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시 찬가 - 언어괴물 신견식의 ㅣ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신견식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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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노르웨이에 가기 전에 본 노르웨이 관련 여행 프로그램 중에 이 책의 저자 신견식 씨가 출연한 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노르웨이의 풍경과 더불어 이 번역가가 보여준 엄청난 어학 능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회화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노르웨이어를 구사하고 어쩌다가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고, 그래서 이 책 표지에서의 '언어괴물 신견식'이란 수식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 본문을 봤을 땐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콩글리시란 기존에 있던 영어가 한국어나 한국 문화와 결합돼 탄생한 유사 영어로 실제로 영어가 국어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어 콩글리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게 통념이곤 했다. 나 역시 그 생각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저자인 신견식 씨는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달리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아울러 콩글리시 또한 존중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내용들은 우리가 실제로 영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온전히 영어인지 살펴보거나 실제 영어와 쓰임이나 형태가 다른 단어들의 변천 과정, 그 과정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여러 나라의 언어가 결합된 경우도 살펴본다. 이때, 막연히 콩글리시 얘기를 할 테니까 영어만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불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포르투갈어...... 온갖 언어가 다 언급돼 일일이 기억하고 옮겨적기 버거울 정도다.


 저자는 쉽게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전문적이라 책의 본문은 어느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어렵게 다가왔다. 저자가 살펴본 온갖 예시는 우리 일상 속에서 충분히 마주친 단어들이라 반갑고 신기하긴 했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지레 질렸던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글들의 담론이 비슷한 감이 있어 비교 언어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끝까지 흥미를 갖고 읽어가기에도 쉽지 않았다. 물론 저자의 한결같은 담론이 전문성에 기반했고 일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한 사려가 깊은 자세가 여실히 전해져 그 담론 자체를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저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 속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는 원래는 중국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자는 중국의 한자와는 매우 다른데 우리는 이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솔직히 부끄럽다느니 뭐니 할 정도로 신경 쓰는 사람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영어는 무조건 변형이나 아종에 대해선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영어가 영국이나 미국 내에서의 백인들이 구사하는 영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어야말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글로벌한 언어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그만큼 여러 언어권의 사람들이 쓴다는 얘기니 백인이 쓰는 영어만이 아니라 각각의 영어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정석대로 배우고 구사하는 게 맞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단순히 기존에 있는 언어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춰 변모를 거듭하는 현상에서 엿볼 수 있는 감탄스럽고도 재밌는 지점에 대해서 주목해주길 바라며 열심히 글을 썼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자는 콩글리시로 대표되는 여러 유사 영어, 변형된 언어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하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번역가가 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모든 번역가가 신견식 씨 같은 태도로 언어를 다룬다면 참 바랄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번역한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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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쿠라 일기」전 ㅣ 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 단편 미스터리 걸작선 3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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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8.7







 요번에 작가의 고향이자 책의 제목에도 명시된 고쿠라를 여행가게 돼 이 책도 읽게 됐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창시자이자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등 현대 추리소설가들의 귀감이자 정신적 스승이라고 볼 수 있는 이 거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추리소설 애독자로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추리소설가로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는 것. 책의 표제작인 '어느 「고쿠라 일기」전'이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데 원래 나오키상 후보작이던 걸 한 심사위원이 아쿠타가와상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 낙선과 동시에 바로 그쪽 상의 후보에 올려 수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나라만큼 폐쇠적이진 않지만 일본 문단에서도 순수문학의 위상과 권위가 결코 낮지 않은 만큼 어떻게 추리소설이 최고의 순수문학상을 받았을까 싶어 늘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읽게 됐다.

