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타를 위하여 1
하가 글.그림 / 발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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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9.7






 만화 중에서 개인적으로 이 작품처럼 짧게 완결이 나는 작품을 선호한다. 만화는 길어지는 만큼 늘어져서 읽는 입장에서 감질맛이 나고 또 여간 뛰어난 작가가 아니고서야 꼭 한두 군데는 빈틈을 보이며 흐지부지 완결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반면 장기 연재를 안중에 두지 않고 작가 스스로 생각한 분량 안에서 끝내는 작품은 길이를 막론하고 그만큼 깔끔하고 여운이 짙을 가능성이 높다. 소설도 단편을 쓰기가 의외로 쉽지 않은 것처럼 만화도 한두 권 안에 끝나게끔 분량을 잡는 게 쉽지 않아 보이는데 그 쉽지 않은 걸 해내는 작품이 많진 않아도 꼭 있다.

 <시타를 위하여>가 단행본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반색한 독자 중 한 명임에도 이렇게 책장을 넘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가급적 시간을 두고 기억이 가물해질 때에 읽고 싶었던 것뿐인데 덕분에, 어쩌면 계획대로 새로 읽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한없이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인상만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상대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러운 장면도 많았고 주인공과 시타 말고도 람록처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는 등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편으론 단행본으로 옮기면서 사라지거나 혹은 기대했던 부분이 덜 충족된 건 약간 불만이었는데, 이를테면 매 화마다 '작가의 말'로써 인용되던 시구나 격언들이 통째로 생략된 게 그랬다. 연재 때 접한 글들이 각 화의 특징적인 감정선을 잘 요약하고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었기에, 또 그 글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것도 있었기에 - 박준의 시 '꾀병'이 기억난다. - 작가의 감각이나 수준을 알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요소가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 단행본임에도 정말로 작품의 본편만 수록된 건 의외였는데 작가의 소감이라거나 후기,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것이 전무해서 단행본을 수집했다는 것 이상의 만족도는 딱히 없었던 것도 걸렸다. 엽서가 부록됐다거나 이야기의 외전이 수록된 것도 좋지만 쿠마리 같이 흔치 않은 소재를 어떻게 작품에 녹이게 됐는지 같은 내용이 없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연재 당시에 작가가 후기로써 밝힌 내용이었을까 싶었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단행본에 실어주면 좀 어떤가 싶어서...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랐나?


 작품의 핵심 소재인 쿠마리는 지금 봐도 이색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이 세상 모든 문화와 종교는 존중을 받아야겠지만 그 안에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희생이 뒤따른다면 태도를 달리 해야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자아이를 여신으로서 떠받들다가 생채기가 나거나 혹은 생리라도 하면 더럽혀졌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내쫓는 건 전근대적인 것을 넘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다. 지금은 이런 실정이 많이 나아져서 여자아이가 쿠마리에서 물러날 때를 대비해 일반적인 교육이나 세상 물정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실제로 이 작품에서처럼 쿠마리에서 쫓겨나 비명횡사하거나 매춘부로 전락한 여성들이 있었단 걸 생각하니 내가 다 거북해졌다.

 시간과 운명까지 거스르는 사랑 이야기라고 요약하면 의외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원래 로맨스는 서사의 특이함보다 감정 묘사의 진지함에 주목하는 장르다. 그런데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결코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나라 사람에게 생소한 네팔의 문화를 적극 활용해 대단히 인상 깊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연재 만화치고 분량이 짧은 것마저 강렬하고 여운도 있어 욕심 부리지 않은 적절한 마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듣기론 웹툰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이라 원래 이 정도 분량이 전부였다곤 하지만 욕심을 부려 장기 연재까진 아니더라도 이보단 더 분량을 늘였을 법도 한데 작가가 신인임에도 장인 정신이 있지 않았냐며 감탄스러웠다.


 작가의 작품은 <시타를 위하여>말고도 네이버에서 연재한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다른 곳에서 연재한 <킹스메이커>가 있는데 전자는 연재 당시에 봤고 후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런데 하필 그 작품이 BL이라서... 퀴어 영화는 봤어도 BL은 한 번도 읽지 않아서 고민이 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보게 될 것 같다. 데뷔작을 이렇게 잘 그렸는데 신작은 더 잘 그리지 않았겠어...?

