신의 답도 없어 보이는 호텔에서의 나날을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이후엔 새로운 손님과의 중요한 인연, 그리고 중립 지대처럼 소련 사회의 모진 풍파 속에서도 절묘하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 덕에 가끔은 백작의 처지가 벌인지 횡재인지 헷갈릴 정도로 로스토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곧잘 지켜나가곤 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탈출을 결심하게끔 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백작의 내면 세계의 풍부함 덕인지 실제로 이야기의 배경이 백작의 처지처럼 호텔을 벗어나지 않음에도 독자로서 특별히 답답하거나 지루하게 읽히지가 않았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육신의 자유를 넘나들기도 한다더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을 부당하게 갇혀 지낸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고작 사회적 거리두기도 버거워 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요즘에도 집에만 있으면 답답하다는 이유로 눈치를 보는 척만 하지 실질적으로 외출 횟수는 줄이진 않았으니까. 물론 마스크를 비롯해 위생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만, 로스토프의 처지를 떠올리면 외출 없이도 충분히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함에도 그를 노력하기라도 했는지 싶어 저도 모르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로스토프의 처지와 지금 시국을 무작정 동일시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으나 '모스크바의 신사'로서 내적 깊이의 중요함을 역설한 로스토프의 모습에서 배울 점은 많다고 본다. 딱히 요즘 시국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전까진 신사라든가 양반이 갖추는 교양의 요소들을 은근히 폄훼하곤 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선 때론 당장에 삶의 기본적인 욕구와 직결되지 않아 보여도 문학, 미식, 음악 등을 아우르는 예술적 소양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구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걸 곱씹게 됐다. 분량이 방대한 덕인 걸까. 어떤 작품의 주제의식은 가끔 독자로 하여금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긴 분량에 걸쳐 주제의식을 전개하다 보니 주입이 아닌 내 안에 착실히 스며드는 느낌을 받았다. 방대한 분량의 순기능을 하나 깨닫게 됐다.

 분량에 대해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이야기를 펼쳐나감에 있어 적절하기만 하다면 그 분량에 짧고 길다는 잣대는 무의미한 듯하다. 1,000쪽이 넘어도 이야길 하다 만 것 같으면 짧은 것이고 20쪽에 못 미쳐도 지루하면 그 이야기는 분량이 긴 것이다. 그런 면에서 <모스크바의 신사>의 분량은 적절했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오히려 그 방대하면서 장대한 이야기의 흐름을 나중에 다시 정독하리라고 기약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작품을 언제 다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새롭고 의미있고 시의적절하게 읽히리란 생각에 기대를 감출 수가 없다.


 이 작품을 다 읽고서 바로 책장에 있던 '차일드 44' 3부작 마지막 작품 <에이전트 6>를 꺼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스크바의 신사> 마지막 장면의 시기와 그 작품의 도입부의 시기가 거의 비슷했다. 이렇게 연속으로 같은 시대 배경의 작품을 접하니 두 작품의 주인공 로스토프와 레오가 작중에서 묘사만 안 됐다 뿐이지 한 번 정도는 마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돼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러고 보니 두 작품 다 저자가 러시아인이 아닌 영미권 작가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를 배경으로 방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고증도 충족시키는 모습은 참으로 존경스러운데, 한편으론 소련을 배경으로 둔 현대의 러시아 소설이 과연 존재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내가 견문이 좁아 아직 접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러시아 문학이 소련을 기준으로 씨가 말라 아직 그런 소설이 안 나온 건지...

 작중 로스토프의 교양 수준에서 엿볼 수 있듯 예전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문호가 러시아에도 많았는데 현재 러시아는 소설이고 영화고 예술 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괜한 오지랖 같긴 해도 러시아 문화에 무지한 나도 바로 떠오르는 현대 러시아 소설이나 영화가 딱히 없는 걸 보면 확실히 소련이 끼친 영향이 크긴 큰가 보다. 이 영향력은 정말 무지막지한데, 나 역시 미국 작가가 쓴 이 러시아 배경의 이 소설이 괜히 힘들게 읽히진 않을지 걱정했을 정도였으니 정말 말 다했다. 결과적으론 기존 러시아 배경의 이야기가 주는 편견을 배신하는 밝고 보편적인 이야기였는데,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분들에겐 일단은 부담없이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반대로 원래부터 러시아에 관심이 많았다면 러시아 고전 문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독성과 낮은 진입 장벽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뭐가 됐든 선입견을 갖고 접근하지 마시길. 아, 어쩌면 선입견을 갖고 접근해야 더 반전 매력이 크게 느껴질는지 모르겠군.



