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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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국내에 출간되는 순서가 워낙 뒤죽박죽인 시리즈라 매번 전편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읽게 된다. 그래도 이번 6권은 '오슬로 3부작'과 <스노우맨> 사이에서 쉬려는 듯 나름 독립적인 에피소드라서 별 어려움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노르웨이에서 읽은 터라 몰입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아무래도 시리즈의 작품 중 처음 접했던 <스노우맨>의 직전 이야기라 정서적 연결고리가 형성돼 만족도가 꽤 높았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이는 유독 출간 순서가 오락가락한 우리나라의 독자들만이 경험할 일이리라.

 요 네스뵈의 강점은 백과사전 수준의 두께의 분량과 그에 걸맞는 작품의 밀도를 들 수 있다. 장편소설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 맞춰 들어가는 각 요소의 구성이 일품으로 충분히 하나의 중, 단편으로 분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장면이나 설정들이 해리의 성장담과 도덕적 딜레마에 맞춰 상당히 하드보일드적으로 연결됐다. '중2병'과 '간지'의 기로에 있어야 표현이 가능한 하드보일드적인 작풍은 여전하고 굳이 크로아티아인을 개입시킨 청부 살인이란 본편의 핵심 사건도 제법 박진감 넘쳤다.

 처음엔 다소 뜬금없고 지루했지만 이내 범해지는 비정한 진행 방식에 또 속절없이 읽어내려가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뻔한데 참신하게 사고를 전환시켜 눈을 번쩍 뜨게 만든 트릭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아르네 묄레르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가히 일본인도 울고 갈 죄의식이 그려진 건 익숙한 한편으로 신선했다.


 일본과 더불어서 중국과 북유럽의 추리소설도 좀 믿고 읽는 편인데, 중국은 일본 추리소설의 엔터테인먼트가 더 부각된 추리소설을 쓰고 북유럽은 사회파적인 면모가 강조된 추리소설을 잘 쓴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된다. 특히 요 네스뵈는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뛰어났던 몇몇 작품을 선보여 그런 인상이 더욱 남았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근에 읽은 작가의 작품 <바퀴벌레>가 마치 '양산된 범죄 소설' 같은 모양새였던 걸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이번에 그려진 구세군 조직의 병폐는 그 어디에도 이상적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진단과 일맥상통해 이젠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노르웨이처럼 부유하고 복지가 탄탄하고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높다고 해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해리 홀레' 시리즈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 관용을 잃었을 때 터질 비극이나, 심지어는 연쇄 살인까지 모조리. 허무맹랑하거나 결코 자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리라 여겨지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글쎄, 진짜 노르웨이인에겐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는데 어디에도 완벽한 세상이 없다는 것은 곧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어서 문제가 생긴다는 말과 같은데 노르웨이가 사람 사는 곳이라면 크게 다를 리 없을 테니, 또 구세군이라고 마냥 청렴하게 운영될 턱이 없을 테니 퍽 일리 있게 들렸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을 당시 노르웨이를 여행 중이었던 나는 눈에 담겨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너무 대비되는 작품의 내용에 괴리감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론 노르웨이란 나라를 이해할 척도가 부분부분 제시된 것도 같아 의미심장하게 읽혔다. 실제로 경찰과 어떤 식으로 마주치는 경우 없이 여행은 무사히 잘 다녀왔는데 - 책의 지도를 참고 삼아 경찰청 앞을 지나가보긴 했다. - 작중 시기가 시기인 터라 적잖이 몰입됐다.

 물론 노르웨이 소설이라고 노르웨이를 이해해야 감상할 수 있다는 게 꼭 장점이리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이를 확실히 장점으로 승화시킨 면이 적잖다. 이게 바로 요 네스뵈의 작품이 여느 양산형 범죄 소설과 차별화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작가의 천부적인 재능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국민 500만 명 중 한 사람이 작가적 사명감을 띄고 승화시킨 이야기,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자 어마어마한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어째 작품의 내적인 이야기보다 외적인 이야기만 하게 됐는데;; 오히려 이야기 본편보다 비아르네 묄레르의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라서 이런 식으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묄레르의 이야길 읽어야 작품 전체상이 이해가 되는 등 이래저래 작품의 또 하나의 주요 에피소드였으니까.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흡사 일본인에 비견될 죄의식이 묘사됐는데 진지할 뿐더러 사뭇 문학적이라 한 번 읽은 것만으로 손대기 힘들 지경이다. 어쩌면 노르웨이 특유의 애수가 가장 깊이 드러난 부분일 수 있으니까... 다음에 두 번째 읽고 포스팅할 때는 이 점을 중점적으로 언급해야지.

