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글리시 찬가 - 언어괴물 신견식의 뿌리와이파리 한글날
신견식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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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노르웨이에 가기 전에 본 노르웨이 관련 여행 프로그램 중에 이 책의 저자 신견식 씨가 출연한 편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노르웨이의 풍경과 더불어 이 번역가가 보여준 엄청난 어학 능력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비교적 회화가 약하다고는 하지만 노르웨이어를 구사하고 어쩌다가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고, 그래서 이 책 표지에서의 '언어괴물 신견식'이란 수식이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책 본문을 봤을 땐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콩글리시란 기존에 있던 영어가 한국어나 한국 문화와 결합돼 탄생한 유사 영어로 실제로 영어가 국어인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어 콩글리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게 통념이곤 했다. 나 역시 그 생각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는데 저자인 신견식 씨는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생각을 달리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아울러 콩글리시 또한 존중받을 만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내용들은 우리가 실제로 영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온전히 영어인지 살펴보거나 실제 영어와 쓰임이나 형태가 다른 단어들의 변천 과정, 그 과정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여러 나라의 언어가 결합된 경우도 살펴본다. 이때, 막연히 콩글리시 얘기를 할 테니까 영어만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불어, 독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헝가리어, 스웨덴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포르투갈어...... 온갖 언어가 다 언급돼 일일이 기억하고 옮겨적기 버거울 정도다.


 저자는 쉽게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전문적이라 책의 본문은 어느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어렵게 다가왔다. 저자가 살펴본 온갖 예시는 우리 일상 속에서 충분히 마주친 단어들이라 반갑고 신기하긴 했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지레 질렸던 것 같다. 그리고 각각의 글들의 담론이 비슷한 감이 있어 비교 언어학 전공자가 아닌 이상 끝까지 흥미를 갖고 읽어가기에도 쉽지 않았다. 물론 저자의 한결같은 담론이 전문성에 기반했고 일리가 있으며 무엇보다 저자의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한 사려가 깊은 자세가 여실히 전해져 그 담론 자체를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저자의 주장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 속에서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한자는 원래는 중국의 언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한자는 중국의 한자와는 매우 다른데 우리는 이에 대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솔직히 부끄럽다느니 뭐니 할 정도로 신경 쓰는 사람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영어는 무조건 변형이나 아종에 대해선 배척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문제는 우리가 기준점으로 삼고 있는 영어가 영국이나 미국 내에서의 백인들이 구사하는 영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영어야말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글로벌한 언어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텐데 그렇다면 그만큼 여러 언어권의 사람들이 쓴다는 얘기니 백인이 쓰는 영어만이 아니라 각각의 영어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정석대로 배우고 구사하는 게 맞지만 이 책을 쓴 저자는 단순히 기존에 있는 언어가 아닌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춰 변모를 거듭하는 현상에서 엿볼 수 있는 감탄스럽고도 재밌는 지점에 대해서 주목해주길 바라며 열심히 글을 썼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저자는 콩글리시로 대표되는 여러 유사 영어, 변형된 언어에 대해서도 인식을 달리하자는 취지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번역가가 쓴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모든 번역가가 신견식 씨 같은 태도로 언어를 다룬다면 참 바랄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번역한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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