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긴 변명
니시카와 미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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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이 작품의 저자가 직접 감독으로서 촬영한 동명의 영화를 인상 깊게 봐서 원작 소설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저자는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으며 - 국내에는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유레루>로 유명한 감독이다. - 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거나, 반대로 본인이 쓴 소설을 영화로도 만드는 등 상당한 필력을 가진 사람인 듯했다. 다행히 그 기대는 거의 들어맞았지만, 의외로 비슷한 결의 이야기임에도 결말을 보고 난 다음의 만족도가 영화보다 못해 그 점이 의아했다. 보통 똑같은 스토리라면 영화보단 소설이 더 좋은 법인데? 특히 이 작품처럼 예민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올수록 그런 경향이 짙은데 말이다.

 주인공이 이래저래 문제적 인물인 지라 영화에서처럼 여백 있는 묘사가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이미 사랑이 떠난지 오래인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 잊을 만하면 예민하게 굴어 주변을 난감하게 구는 모습 등은 반감을 줬지만 그래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참작의 여지도 있었는데 소설에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살펴보노라니 갈수록 정이 떨어졌다. 제목대로 변명이 끝날 기미 없이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라 오히려 소설이 끝났을 땐 후련하기 보단 황당했다. 너무 느닷없이 결말이 나버린 탓도 있지만, 솔직히 말해 소설의 문체가 디테일하고 수려하긴 해도 영화에 비해선 다소 지리멸렬해 눈에 잘 안 들어왔던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아무리 필력이 좋아도 결국 본업이 영화 감독이라 그런가... 그 외에도 영화와는 아예 다른 내용이 몇 가지 있던데 나는 영화에서 수정된 버전이 훨씬 좋았다. 가령 요이치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경찰서에 가게 된 경위라거나 초반에 주인공이 옛날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도 너무 과하거나 사족인 감이 있어 영화 쪽이 없앨 건 잘 없앴고 살릴 건 잘 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주인공의 1인칭 관점보다 가끔씩 주변인물의 시선을 통해 주인공을 바라보던 전개가 더 흥미로웠다. 주인공의 자격지심과 염세주의, 어느 순간에서고 떳떳하지 못한 모습은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뒤로 갈수록 질렸던 것에 비해 한 번씩 등장하고 말았던 주인공의 방송 쪽 매니저나 다큐멘터리 스태프, 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시선에서 주인공을 까는 게 신랄한 맛이 있어 책이 탄력적으로 읽혔다. 작가도 주인공의 1인칭 전개만으론 독자들이 버거워할 것을 알았는지 이런 교차 서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내가 봤을 땐 이 연출이야말로 신의 한 수라고 여겨졌다. 단순히 가독성의 문제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작품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꾸며줬고, 무엇보다 주인공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을 엿볼 수 있어 독자 입장에서 주인공과 거리를 두며 작품 전체에 녹아있는 감정선을 받아들이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출이 없었더라면 지나치게 주인공에게 물들었거나 혹은 완전히 질릴 대로 질려 다 읽기도 전에 책을 집어던졌을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주인공을 여러모로 부정적으로 묘사한 게 어떻게 보면 작가의 자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글을 잘 쓰면 사람들이 선생이라 부르며 인정해주지만 과연 집필 행위가 그 정도로 대접을 받을 만한 노동이라 부를 수 있는지에 관한 작가 나름대로의 신랄한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당장 주인공부터가 작가로 성공하지 못했다면 어디에서도 내세울 수 없는 자격지심에 찌든 인물인데 그 특유의 예민함을 장기로 내세웠을 소설들로 유명세를 얻어 그만한 지위를 얻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객관적으로는 별로 상대하고 싶지도 않은 기질의 남자가 그 기질을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 투영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기며 상대해주는 사람이 됐다는 점에서 예술의 위력 내지는 허상까지 느껴졌다. 작품 주제에서 좀 벗어난 얘기인 것 같지만, 작가로서 성공한 주인공의 모습을 선망하는 사람인 터라 주인공이 작가로서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영위하는지 그 여부가 몹시 눈길이 갔다.


 <아주 긴 변명>은 이미 사랑이 떠난 아내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주인공이 긴 시간에 걸쳐 변명을 쏟아내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내내 남들에게 이해받지 못할 감정선을 어디에도 피력하지 않은 채 속으로 꽁꽁 숨기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 고민을 실토해버린다. 쉽게 말해 인간으로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했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서 드디어 제정신을 차려 사람이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을 내비치며 작품은 끝난다. 영화에선 주인공이 나름대로 이방인으로서 세상의 흐름에 순응해 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에 비해 소설에선 안에 있는 감정을 모두 토해내고 정상적인 감정과 마주한다는, 약간 식상하고 크게 감흥도 없는 마무리를 선보여 어째 뒷맛이 찝찝했다.

 내가 영화를 본 지 시간이 좀 지나서 기억이 안 나는 건가. 시간이 흘러 내 감성에도 변화가 생겼으리란 걸 감안해도 3년 전에 본 영화나 지금 읽은 소설의 느낌이 달라 당혹스럽다. 단순히 소설의 부족한 점을 영화에서 잘 보완한 것이라고 넘어가기엔 영화나 소설 둘 다 내용은 판박이라 왜 이렇게 감상의 차이가 나는지 좀처럼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궁금증은 아무래도 영화를 보면서 해소해야겠다. 영화를 볼 때 소설의 내용이 기억나야 할 텐데......

저렇게 참혹한 일을 당했을 때, 사치오 자신은 저 사람들을 능가하는 무지막지한 증오심에 미쳐 날뛸 가능성을 갖고 있거나 또는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들처럼 주저 없이 순수하게 분노나 슬픔에 잠길 수 없는 경우, 그 앞에는 뭐가 있을까를 생각하면 그 역시 두려웠다. - 74p




친근한 사람들 앞에서는 걱정이나 억측을 하지 않도록 더욱이 금실을 가장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해야 했던 것은 우리 부부가 이미 금실의 실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나. - 1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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