차별받는 사람들이 꼭 이 사회의 약자는 아니라는 게 우리 측 주장입니다. - 168p




순간적으로 해리는 마음이 약해져 진한 연민을 느꼈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에게가 아니라, 이렇게 가슴 아픈 순간에 자신의 한심한 인간성을 보게 된 남자에게. - 340p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리학처럼 질문은 많고, 대답은 가설일 뿐이지. - 351p




올바른 행동은 게으르고 비전 없는 사람들의 미덕이지. - 6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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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구미의 돈까스 취업 2 -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좌충우돌 취업 분투기
정구미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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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예전에 한창 논란이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웹툰 <세 개의 시간>을 읽었던 이유는 작가 노란구미의 스토리텔링 자체에 반했기 때문이다. 국적이나 취업 등 자전적이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내는 게 좋았기 때문인데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이번에 읽게 돼서 여러모로 즐거웠다. 세대 차이는 좀 나지만 거의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으니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일 수가 없던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싶은데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고 누구도 내게 채근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더해지는 우울한 심정을 유머 코드와 섞어 완급을 조절해 표현한 작가가 과연 대단했다. <세 개의 시간> 때도 돋보였던 재일 교포의 정체성에 대한 파트를 다루는 솜씨도 남달랐고.

 혹자는 <돈까스 취업>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괜찮다고 하는데 <세 개의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은주의 방>이 아직 연재 중이라 판단하기 힘들단 걸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분량도 두 권으로 깔끔하게 끝나서 진입 장벽도 낮고 무엇보다 제목이 독특한 것도 강점 중 하나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이 작품은 돈까스 가게에 취업하는 얘긴 아니고;; 대신 돈까스가 일본에서 시험이나 면접 등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먹는 음식이라는 맥락에서 붙인 단어다. 돈까스의 일본 발음 '톤카츠'에서 '카츠'는 '이긴다'는 뜻의 '카츠勝'와 발음이 같은 것에서 일본인들의 미신/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엿이나 찹쌀떡 같은 것이려나? 아무튼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반다이에 취업하려 했지만 좌절당한, 혹은 스스로 포기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현재 만화가로서 나름 족적을 남긴 작가의 성과를 떠올리며 읽으니 사뭇 고무적으로 읽혔다. 만화가는 아니지만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귀여운 그림체와 캐릭터, 그리고 분위기로 유지되는 작품이지만 중간중간 진지한 장면은 진지한 장면대로 잘 연출해서 내심 방심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됐다. 개그 소재인 줄 알았던 반지하에 출몰하는 곱등이와 남자친구 블랙남자의 패션을 후반부에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결시킨 건 분명 감탄스러웠다. 또 처음엔 대놓고 밉상 캐릭터인 줄만 보였던 기찬 선배도 주인공과 같은 꿈을 꿨지만 현실과 타협해 시니컬해졌다는 설정 덕에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뜬금없이 시비를 거는 것 같아도 주인공에게 뼈가 되는 질문을 던져서 상당히 자극이 되긴 했으니까.

 역경도 있는 한편으로 탄탄대로 취업의 길을 걷는 주인공이 막판에 다다라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와 마주한 건 자칫 썰렁한 결말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중간에 묘사된 주인공의 고뇌가 무척 중요했다. 취업과 무관하게 보이는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장면들과 재일 교포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 등 제법 많은 요소가 한 작품 안에 다 다뤄진 셈인데 전혀 과하지 않고 오히려 꽤나 매끄럽게 연결시켰다고 본다. 각각의 요소가 주인공이 취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와 더불어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 충동, 그리고 꿈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인데 그렇다 보니 문득 우리네 삶의 그 어떤 사소한 요소도 우리 자신과 무관한 게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꼭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아예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럼 지금의 나는 없지 않을까 싶어 종종 소름이 돋곤 한다. 물론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이니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이지만 문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니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느끼게 되면 결국 과거의 내 지난 나날들 모든 장면을 모두 소중히 여기게 되는데 다 기억나지 않더라도 소위 말하는 흑역사는 있으나 버릴 과거란 없구나 싶다.

