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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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6







스포일러 있음



 '반전이 있다'라는 말이 그 자체로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여러 경우가 있겠는데 이 작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반전의 경우의 수가 극히 한정적이라 뻔히 보였던 게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반전이 없으면 이 작품이 지금 우리 세대까지 읽힐 가치가 없기에 반전이 있다고 알린 서문이 어떻게 보면 참 교묘하지 않은가 싶었다. 만약 그 정도의 기대감도 심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책을 완독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

 나치가 잠식하기 시작한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는 좋게 말하면 순수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뻔하디 뻔했다. 그나마 독일의 문화를 사랑했던 두 소년의 마음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이하게 다가오는 지점이겠는데 작품이 집필된 게 오래 전이라 흡입력은 없이 고루하게 읽혔다. 분량이 100페이지를 조금 넘어가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생각보다 읽는 시간이 더뎠다. 내가 독일 문화 전반에 무지해서 그런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작품에 있어서 개성이라 여길 부분이다 보니 이 점은 좀 아쉽다. 취향을 탈 것이란 생각과 더불어 분량이 짧다고 가볍게 접근할 만큼 진입 장벽이 낮진 않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했다.


 두 주인공, 특히 화자의 친구인 콘라딘의 위악적인 면모는 이 작품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글쎄, 콘라딘이 위악자였는지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듯하다. 결과적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루돼 처형됐다지만 정확히 어느 시점에서부터 암살을 결심했는지는 화자로선, 그리고 독자로선 알 길이 없으니까. 화자인 한스가 미국으로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든 그 진심 어린 듯 히틀러를 지지했던 편지의 내용이 정말 사실 그대로의 감정이었는지 모르는 일이잖은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과 콘라딘의 최후를 설명하는 한 줄의 문장 외엔 없다. 물론 여기서 반전이 더욱 강조돼야 한다면 처음부터 콘라딘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친구를 구했다는 게 정답일 것이다. 실제로 '반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며 읽은 나는 그 가능성을 내내 떠올린 채 읽었기에 막상 막판의 반전이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냥 역시나 싶었다. 반대로 콘라딘이 위악자가 아니었더라면 내겐 그게 더 반전이었을 것이다. 그래, 괜히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사실은 콘라딘이 처음부터 위악은 아니었을지 모른다고 저 혼자 망상을 떠들고 있는 게 아니다. 오죽 반전이 놀랍지 않았으면 이러고 있겠는가? 여백의 미가 출중한 것이 이 작품의 여운이자 장점일 텐데 '반전이 있다'며 해석의 재미가 일부 제한된 것은 아니냐며 불만을 제기하는 게 나만의 과한 반응이려나?


 두 인물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로써나, 나치의 만행을 폭로하는 이야기로써나 간결한 분량을 제외하면 그렇게 회자될 만한 작품은 아닌 듯한데 홍보가 교묘해서 사람들한테 의외로 먹혔던 게 아닐까 싶다. 만약 이 책의 서두가 서두가 아니라 후기로 배치됐다면 이 작품의 인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내 경우엔 애당초 완독도 하지 못했을 테니 해당 서문의 내용 또한 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자체로 스포일러긴 하나 '반전이 있다'고 언급한 서두는 꽤 교묘하고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로 노린 것이라면 얄팍하지만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어쨌든 완독은 하게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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