 p.s 이 작품이 케네스 브래너 제작, 주연인 TV 드라마화 예정이라던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명색이 러시아가 배경인데 배우들이 전부 영어를 쓰면 어떡하지? 그렇다고 갑자기 배경을 영국이나 미국으로 각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이 자막 읽기 싫어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닌데... 진짜 걱정된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 609p




그렇지만 아무리 역사적 근거가 넘친다 하더라도 하나의 충고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 7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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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가오카 50엔 동전 축제의 미스터리 ㅣ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
아오사키 유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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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7.6







  오랜만에 '우라조메 덴마' 시리즈를 읽었다. 이번엔 단편집이며 살인을 다루지 않는 일상 미스터리물이라 장편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각각의 단편들의 중심 화자가 전부 다르고 이야기의 시점이 장편들 사이에 있는 경우가 많아 시리즈의 팬이라면 잔재미가 많을 책이었다. 나 역시 이 시리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이었지만, 최근에 접한 <도서관의 살인>을 무려 3년 전에 읽은 터라 애석하게도 이런 잔재미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전편의 내용이 잊혀지지 않았을 때 읽는 걸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표제작이 제일 재밌었고 다른 수록작은 그냥저냥이었다. 사실 표제작의 동기도 약간 납득이 안 갔지만 이 시리즈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된다면 아무리 이해가 안 가더라도 그것이 답'이라는 추리소설의 진리를 추구하므로 딱히 새삼스럽진 않았다. 그렇다고 <도서관의 살인>의 동기만큼 이해불가였던 건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그 작품의 내용마저 기억이 안 날 정도라니, 정말 3년이란 시간이 생각보다 길긴 긴가 보다. 그 작품을 읽을 당시엔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는데.


 시리즈의 주인공 우라조메에게 내제된 탐정으로서의 DNA를 다채롭게 엿볼 수 있었던 건 재밌었다. 여동생이 활약하는 에피소드는 왜 그런지 잘 읽히지 않았지만 마지막 에필로그격 단편은 흥미롭게 읽었다. 이 시리즈의 순서는 <체육관의 살인>, <수족관의 살인>, 요번 단편집과 <도서관의 살인>으로 현재 1부가 끝나고 2부는 구상 중에 있다고 한다. 2부에선 우라조메의 배경이 이야기에 잘 녹아든다면 꽤 재밌는 그림이 그려질 듯하다. 아울러 이전 작품들이 어쨌든 우라조메의 원맨쇼에 가까웠다면 2부에선 좀 더 다양한 유형의 탐정이나 혹은 적대자가 등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본래는 라이트 노벨을 지향했던 작가라 그런지 캐릭터를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니 그 재능을 십분 살릴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아오사키 유고 작가의 진정한 재능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불굴의 논리이며, 이는 추리소설가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재능이다. 난 아직도 <체육관의 살인>에서 받은 감동을 잊지 않았다. 비록 <도서관의 살인>이나 요번 단편집이 그때 느낀 감동에 비하면 덜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다음 작품이 여전히 기대된다. 듣자하니 이 시리즈말고도 다른 오리지널 작품으로도 랭킹에 꼽히는 등 성과가 제법이라는데 그 작품들도 궁금하다. 이 단편집 이후로 지금 3년이 넘게 작가의 신작이 출간됐다는 얘길 못 들었는데 언제가 되더라도 하루 빨리 접할 수 있길 바란다. 시리즈 최신작이 나온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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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스타 ㅣ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3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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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더블 스타>는 하인라인의 출세작이자 휴고상 수상작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저번에 읽은 <여름으로 가는 문> 못지않게 유쾌한 심상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이리도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재미는 곱절이나 떨어졌을 것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배우다. 정확히는 퇴물 배우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신감은 그 이상이라서 주변의 실소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그래도 정치하는 인간들이 찾아가 의뢰를 맡길 정도면 정말 연기력은 탁월한 모양이다. 소설 속 묘사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만... 아무튼 작중 전개 대부분이 지구 밖에서 이뤄지는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배우로서의 장인 정신을 어필하는 부분 등은 작품에 적잖은 리얼리티를 부여하곤 했다. 그러니 다행이었지.