 저번 달에 졸업 이후의 진로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상당히 우울했었는데 반쯤 충동적으로 내 몇몇 과거의 선택을 비관하는 지경에도 이르러 아무래도 이런 감정을 직접적으로 환기할 계기가 필요했다. 곧 있으면 떠나는 여행이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직전에 읽은 이 작품이 우울한 감정을 많이 덜어줘서 여행도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바로 내년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 이후의 삶의 여정도 조금은 당찬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각오까지 드니 작중에서의 무모할 수 있을 주인공의 선택이 더욱 고맙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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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운의 첩자단 노키자루 1
야부구치 쿠로코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9.0







 아무래도 닌자라고 하면 <나루토>가 바로 연상됐는데 이제는 <노키자루>가 그보다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일본 전국 시대에 우에스기 켄신의 밑에 있던 닌자들인 '노키자루'를 설정으로 한 이 만화는 역사적 배경과 설정에 적절한 픽션을 가미한 작품이다. 주인공 아사히의 능력 '천리 귀'와 일부 만화적이고 현대적인 비주얼의 캐릭터들만 제외하면 제법 사실적이고 비정한 묘사와 고증 - 적어도 <나루토>보다 개연성도 있고 허황되지도 않아서 좋았다. - 이 빼곡히 들어찬 작품이었는데 잡지 폐간이란 작품 외적인 배경 때문에 급히 완결된 게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숙적인 신겐과의 전투가 아직 그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언젠가 아사히에게 내려질 명령에 대한 떡밥도 풀러지 않았건만...

 <기믹>을 재밌게 읽은 사람으로서 그 작품의 작화가인 야부구치 쿠로코의 그림은 물론이고 스토리 텔링까지 감상할 수 있었던 게 무엇보다 좋았다. 겉보기엔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것 같은 꼬맹이인 아사히가 주인을 위해 비인간적인 행동도 서슴지 말아야 할 노키자루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다분히 소년 만화/성장 만화적이었지만 수위에 있어서 수준이 남다른 작품이었다. 전란이란 상황에 따른 잔혹한 묘사가 여간 수위가 센 게 아니라서 전국 시대의 참혹함이 절로 피부에 와 닿았다. 특히 지금 기준에서 보면 비인간적인 걸 넘어 아주 야만적이고 미개하기까지 한 당시의 사고 방식은 자칫 잘못 손대면 미화하는 거냐며 반감이 들 법도 했는데 - 이를 테면 카미카제 같은... - 노키자루들의 동료애를 비롯한 드라마적인 요소 덕에 제법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맡아야 할 더러운 일을 자처하는 숭고함과 무고한 희생자를 내게 되는 죄책감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아사히의 심리 묘사가 그런 의미에서 아주 뜻깊은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고 전국 시대의 분위기, 그리고 아사히의 능력인 '천리 귀'도 꽤 인상적이었다. 천리 귀는 허구적이게 들리고 너무 사기적이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소재일 것 같아 아사히의 정체성에 직결되는 만큼 그 쓰임이 매우 기대됐다. 아쉽게도 급히 완결되느라 이 기대는 보답받을 수가 없었는데, 거의 소머즈에 비견될 엄청난 청력이었던 터라 다시 말하지만 너무 아쉽다. 이는 작품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작품이 흥하든 망하든 자체적인 완성도에 의해 정해질 일이어야 하는데 잡지가 폐간되면서 완결되는 바람에 장편 만화의 잠재력이 꺾인 건, 그리고 누군가 그 잠재력을 못 알아보고 다른 잡지에서 마저 연재되고 마무리되지 않은 건 정말 아까운 일이다. 좀 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연재됐다면 엄청난 작품이 됐을 텐데...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1권을 구한 과정이 개인적으로 꽤나 뜻깊었다. 절판본이라 중고서점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1권이 알라딘 중고서점 광주충장로점에 있어서 결국 광주에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기믹>의 팬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물론 광주로 가는 김에 거기 사는 군대 선임도 만나고 왔고 고기도 얻어먹었지만 학교 과제 때문에 일상이 바빠 광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건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 구한 1권과 더불어 작품 전체가 비록 급한 완결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좋아서 올해 3월의 광주행이 좋은 경험이자 추억으로 기억될 듯해 참으로 다행이다.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이어진 작품이라 더욱 뜻깊게 읽힌 것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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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일기 -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위근우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9.0