 고쿠라에 있는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까지 가니까 확실히 느낀 건데 이 작가를 단순히 추리소설가의 틀 안에서 바라보는 건 좀 지양해야 할 일일 듯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기본적으로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범죄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도 썼을 뿐이지, 단순히 추리소설 그 자체를 쓰는 작가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기념관에서의 전시 내용과 - 기념관의 내용은 추후 여행기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 이 12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추리소설은 한 손에 꼽을 정도고 가장 궁금했던 표제작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빌린 다른 형태의 소설이었다. 이 작가가 생전에 천 편이 넘는 소설을 발표한 걸 생각하면 의외로 알려진 것보다 집필한 추리소설의 수가 적을 수 있겠다고 생각됐다. 혹은 그런 특성 덕에 추리소설의 외연이 넓어진 것일 수도 있겠고.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물론 저마다 양상이 다 다르지만 대체로 공통된 키워드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초기작이라 이런 키워드들이 유독 두드러진 것 같다. 바로 '가난', '콤플렉스'가 그렇다. 특히 인텔리나 고학력을 향한 경멸과 그로 인한 자격지심, 피해망상 같은 게 인상적이었는데 화려하지 않고 어떤 독자의 말마따나 구수하기도 하지만 진솔하고 알기 쉬워 단편집임에도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어떤 경우엔 몇 권으로 이뤄진 장편보다 여러 소설이 수록된 단편집이 완독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하는데 이 책은 각 작품들의 공통된 키워드 덕분인지 맥락이 비슷해서 비교적 연속으로 읽기에 피로감이 적은 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속된 말로 작가가 소설들을 '공장에서 돌린 듯' 쓴 건 아니라 3편씩 읽고 멈추고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작가의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장에서 돌렸다라는 말은 빈말로라도 나오지 않는다.

 원래 신문 기자를 꿈꿨던 만큼 이 작가는 취재가 천직인지 각 작품의 소재나 배경에 대한 설명의 깊이가 하나같이 감탄스러웠다. 대부분의 작품이 작가의 삶의 일부와 맞닿은 듯했는데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소설화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취재와 작가적 상상력과 해석을 매 소설 속에 녹여낸 건 소설가 지망생인 나를 상당히 자극시켰다. 이 정도로 공부해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가... 하면서. 이러한 공부와 병행한 집필 활동은 평생 가난과 고졸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발로된 결과라 볼 수 있겠는데 이 정도면 콤플렉스를 무척 모범적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적어도 작가의 작품들 속 주인공에 비한다면 작가는 아주 건전하기 이를 데 없다.



 '아버지를 닮은 손가락'


 가난에 이골이 났을 작가의 가장 자전적인 작품. 사람이 가난하면 여유가 부족해지고 성격이 좁아진다는 전개를 자기 이야기를 하듯 세밀하게 묘파해냈다. 근데 사실, 가난이란 소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익히 다뤄진 소재라 더는 새로울 것도 없고 솔직히 말해 지긋지긋할 정돈데 마쓰모토 세이초가 쓰니까 무게가 확실히 달랐다. 작품의 시대며 배경이며 지금 내 처지와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주인공의 심리가 낯설지 않았던 게 인상적이다.


 '어느 「고쿠라 일기」전'


 표제작. 주인공이 모리 오가이의 '고쿠라 일기'에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동기는 그리 와 닿지 않았지만 그 속엔 예술적인 숭고함이 깃들어 있어 확실히 아쿠타가와상에 어울리는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날 때부터 병을 안고 태어난 청년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홀어머니와 살아가는 정경이 상당히 짠했고 끝내 그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죽는 결말도 서글프기 짝이 없다. 삶 자체가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이라고 감히 말하긴 힘들지만 확실히 주인공 고사쿠의 삶은 그런 측면에서 꽤나 비범하게 다가왔다.


 '국화 베개'


 여성 하이쿠 문인인 주인공이 당대에 이름을 떨치고 그 이름이 어떤 식으로 지게 됐는지 살펴보는 전기 형식을 띈 소설. 앞서 수록된 두 작품과 비슷하지만 문단에서의 고립을 자청했다고 볼 수 있는 주인공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던 게 달랐다. 이후 수록작에서도 이렇게 주인공이 어떻게 살다가 비극적으로 죽었다더라 라는 식의 이야기 구조를 보이지만 의외로 크게 비슷한 경우는 없는 건 또 신기하다.


