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8.7






 <철수 사용 설명서>는 젊은 청춘인 주인공 철수의 신세를 고장이 잦은 가전제품으로 대치시킨 소설이다. 흡사 매뉴얼 같은 문체를 구사하는데 철수의 인생과 미래를 성실하게 대변해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변호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독특하면서 알기 쉬운 비유로 가득찬 한 편의 시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 소설은 5년 전에 군대를 갓 전역한 내게 있어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읽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읽으니 전에는 감탄하며 읽었던 부분들이 지금은 식상하고 공허하게 다가왔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 좀 별로라서, 5년 전과는 달리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옅어진 상태라 이 작품이 별 감흥이 없게 읽힌 것 같다.

 매뉴얼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문체와 개성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일단 처음 읽었을 땐 신선했던 특징이 두 번째 접할 때는 딱 중언부언 그 이상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적인 묘사긴 했지만 다시 읽을 때도 똑같은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철수의 오작동에 대한 변호를 위해 '세탁기한테 왜 탈수가 안 되냐고 따지는 격'이라는 식의 변호가 번번이 들어가 금방 지겨워졌다.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과 비슷하게 이 작품의 주인공 철수도 대다수의 독자들의 공감을 살 만한 행보를 보이긴 하지만 그 공감대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독자들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자기 일'로 동일시하게끔 만들어주는 서사는 부실한 편이라 그 점이 아쉬웠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이 작품이 시처럼 읽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런 아쉬움 때문인 듯하다. 상황에 대한 묘사는 있을지언정 물이 흐르는 듯한 서사가 부족했다. 이러니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겹고 어떻고를 떠나 매뉴얼에 빙자해 철수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저의는 높이 살 만했다. 모든 사람한테 획일적인 잣대를 들이대느라 사람들의 다양한 가능성이 미처 발현되지 못한다는 작가의 웅변은 무척 감동적인 데가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한 개인을 연령대에 따라 이때는 이래야 하고, 요때는 요래야 하고, 저때는 저래야 하는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단 걸 떠올리면 철수를 가전제품에 비유한 건 너무나 적절했다. 너무나 보편적인 이름을 가진 철수가 그 이름에 걸맞는 보편성을 갖추긴커녕 오히려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자 부모를 비롯한 누나, 선생, 그녀들, 군대 조교와 회사 면접관들이 한숨을 쉬면서 철수를 오작동 투성이의 물건 취급하는 묘사는 적절하면 적절했지 결코 과한 비유가 아니었다.

 소설은 철수가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일단락 짓고 누군가 이 사용 설명서를 토대로 자신을 올바로 사용해주길 고대하다가, 문득 그 설명서를 자신이 제일 먼저 읽어야 함을 깨닫는다는, 다소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얼렁뚱땅 결말이 맺어진다. 조금 넘겨 짚자면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없이 따뜻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따뜻하다고 해서 얼렁뚱땅 결말이 지어졌다는 불만이 모조리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이 결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비록 소설이란 게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긴 하나 후반부에 '주의하기' 파트에서 철수가 누가 어떻게 바라봐도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오작동을 일으켰던 장면을 상기해보면 - 예를 들면 느닷없이 컵을 바닥에 던지는 장면 - 단순히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완성해서 그걸 자신부터 먼저 읽기로 하자는 깨닫는다고 결말이 맺어진다는 것은 너무 막연하게 희망적이지 않은가 싶었다.


 이 작품이 10년 전에 집필된 소설이고 그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청춘들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더 비관적이게 됐는지 가늠해보면 위와 같은 희망적인 결말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와 닿을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철수와 같은 나이대에 이른 내 입장에선 사뭇 비관적으로 여겨진다. 내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의 쓴맛을 많이 맛보며 살아온 편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작성한 사용 설명서를 읽는다는 것이 고작 자기 위안에 불과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르진 않다.

 분명 청춘의 우울함을 가감없이 묘파한 날카로운 작품임에도, 결말이 상대적으로 무른 편이라서 도리어 공허함만 커졌다. 어쩌면 다른 무엇도 아닌 청춘과 취업을 중심 소재로 다룬 만큼 유독 희망적인 결말에 반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문체나 묘사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과 상관없이 결말에 이르러선 보편적인 허무함이 남을 수 있다고 하면 말이 너무 심한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지금 내 시점에선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고 막막함이 드리워진 터라 이 작품이 이전처럼 마냥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는 작품의 문체가 식상하게 읽힌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참으로 씁쓸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384388731

 이 포스팅은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쓴 것이다. 두 글의 온도차가 너무 다르다...

