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기다림
오츠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9.5







 예전에, 특히 독서 경험이 거의 전무했던 때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설레지만 한편으로 불안한 일이기도 하다. 독서 경험이 전무했던 때엔 무심코 집어든 책이 뭐든 간에 감탄했을 확률이 높고, 또 그 작품을 하나의 독서 기준에 포함시킨 채 지난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떤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단순히 책을 두 번 읽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일 수밖에 없다. 이는 어쩌면 굉장히 부끄러움을 수반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둠 속의 기다림>은 겉보기엔 소름 돋는 설정의 소설일 것 같다. 시각장애인 여성 혼자 사는 집에 살인용의자가 숨어 들어온다. 실제 시각장애인분들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는데 지금 보니 비할 수 없이 소름 돋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 전무후무한 동거는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저자 오츠이치는 뜻밖에 매우 감성적인 답을 진지하게 내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 <어둠 속의 기다림>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이 등장하는 소설로써 내가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 심지어 처음 읽을 당시인 8년 전에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어온 두 남녀 주인공의 심정에 퍽 공감이 가서 한껏 매료되기도 했다. 그때 적잖이 소름 돋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번에 다시 읽으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는데, 일단 가장 적응이 안 된 건 작품에 녹아있는 감성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문장도 꽤 좋았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잔재주 부리지 않아 평범하게 느껴지는 정도다. 감성에 대해 자세히 말하자면 언뜻 깊은 고민이 녹아든 라이트 노벨의 작풍이 느껴졌다. 지금 스스로 라이트 노벨의 작풍을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했다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유독 정상적인 관계 형성에 서툰 주인공이 둘이나 등장하다 보니 묘사된 심리들에서 미숙한 느낌을 없지않아 받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저런 말을 쓴 것 같다. 아무튼 두 주인공의 미숙한 심리가, 이른바 아웃사이더의 모습이 이 작품의 개성이자 강점이지만 중반부에서 이 둘의 소통과 교류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뤄져 내심 전형적으로 관계 형성에 서툰 사람들이 꿈꾸는 판타지를 보는 듯한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내가 대단히 관계 형성에 능숙한 사람인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말해 그건 절대 아니고;;; 다만 이 작품의 소름 끼치고 민감한 소재가,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를 감성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 게 보는 이에 따라선 그리 와 닿지 않을 수 있겠단 우려가 들어 굳이 '판타지'란 단어를 써가며 지적하고 싶었을 뿐이다. 두 번 읽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전히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 특히 중반부에서 둘이 조용히 스튜를 나눠 먹거나 후반부에서 같이 걷는 장면은 어지간한 로맨스 소설 뺨치게 아름답거니와 지금 봐도 멋진 장면이고 연출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미치루가 공감 능력이 남다른 걸 넘어 살인용의자 아키히로에게 일부 자애롭기까지 한 태도를 보이니 이 역시 판타지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이건 여담이지만 전근대적인 일본 특유의 무의적으로 존댓말하는 여자와 무의식적으로 반말하는 남자의 관계가 이 작품에서도 엿보였던 건 - 번역이 이상한 거야, 원래 이런 거야? - 아쉬웠다. 글쎄, 이런 점을 차치하더라도 미치루와 아키히로가 말없이도 서로 척하면 척 통하는 데가 있어 역시 로맨스 소설도 넓게 보면 판타지구나 싶기도 했다.


 추리소설로써의 <어둠 속의 기다림>은 내용에 비해 분량이 약간 긴 편이지만 돋보이는 설정을 준수하게 감당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결말에서의 반전은 비교적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개인적으로 결말의 연출도 약하다고 느껴졌지만 생각보다 꼼꼼한 복선과 더불어 초반에 언급한 시각장애인과 살인용의자의 동거란 전개는 몇 번을 생각해도 대담해서 만만히 볼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작가 입장에선 이런 걸 생각한 자신이 무척 뿌듯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나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막막했겠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이유는 전개에 있어서 필요한 요소들이 잘 녹아든 점을 높이 사는 것에 있다. 처음엔 혼자 사는 시각장애인의 생활을 아웃사이더의 자발적인 고립이란 대목에 대입시킨 게 좀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회사 생활에서 겉돈 아키히로의 등장에 힘입어 주제의식이 심화돼 절묘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걸 이렇게 연결시키네? 하고. 이건 작중의 상황이나 감성의 어색함으론 덮을 수 없는 지점이었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 추리소설이 소설로써 보다 인상적이게 되는 순간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개입될 때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두 주인공의 소통 방식엔 판타지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다르게 말하면 자의든 타의든 여러 요인으로 인해 관계 형성의 벽에 막히거나 좌절한 사람들이 매우 순수하기 짝이 없지만 재도전을 하는 과정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본작의 사건이나 전개가 꽤나 적합한 양상으로 이뤄졌다고 인정할 만하지 않은가 싶었다.


 다시 읽다보니 이 작품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몰입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마주치는 것 같아 쑥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다. 초반엔 내가 옛날엔 뭘 보고 소름이 돋았었냐며 얼굴이 화끈해질 뻔했는데 끝까지 읽으니 소름이 돋을 만했던 부분이 나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실망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래 두 번째 접한 책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해줬다. 책 두 번 읽는 게 어떻게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는데 이번처럼 생산적이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라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



 p.s 이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볼 일만 남은 것인가. 처음 읽었을 때 영화도 꼭 봐야지 했는데 어떻게 8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못 본 건지...



https://cafe.naver.com/mysteryjapan/16571 

 이건 옛날에 처음 읽었을 때 쓴 포스팅. 지금 읽으니 되게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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