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구미의 돈까스 취업 2 - 재일교포 2.5세 노란구미의 좌충우돌 취업 분투기
정구미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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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예전에 한창 논란이 있었음에도 개의치 않고 웹툰 <세 개의 시간>을 읽었던 이유는 작가 노란구미의 스토리텔링 자체에 반했기 때문이다. 국적이나 취업 등 자전적이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풀어내는 게 좋았기 때문인데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이번에 읽게 돼서 여러모로 즐거웠다. 세대 차이는 좀 나지만 거의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이 작품을 읽으니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일 수가 없던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싶은데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고 누구도 내게 채근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더해지는 우울한 심정을 유머 코드와 섞어 완급을 조절해 표현한 작가가 과연 대단했다. <세 개의 시간> 때도 돋보였던 재일 교포의 정체성에 대한 파트를 다루는 솜씨도 남달랐고.

 혹자는 <돈까스 취업>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괜찮다고 하는데 <세 개의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은주의 방>이 아직 연재 중이라 판단하기 힘들단 걸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분량도 두 권으로 깔끔하게 끝나서 진입 장벽도 낮고 무엇보다 제목이 독특한 것도 강점 중 하나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이 작품은 돈까스 가게에 취업하는 얘긴 아니고;; 대신 돈까스가 일본에서 시험이나 면접 등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먹는 음식이라는 맥락에서 붙인 단어다. 돈까스의 일본 발음 '톤카츠'에서 '카츠'는 '이긴다'는 뜻의 '카츠勝'와 발음이 같은 것에서 일본인들의 미신/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엿이나 찹쌀떡 같은 것이려나? 아무튼 이 작품은 작가가 실제로 반다이에 취업하려 했지만 좌절당한, 혹은 스스로 포기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현재 만화가로서 나름 족적을 남긴 작가의 성과를 떠올리며 읽으니 사뭇 고무적으로 읽혔다. 만화가는 아니지만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귀여운 그림체와 캐릭터, 그리고 분위기로 유지되는 작품이지만 중간중간 진지한 장면은 진지한 장면대로 잘 연출해서 내심 방심할 수 없는 작품이라 생각됐다. 개그 소재인 줄 알았던 반지하에 출몰하는 곱등이와 남자친구 블랙남자의 패션을 후반부에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결시킨 건 분명 감탄스러웠다. 또 처음엔 대놓고 밉상 캐릭터인 줄만 보였던 기찬 선배도 주인공과 같은 꿈을 꿨지만 현실과 타협해 시니컬해졌다는 설정 덕에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뜬금없이 시비를 거는 것 같아도 주인공에게 뼈가 되는 질문을 던져서 상당히 자극이 되긴 했으니까.

 역경도 있는 한편으로 탄탄대로 취업의 길을 걷는 주인공이 막판에 다다라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와 마주한 건 자칫 썰렁한 결말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중간에 묘사된 주인공의 고뇌가 무척 중요했다. 취업과 무관하게 보이는 학교에서의 일상적인 장면들과 재일 교포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 등 제법 많은 요소가 한 작품 안에 다 다뤄진 셈인데 전혀 과하지 않고 오히려 꽤나 매끄럽게 연결시켰다고 본다. 각각의 요소가 주인공이 취업에 진지하게 임하는 이유와 더불어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 충동, 그리고 꿈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인데 그렇다 보니 문득 우리네 삶의 그 어떤 사소한 요소도 우리 자신과 무관한 게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를 꼭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아예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럼 지금의 나는 없지 않을까 싶어 종종 소름이 돋곤 한다. 물론 지금의 나와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이니 그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이지만 문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니 그렇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느끼게 되면 결국 과거의 내 지난 나날들 모든 장면을 모두 소중히 여기게 되는데 다 기억나지 않더라도 소위 말하는 흑역사는 있으나 버릴 과거란 없구나 싶다.

 저번 달에 졸업 이후의 진로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상당히 우울했었는데 반쯤 충동적으로 내 몇몇 과거의 선택을 비관하는 지경에도 이르러 아무래도 이런 감정을 직접적으로 환기할 계기가 필요했다. 곧 있으면 떠나는 여행이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직전에 읽은 이 작품이 우울한 감정을 많이 덜어줘서 여행도 홀가분하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오면 바로 내년에 돌입하게 되는데 그 이후의 삶의 여정도 조금은 당찬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각오까지 드니 작중에서의 무모할 수 있을 주인공의 선택이 더욱 고맙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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