 '빨간 제비'


 우리나라 사람으로선 그렇게 달갑지 않을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에서의 일본군의 이야기인데 의외로 읽다보면 그렇게 거북하진 않다. 작가가 딱히 한국 독자를 배려해서 그랬다기 보단 그냥 작품의 배경이 한국이고 주요 인물이 일본군일 뿐 역사나 정치와는 무관해서 그런 듯하다. 아무튼 위안부가 될 뻔했다는 낙인이 찍힌 여인들이 얼마나 기구해지고 전락해지는가 라는 주요 스토리 라인에 주목한다면 요즘에도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쳐도 그 사소한 낙인 하나가 - 특히 여성한테 찍히는 낙인이 그렇다. - 이렇게 뒤틀린 감정을 만든다는 건 참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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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레스토랑 세컨즈
브라이언 리 오말리 지음 / 미메시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9.4







 난 이 작품을 사서 읽었다. 책의 가격이 25,000원인데 내가 아무리 만화를 좋아해도 저 가격을 처음 듣고 난색부터 표했음을 먼저 고백한다. 사실 나는 만화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이뤄진 이상 어느 정도 분량이 갖춰진다면 소설보다 비싸야 한다는 지론을 늘 주변에 피력해온 사람이다. 그렇기에 가격 운운하는 것이 좀 찔리지만 그래도 2만 원이 넘는 가격대는 아무래도 감상 자체를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설령 320페이지에 올 컬러, 게다가 하드커버라서 저 정도 가격이 책정된 거라 하더라도 말이다.

 중요한 건 역시 작품의 완성도다. 책의 디자인, 종이의 질, 출판사나 작가의 이름값이 대체로 책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인 듯한데 그럼에도 결국 독자들이 최종적으로 만족도를 느끼는 부분은 당연히 책의 내용이다. 음악은 사실상 돈을 내지 않아도 유튜브에 검색하거나 아니면 길을 걷기만 해도 감상할 수 있다는 것과 영화는 관람 시간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한 티켓값을 받는다는 것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른바 가성비를 논할 때 책의 가격이란 것은 항상 소비자를 만족시키기에 불리한 면이 없지않아 있다. 이북이 아닌 이상 책은 책장 한쪽에 자리를 차지해 관리가 필요하고 특히 요새는 가격도 꽤 올라가 도무지 가벼운 기분으로 팍팍 사지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이건 기본적인 얘기고, 독자 본인이 책에 노력과 시간, 심지어 기분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나 만족도가 불확실한 게 책인데 가격대가 높을수록 한 사람의 독자로서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과연 이 책이 종이의 질을 능가하는 만족도를 나에게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항상 하는 편은 결코 아닌데 가격이 가격인 터라 이번에 유독 이 점이 신경 쓰였다.

 서론이 길었다. 내가 이 작품을 왜 사서 읽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처음 접하는 작가고 작가의 대표작이라는 '스콧 필그림' 시리즈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다. 작품에 대한 리뷰는 현저히 적어서 완성도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순전히 인터넷 서점의 '미리보기'를 통한 첫인상만으로 이 책을 구입해서 읽기에 이르렀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이는 내 기준에선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과감한 도박인데 왜 이런 도박을 감행했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고작 25,000원을 지불하는 게 무슨 도박일까 싶겠지만 난 보기보다 책 구입에 깐깐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 선택이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이런,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이 불가사의한 선택은 다행히 나에게 어떤 후회도 안겨주지 않았다. 살짝 위험한 생각일 수 있지만, 스케일이 작은 도박은 해볼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작품의 그림체가 너무 좋았다. '모에' 요소를 남용하는 모든 일본의 만화가들이 속된 말로 머리 박고 반성해야 할 정도의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체는 실로 매력적이었다. 서양의 그래픽 노블이라 명명되는 만화를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그림체는 그중 단연 으뜸인 걸 넘어서 어딘가 익숙하기까지 했다. 알고 보니 작가가 한국계의 피가 섞인 캐나다 출생의 만화가란다. 하지만 그림체란 건 핏줄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닌데... 그냥 작가의 그림체과 원래 개성적이고 그 스스로가 연구를 많이 한 것이라 생각해야겠다.