사용 설명서가 완성되어 갈수록 철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읽고서도 엄마와 아버지, 누나가 철수를 선택했을까. 그녀들이나 친구들, 또 면접관들은 어땠을까. 이걸 읽고도 철수를 사용할 생각이 들었을까. 혹시 사용 설명서가 없는 제품이었기 때문에 철수를 선택하고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철수는, 과연 철수는, 철수를 선택했을까. - 147p




주의 사항은 점점 늘어 갔지만 사용자는 여전히 읽지 않았고 제품의 오작동도 더욱 잦아졌다. 사용 설명서는 좀 더 많은 주의 사항으로 몸을 불릴 테지만, 사용자는 그럴수록 읽는 게 더 귀찮았을지도 모른다. 읽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으니까. 사실 그게 그거니까. 그리고 그게 그거 아닌 제품이 시중에 유통될 리도 없으니까. - 202p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란 것을. - 2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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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9.5







 찬호께이가 내 안에서 신뢰해 마지않는 작가로 부상된지 오래지만 이 작품은 분량이 너무 많아 쉽게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설정도 그리 궁금증을 자아내지 못했고 홍콩의 현재를 그리고자 이 작품을 집필했다는 작가의 말도 좀 부담스럽기 짝이 없어 - 여담이지만 작가의 대표작 <13.67>은 홍콩의 과거를 그린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읽기 직전까지 꽤나 망설였다. 막상 읽기 시작하자 압도적인 깊이와 매력적인 캐릭터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특히 후반부 360페이지를 한 번에 쉬지 않고 읽어보긴 정말 오랜만이라 내 스스로가 뿌듯하기까지 했다. 작가가 긴 분량을 낭비 없이 알차게 써준 덕분에 독자로서 탄력이 붙지 않고 베길 수 없었다.

 이 작품을 얘기할 때 무면허 탐정이자 천재 해커인 아녜라는 캐릭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첫인상은 무례함의 화신이라 그야말로 최악이었지만, 그 무례함에 걸맞는 전지전능한 해킹 실력과 추리력, 심지어 사교력까지 겸비하고 있으며 매사 속이 시원한 언행을 보여 갈수록 매료당했던 캐릭터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의 리스베트와 일드 <리갈하이>의 코미카도가 연상됐다. 해킹 실력과 반사회성은 리스베트를, 언변과 위악적인 모습은 코미카도를 특히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리스베트가 사교성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에 비해 아녜는 필요에 따라 사교력을 발휘할 줄 안다는 것과, 코미카도가 변호사 업무를 제외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물인 반면 아녜는 다재다능하다는 것이다. 아녜는 두 캐릭터의 장점이 결합된 하이브리드형 캐릭터라 할 수 있는데 특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남발하지 않으려고 자신만의 규칙을 정한 모습, 그리고 정말로 위악적인 캐릭터인지 그냥 악한인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작품의 주제의식, 사람을 죽이는 것은 흉기가 아닌 악의라는 작가의 주장에 제대로 적합한 인물이라 아녜의 일거수일투족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망내인>은 미친 가독성과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무분별하게 지면을 차지하는 구절이 없었으며 치밀한 복선과 구성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스토리 텔링에 있어선 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모두 아녜라는 캐릭터에 가려져 간과하게 된 단점들이었는데, 일단 후반부에 드러나는 반전의 정체가 비교적 뻔한 편이었던 것과 - 작가의 작품을 다섯 번째 접하다 보니 이젠 작가가 이런 트릭을 애용한다는 게 예상이 됐다. - 작중에선 이미 죽은 존재인 아이의 동생 샤오원의 학창 시절이나 내면 묘사가 부족한 감이 있던 것, 그밖에도 후반부에 사건 전개가 신파적이었다는 점, 엄연히 치뤄야 할 죄가 있는 인물들에 대한 처벌이 미흡했던 것 등 은근히 걸리는 요소가 많았다.