 개인적으로 옛날 SF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성과 화성인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56년도에 출간됐는데 마찬가지로 그 당시 SF 감성과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 감성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화성이 언급되는 순간 어떤 작품이건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이 작품은 화성을 넘어서 우주적 차원의 정치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데, 화성만큼이나 정치에도 취약한 나로선 아무래도 난관이 예상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위에서 말했지만 순전히 주인공의 매력이나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언뜻 SF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배우라는 직업은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표현됐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우주에서 이름을 날리는 정치인으로 분해야 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대역이란 처지가 마뜩찮으면서도 실력을 행사한다. 주인공은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고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정치적 식견으론 자기가 연기해야 하는 정치인의 성향도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면서 전에 없던 내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옛날에 영화 <광해>가 개봉했을 때 비슷한 플롯의 작품이 많다며 왜 1,000만 관객이 동원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설마 비슷한 플롯이 50년대 미국 SF 소설에도 나왔을 줄은 몰랐다. 그 영화의 플롯을 떠올리면 난해하다 싶은 이 작품의 전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소설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지만 코드가 안 맞아서 그런지 디테일하게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그건 아쉬웠지만 비슷한 작품이나 요즘 이슈를 대입하며 읽으니까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광해>야 그렇다 쳐도, 선거 시즌에 이 작품의 내용을 곱씹으니까 나름 울림이 있었다.


 전에는 좌우가, 그러니까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에 공감이 잘 안 갔는데 요즘 들어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반대측의 견제 없는 독주는 제한 없는 문제를 낳는다는 걸 요즘 유럽이 잘 보여주고 있잖은가. 통제 없는 진보나 개방 정책이 낳은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라든가 혹은 집단 면역 시도를 보면서 그간 유럽 국가들을 선진국으로 여긴 내 가치관에 혼란을 많이 느꼈다.

 그런 면에서 요번주 투표 결과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지 않은가 싶다. 더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균형이 있으니 혹시 모를 고름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몇 년 사이에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영 시원찮은 일이 많이 발생한 걸 보고 역시 정치는 이미지 관리가 대부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 쉽게 말하면 결국 그놈이 그놈 - 나름 납득할 수 있는 결과기도 했고. 


 그렇다 보니 <더블 스타>의 주인공 로렌조가 보인 내적 변화에 동의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성향은 단순히 좌우로 이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는 대체로 아군 아니면 적군이란 식으로 서로 편 가르며 흘러온 것 같다. 의외로 내가 질색해 마지않는 놈이 괜찮은 언동을 보일 때도 있고 평소에 흠모하던 사람이 되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는 것처럼 입체적이지 않은 사람이란 없는 것 같은데 이를 하인라인은 가상의 우주 정치극으로 하여금 괜찮게 은유해냈다. 로렌조가 자신의 배역인 실제 인물에 동화하다시피 한 게 단순히 배우로서 직업 정신이 발휘됐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나는 작가가 그 이상을 표현했다고 본다.

 하인라인의 성향은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만큼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하던데 그 성향은 일생 동안 쓴 수많은 작품에 녹아든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경직됐다면 더 경직됐을 50년대에 저 정도로 입체적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하인라인에게 있어 SF는 참으로 탁월한 장르가 아니었을까. 집에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하인라인 선집이 몇 권 더 있는데 그 책들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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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배트 20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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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이 작품도 꽤 오랫동안 챙겨본 만화였는데 드디어 다 읽었다. 20권 안팎으로 완결이 나는 작품은 차라리 기다렸다가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게 더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한 권 한 권 발매되기를 기다릴 땐 아무래도 전권의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어느 순간 신간을 잘 안 찾게 되지 않은가. 막상 신권을 펼치면 특유의 압도적이고 감질난 연출에 금방 매료되지만, 기왕이면 이 작품은 역시 몰아서 보는 게 좋겠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이야기답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늙어가거나 변화하는 모습을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질 테니.