심장이 뛰면, 피가 온 몸을 돌고, 몸 밖으로 새 버리면, 그건 무서운 게 아니라, 그저 아프고 슬픈 거예요. - 1권 1화




어떻게든 내일은 오고, 살고 싶어지는 이유는 새로 생겨요.

움츠러들고 있기에는 세상이 너무 기막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2권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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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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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읽고 나서, 어렸을 때 한 번 읽고 기억에서 잊혀진 <죄와 벌>과 비교적 최근에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이 떠올랐다. 죄를 범한 자는 설령 벌을 받지 않더라도 언제 들킬 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막대한 비밀을 가진 중압감과 충동을 안고 살아야하므로 죄를 범한 그 순간부터 죗값을 치룬다는 말이 있다. 우발적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는 불안한 비밀은 열두 살 소년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일 터다. 물론 그 소년보다 더 어린 피해자의 죽음에 비하면 그런 불안한 비밀 같은 건 어리광을 부리는 것과 다름없지만...

 굳이 추리소설로 명명하지 않아도 이와 비슷한 서사를 갖춘 작품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당장 내가 초장에 언급한 두 작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추리소설 중엔 '도서 추리'라고 해서 살인을 저지른 화자가 어떻게 발각당하는 것인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가는 심리 묘사에 주력하는 하위 장르가 있긴 한데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란 작품은 그 장르와도 살짝 다르다. 이야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추리소설보단 심리 소설에 더 가깝다. 주인공이 범죄를 저질렀을 뿐이지 이야기 자체에 추리소설의 문법을 기대하고 읽으면 예상보다 무겁고 느릿한 진행에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평이하게 읽힌 작품이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분량도 짧고 이야기의 윤곽도 단순한 편인데 대게 이런 소설은 대략의 스포일러를 당하고 봐도 상관 없을 만큼 묘사를 비롯한 과정이 좋다거나 혹은 생각보다 더 단순한 나머지 일절의 스포일러도 당하면 안 되는 두 가지 분류로 나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내겐 후자의 경우로 다가왔는데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1부라면 몰라도 2부까지 스포일러를 당했던 게 정말 치명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서술에 있어 가식이 없는 점이 특징인 프랑스 소설답게 열두 살 살인자 앙투안의 심리 묘사가 무겁고 음울하고 현실적인 게 인상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껏 자신의 죄의 흔적이 남은 고향 마을을 떠났으나 순간의 실수와 우연한 상황 때문에 다시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전개는 흥미진진했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함이 전무한 이야기라 이래저래 쾌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 작품을 종류를 불문하고 그저 쾌감을 얻으려고 읽는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한 것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이 소설이 컨셉이며 감정선을 잘 유지했다는 반증일 테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작중의 심리 묘사며 전개 양식이 딱 예상대로 흘러가니 만족도가 그리 크진 않았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진실 때문에 살짝 소름은 돋았지만 그마저도 짧은 분량에 어울리는 규모의 반전이라 완전히 놀랍지 않았다. 나름 여운을 주는 마무리란 건 인정하지만 죄책감을 묘사함에 있어 끝을 보여준 <푸른 불꽃> 같은 작품이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려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소름 돋는 작품이라고만 느껴졌다. <푸른 불꽃>을 프랑스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그 작품은 심리 묘사며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도 정말 탁월했는데... 어쩌면 추리소설이란 카테고리를, 이른바 장르 소설을 읽는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이번에 읽은 작품이 지금보다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답니다....... 나 자신도 그래요....... 그리고 어느 날, 그만두게 되죠. - 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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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 그들은 왜 행복할까
유승호 지음 / 가쎄(GASSE)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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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최근 노르웨이를 다녀오고 나니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더욱 커졌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노르웨이말고도 다른 북유럽 국가도 가봤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여행 에세이는 처음 읽어본 것 같은데 내가 블로그에 쓰는 여행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읽기 전에 뭘 그렇게 낯설어했을까 싶었다. 오히려 이런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는 거의 궁극적인 이유를 이 책의 저자가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에서 '이 책은 여행자용 에세이나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다른 여행책과는 이야기의 관점이 다를 뿐 엄연히 저자가 코펜하겐에 가서 느낀 바를 담았기에 여행 에세이라 이름 붙이지 않기도 애매하다. 이 책과 가장 비슷했던 책이라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들 수 있겠는데 그 책은 덴마크인 저자가 자기 나라에 대해 얘기했고 이 책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우리나라 저자가 코펜하겐에 가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얘기한다는 차이가 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을 <덴마크 사람들처럼>과 같이 읽으면 참 좋을 듯하다. 의외로 얘기하는 내용이나 태도가 비슷한데 재밌는 건 덴마크인 저자 쪽의 태도가 더 겸손한 걸로 - 자기 나라 얘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 기억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유승호 교수가 오만하기 짝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겸손이 국가와 국민의 미덕이라 불리기도 하는 덴마크인이 상대인 지라...