 동생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아이의 모습과 인터넷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지만 정말로 나쁜 건 그 인터넷을 흉기로 다루는 인간이란 점을 짚어낸 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후기에서 밝혔듯 후반부에 너무 급하게 써내려간 느낌이 적잖아 나중에는 작가에게 집필 시간과 지면을 더 할애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작품한테 이런 아쉬움이 들긴 쉽지 않다. 이런 아쉬움은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이후로 거의 처음 느낀 건데, 그나마 찬호께이의 문체가 가독성이 좋아 빨리 읽혔고 또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라 허무함이 덜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위에서 내가 지적한 요소들에 대해 누군가가 그래봤자 트집이 아니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이만한 분량의 이야기를 오류 없이 끝마친 작가는 정말 존경해 마땅하니까. 기존 기획에 비해 이야기가 끝도 없이 길어진 것치고 작가가 끈기 있게 매달려 결말을 낸 건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다. 다만 주인공의 매력 못지않게 작가가 사건 전개와 여러 캐릭터의 사연에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던 만큼 조금만 더 균형감이 있는 이야기를 선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드는 것 같다. 이런 욕심에 가까운 아쉬움을 자꾸 토로하는 걸 보니 내가 이 작품에 어지간히 몰입했던 모양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대표작 <13.67>이 분량은 엇비슷하지만 연작소설집이 아닌 장편소설이란 점에서 무게감이 남달랐다. 그냥 장편소설도 아니라 그것도 정말 제대로 된 사회파 장편 추리소설이라서 숱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 난 직후에 느껴지는 경이로움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작가가 쓴 <풍선인간>의 수록작들처럼 짧고 굵은 단편도 소름 돋는 법이지만 역시 길면 길수록 방향이 흔들리기 쉬운 장편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700페이지 넘게 호흡을 이어온 장편 쪽에 개인적으로 더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작가 본인은 수박 겉 핥기 수준으로 인용했다는 해킹의 원리도 딱 필요한 부분만 전문적으로 잘 기술해 읽는 맛을 더했고 생각보다 결말도 깔끔해 도리어 전에 없이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결말이 깔끔한 한편으로 얼마든지 후속작이 나올 만한 여지도 남겨졌는데, 작가도 후속작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줬음 좋겠다. 그런데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그때는 적대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탐정의 의뢰 성공 여부보다 의뢰인이 탐정의 전지전능한 능력에 취해 언제 몰락할는지 지켜보는 게 흥미로운 요소였지만 후속작에선 탐정이 본격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어야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워질 듯하다. 뭐,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김칫국 마시고 있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긴 하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망내인> 역시 지극히 홍콩스런 특징이 물씬 드러난 작품이었다. 이 흔치 않은 특성이 너무 매력적이라 작가의 후속작이나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부디 홍콩스런 특징만은 건재하길 바랄 뿐인데, 요새 홍콩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예전 같지 않아 작가의 집필 활동이 못내 걱정이 된다. 본래 유명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지만, 독서 인구가 적은 홍콩에서 찬호께이처럼 재능 있는 추리소설가가 나오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라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13.67>로 처음 접하고 이렇게 <망내인>까지 접하니 이 작가가 정말 국보급이란 생각까지 든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의 작품 중 아직 두 권이나 못 읽었다는 게 그저 위로가 될 따름이다.

인간은 자기가 이기적인 동물이란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우리는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겉으로 아주 약간의 악의도 용납하지 못하지만, 여유를 잃으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죠. 그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인간은 핑계를 잘 대거든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용기도 없으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 편안해지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위선이죠. - 6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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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소르시에 2
호즈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4







 우리가 아는 고흐의 삶은 모두 거짓이며 고흐의 삶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황당한 상상을 선보이는 만화다. 예전에 읽었을 땐 황당무계하다고만 여겼는데 지금 읽으니까 작가 나름대로 고흐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이런 스토리를 짜지 않았나 싶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고흐의 팬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 건 똑같지만... 고흐의 삶을 통째로 각색한 점을 말고도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꽤 있어 가볍게 읽기엔 괜찮았다. 애당초 이 만화의 황당한 내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나만 손해지.