 컬러풀한 그림체 덕에 가격에 대한 불안감은 일찌감치 사라진 대신 작품의 차분하면서 깊이가 있는 작품의 이야기에 서서히 빠져들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작품의 주요 소재인 평행 세계와 관련한 SF 설정들과 스토리 텔링은 그렇게 참신하지 않았다. 과거를 바꾸는 방식이나 방식의 기원에 대한 설정만 다를 뿐, 주인공 케이티가 겪는 온갖 일들과 감정 소모는 아주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아... 나올 게 나왔네', '예상대로군' 이라며 한숨이 나오진 않았다. 참신함은 늘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리라.


 케이티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몰입됐다. 제법 잘 나가는 셰프인 케이티는 본인 소유의 레스토랑 준비로 바쁜데 그 레스토랑의 부지나 내부 시공을 비롯해 사소하지만 거슬리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자 자신만만했던 성격이 무색하게 케이티는 묘하게 신경질적이고 무기력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전 남친의 등장과 그녀가 속한 레스토랑에서 가장 예쁜 직원인 헤이즐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화상을 입는 사건이 터지자 케이티는 과거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눈에 보이자 어떤 고민이나 의심도 없이 그 방법에 손을 댄다. 설마 진짜로 과거가 바뀔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저 바라기만 할 뿐이지.

 이후에 전개될 일들은 뻔하다. 점점 과거를 바꾸는 맛에 길들여진 케이티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바뀌어 가는 자신의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게 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 샌들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 <클릭>이 생각난다. 자신의 의식이 부재한 과거가 만든 낯선 현실이 아무리 이상적이라도 정이 갈 리 없다. 그런데 이상적이지도 않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과거를 바꾸는 대가가 이처럼 느닷없이 예측불허로 바뀌는 현실이라면 과거는 바꾸지 않고 그냥 현재에 만족하는 게 낫다. ...라는 교훈을 작품은 매력적이고 흡입력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로 잘 이끌어내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자기 인생을 돌아봄에 있어서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을까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꽤나 보편적으로 몰입 가능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다. 이렇게 보편적인 이야기에 중요한 것은 작품 자체의 완성도, 즉 깊이다. 이야기의 깊이는 이 작품에서 그림체만큼이나 내세울 수 있는 요소다. 사소하지만 공감 가능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주인공 케이티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버거워 할 독자는 몇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케이티의 선택이나 그에 따른 후회 등도 마찬가지로 몰입하기 용이할 것이다.

 바뀐 현실로 인해 막장으로 치닫는 전개가 황당할 수 있고 결말이 맺어지는 방식이 뻔히 보이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겠다. 하지만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면 원래 예상 외의 결말은 내기 쉬운 게 아니고 또 반전이 있는 결말이 무조건 좋은 결말이 아니기에 이 작품의 다소 뻔한 결말이 곧 작품의 단점이라고 봐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건 그림체와 몰입도, 그리고 뻔한 소재나 결말애도 불구하고 몰입이 되는 스토리다. 그런 면에서 종이의 질이나 올 컬러 등의 이유로 높게 책정된 작품의 가격은 가성비의 논란을 무난히 비껴갔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이든 음식이든 뭐든 간에 2만 원을 넘게 지불하면 가성비를 느끼기 쉽지 않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기억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 특히 대표작인 '스콧 필그림' 시리즈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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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9.4