 사회학 박사인 유승호 교수가 본 코펜하겐의 모습은 범상치 않다. 과연 이 사람처럼 생각하며 코펜하겐을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 생각해봤다. 물론 저자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의 생각들에서 일종의 생각하는 노하우를 찾아본다고 하면 상관없겠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람들이 여행을 두고 왜 견문을 넓히는 경험이라고 하는지 몸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간 열차를 덴마크로 가는 동안 만난 덴마크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배낭여행을 온 우리나라 여대생 민서와의 짧고 우연한 동행 속에서 - 이런 부분들이 재밌었다. 픽션과 실화의 경계에 있는 것 같아 상황이 어색해도 적당이 웃고 넘길 수 있었다. - 저자가 자연스럽게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는 게 책의 주된 내용이다. 주로 코펜하겐을 얘기함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상황도 함께 비교 분석하는 패턴이었는데 덴마크를 덮어놓고 찬양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한 게 눈여겨볼 만했다. 특히 저자는 목수와 변호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덴마크인들의 모습에서 큰 문화 충격을 받은 듯한데 의사나 법조인 같은 직종이 우리나라에서 가진 위상을 보면 저자의 심정에 그리 공감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의사나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 중에 해당 직업 의식은 둘째 문제고 그저 성공이 우선인 사람이 적잖으니까. 그런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나온다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애당초 드라마나 영화가 뭘 기준으로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답은 자명해진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나라, 양성평등이 자연스럽게 자릴 잡은 나라, 조금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하려는 나라, 일부 천재나 부자에겐 제재가 심하지만 나머지 범인과 약자에겐 자비로운 나라...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덴마크는 우리와는 정말 다른 나라다. 그래서 덴마크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부러운 걸 넘어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고 심지어는 우리나라완 환경이 너무 달라 그 나라의 장점을 현지화시킬 수 없다는 사뭇 비관적인 감상이 나올 지경이다. 이와 같은 감상에 대해서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선 국적을 떠난 개인의 믿음, 그리고 거창하지 않게 단지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실천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삶의 태도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독자를 고무시킨 바 있다.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위와 같은 고무적인 마무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어쩌면 여행이 곧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인상을 주기에 이른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어쩌면 내가 최근에 노르웨이를 다녀오고 여행기도 썼기에 유독 공감이 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책이나 매체로만 접하다가 실제로 그 나라에 가면 그 이상의 감상이 남는 법인 걸 온몸으로, 우여곡절을 거쳐 깨달았으니까. 그렇다 보니 책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다면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을 분명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적용시킬 수 있으리라.


 이 책의 저자만큼 사회학적으로 면밀히 생각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나은 여행기를 쓸 수 있는 힌트는 얻은 것 같아 유익하기 그지없었다. 덴마크에 관한 이야기도 다른 어떤 여행책에서도 접하기 힘든 저자만의 해석이 깃들었던 점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덴마크에 간다면 이 책의 내용을 꼭 되짚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973089310 


 이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고 쓴 포스팅.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도전정신은 ‘불행한 실종‘이다. - 34p




못생기고, 키 작고, 뚱뚱하고, 촌티 나고, 돈 없는 사람을 역겨워하면 내 주변에 다가오지 않아 나는 깨끗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뿌려진 과도한 항생제는 면역성을 상실한 나의 정신을 노출할 뿐이다. - 93p