 기사마다 편차가 있긴 하지만 간만에 정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후기에서 밝힌 말이 한 줌의 거짓도 없는 진심이라면, 저자가 자신의 모든 주장에 독자들이 동의하길 기대하지도, 그리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경청하는 것, 어떤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불편함이라도 일단 경청하고 토론으로 발전하는 자세가 우리 사회에 필요함을 후기에서 역설했기에 역시 이 책을 최대한 우러러봐야 할 것 같다. 인정할 수 없는 불편은 인정할 수 없는 불편대로, 공감이 가는 불편은 또 공감이 가는 불편대로, 정말로 저자의 말이 진심이라면 모든 불편은 분명 존중받을 가치가 있으니까. 실제 저자의 됨됨이는 사람마다 평가가 제각각인 것 같지만 그래도 그가 꽤 괜찮은 글을 썼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뷰티풀 군바리>에 대해 저자가 느낀 불편이나 유독 여초 사이트에 너그러운 글의 성향은 섣불리 동의하기 어려웠다. <뷰티풀 군바리>가 해당 설정을 완벽히 소화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것과 전개가 안일한 경향이 있다는 것엔 동의하지만 작중의 여성 군대가 단순히 성별만 바꿔 묘사한 게 고민이 부족하다거나 '군대 가서 고생하는 여자' 란 남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만화라고 한 건 너무 지나친 해석이란 느낌이다. 여초 사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패미니스트란 사실에 우월함을 느끼는 듯한 저자의 논조는 거슬리는 동시에 -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열등한 것이라고 나 또한 생각하지만, 그 두 개념을 이해한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이 우월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 캡틴 마블을 연기한 브리 라슨만 하더라도... - 진정 메갈리아의 방식엔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던 걸까 의심돼 저자의 사고가 반드시 중립적이진 않겠구나 싶어 방어적인 자세로 독서에 임하게 됐다.


 최대한 방어적인 자세로 독서에 임했지만 그럼에도 괜찮게 읽히는 기사가 꽤나 많았다. 타일러와 허지웅의 토론 스타일의 장점을 살펴본 것에선 통찰력이 느껴졌고 '뇌섹남'이란 단어가 주는 모순과 얕음, 평양냉면에서 비롯된 갑질과 맨스플레인, 진중권이 범하는 실수나 아이유의 <제제>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애교와 먹방 등 여러모로 양립하기 어려운 잣대를 걸그룹에게 들이대는 대중의 작태와 미처 모르고 넘어갈 뻔했던 옹달샘의 망언과 방송국의 미화, 그리고 <미운우리새끼>의 가부장적인 모습 등... 나 또한 느꼈고, 그렇지만 귀찮거나 확신이 들지 않아서 쉬쉬했던 이슈들을 저자는 정말 다양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를 섭렵하고 글을 써낼 수 있어야 기자인 건가, 원래 기자란 이런 것인데 우리 주변에 기레기가 너무 많아 미처 몰랐던 걸까 싶을 정도로 정독하게 만드는, 그리고 상당 부분 고갤 끄덕이게 된 글들이었다.

 14년부터 16년까지 대략 3년 동안 쓴 글을 모은 책이고 해당 기사마다 저자가 현재 덧붙이는 코멘트까지 접해볼 수 있었는데 이 짧은 기간만 해도 우리나라에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다며 여러모로 반갑게 읽어나갔고 저자의 생각은 물론이고 저자가 인용하는 여러 의견도 잠깐이나마 접할 수 있었던 것도 유익했다. 특히 정치적 올바름에 어긋나는 언동을 무능한 것이라 딱 잘라 말해 속이 시원해질 정도였는데 위에서 말했듯 이 저자를 완벽히 신용할 순 없어도 자기만의 분명한 신념과 괜찮은 문장력을 구사하고 있어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어떤 말이든 경청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라도 내 말을 경청하게끔 말이나 글이든 표현력을 연마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싶었다. 그것도 너무나 지나치면 문제이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 한편으로. 특히 그릇된 사상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멋들어진 표현력을 가지면 정말 재앙이 따로 없으니까. 그래서 경청이 중요한 거겠지.