 소재 자체가 원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결말이 어떻게 맺어질 것인지 무척 궁금해하며 봤던 작품이다. 의외로 결말에 대해 사람들이 혹평을 하기에 걱정을 좀 했는데, 확실히 이야길 상당히 벌려놓은 것치곤 결말이 많이 허무한 편이긴 했다. 사실 이야기의 주역이 케빈 야마가타에서 케빈 굿맨으로 넘어갈 즈음인 80년대부터 이야기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미키 마우스를 빌리 배트로 대체된 것을 제외하면 작품 속 이야기는 거의 실제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시대가 점점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묘사가 빈약해지고 픽션이 가미됐던 것이다. 특히 9.11은 너무 뭉뚱 그려서... 전개상 미래 시점으로 가야 했기에 9.11을 안 짚을 순 없었겠지만 그래도 초반에 케네디 암살의 오스왈드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빈약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우라사와 나오키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그가 가미하는 픽션이나 가상의 인물들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많은데, 초반에 나온 칸베에의 이야기나 뒤비비에의 부모님 이야기와 쿠루스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겠다. 좀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아예 따로 단편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물론 초반에 이야기의 큰 축을 담당한 캐빈 굿맨 부모의 이야기도 뺄 수 없다. 생각해보면 한 작품에서 이렇게 캐빈 굿맨처럼 탄생에서부터 노년까지 쫓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은데, 운명이란 걸 잘 안 믿는 편이고 이 작품에서도 그런 표현을 안 쓰지만 후반에 케빈 굿맨이 그리는 만화가 미래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미약해보이는 한 개인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오한 질문을 하게끔 만들었다.

 이 작품에 대해 얘기할 때 '만화'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만화에 대해서 이 정도로 심오하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작품도 흔치 않을 테니 말이다. 처음엔 '빌리 배트'의 정체가 짐작이 안 갔는데 갈수록 문화적 아이콘이 갖는 영향력에 대해 작가가 제법 잘 짚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화를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 이런 이야기는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밖에도 전형적인 5~60년대 스타일의 일본, 미국 만화에 대한 작가의 로망도 엿볼 수 있는 등 향수 어린 분위기를 작풍도 좋았다.