나에게 계속 나쁜 짓을 하는 친구는 당연히 싫다. 그러나 나의 나쁜 짓이든 좋은 짓이든 다 좋아하고 웃는 친구를 우린 좋아할 것 같지만 그건 잠시다. 그러다 나는 내 나쁜 짓을 고칠 기회조차 잃게 되고, 결국 난 주변으로부터 외톨이가 되고 만다. 내가 외톨이가 되면 나를 보고 좋아하던 친구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외톨이가 된 친구와는 계속 사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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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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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6







스포일러 있음



 '반전이 있다'라는 말이 그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경우가 있겠는데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반전의 경우의 수가 극히 한정적이라 뻔히 보였던 게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반전이 없으면 이 작품이 지금 우리 세대까지 읽힐 가치가 없기에 반전이 있다고 알린 서문이 어떻게 보면 참 교묘하지 않은가 싶었다. 만약 그 정도의 기대감도 심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완독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

 나치가 잠식하기 시작한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순수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뻔하디 뻔했다. 그나마 독일의 문화를 사랑했던 두 소년의 마음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이하게 다가오는 지점이겠는데 작품이 집필된 게 오래 전이라 흡입력은 없이 고루하게 읽혔다. 분량이 100페이지를 조금 넘어가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생각보다 읽는 시간이 더뎠다. 내가 독일 문화 전반에 무지해서 그런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작품에 있어서 개성이라 여길 부분이다 보니 이 점은 좀 아쉽다. 취향을 탈 것이란 생각과 더불어 분량이 짧다고 가볍게 접근할 만큼 진입 장벽이 낮진 않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다.


 두 주인공, 특히 화자의 친구인 콘라딘의 위악적인 면모는 이 작품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글쎄, 콘라딘이 위악자였는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듯하다. 결과적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돼 처형됐다지만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부터 암살을 결심했는지는 화자로선, 그리고 독자로선 알 길이 없으니까. 화자인 한스가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든 그 진심 어린 듯 히틀러를 지지했던 편지의 내용이 정말 사실 그대로의 감정이었는지 모르는 일이잖은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과 콘라딘의 최후를 설명하는 한 줄의 문장 외엔 없다. 물론 여기서 반전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면 처음부터 콘라딘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친구를 구했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실제로 '반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며 읽은 나는 그 가능성을 내내 떠올린 채 읽었기에 막상 막판의 반전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냥 역시나 싶었다. 반대로 콘라딘이 위악자가 아니었더라면 내겐 그게 더 반전이었을 것이다. 그래, 괜히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사실은 콘라딘이 처음부터 위악은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저 혼자 망상을 떠들고 있는 게 아니다. 오죽 반전이 놀랍지 않았으면 이러고 있겠는가? 여백의 미가 출중한 것이 이 작품의 여운이자 장점일 텐데 '반전이 있다'며 해석의 재미가 일부 제한된 것은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하는 게 나만의 과한 반응이려나?