 <마션>은 리들리 스콧 연출, 맷 데이먼 주연의 동명 영화로 유명한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극장에서 두 번 봤을 정도로 괜찮게 봤던 작품이라 원작 소설을 이제 와서 읽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두 번이나 봤기에 시간을 좀 두고 읽으려고 한 것인지 덕분에 내용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비교적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 영화 못지않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처음엔 특유의 유쾌함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고 하드 SF 특유의 이공계 지식에 대한 서술이 이해하기 쉽지 않아 완독을 포기할 뻔했는데 화성에서 표류 중인 와트니의 시점에서 벗어나 지구로 초점을 맞추자 이야기가 비로소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라고 하는 책의 캐치 프라이즈에 비해 화성이 그렇게 흥미진진한 장소로 그려졌다는 느낌은 덜했지만 상술했던 특유의 유쾌함 덕에 원만히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영화도 꽤 유쾌하다고 생각했는데 원작은 더하네.


 소설과 그 소설을 원작으로 둔 영화를 보고 비교할 때마다 느끼지만 소설이나 영화나 장단점이 뚜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체로 원작 소설이 압도적으로 완성도가 높아 소설의 손을 들어주긴 하지만 <마션>의 경우엔 영화도 만만치 않아... 솔직히 말하면 영화가 좀 더 괜찮았다. 아마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느낌이 달라질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설명 위주에다가 어딘가 난잡했던 와트니의 일지 전문이 영화에선 선택과 집중을 거쳐 밀도 있게 연출된 게 아무래도 몰입도를 더 높이지 않았나 싶다.

 이야기의 주요 배경은 와트니가 표류 중인 화성과 지구의 나사 본부인데 개인적으로 소설에선 나사 본부에서 와트니 한 명을 구하려고 각 분야의 전문가/ 천재들이 모여 구조 계획을 세우는 게 훨씬 재밌었다. 우리나라였다면 책임 회피니 뭐니 해서 쓸데없이 시간만 날리거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인물이 설치고 다녔을 텐데 - 예를 들자면 영화 <터널> - 이 작품에선 소설이나 영화나 그런 장면이나 인물이 없어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이에 대해선 작가가 구조된 직후의 와트니의 독백으로 자신의 의견을 대변하는데, 사람들은 타인을 돕고자 하는 선한 본성이 있기에 와트니가 구조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어떻게 보면 작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와트니를 화성에서 구조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다시피 행동에 옮기는 점일 것이다. 수많은 과학적 실증은 문외한인 내가 봐도 독보적으로 현실적인 것에 비해 - 어찌나 현실적인지 와트니의 생존기는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다. 작가가 그만큼 연구를 한 것일 테고, 또 그만큼 화성에서의 생존 및 탈출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 이 부분은 조금은 낙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처럼 작가의 의견과 나의 감상의 차이는 전적으로 문화권이 달라서 벌어진 생각의 차이에 불과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순수하게 과학도들은 이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작중에서 중국 항천국이 나사를 도와줄 때 이건 정치가 아니라 과학이라며 힘을 보태주는 장면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하드 SF라는 순수하게 과학적으로 그럴싸한 소설을 쓴 작가의 성향에 미치도록 부합하는 전개가 바로 이 작품의 전개가 아닌가 하고. 어떤 암중모략이나 이해타산적인 구석 없이 과학적 성취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사람들끼리 힘을 모은다, 이보다 더 뿌듯하고 값진 전개는 있을 수 없다고 작가가 몸소 써내려 간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봤다.