 다만 군데군데 보이는 일본 문화 예찬론은 가끔 어이를 상실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창작이라지만 미키 마우스급 캐릭터인 빌리가 일본계 미국인이 오리지날이라는 건 그렇다 쳐도 전체적으로 이 작품 속에서의 일본인들의 역할이 너무 두드러졌던 건 어쩔 수 없이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물론 일본엔 '왕년'이란 게 존재할 만큼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잘 나간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 일본을 생각하면...... 나도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왕년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리는 게 오히려 비참한 현재를 더욱 상기시키지 않냐고 누가 좀 옆에서 알려줬음 좋겠다 싶을 정도였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중립을 유지한다고 해도 자기 작품에서 자기 나라 사람을 더 우대하는 게 당연한 듯하기도 한데 그런 일본인이 한둘이 아니라 우라사와 나오키라도 약간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종 음모론에 일본을 끼워맞추는 솜씨는 인정하지만...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 한 말 중 가장 공감이 갔던 말이 있는데 바로 '우라사와 나오키 단점의 극대화'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우라사와 나오키의 단점은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접한 독자는 아니지만 - 언젠간 다 읽을 생각이다. - 그래도 주변에서 너무 떡밥만 던지며 끄는 전개에 비해 허무한 결말이 단점이란 말을 듣곤 했는데 <플루토>와 <몬스터>에선 그 말에 공감이 안 갔지만 안타깝게도 <빌리 배트>에서 그 말에 공감하게 됐다. 실제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해서 그런지 단편 소설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 주제의식을 너무 장황하고 질질 끌면서 얘기하는 느낌을 없잖았다. 이사카 코타로의 <피쉬 스토리>란 책에 수록된 표제작이 비슷한 주제의식을 다뤘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읽어보시길. <빌리 배트>의 주제의식을 그 작가 특유의 엉뚱하고 쌩뚱맞은 상상을 통해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심오함이나 카타르시스는 단연 <빌리 배트>가 더 앞서지만, 세계사나 우라사와 나오키의 미친 작화력에 관심이 없다면 그 작품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두 작품만으로 우라사와 나오키의 팬이 됐기에 이 작품도 당연히 기대를 했고 남들이 뭐라든 나만큼은 재밌게 읽을 생각까지 했지만 결론적으론 기대에 못 미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왜 그런 느낌을 받은 걸까? 애당초 설정 자체가 불명확하고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긴 하지만 이건 큰 문제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이렇게 이해는 안 가는데 몰입한 경우는 흔치 않아서 역시 우라사와 나오키라며 감탄했었다. 당장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 캐릭터나 이야기도 나중에 설명이 돼서 역시 불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때론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손길이 있다며 그를 탓하거나 의지하는 것도 같은데 그 무의식의 심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빌리 배트란 캐릭터나 그를 연출하는 방식도 유쾌해서 인상적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신파도 적절하고 깊숙하니 볼 만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왜 이렇게 결말에 실망했는지 짐작이 잘 안 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케빈 굿맨의 캐릭터가 덜 매력적이서 그런 건지 후반에서도 정체가 밝혀지는 일이 없이 빌리 배트는 도돌이표처럼 같은 애기만 하던 게 질린 건지, 아니면 지금도 내가 만화의 설정을 제대로 이해 못한 화풀이를 하는 것인지... 이야기의 구성이나 캐릭터면에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명성엔 흠집이 갈 만한 작품이 아닌데 이상하게 막판에 느낀 허무함이나 실망스러움에 대해선 말을 아끼게 된다. 매력이 뚜렷한 만큼 결말이 흐지부지한 걸 차마 내 머리가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참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역사적 사건이나 위인을 그려낸 야심찬 작품이었지만 결말은 물론이고 소재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의외로 읽을 사람이 적은지 후기를 많이 접할 수 없던데 만약 읽을 생각이 있는 분이라면 위에서 말했듯 처음부터 끝까지 몰아서 읽길 추천한다. 띄엄띄엄 읽으면 내가 느낀 불만 그 이상의 불만을 느낄지도 모르므로. 그건 또 무슨 느낌일지 궁금하네.

사람은 그 박쥐의 도구에 지나지 않소.

하지만 우리도 도구로만 그치지 않소. 고향을 잃고... 친구를 모두 읽으면서까지... 도구로 그칠 수만은 없었소. - 3권 제27화 ‘모모치 무예첩 제10권‘




너 하기 나름이야.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지, 똑바로 굴러가게 할지는. - 13권 제108화 ‘너 하기 나름‘




이제 인생을 시작한 네게는 미안하지만... 나와 함께 인류도 끝나버리면 좋겠다 싶구나. - 14권 제116화 ‘지구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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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와 더럽혀진 천사 - Extreme Novel
노무라 미즈키 지음, 최고은 옮김, 타케오카 미호 그림 / 학산문화사(라이트노벨)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8.0







 이번 권은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을 재해석했는데 내가 이 시리즈 통틀어 유일하게 원작을 읽어본 경우에 해당한다. <폭풍의 언덕>은 예전에 어린이판으로 읽어봤을 뿐이고 <인간실격>과 <좁은 문>은 읽다가 보류했다. 아마 이 시리즈에서 언급하는 고전들 중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이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도 작중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추리소설로는 엉성하고 연애소설로는 기괴하다고. 하지만 팬텀이란 캐릭터가 갖고 있는 불멸의 매력이 있어 뮤지컬로 2차 창작돼 그야말로 대박이 됐다고. 신랄한 평가가 아닐 수 없는데 실제로 내가 원작을 읽었을 때도 거의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전에 처음 읽을 땐 <오페라의 유령>을 읽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 그래서 이 책을 읽고 그 책도 읽어야지 다짐을 했었다. - 이렇게 두 작품을 놓고 비교하는 게 나름 재미가 쏠쏠했다. 확실히 이 작가가 자신이 재밌게 읽고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을 선정해 절묘하게 시리즈 속 이야기에 녹여내는구나 싶었다. 처음에 유명 사립 고등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학생을 비밀리에 레슨을 해주는 팬텀 같은 존재가 있다는 설정을 들었을 땐 너무 대놓고 따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지만 이후에 나오는 전개는 오히려 <오페라의 유령>은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비참하기 그지없어 더 충격적이었다. 어릴 때부터 프로가 되고자 예체능에 뛰어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건 알지만, 이런 문제를 청소년들의 원조교제 문제와 더불어서 엮어내다니, 민감한 소재를 잘도 풀어냈구나 싶었다.