 

 

인상 깊은 구절

 

하여 '소위' 어른들이 멀리서 보면 푸른 그들을 보며 느껴야 할 감정은 기특함보다는 미안함이어야 한다. - 47p


인문학은 결코 옛날 옛적 그리스 현인으로부터 비밀리에 전승되는 진리의 법칙 같은 게 아니다. 당신에게 인문학을 그렇게 팔아먹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도망쳐라. - 74p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야 배움을 얻는 건 슬픈 일이지만, 불미스러운 일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면 화나는 일이다. - 107p 어떤 직업이든 위험으로부터, 위협으로부터, 모욕으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 - 184p


보상이 아닌 자기만족으로 지탱하는 도덕성이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 219p


이제 앞으로 젠더 감수성에 문제를 보이는 언론에 대해서는 '나쁘다', '구시대적이다'라는 술어 대신 '무능하다'라는 술어를 붙이는 게 맞다. - 229p


중요한 건 얼마나 순수한 의도냐가 아니라 순수하지 못한 세계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느냐다. - 249p


요컨대, 중2병이란 차가운 세상 앞에서 아직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그럼에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걸 배우는 첫 단계다. - 279p


다만 현실을 투명하고 충실하게 묘사하는 작가는 자신의 인식과는 별개로 우연처럼 필연적으로 동시대의 모순과 부조리까지 비춰내며, 이것은 독자에게 비판적인 전망을 남긴다. -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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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1 (무선) ㅣ 해리 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지음, 김혜원 옮김 / 문학수첩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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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9.4 







 '해리 포터' 시리즈 중 소설은 '불사조 기사단'이, 영화는 '아즈카반의 죄수'가 가장 재밌었던 걸로 기억난다. 알폰소 쿠아론의 개성 넘치고 섬세했던 연출과 각색은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지 않는데 정작 스핀오프 시리즈인 '신비한 동물사전'의 최신작은... 간만에 '해리 포터'를 읽었더니 이렇게나 잘 쓰는 작가가 아무리 영화 대본이 소설과 다르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렇게 망쳤을까 싶었다. 물론 영화는 한 사람의 실수로 망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금 같은 질문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길어지기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3편' 아즈카반의 죄수'를 읽었다. 유일하게 볼드모트가 등장하지 않아 분위기가 이질적이고 패트로누스 마법이나 시리우스 블랙 같은 중요한 설정과 캐릭터가 등장해 다시 읽어도 재밌었던... 아니, 다시 읽으니 더욱 흥미진진했던 작품이었다. 1편 '마법사의 돌'에서 해그리드에게서 언급된 시리우스의 오토바이 에피소드라든가, 마찬가지로 1편부터 등장했던 론의 애완 쥐 스캐버스에 대한 떡밥, 그리고 해리의 아버지 제임스와 스네이브 사이의 악연과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까지... 하나같이 교묘하고 치밀하고 적절한 복선이고 반전이라서 이래저래 장편 시리즈의 흐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가득한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전개였는데, 어린 시절 이 이야길 처음 접했던 무렵엔 탄식이 절로 나왔지만 –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 다시 보니 독자로 하여금 다음을 기약하고 후속작을 궁금하게 만들기에 아주 적절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쯤 되면 존경스러울 정도다. 다 잡은 패티그루를 하필 무심하게 떠있는 보름달 때문에 놓쳐버리고 기적적으로 누명을 벗을 줄 알았던 시리우스는 최적의 기회를 놓쳐 해리는 다시 방학 때 아동학대범들의 소굴로 돌아가야 했고 ... 그래도 대부가 생겨 해리의 곁이 든든해진 게 위안이 됐다.

 영화에서 나오지 않은 퀴디치 에피소드는 - 퀴디치의 룰의 맹점이 걸리긴 하지만 - 역시 긴장감 넘쳐서 재밌었고 개인적으로 헤르미온느의 시계에서 비롯된 타임 패러독스는 너무 초월적이라 뜬금없었지만 나이를 먹어 언젠가 어른이 될 해리가 미래를 좀 더 진지하게 바라볼 계기가 된 것 같아서 큰 어색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 4편부터 4권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된다. 언제 읽을지 모르겠지만 벌써 기대된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무리 길어도 질리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더 길지 않은 게 아쉬운 시리즈니까. 내용을 아는 데도 이렇게 기대될 줄은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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