 일단 당시 미술에 대한 아주 고리타분한 사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주목한 건 좋았다. 고흐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화풍 때문에 당대에는 외면을 받은 예술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고흐가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권위주의에 찌든 미술계의 폐단을 그린 건 대단히 흥미로웠다. 막판에 이 악의 무리나 다름없던 미술계가 일처리를 허술하게 하는 게 납득이 좀 안 갔지만 이 즈음에는 고흐 형제의 우애에 더 초점이 가서 아주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기껏 초장에서부터 미술계의 패단을 강조한 것에 비해 결말은 영 따로 노는 느낌이 없잖았다. 오히려 그런 묘사대로라면 원래 고흐의 삶을 그대로 그리는 게 더 맞는 듯한데...... 너무나 초라하게 죽은 형 고흐가 '불꽃의 화가'로 기억되게끔 그의 삶을 통째로 각색하고자 하는 동생 고흐의 모습은 너무 급작스러웠다. 이 작품에는 미술계의 선민의식을 깨부수는 화상과 화가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선택받은 재능의 소유자인 형 고흐가 재능을 받지 못한 동생 고흐의 설계대로 진정한 천재 화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아냈는데 이 중에 첫 번째 요소가 너무 흐지부지된 것 같아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천재 화상 동생 고흐의 활약으로 그림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이 즐기는 것이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부분이 무척 짜릿했던 것에 비해 형 고흐와 엮여서 천재성이니 어쩌니 언급하는 부분은 식상하고 황당한 장면도 연속으로 나와 전체적으로 균형이 좀 안 맞는 느낌도 받았다. 이 만화가 분량이 몇 권 더 있었다면 이야기도 더 방대해지고 따로 노는 감이 있던 두 이야기도 잘 맞물려 황당함이 덜했을 텐데 단편으로 너무 급하게 매듭이 지어져 그 부분이 못내 아쉽다.


 개인적으로 천재성 운운하는 부분은 아까 말했듯 식상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디까지 계획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성공적으로 형의 재능을 개화시킨 동생 고흐의 캐릭터성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생 고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략을 가진 선구자적인 캐릭터이자 고흐라는 유명인의 숨은 조력자라는 두 개의 개성을 녹여낸 게 재밌었다. 너무 판타지스런 능력의 소유자긴 했지만, 일종의 스릴러의 분위기도 띄는 작품의 특성상 이만한 능력치의 주인공이 나와줘야 전개가 가능하니 그의 활약이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작가로서 애정이 퍽 갔을 만한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작품의 분량이 한 권이라도 더 있었다면 더욱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뤄질 리 없는 욕심이긴 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인 캐릭터였기에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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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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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이 작품의 저자가 직접 감독으로서 촬영한 동명의 영화를 인상 깊게 봐서 원작 소설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저자는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으며 - 국내에는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유레루>로 유명한 감독이다. - 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거나, 반대로 본인이 쓴 소설을 영화로도 만드는 등 상당한 필력을 가진 사람인 듯했다. 다행히 그 기대는 거의 들어맞았지만, 의외로 비슷한 결의 이야기임에도 결말을 보고 난 다음의 만족도가 영화보다 못해 그 점이 의아했다. 보통 똑같은 스토리라면 영화보단 소설이 더 좋은 법인데? 특히 이 작품처럼 예민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올수록 그런 경향이 짙은데 말이다.

