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스타 로버트 A. 하인라인 걸작선 3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조호근 옮김 / 시공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7








 <더블 스타>는 하인라인의 출세작이자 휴고상 수상작으로도 유명한 소설이다. 저번에 읽은 <여름으로 가는 문> 못지않게 유쾌한 심상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이리도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이 소설의 재미는 곱절이나 떨어졌을 것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배우다. 정확히는 퇴물 배우다. 실력은 뛰어나지만 자신감은 그 이상이라서 주변의 실소를 자아내는 인물이다. 그래도 정치하는 인간들이 찾아가 의뢰를 맡길 정도면 정말 연기력은 탁월한 모양이다. 소설 속 묘사로는 그냥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만... 아무튼 작중 전개 대부분이 지구 밖에서 이뤄지는 이 황당무계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배우로서의 장인 정신을 어필하는 부분 등은 작품에 적잖은 리얼리티를 부여하곤 했다. 그러니 다행이었지.

 개인적으로 옛날 SF에서 자주 등장하는 화성과 화성인 설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56년도에 출간됐는데 마찬가지로 그 당시 SF 감성과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문제는 내가 그 감성을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화성이 언급되는 순간 어떤 작품이건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이 작품은 화성을 넘어서 우주적 차원의 정치 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데, 화성만큼이나 정치에도 취약한 나로선 아무래도 난관이 예상되는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위에서 말했지만 순전히 주인공의 매력이나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언뜻 SF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배우라는 직업은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표현됐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우주에서 이름을 날리는 정치인으로 분해야 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대역이란 처지가 마뜩찮으면서도 실력을 행사한다. 주인공은 원래 정치에 무관심했고 그나마 얼마 되지 않던 정치적 식견으론 자기가 연기해야 하는 정치인의 성향도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면서 전에 없던 내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옛날에 영화 <광해>가 개봉했을 때 비슷한 플롯의 작품이 많다며 왜 1,000만 관객이 동원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설마 비슷한 플롯이 50년대 미국 SF 소설에도 나왔을 줄은 몰랐다. 그 영화의 플롯을 떠올리면 난해하다 싶은 이 작품의 전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소설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지만 코드가 안 맞아서 그런지 디테일하게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그건 아쉬웠지만 비슷한 작품이나 요즘 이슈를 대입하며 읽으니까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광해>야 그렇다 쳐도, 선거 시즌에 이 작품의 내용을 곱씹으니까 나름 울림이 있었다.


 전에는 좌우가, 그러니까 진보와 보수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에 공감이 잘 안 갔는데 요즘 들어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반대측의 견제 없는 독주는 제한 없는 문제를 낳는다는 걸 요즘 유럽이 잘 보여주고 있잖은가. 통제 없는 진보나 개방 정책이 낳은 무분별한 표현의 자유라든가 혹은 집단 면역 시도를 보면서 그간 유럽 국가들을 선진국으로 여긴 내 가치관에 혼란을 많이 느꼈다.

 그런 면에서 요번주 투표 결과가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지 않은가 싶다. 더 압도적인 승리를 원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 균형이 있으니 혹시 모를 고름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몇 년 사이에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 영 시원찮은 일이 많이 발생한 걸 보고 역시 정치는 이미지 관리가 대부분이란 생각이 들어서 - 쉽게 말하면 결국 그놈이 그놈 - 나름 납득할 수 있는 결과기도 했고. 


 그렇다 보니 <더블 스타>의 주인공 로렌조가 보인 내적 변화에 동의할 수 있었다. 개개인의 성향은 단순히 좌우로 이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는 대체로 아군 아니면 적군이란 식으로 서로 편 가르며 흘러온 것 같다. 의외로 내가 질색해 마지않는 놈이 괜찮은 언동을 보일 때도 있고 평소에 흠모하던 사람이 되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일 때도 있는 것처럼 입체적이지 않은 사람이란 없는 것 같은데 이를 하인라인은 가상의 우주 정치극으로 하여금 괜찮게 은유해냈다. 로렌조가 자신의 배역인 실제 인물에 동화하다시피 한 게 단순히 배우로서 직업 정신이 발휘됐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나는 작가가 그 이상을 표현했다고 본다.

 하인라인의 성향은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할 만큼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하던데 그 성향은 일생 동안 쓴 수많은 작품에 녹아든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보다 경직됐다면 더 경직됐을 50년대에 저 정도로 입체적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하인라인에게 있어 SF는 참으로 탁월한 장르가 아니었을까. 집에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하인라인 선집이 몇 권 더 있는데 그 책들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