 앞서 말했듯 동명의 영화를 조만간 한 번 더 볼 생각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의 장면이 너무 어른거려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어른거리는 영화의 장면들이 아니었다면 초반부의 지루하고도 높은 진입 장벽을 넘지 못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영화가 정말 잘 만들어진 것 같다. 여담인데, 내가 영화 관계자라도 이 작품은 영화화해야겠다고 진지하게 구상했을 것이라고 작품을 보는 내내 고갤 주억거렸다. 그 정도로 드라마틱하게 잘 짜여진 작품이니까. 단지 영화화가 원작 못지않거나 혹은 그 이상이라는 게 놀라울 뿐. 아, 이렇게까지 말하니 조만간 진짜로 한 번 더 봐야겠다.



https://blog.naver.com/jimesking/220510412962

 이건 영화 <마션>에 대한 포스팅.



인상 깊은 구절


하지만 진짜 이유는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타인을 도우려는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다.

등산객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사람들이 협력하여 수색 작업을 펼친다. 열차 사고가 나면 사람들은 줄을 서서 헌혈을 한다. 한 도시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구호품을 보낸다. 이것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 나쁜 놈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멋지지 않은가? - 597~5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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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만의 군사화와 성폭력 - 여성사에서 본 이와쿠니 미군사기지
후지메 유키 지음, 양동숙 옮김 / 논형 / 2013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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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일본에서 미군과 관련해서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은 단연 오키나와라고 생각했는데, 오키나와보다 덜 유명할 뿐 일본 본토에도 미군 기지가 몇 있고 그에 따른 사건 사고도 다른 기지촌 못지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책에선 히로시마만灣이 전후에 어떻게 군사화를 거쳤고 그 과정 속에서 여성사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얼마나 많은 성폭력이 발생했는가를 아주 깊고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제목엔 히로시마가 들어가지만 저자가 실질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지역은 히로시마 근처에 있는 이와쿠니라는 곳으로 나 개인에게 있어 2년 전에 히로시마에 갔을 때 그 존재를 알았던 곳이다. 관광적인 측면에선 일본 3대 다리라는 긴타이교와 이와쿠니 성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 미군 기지가 있고 그렇게나 많은 사고가 발생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떤 장소를 관광적인 측면 이외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겠다고 반성하게 됐다.

 책은 매우 진지한 학술 보고서라 무수한 각주와 숫자가 등장해 내용의 실함과 무관하게 흡수하기 벅찬 건 사실이었지만 이는 곧 저자의 진지함을 반증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1부만 좀 버거웠지 2부부턴 얘기가 달랐다. 저자가 말하길 2부는 아예 따로 기술해야 할 만큼 이래저래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데 굳이 여성사적인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그냥 사건 자체에 짙게 깔린 인격 모독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히로시마 시에서 한 여성을 집단 강간한 이와쿠니 기지의 미군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건 우리나라의 사례와 비슷해서 아주 놀랄 것도 없었지만 디테일하게 파고드니 이건 뭐 기함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일본이 역사적,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미국에 거역하지 못하는 나라라지만 이건 좀... 특히 재판장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당시 상황을 증명해보라고, '소리'를 재현하라고 시켰다니...... 이건 단순히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미군 편을 들었다는 식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릇 비극이란 한쪽에서만이 아닌 여러 방면에서의 압도적인 실수 혹은 악행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1차는 미군이, 2차는 재판장이 가한 폭력은 그 여성에게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을 것이 자명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최근에 호사카 유지 교수가 출연한 <대화의 희열>을 봤을 때도 느낀 건데 군대가 있는 곳은 항상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조직 규모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 당장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베트남 전쟁 때 우리나라 사람이 저지른 만행도 같은 선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경향엔 아마도 군대가 인권 감수성과 가장 무관한 조직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을 떠올리며 얘기하자면 군대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닌 군인을 만드는 곳이라 군인들이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중요한 건 이런 군대의 경향이 바뀌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쨌든 군대 역시 군인 이전에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니 달라지리라고 기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 후지메 유키 같은 여성들도 입대를 많이 하고 최근엔 핸드폰 사용이 보편화되는 것처럼 군대도 많이 변화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너무 낙관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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