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만의 군사화와 성폭력 - 여성사에서 본 이와쿠니 미군사기지
후지메 유키 지음, 양동숙 옮김 / 논형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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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일본에서 미군과 관련해서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은 지역은 단연 오키나와라고 생각했는데, 오키나와보다 덜 유명할 뿐 일본 본토에도 미군 기지가 몇 있고 그에 따른 사건 사고도 다른 기지촌 못지않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책에선 히로시마만灣이 전후에 어떻게 군사화를 거쳤고 그 과정 속에서 여성사적인 시각에서 볼 때 얼마나 많은 성폭력이 발생했는가를 아주 깊고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제목엔 히로시마가 들어가지만 저자가 실질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지역은 히로시마 근처에 있는 이와쿠니라는 곳으로 나 개인에게 있어 2년 전에 히로시마에 갔을 때 그 존재를 알았던 곳이다. 관광적인 측면에선 일본 3대 다리라는 긴타이교와 이와쿠니 성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 미군 기지가 있고 그렇게나 많은 사고가 발생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떤 장소를 관광적인 측면 이외의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겠다고 반성하게 됐다.

 책은 매우 진지한 학술 보고서라 무수한 각주와 숫자가 등장해 내용의 실함과 무관하게 흡수하기 벅찬 건 사실이었지만 이는 곧 저자의 진지함을 반증하는 것일 터다. 그리고 1부만 좀 버거웠지 2부부턴 얘기가 달랐다. 저자가 말하길 2부는 아예 따로 기술해야 할 만큼 이래저래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데 굳이 여성사적인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그냥 사건 자체에 짙게 깔린 인격 모독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히로시마 시에서 한 여성을 집단 강간한 이와쿠니 기지의 미군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건 우리나라의 사례와 비슷해서 아주 놀랄 것도 없었지만 디테일하게 파고드니 이건 뭐 기함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일본이 역사적,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미국에 거역하지 못하는 나라라지만 이건 좀... 특히 재판장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에게 당시 상황을 증명해보라고, '소리'를 재현하라고 시켰다니...... 이건 단순히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미군 편을 들었다는 식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릇 비극이란 한쪽에서만이 아닌 여러 방면에서의 압도적인 실수 혹은 악행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1차는 미군이, 2차는 재판장이 가한 폭력은 그 여성에게 도저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을 것이 자명하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최근에 호사카 유지 교수가 출연한 <대화의 희열>을 봤을 때도 느낀 건데 군대가 있는 곳은 항상 사건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무자비하게, 조직 규모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 당장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베트남 전쟁 때 우리나라 사람이 저지른 만행도 같은 선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런 경향엔 아마도 군대가 인권 감수성과 가장 무관한 조직이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내 경험을 떠올리며 얘기하자면 군대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닌 군인을 만드는 곳이라 군인들이 사람 같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중요한 건 이런 군대의 경향이 바뀌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어쨌든 군대 역시 군인 이전에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니 달라지리라고 기대해보는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 후지메 유키 같은 여성들도 입대를 많이 하고 최근엔 핸드폰 사용이 보편화되는 것처럼 군대도 많이 변화하는 것 같으니까... 내가 너무 낙관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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