 주인공이 이래저래 문제적 인물인 지라 영화에서처럼 여백 있는 묘사가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이미 사랑이 떠난지 오래인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잊을 만하면 예민하게 굴어 주변을 난감하게 구는 모습 등은 반감을 줬지만 그래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참작의 여지도 있었는데 소설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살펴보노라니 갈수록 정이 떨어졌다. 제목대로 변명이 끝날 기미 없이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라 오히려 소설이 끝났을 땐 후련하기 보단 황당했다. 너무 느닷없이 결말이 나버린 탓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소설의 문체가 디테일하고 수려하긴 해도 영화에 비해선 다소 지리멸렬해 눈에 잘 안 들어왔던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무리 필력이 좋아도 결국 본업이 영화 감독이라 그런가... 그 외에도 영화와는 아예 다른 내용이 몇 가지 있던데 나는 영화에서 수정된 버전이 훨씬 좋았다. 가령 요이치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경찰서에 가게 된 경위라거나 초반에 주인공이 옛날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도 너무 과하거나 사족인 감이 있어 영화 쪽이 없앨 건 잘 없앴고 살릴 건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1인칭 관점보다 가끔씩 주변인물의 시선을 통해 주인공을 바라보던 전개가 더 흥미로웠다. 주인공의 자격지심과 염세주의, 어느 순간에서고 떳떳하지 못한 모습은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뒤로 갈수록 질렸던 것에 비해 한 번씩 등장하고 말았던 주인공의 방송 쪽 매니저나 다큐멘터리 스태프, 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시선에서 주인공을 까는 게 신랄한 맛이 있어 책이 탄력적으로 읽혔다. 작가도 주인공의 1인칭 전개만으론 독자들이 버거워할 것을 알았는지 이런 교차 서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내가 봤을 땐 이 연출이야말로 신의 한 수라고 여겨졌다. 단순히 가독성의 문제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꾸며줬고, 무엇보다 주인공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어 독자 입장에서 주인공과 거리를 두며 작품 전체에 녹아있는 감정선을 받아들이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출이 없었더라면 지나치게 주인공에게 물들었거나 혹은 완전히 질릴 대로 질려 다 읽기도 전에 책을 집어던졌을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주인공을 여러모로 부정적으로 묘사한 게 어떻게 보면 작가의 자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글을 잘 쓰면 사람들이 선생이라 부르며 인정해주지만 과연 집필 행위가 그 정도로 대접을 받을 만한 노동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관한 작가 나름대로의 신랄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당장 주인공부터가 작가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디에서도 내세울 수 없는 자격지심에 찌든 인물인데 그 특유의 예민함을 장기로 내세웠을 소설들로 유명세를 얻어 그만한 지위를 얻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객관적으로는 별로 상대하고 싶지도 않은 기질의 남자가 그 기질을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투영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기며 상대해주는 사람이 됐다는 점에서 예술의 위력 내지는 허상까지 느껴졌다. 작품 주제에서 좀 벗어난 얘기인 것 같지만, 작가로서 성공한 주인공의 모습을 선망하는 사람인 터라 주인공이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영위하는지 그 여부가 몹시 눈길이 갔다.


 <아주 긴 변명>은 이미 사랑이 떠난 아내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긴 시간에 걸쳐 변명을 쏟아내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내내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감정선을 어디에도 피력하지 않은 채 속으로 꽁꽁 숨기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 고민을 실토해버린다. 쉽게 말해 인간으로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서 드디어 제정신을 차려 사람이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을 내비치며 작품은 끝난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나름대로 이방인으로서 세상의 흐름에 순응해 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에 비해 소설에선 안에 있는 감정을 모두 토해내고 정상적인 감정과 마주한다는, 약간 식상하고 크게 감흥도 없는 마무리를 선보여 어째 뒷맛이 찝찝했다.

 내가 영화를 본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시간이 흘러 내 감성에도 변화가 생겼으리란 걸 감안해도 3년 전에 본 영화나 지금 읽은 소설의 느낌이 달라 당혹스럽다. 단순히 소설의 부족한 점을 영화에서 잘 보완한 것이라고 넘어가기엔 영화나 소설 둘 다 내용은 판박이라 왜 이렇게 감상의 차이가 나는지 좀처럼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궁금증은 아무래도 영화를 보면서 해소해야겠다. 영화를 볼 때 소설의 내용이 기억나야 할 텐데......

저렇게 참혹한 일을 당했을 때, 사치오 자신은 저 사람들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증오심에 미쳐 날뛸 가능성을 갖고 있거나 또는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처럼 주저 없이 순수하게 분노나 슬픔에 잠길 수 없는 경우, 그 앞에는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그 역시 두려웠다. - 74p




친근한 사람들 앞에서는 걱정이나 억측을 하지 않도록 더욱이 금실을 가장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우리 부부가 이미 금실의 실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나. -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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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8.9







