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소르시에 2
호즈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8.4







 우리가 아는 고흐의 삶은 모두 거짓이며 고흐의 삶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황당한 상상을 선보이는 만화다. 예전에 읽었을 땐 황당무계하다고만 여겼는데 지금 읽으니까 작가 나름대로 고흐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이런 스토리를 짜지 않았나 싶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고흐의 팬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 건 똑같지만... 고흐의 삶을 통째로 각색한 점을 말고도 이 작품에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꽤 있어 가볍게 읽기엔 괜찮았다. 애당초 이 만화의 황당한 내용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나만 손해지.

 일단 당시 미술에 대한 아주 고리타분한 사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주목한 건 좋았다. 고흐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화풍 때문에 당대에는 외면을 받은 예술가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고흐가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권위주의에 찌든 미술계의 폐단을 그린 건 대단히 흥미로웠다. 막판에 이 악의 무리나 다름없던 미술계가 일처리를 허술하게 하는 게 납득이 좀 안 갔지만 이 즈음에는 고흐 형제의 우애에 더 초점이 가서 아주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기껏 초장에서부터 미술계의 패단을 강조한 것에 비해 결말은 영 따로 노는 느낌이 없잖았다. 오히려 그런 묘사대로라면 원래 고흐의 삶을 그대로 그리는 게 더 맞는 듯한데...... 너무나 초라하게 죽은 형 고흐가 '불꽃의 화가'로 기억되게끔 그의 삶을 통째로 각색하고자 하는 동생 고흐의 모습은 너무 급작스러웠다. 이 작품에는 미술계의 선민의식을 깨부수는 화상과 화가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선택받은 재능의 소유자인 형 고흐가 재능을 받지 못한 동생 고흐의 설계대로 진정한 천재 화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아냈는데 이 중에 첫 번째 요소가 너무 흐지부지된 것 같아 허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천재 화상 동생 고흐의 활약으로 그림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사람이 즐기는 것이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부분이 무척 짜릿했던 것에 비해 형 고흐와 엮여서 천재성이니 어쩌니 언급하는 부분은 식상하고 황당한 장면도 연속으로 나와 전체적으로 균형이 좀 안 맞는 느낌도 받았다. 이 만화가 분량이 몇 권 더 있었다면 이야기도 더 방대해지고 따로 노는 감이 있던 두 이야기도 잘 맞물려 황당함이 덜했을 텐데 단편으로 너무 급하게 매듭이 지어져 그 부분이 못내 아쉽다.


 개인적으로 천재성 운운하는 부분은 아까 말했듯 식상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어디까지 계획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성공적으로 형의 재능을 개화시킨 동생 고흐의 캐릭터성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생 고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지략을 가진 선구자적인 캐릭터이자 고흐라는 유명인의 숨은 조력자라는 두 개의 개성을 녹여낸 게 재밌었다. 너무 판타지스런 능력의 소유자긴 했지만, 일종의 스릴러의 분위기도 띄는 작품의 특성상 이만한 능력치의 주인공이 나와줘야 전개가 가능하니 그의 활약이 그렇게 어색하진 않았다. 작가로서 애정이 퍽 갔을 만한데 위에서도 말했지만 작품의 분량이 한 권이라도 더 있었다면 더욱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뤄질 리 없는 욕심이긴 하지만, 그만큼 인상적인 캐릭터였기에 이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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