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의 첩자단 노키자루 1
야부구치 쿠로코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9.0







 아무래도 닌자라고 하면 <나루토>가 바로 연상됐는데 이제는 <노키자루>가 그보다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일본 전국 시대에 우에스기 켄신의 밑에 있던 닌자들인 '노키자루'를 설정으로 한 이 만화는 역사적 배경과 설정에 적절한 픽션을 가미한 작품이다. 주인공 아사히의 능력 '천리 귀'와 일부 만화적이고 현대적인 비주얼의 캐릭터들만 제외하면 제법 사실적이고 비정한 묘사와 고증 - 적어도 <나루토>보다 개연성도 있고 허황되지도 않아서 좋았다. - 이 빼곡히 들어찬 작품이었는데 잡지 폐간이란 작품 외적인 배경 때문에 급히 완결된 게 그저 황당할 따름이다. 숙적인 신겐과의 전투가 아직 그려지지도 않았거니와 언젠가 아사히에게 내려질 명령에 대한 떡밥도 풀러지 않았건만...

 <기믹>을 재밌게 읽은 사람으로서 그 작품의 작화가인 야부구치 쿠로코의 그림은 물론이고 스토리 텔링까지 감상할 수 있었던 게 무엇보다 좋았다. 겉보기엔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것 같은 꼬맹이인 아사히가 주인을 위해 비인간적인 행동도 서슴지 말아야 할 노키자루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이야기는 다분히 소년 만화/성장 만화적이었지만 수위에 있어서 수준이 남다른 작품이었다. 전란이란 상황에 따른 잔혹한 묘사가 여간 수위가 센 게 아니라서 전국 시대의 참혹함이 절로 피부에 와 닿았다. 특히 지금 기준에서 보면 비인간적인 걸 넘어 아주 야만적이고 미개하기까지 한 당시의 사고 방식은 자칫 잘못 손대면 미화하는 거냐며 반감이 들 법도 했는데 - 이를 테면 카미카제 같은... - 노키자루들의 동료애를 비롯한 드라마적인 요소 덕에 제법 예술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맡아야 할 더러운 일을 자처하는 숭고함과 무고한 희생자를 내게 되는 죄책감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아사히의 심리 묘사가 그런 의미에서 아주 뜻깊은 요소가 아닐 수 없었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캐릭터들도 매력적이었고 전국 시대의 분위기, 그리고 아사히의 능력인 '천리 귀'도 꽤 인상적이었다. 천리 귀는 허구적이게 들리고 너무 사기적이면서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소재일 것 같아 아사히의 정체성에 직결되는 만큼 그 쓰임이 매우 기대됐다. 아쉽게도 급히 완결되느라 이 기대는 보답받을 수가 없었는데, 거의 소머즈에 비견될 엄청난 청력이었던 터라 다시 말하지만 너무 아쉽다. 이는 작품 전체에 해당하는 말이기도 하다. 작품이 흥하든 망하든 자체적인 완성도에 의해 정해질 일이어야 하는데 잡지가 폐간되면서 완결되는 바람에 장편 만화의 잠재력이 꺾인 건, 그리고 누군가 그 잠재력을 못 알아보고 다른 잡지에서 마저 연재되고 마무리되지 않은 건 정말 아까운 일이다. 좀 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연재됐다면 엄청난 작품이 됐을 텐데...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1권을 구한 과정이 개인적으로 꽤나 뜻깊었다. 절판본이라 중고서점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필 1권이 알라딘 중고서점 광주충장로점에 있어서 결국 광주에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기믹>의 팬이 아니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물론 광주로 가는 김에 거기 사는 군대 선임도 만나고 왔고 고기도 얻어먹었지만 학교 과제 때문에 일상이 바빠 광주를 당일치기로 다녀온 건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게 구한 1권과 더불어 작품 전체가 비록 급한 완결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좋아서 올해 3월의 광주행이 좋은 경험이자 추억으로 기억될 듯해 참으로 다행이다.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이어진 작품이라 더욱 뜻깊게 읽힌 것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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