 1권서부터 주인공 코노하에게 남모를 감정을 품어온 고토부키를 제대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거에 복면 미소녀 작가였다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코노하에게 있어 '더럽혀진 천사'는 상당히 분기점이 될 만한 에피소드였다. 예술계에서 재능이 없으면 없는 대로 문제고 재능이 원치 않을 정도로 너무 많아도 문제인 이중성도 다뤘는데 이 부분을 <오페라의 유령>의 화자 라울에게 대입하여 풀어내는 건 꽤 인상적이었다. 그 작품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단은 라울이 화자고 주인공이라 할 순 있지만 그는 작중에선 활약이랄 게 없고 끝까지 팬텀에게 농락당하다가 작품이 끝난다. 그래서 그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팬텀이고 실제로 팬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팬텀은 시점을 달리하면 비참하게 살았고 누구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기에 소설적으로 대단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을 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적으로나 그렇다는 거고 현실에서라면 대부분의 독자는 라울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오코 선배는 라울의 존재 의의가 그것밖엔 안 된다며 그저 찌질한 사내라고 여기는 것엔 반대한다. 라울의 모습은 평범한 독자들의 모습을 대변해준다. 게다가 라울은 석연찮긴 하지만 어쨌든 행복을 거머쥔다. 그 결말엔 다소 논란이 있긴 하지만 토오코 선배는 평범한 삶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건 아님을 강조하고자 극중 라울의 역할을 굉장히 신경써서 재해석한다.


 최근에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고서 그 영화의 주인공은 앤디보단 레드가 아니냐며 내 나름대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탈옥에 성공한 앤디보다 희망을 위험하게 여겼지만 앤디처럼 드라마틱한 사람을 보고 생각의 변화가 생긴다는 점에서 레드가 관객을 대변한다는 논지에서 나온 주장이었다. 약간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도 팬텀과 대조되는 면을 보여서 진정 작가가 강조하고픈 가치는 오히려 라울에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팬텀이 되기 싫어 라울이 되기로 한 코노하, 그리고 작중의 범인은 라울임에도 팬텀을 질투하거나 팬텀의 의지하는 등 상당히 여러 유형의 정신파탄자들이 등장해 <오페라의 유령> 못지않은 스트레를 받은 게 잊혀지질 않는다. 최근에 <우부메의 여름>을 만화로 읽었는데 그때 접한 몇몇 캐릭터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 입장에선 잘해줬다지만 그게 피해자를 어찌나 기만한 건지 생각해보면 정말... 그에 비해 코노하는 이전보다 내적 성장을 이뤘기 때문인지 전보단 그 심상이 덜 답답하게 읽혔다. 뭐, 오미 시로의 말에 지 혼자 멘붕해 실어증에 걸리는 듯한 묘사 때문에 답답함이 치밀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초면인 사람한테 그렇게 쓴소릴 들어야 할 만큼 코노하가 한심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에 관해선 둘이 나중에 대화를 나누는데 이 장면도 괜찮게 읽혔다. 약간 질질 끌어서 사족 같은 경향이 있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 받은 만큼 훈훈하게 마무리를 지어서 읽을 가치는 충분했다. 그래, 다음 권에선 엄청난 멘탈 붕괴가 기다리고 있으니 이 정도 훈훈함도 있어야지, 안 그럼 코노하 녀석... 정말로 기절할 테니.



 p.s 얘기하다보니 이 글이 '더럽혀진 천사' 포스팅인지 <오페라의 유령> 포스팅인지 헷갈릴 정도로 다른 작품 얘길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본편이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한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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