 두 인물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로써나,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는 이야기로써나 간결한 분량을 제외하면 그렇게 회자될 만한 작품은 아닌 듯한데 홍보가 교묘해서 사람들한테 의외로 먹혔던 게 아닐까 싶다. 만약 이 책의 서두가 서두가 아니라 후기로 배치됐다면 이 작품의 인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내 경우엔 애당초 완독도 하지 못했을 테니 해당 서문의 내용 또한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체로 스포일러긴 하나 '반전이 있다'고 언급한 서두는 꽤 교묘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노린 것이라면 얄팍하지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어쨌든 완독은 하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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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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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예전에, 특히 독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때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설레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독서 경험이 전무했던 때엔 무심코 집어든 책이 뭐든 간에 감탄했을 확률이 높고, 또 그 작품을 하나의 독서 기준에 포함시킨 채 지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단순히 책을 두 번 읽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굉장히 부끄러움을 수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둠 속의 기다림>은 겉보기엔 소름 돋는 설정의 소설일 것 같다. 시각장애인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살인용의자가 숨어 들어온다. 실제 시각장애인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는데 지금 보니 비할 수 없이 소름 돋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전무후무한 동거는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 오츠이치는 뜻밖에 매우 감성적인 답을 진지하게 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어둠 속의 기다림>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로써 내가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처음 읽을 당시인 8년 전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두 남녀 주인공의 심정에 퍽 공감이 가서 한껏 매료되기도 했다. 그때 적잖이 소름 돋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번에 다시 읽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 일단 가장 적응이 안 된 건 작품에 녹아있는 감성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문장도 꽤 좋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잔재주 부리지 않아 평범하게 느껴지는 정도다. 감성에 대해 자세히 말하자면 언뜻 깊은 고민이 녹아든 라이트 노벨의 작풍이 느껴졌다. 지금 스스로 라이트 노벨의 작풍을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유독 정상적인 관계 형성에 서툰 주인공이 둘이나 등장하다 보니 묘사된 심리들에서 미숙한 느낌을 없지않아 받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저런 말을 쓴 것 같다. 아무튼 두 주인공의 미숙한 심리가,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모습이 이 작품의 개성이자 강점이지만 중반부에서 이 둘의 소통과 교류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뤄져 내심 전형적으로 관계 형성에 서툰 사람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보는 듯한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대단히 관계 형성에 능숙한 사람인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말해 그건 절대 아니고;;; 다만 이 작품의 소름 끼치고 민감한 소재가,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를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 게 보는 이에 따라선 그리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단 우려가 들어 굳이 '판타지'란 단어를 써가며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두 번 읽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특히 중반부에서 둘이 조용히 스튜를 나눠 먹거나 후반부에서 같이 걷는 장면은 어지간한 로맨스 소설 뺨치게 아름답거니와 지금 봐도 멋진 장면이고 연출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미치루가 공감 능력이 남다른 걸 넘어 살인용의자 아키히로에게 일부 자애롭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니 이 역시 판타지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전근대적인 일본 특유의 무의적으로 존댓말하는 여자와 무의식적으로 반말하는 남자의 관계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였던 건 - 번역이 이상한 거야, 원래 이런 거야? - 아쉬웠다. 글쎄,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말없이도 서로 척하면 척 통하는 데가 있어 역시 로맨스 소설도 넓게 보면 판타지구나 싶기도 했다.


 추리소설로써의 <어둠 속의 기다림>은 내용에 비해 분량이 약간 긴 편이지만 돋보이는 설정을 준수하게 감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결말에서의 반전은 비교적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개인적으로 결말의 연출도 약하다고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꼼꼼한 복선과 더불어 초반에 언급한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란 전개는 몇 번을 생각해도 대담해서 만만히 볼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 입장에선 이런 걸 생각한 자신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막막했겠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이유는 전개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들이 잘 녹아든 점을 높이 사는 것에 있다. 처음엔 혼자 사는 시각장애인의 생활을 아웃사이더의 자발적인 고립이란 대목에 대입시킨 게 좀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회사 생활에서 겉돈 아키히로의 등장에 힘입어 주제의식이 심화돼 절묘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연결시키네? 하고. 이건 작중의 상황이나 감성의 어색함으론 덮을 수 없는 지점이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 추리소설이 소설로써 보다 인상적이게 되는 순간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개입될 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소통 방식엔 판타지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자의든 타의든 여러 요인으로 인해 관계 형성의 벽에 막히거나 좌절한 사람들이 매우 순수하기 짝이 없지만 재도전을 하는 과정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본작의 사건이나 전개가 꽤나 적합한 양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었다.


 다시 읽다보니 이 작품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몰입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마주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초반엔 내가 옛날엔 뭘 보고 소름이 돋았었냐며 얼굴이 화끈해질 뻔했는데 끝까지 읽으니 소름이 돋을 만했던 부분이 나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실망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래 두 번째 접한 책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해줬다. 책 두 번 읽는 게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는데 이번처럼 생산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p.s 이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일만 남은 것인가. 처음 읽었을 때 영화도 꼭 봐야지 했는데 어떻게 8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 본 건지...



https://cafe.naver.com/mysteryjapan/16571 

 이건 옛날에 처음 읽었을 때 쓴 포스팅. 지금 읽으니 되게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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