 노르웨이를 여행할 때 서점을 많이 갔는데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Krim' 코너가 꽤 크게 마련된 것인데 여기서 'Krim'은 노르웨이어로 범죄를 가리킨다. 북유럽에서 추리소설, 범죄소설이 주류 문학이라고 듣긴 했지만 이렇게 서점에서 크게 진열할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 풍경에 적잖이 놀랐다. 그 코너엔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인 요 네스뵈의 작품이 주를 이뤘지만 개중에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작가의 작품 역시 진열되어 있었다. 바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였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는 현존하는 북유럽 추리소설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유명하고 작가가 시리즈 출간 전에 심장마비로 돌연사한 것, 자신의 작품이 초대박이 나는 걸 당사자가 보지 못했다는 아이러니함과 이후 이 작품의 저작권에 대한 소송과 새로운 대필 작가가 투입해 시리즈가 이어진 점까지... 지금 시점에선 오히려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에 인구에 회자된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참으로 얘깃거리가 풍부한 작품이다. 그래서 묘하게 시리즈의 스토리와 주제의식이 덜 주목받는 느낌도 있는데... 최근에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완결을 낸 시리즈 2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중도 하차한 독자로서 역시 스티그 라르손이 작업한 1부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전에 비해 스티그 라르손의 진가가 더 느껴져서 이번 재독은 제법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자극적인 제목 못지않게 내용도 상당히 자극적인 작품이다. 간단히 말해 이 작품은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을 증오하는 여자인 리스베트가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을 발견 즉시 묵사발을 내는 내용이다. 혹자는 제목만 보고 여혐 작품이라 근거도 없는 추측을 하던데 - 설마 그럴까 싶겠지만 실제로 봤다... - 이 작품은 여혐과는 영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 작품은 여혐을 혐오한다. 작가는 주인공 리스베트의 말을 빌려 그 어떤 핑계를 붙여도 결국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자기 의지로 여자를 증오하기로 선택한 쓰레기들이라 일갈한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무슨 연원으로 그런 쓰레기가 됐는지 그 배경을 헤아려보는 것도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리스베트처럼 폭력적일 정도로 단호한 태도도 필요하단 건 인정한다. 세상엔 양심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치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그래서 이 작품이 유독 쾌감이 넘치는 것일 테고 사람들이 그에 열광해서 그렇게 많이 팔린 거겠지.

 위에서 잠깐 말했듯 북유럽 문화권에선 추리소설이 꽤 주류 문학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쪽 나라가 범죄율도 너무 낮고 평화로워서 소설로라도 짜릿한 이야기를 찾는 거라 말하는데,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말은 명백히 잘못된 말이라 생각한다. 물론 추리소설이 오락적 요소를 중시하는 장르인 건 맞지만 북유럽 추리소설은 단순히 오락적 요소만 추구한다고 하기엔 안 맞는 구석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봤을 때 북유럽 사람들은 추리소설을 일종의 사회학 보고서로 여기는 듯하다. 자국의 사회 문제를 두고 '우리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 하고 자문하는 보고서 말이다. 그들의 선진적인 정책, 가령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하는 복지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지만 그런 대외적인 측면으로 선망하기엔 결국 북유럽도 사람 사는 동네고 극악무도한 범죄가 발생하는 곳임을 북유럽 추리소설가들은 꽤나 낱낱이 묘사한다. 북유럽에 대한 로망이 있던 독자라면 이처럼 누워서 침 뱉는 격의 작풍에 놀라는 경우가 적잖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읽은 북유럽 추리소설 중 자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하는 작품은 단 한 개도 없었고 반대로 외국인이 읽기에도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을 만큼 범죄의 소굴로 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밀레니엄' 시리즈는 그러한 경향의 북유럽 추리소설의 최전선을 달린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스웨덴의 사회상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첫 장이 대뜸 '스웨덴 여성의 18퍼센트는 살아오면서 한 번 이상 남성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다'고 시작될 정도니 말 다했다. 그 이후로 스웨덴 복지 시스템의 모순과 구멍, 복지국가라 과대평가된 스웨덴의 현실을 과감없이 비판하는데 기자 출신 작가라 그런지 묘사들에 거침이 없다. 너무나 직설적이라 때론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르포를 읽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는데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이고 나 역시도 어느 정도는 불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기자 출신 작가다 보니 소설적 문체와는 결이 다른 구석이 많이 느껴졌다. 특히 재벌의 비리를 고발하고 추적하는 초반부와 최후반부의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상당한 끈기를 요구했는데 이 부분만 따로 놓고 보면 이 시리즈가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지루해서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기 그지없었다. 작품의 유명세를 믿고 끝까지 읽었기에 망정이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읽었으면 중도 하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나마 기자로서의 경험을 녹여낸 부분들이 후반에 기자 윤리에 관한 중요한 딜레마를 다룰 때 꽤 강렬한 효과를 낳기에 최소한 본전치기는 한 셈이 됐다. 왜 이 작품의 주된 화자를 기자로 설정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작품의 단점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한 거대 기업의 회장의 명예를 훼손시킨 혐의로 기자로서 신용도가 땅에 떨어진 미카엘은 방예르 가문의 회장 헨리크에게서 기이한 의뢰를 받게 된다. 30여년 전 실종된 손녀의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의뢰였는데, 기자가 받을 만한 의뢰가 아니었지만 마땅히 당장 할 일도 없고 헨리크가 제시하는 조건이나 보상이 파격적이기도 해 결국 미카엘은 의뢰를 수락한다. 처음엔 헨리크의 말대로 수확이 없어 미카엘 본인도 심드렁할 뿐이었지만 조사할수록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단서들이 드러나게 된다. 의욕이 붙은 미카엘은 천재 해커이자 탐정인 리스베트까지 동원해 끝내 예상치 못한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진실의 내용보다도 진실이 드러나거나 다다르는 연출이 정말로 예상치 못했다고. 좋게 말해 신선하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허무하다고.

