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6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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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국내에 출간되는 순서가 워낙 뒤죽박죽인 시리즈라 매번 전편의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 읽게 된다. 그래도 이번 6권은 '오슬로 3부작'과 <스노우맨> 사이에서 쉬려는 듯 나름 독립적인 에피소드라서 별 어려움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노르웨이에서 읽은 터라 몰입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아무래도 시리즈의 작품 중 처음 접했던 <스노우맨>의 직전 이야기라 정서적 연결고리가 형성돼 만족도가 꽤 높았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이는 유독 출간 순서가 오락가락한 우리나라의 독자들만이 경험할 일이리라.

 요 네스뵈의 강점은 백과사전 수준의 두께의 분량과 그에 걸맞는 작품의 밀도를 들 수 있다. 장편소설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 맞춰 들어가는 각 요소의 구성이 일품으로 충분히 하나의 중, 단편으로 분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장면이나 설정들이 해리의 성장담과 도덕적 딜레마에 맞춰 상당히 하드보일드적으로 연결됐다. '중2병'과 '간지'의 기로에 있어야 표현이 가능한 하드보일드적인 작풍은 여전하고 굳이 크로아티아인을 개입시킨 청부 살인이란 본편의 핵심 사건도 제법 박진감 넘쳤다.

 처음엔 다소 뜬금없고 지루했지만 이내 범해지는 비정한 진행 방식에 또 속절없이 읽어내려가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뻔한데 참신하게 사고를 전환시켜 눈을 번쩍 뜨게 만든 트릭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아르네 묄레르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가히 일본인도 울고 갈 죄의식이 그려진 건 익숙한 한편으로 신선했다.


 일본과 더불어서 중국과 북유럽의 추리소설도 좀 믿고 읽는 편인데, 중국은 일본 추리소설의 엔터테인먼트가 더 부각된 추리소설을 쓰고 북유럽은 사회파적인 면모가 강조된 추리소설을 잘 쓴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된다. 특히 요 네스뵈는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뛰어났던 몇몇 작품을 선보여 그런 인상이 더욱 남았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최근에 읽은 작가의 작품 <바퀴벌레>가 마치 '양산된 범죄 소설' 같은 모양새였던 걸 떠올리면 헛웃음이 나오지만... 이번에 그려진 구세군 조직의 병폐는 그 어디에도 이상적인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작가의 진단과 일맥상통해 이젠 쾌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노르웨이처럼 부유하고 복지가 탄탄하고 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높다고 해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린 '해리 홀레' 시리즈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거나, 극단적으로 관용을 잃었을 때 터질 비극이나, 심지어는 연쇄 살인까지 모조리. 허무맹랑하거나 결코 자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리라 여겨지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글쎄, 진짜 노르웨이인에겐 어떻게 읽힐지 모르겠는데 어디에도 완벽한 세상이 없다는 것은 곧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어서 문제가 생긴다는 말과 같은데 노르웨이가 사람 사는 곳이라면 크게 다를 리 없을 테니, 또 구세군이라고 마냥 청렴하게 운영될 턱이 없을 테니 퍽 일리 있게 들렸던 것이다.


 이 작품을 읽을 당시 노르웨이를 여행 중이었던 나는 눈에 담겨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너무 대비되는 작품의 내용에 괴리감이 들긴 했지만 한편으론 노르웨이란 나라를 이해할 척도가 부분부분 제시된 것도 같아 의미심장하게 읽혔다. 실제로 경찰과 어떤 식으로 마주치는 경우 없이 여행은 무사히 잘 다녀왔는데 - 책의 지도를 참고 삼아 경찰청 앞을 지나가보긴 했다. - 작중 시기가 시기인 터라 적잖이 몰입됐다.

 물론 노르웨이 소설이라고 노르웨이를 이해해야 감상할 수 있다는 게 꼭 장점이리란 법은 없지만 적어도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는 이를 확실히 장점으로 승화시킨 면이 적잖다. 이게 바로 요 네스뵈의 작품이 여느 양산형 범죄 소설과 차별화되는 결정적인 이유이자 작가의 천부적인 재능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국민 500만 명 중 한 사람이 작가적 사명감을 띄고 승화시킨 이야기,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자 어마어마한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어째 작품의 내적인 이야기보다 외적인 이야기만 하게 됐는데;; 오히려 이야기 본편보다 비아르네 묄레르의 이야기가 더 인상적이라서 이런 식으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묄레르의 이야길 읽어야 작품 전체상이 이해가 되는 등 이래저래 작품의 또 하나의 주요 에피소드였으니까.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흡사 일본인에 비견될 죄의식이 묘사됐는데 진지할 뿐더러 사뭇 문학적이라 한 번 읽은 것만으로 손대기 힘들 지경이다. 어쩌면 노르웨이 특유의 애수가 가장 깊이 드러난 부분일 수 있으니까... 다음에 두 번째 읽고 포스팅할 때는 이 점을 중점적으로 언급해야지.

차별받는 사람들이 꼭 이 사회의 약자는 아니라는 게 우리 측 주장입니다. - 168p




순간적으로 해리는 마음이 약해져 진한 연민을 느꼈다.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가족에게가 아니라, 이렇게 가슴 아픈 순간에 자신의 한심한 인간성을 보게 된 남자에게. - 340p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리학처럼 질문은 많고, 대답은 가설일 뿐이지. - 351p




올바른 행동은 게으르고 비전 없는 사람들의 미덕이지. - 6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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