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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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읽고 나서, 어렸을 때 한 번 읽고 기억에서 잊혀진 <죄와 벌>과 비교적 최근에 읽었다고 할 수 있을 기시 유스케의 <푸른 불꽃>이 떠올랐다. 죄를 범한 자는 설령 벌을 받지 않더라도 언제 들킬 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은 막대한 비밀을 가진 중압감과 충동을 안고 살아야하므로 죄를 범한 그 순간부터 죗값을 치룬다는 말이 있다. 우발적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는 불안한 비밀은 열두 살 소년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일 터다. 물론 그 소년보다 더 어린 피해자의 죽음에 비하면 그런 불안한 비밀 같은 건 어리광을 부리는 것과 다름없지만...

 굳이 추리소설로 명명하지 않아도 이와 비슷한 서사를 갖춘 작품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당장 내가 초장에 언급한 두 작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추리소설 중엔 '도서 추리'라고 해서 살인을 저지른 화자가 어떻게 발각당하는 것인가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오가는 심리 묘사에 주력하는 하위 장르가 있긴 한데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이란 작품은 그 장르와도 살짝 다르다. 이야기의 면면을 살펴보면 추리소설보단 심리 소설에 더 가깝다. 주인공이 범죄를 저질렀을 뿐이지 이야기 자체에 추리소설의 문법을 기대하고 읽으면 예상보다 무겁고 느릿한 진행에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평이하게 읽힌 작품이다.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은 분량도 짧고 이야기의 윤곽도 단순한 편인데 대게 이런 소설은 대략의 스포일러를 당하고 봐도 상관 없을 만큼 묘사를 비롯한 과정이 좋다거나 혹은 생각보다 더 단순한 나머지 일절의 스포일러도 당하면 안 되는 두 가지 분류로 나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이 내겐 후자의 경우로 다가왔는데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1부라면 몰라도 2부까지 스포일러를 당했던 게 정말 치명적이기 이를 데 없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서술에 있어 가식이 없는 점이 특징인 프랑스 소설답게 열두 살 살인자 앙투안의 심리 묘사가 무겁고 음울하고 현실적인 게 인상적이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기껏 자신의 죄의 흔적이 남은 고향 마을을 떠났으나 순간의 실수와 우연한 상황 때문에 다시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전개는 흥미진진했지만 기본적으로 유쾌함이 전무한 이야기라 이래저래 쾌감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이 작품을 종류를 불문하고 그저 쾌감을 얻으려고 읽는다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한 것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이 소설이 컨셉이며 감정선을 잘 유지했다는 반증일 테지만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작중의 심리 묘사며 전개 양식이 딱 예상대로 흘러가니 만족도가 그리 크진 않았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진실 때문에 살짝 소름은 돋았지만 그마저도 짧은 분량에 어울리는 규모의 반전이라 완전히 놀랍지 않았다. 나름 여운을 주는 마무리란 건 인정하지만 죄책감을 묘사함에 있어 끝을 보여준 <푸른 불꽃> 같은 작품이 계속 머릿속에 아른거려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소름 돋는 작품이라고만 느껴졌다. <푸른 불꽃>을 프랑스 사람들이 읽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그 작품은 심리 묘사며 추리소설로써의 재미도 정말 탁월했는데... 어쩌면 추리소설이란 카테고리를, 이른바 장르 소설을 읽는다는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이번에 읽은 작품이 지금보다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답니다....... 나 자신도 그래요....... 그리고 어느 날, 그만두게 되죠. - 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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