 이야기 자체는 아주 고전적인 본격 추리소설의 전형이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게 진행된다. 일단 '밀레니엄' 시리즈는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밀실이니 알리바이니 하는 트릭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거대하고 알기 쉬운 미스터리가 등장하긴 하지만 작가는 수수께끼 풀이만큼이나 스웨덴의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주력해 얼핏 이야기가 지루하고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도 많고 진행도 더뎌 과연 800페이지 안으로 이 소설이 끝나긴 할까 싶었는데 막상 이야기가 발동이 걸리자마자 미스터리는 허무하게 풀리고 결말도 다소 썰렁한 데가 있어 그 잔혹한 묘사들을 모두 견디고 후반부까지 쫓아온 보람이 기대보다 덜하다는 아쉬움도 들었다. 누가 이 작품을 두고 주제의식과 캐릭터를 제외하면 남는 것 없다고 말하던데 난 그 평가를 크게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이 소설은 엄밀히 말해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독자들의 감성과 취향에 부합해 한국 독자들한테 어필하기 미묘한 구석도 많다고 본다. 특히 마성의 남자 미카엘과 강인한 여성 리스베트는 그 난잡하다고 할 수 있을 사생활 때문에라도 반감을 느낄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10년 전에 읽었을 때는 작중에서 호불호가 갈릴 요소들이 거의 불호로 다가왔지만 나이 좀 먹고 다시 읽으니까 단점이 명확히 보이면서도 취향에 맞는 요소들도 제법 있었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두고 '어른들의 해리포터'란 수식어가 있던데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괜히 해리포터란 단어에 혹해 어린 독자들이 읽는 일이 없게끔 만류하고 싶은 장면들이 많기 때문인데... 이 말은 다소 고루한 발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이렇게나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기에 남녀노소 모두가 읽어야 바람직하다고 말했겠는데 이 작품은 나이 어린 독자들도 포용하기엔 너무 정신 나간 매력으로 충만한 작품이라 남녀라면 몰라도 노소한테 추천하긴 꺼려진다.

 '밀레니엄' 시리즈 1부에 해당하는 1편부터 3편까지는 스티그 라르손이 집필했다. 2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로선 1부만이 오리지널로 느껴지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다시 읽어도 눈에 밟히는 단점들이 지금 와선 보물처럼 느껴졌다. 신인 소설가 특유의 패기와 거칠고 투박한 문체까지 총망라된 데뷔작을 읽고 있으니 여럿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독서했다. 일부 가독성이 열악한 구간만 제외한다면 재독한 보람이 충분한 작품이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남은 2편과 3편이 기대됐다. 비교적 본격 추리소설의 느낌을 풍긴 1편과 달리 2, 3편은 결이 또 다른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바뀐 스타일이 스티그 라르손이 추구한 사회파 추리소설엔 대단히 잘 어울렸던 걸로 기억한다. 적어도 1편보다 덜 지루하겠구나 싶어 벌써부터 안심이 된다.

당신 생각이 틀린 것 같아요. 그자는 성경을 너무 읽다가 미쳐버린 연쇄 살인범이 아니에요. 그저 여자들을 증오하는 쌔고 쌘 쓰레기일 뿐이죠. - 2권 1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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