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 그들은 왜 행복할까
유승호 지음 / 가쎄(GASSE)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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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최근 노르웨이를 다녀오고 나니 북유럽에 대한 관심이 전보다 더욱 커졌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노르웨이말고도 다른 북유럽 국가도 가봤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여행 에세이는 처음 읽어본 것 같은데 내가 블로그에 쓰는 여행기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읽기 전에 뭘 그렇게 낯설어했을까 싶었다. 오히려 이런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었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는 거의 궁극적인 이유를 이 책의 저자가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에서 '이 책은 여행자용 에세이나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라고 하지만 다른 여행책과는 이야기의 관점이 다를 뿐 엄연히 저자가 코펜하겐에 가서 느낀 바를 담았기에 여행 에세이라 이름 붙이지 않기도 애매하다. 이 책과 가장 비슷했던 책이라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들 수 있겠는데 그 책은 덴마크인 저자가 자기 나라에 대해 얘기했고 이 책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우리나라 저자가 코펜하겐에 가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얘기한다는 차이가 있다.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이 책을 <덴마크 사람들처럼>과 같이 읽으면 참 좋을 듯하다. 의외로 얘기하는 내용이나 태도가 비슷한데 재밌는 건 덴마크인 저자 쪽의 태도가 더 겸손한 걸로 - 자기 나라 얘기를 함에도 불구하고. - 기억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유승호 교수가 오만하기 짝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겸손이 국가와 국민의 미덕이라 불리기도 하는 덴마크인이 상대인 지라...


 사회학 박사인 유승호 교수가 본 코펜하겐의 모습은 범상치 않다. 과연 이 사람처럼 생각하며 코펜하겐을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 생각해봤다. 물론 저자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의 생각들에서 일종의 생각하는 노하우를 찾아본다고 하면 상관없겠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람들이 여행을 두고 왜 견문을 넓히는 경험이라고 하는지 몸소 보여주기 때문이다.

 야간 열차를 덴마크로 가는 동안 만난 덴마크인들과의 대화에서, 그리고 배낭여행을 온 우리나라 여대생 민서와의 짧고 우연한 동행 속에서 - 이런 부분들이 재밌었다. 픽션과 실화의 경계에 있는 것 같아 상황이 어색해도 적당이 웃고 넘길 수 있었다. - 저자가 자연스럽게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는 게 책의 주된 내용이다. 주로 코펜하겐을 얘기함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상황도 함께 비교 분석하는 패턴이었는데 덴마크를 덮어놓고 찬양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한 게 눈여겨볼 만했다. 특히 저자는 목수와 변호사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덴마크인들의 모습에서 큰 문화 충격을 받은 듯한데 의사나 법조인 같은 직종이 우리나라에서 가진 위상을 보면 저자의 심정에 그리 공감하기 어려운 건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의사나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 중에 해당 직업 의식은 둘째 문제고 그저 성공이 우선인 사람이 적잖으니까. 그런 사람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나온다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애당초 드라마나 영화가 뭘 기준으로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답은 자명해진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나라, 양성평등이 자연스럽게 자릴 잡은 나라, 조금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환경과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하려는 나라, 일부 천재나 부자에겐 제재가 심하지만 나머지 범인과 약자에겐 자비로운 나라...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덴마크는 우리와는 정말 다른 나라다. 그래서 덴마크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부러운 걸 넘어 박탈감이 느껴질 정도고 심지어는 우리나라완 환경이 너무 달라 그 나라의 장점을 현지화시킬 수 없다는 사뭇 비관적인 감상이 나올 지경이다. 이와 같은 감상에 대해서 <덴마크 사람들처럼>에선 국적을 떠난 개인의 믿음, 그리고 거창하지 않게 단지 자신의 주변에서부터 실천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삶의 태도가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독자를 고무시킨 바 있다.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은 위와 같은 고무적인 마무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어쩌면 여행이 곧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인상을 주기에 이른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어쩌면 내가 최근에 노르웨이를 다녀오고 여행기도 썼기에 유독 공감이 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책이나 매체로만 접하다가 실제로 그 나라에 가면 그 이상의 감상이 남는 법인 걸 온몸으로, 우여곡절을 거쳐 깨달았으니까. 그렇다 보니 책이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다면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을 분명 나 자신과 내 주변에 적용시킬 수 있으리라.


 이 책의 저자만큼 사회학적으로 면밀히 생각을 정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나은 여행기를 쓸 수 있는 힌트는 얻은 것 같아 유익하기 그지없었다. 덴마크에 관한 이야기도 다른 어떤 여행책에서도 접하기 힘든 저자만의 해석이 깃들었던 점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덴마크에 간다면 이 책의 내용을 꼭 되짚을 것이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973089310 


 이건 <덴마크 사람들처럼>을 읽고 쓴 포스팅.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도전정신은 ‘불행한 실종‘이다. - 34p




못생기고, 키 작고, 뚱뚱하고, 촌티 나고, 돈 없는 사람을 역겨워하면 내 주변에 다가오지 않아 나는 깨끗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뿌려진 과도한 항생제는 면역성을 상실한 나의 정신을 노출할 뿐이다. - 93p




나에게 계속 나쁜 짓을 하는 친구는 당연히 싫다. 그러나 나의 나쁜 짓이든 좋은 짓이든 다 좋아하고 웃는 친구를 우린 좋아할 것 같지만 그건 잠시다. 그러다 나는 내 나쁜 짓을 고칠 기회조차 잃게 되고, 결국 난 주변으로부터 외톨이가 되고 만다. 내가 외톨이가 되면 나를 보고 좋아하던 친구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외톨이가 된 친구와는 계속 사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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